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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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2월호]     대륙분류 : [남아메리카]     국가분류 : [페루]     도시분류 : [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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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나의 사소한 대척점에서

Reader's Essay :: South America

나의 사소한 대척점에서

너무 뚜렷한 기억이라서 차마 글로 담기엔 벅찬 때가 있다. 특히 사랑과 여행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며칠 혹은 몇 달간 많게는 몇 년간 빈 종이에 활자조차 마주할 수 없게 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 ‘와타나베’가 ‘나오코’에 대한 기억을 적어 내는 데 무려 이십여 년의 시간이 걸렸듯, 나는 지난 여름 떠난 남미 여행을 이제야 적어 낼 수 있게 되었다.
글과 사진 김세윤 에디팅 이소윤 기자

김세윤 l 경기도 용인시 신수로
음악과 문학과 축구를 사랑하는 20대 청년입니다. 여행이란 곧 익숙한 것을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믿고 있기에 매일 집으로 돌
아오는 새로운 길을 탐색하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여행하며 살고 있습니다.

페루 리마, 사소한 그리움

“여행지에서 경험한 어떤 순간이 가장 그리우신가요?” 이 질문에 우리는 어떻게 답할까. “저는 콜로세움의 그 웅장함이 그리워요”라든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화려한 모습이 가슴에 사무치네요”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길을 가다가 어느 카페를 지나는데 너무 아름다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거에요. 마침 그 날의 노을은 어찌나 완벽한지 세상 모든 사람들의 그림자가 땅거미에 빨려 들어갈 때까지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네요. 집으로 돌아와 그때 우연히 들었던 노래를 찾아 들을 때마다 그 날이 너무나 그리워져요. 사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네, 그 분위기가 정말 그리워요. 한 번만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페루는 안데스 산맥의 대자연과 고대 잉카 문명의 중심지로서 전 세계 수많은 여행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해발 5,000미터에 달하는 설산을 올라 더없이 파란색에 가까운 69호수에 도달한 순간이나, 새벽안개를 뚫고 떠오른 일출을 마추픽추에서 맞이한 순간 모두 감격스러웠지만 정작 나에게 기억
되는 진짜 페루는 그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그 누구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더 마음을 맞출 수 있었는지 모른다. 페루의 수도 '리마Lima'를 거닐며 지친 다리를 쉬려고 찾은 잔디밭에서 내 또래의 페루 친구들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연극을 전공하는 그 친구들의 흥과 끼는 마치 그곳이 클럽이라도 된 듯 쉴 새 없이 떠들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데 전혀 어색함이 없게 만들어 주었다. 저녁 무렵, 그들은 현지인들만 안다는 바닷가에 나를 데려갔다. 어둠이 깔리고 반대편 육지에서는 하나둘 불빛이 켜졌다. 해변의 돌 밟히는 소리와 색소폰 연주자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던 몸짓, 그리고 어디선가 구해 온 담배를 나눠 피울 때의 냄새. 우리의 그리움은 매일 하던 습관처럼 이렇게나 사소하다.

페루 쿠스코에서 깨달은 사실, 행복의 전이는 의외로 간단하다

별밤이 화려한 아타카마 사막의 밤.
페루 마추픽추
페루의 와라즈,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69호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체스를 두는 어르신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마지막 노을
우루과이 콜로니아 델 세크라멘토
벽에 그려진 아르헨티나의 대표 인물들

오페라 극장을 개조해 만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서점


칠레 아타카마 사막, 조금 느린 시간

흔히들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원대하고 거창한 계획이었는지 우리는 금방 깨닫게 된다. 그 경지에 오르려면 과연 어떤 여행을 떠나야만 하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사실 평생 찾기 힘든 답을 여행 한 번으로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인생에 대한 편법이 아닐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여행지에서 보다 깊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익숙한 곳에서 느끼지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한다는 점이다. 칠레 '아타카마Atacama 사막'의 시간은 참 더디게 간다. 태양도 우주의 법칙을 거슬러 잠시 쉬었다 갈 만큼 모든 것이 느린 곳이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쪼개가며 부지런히 이곳저곳을 다녀야겠다는 나의 계획도 곧 바뀌어 버렸다. 자연의 섭리에 온전히 몸을 맡기자 행복이란 의외로 참 단순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캠핑 의자에 기대어 책장을 넘기면서 마주한 나와의 대화, 사막이라는 특수한 장소가 그런 힘을 보태어 준 건지도 모른다. 소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 그토록 헤매던 장소도 결국 사막이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그만큼 사막은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무한한 인내심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세포 같은 별들이 뜰 때까지 사막은 서울에서의 시간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떤 배경

샤갈에게는 '비테프스크Vitebsk'가 있었고 존 레논에게는 '스트로베리 필즈 Strawberry Fields'가 있었다. 다시 말해, 예술가들에게는 그들 작품의 내면적 배경이, 뮤즈가 항상 존재해 왔다는 뜻인데 만약 내가 그들처럼 위대한 걸작을 창조하게 된다면 그 배경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를 택하리라 다짐할 만큼 그곳은 단순히 여행지로 머물다 떠나긴 아쉬운 도시였다. 현대식 고층 건물과 유럽 이민자들이 남긴 옛 건물, 세계 최대의 대로인 '7월 9일 거리'와 19~20세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전차가 다니던 옛길, 원주민 계통의 사람들과 복잡한 뿌리를 지니고 있는 유럽 이민자들, 그리고 그들을 받아들인 쓸쓸한 항구까지 한 데 얽혀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향기를 뿜어내는 이 도시에 나도 뒤엉켜 살고 싶었다. 그런 우수에 젖어 밤길을 거닐다 보면 꼭 누군가가 나를 불러 와인을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몇 번째 오는 거야?”라고 물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곧 그 이유에 대해서 충분히 짐작이 갔다. 그리고 결국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처음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 온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믿게 되었다. 어째서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보르헤스가 그토록 이 도시를 사랑했는지, 또 왕가위 감독이 영화 <해피 투게더>를 어째서 이곳에서 촬영했는지를 며칠간의 경험으로도 알 수 있었다.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대척점의 풍경

서울에서 땅을 파고 그대로 지구 반대편까지 도달한다면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 Montevideo’ 앞바다가 나온다고 한다. 이 지점을 세계 지리 시간에 ‘대척점’이라고 배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곳.나는 이 이유 하나만으로 남미 여행의 끝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마무리하고 싶었다. 사실 이전까지 우루과이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얼마 없었다. 수아레즈, 무슬레라를 비롯한 유명 축구 선수들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무히카가 사는 나라라는 것 정도 밖에는. 알고 보니 우루과이는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의 하나였고 남미의 모든 도시에 쉽게 볼 수 있었던 거리의 개똥도 거의 없었다.
며칠 동안 해가 나지 않는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 되었다. 그래서 못내 아쉬웠는데 몬테비데오에서 머물던 마지막 이틀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계속 되었다. 때마침 주말을 맞아 모든 몬테비데오 시민들이 집 밖으로 나온 듯 방파제를 따라 뻗어 있는 산책 로는 발 디딜 틈 없이 웃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남미에서도 주로 남쪽 지방의 사람들은 항상 마테차를 들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따라 마신다. 특히 새로 만난 친구들과는 마테 잔에 차를 따라 같은 빨대로 마시는 것이 이곳의 문화이자 인사였다. 선뜻 내키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가 한 뚝배기에 찌개를 끓여 다같이 나눠 먹듯 마테를 나눠 마시는 것도 그저 자연스러운 이곳의 문화이니 남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참고했으면 좋겠다.

시작

소설 <상실의 한 데 얽혀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나오코’에 관한 기억이 이십여 년이 지나서야 선명해졌듯 나에게 남미 여행에 관한 기억 또한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지고 명료해졌으면 좋겠다. 여행은 집을 나서는 순간 시작되고 모험은 길을 잃은 순간부터 시작된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삶의 방향을 잃고 지친 때에 젊은 날의 여행을 추억하며 지금은 잠시 모험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다시금 용기를 얻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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