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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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8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일본]     도시분류 : [와카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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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고야산과 구마노 성지, 속세의 뒷모습을 보다

Wakayama :: Pilgrimage
高野山, 熊野

고야산과 구마노 성지, 속세의 뒷모습을 보다

나에게 고야산과 구마노 성지는 일반적인 여행지 그 이상이었다. 어느 누가 감히 이곳을 색다른 여행지 중 한 곳으로 삼고 그 특징과 의미를 쉬이 말할 수 있을까. 평소 지상에서 보고 느끼던 풍경과 문화가 기다리고 있는 산 하나로 치부하기엔 고야산 역사의 실체는 실로 거대하다.
와카야마현의 고야산과 구마노 성지, 이 두 영험한 땅은 단순한 이색적인 여행지가 아닌, 여태 살아온 이 속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차원의 세상이었다. 지상과 하늘 그 사이를 잇는 공간이 존재한다면, 아마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와카야마현, 인페인터글로벌

속세와 잠시 등질 준비 되었다면, 고야산으로 오라

유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순례길은 세계에 단 2곳뿐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과 일본 와카야마현의 기이산 영지와
참배길. 기이산지는 와카야마와 미에, 나라 세 현으로 나눠져 있는 기이반도의 대부분을 가리킨다. 방대한 산악지대인 기이산지는 예로부터 울창한 삼림과강한 땅의 기운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신화 시대 때부터 신들이 임하던 자리로 기이산지를 명한 것이다. 기이산지의 영지 3곳 중 와카야마현에 속해 있는 고야산과 구마노 산잔. ‘고헤지’라는 구마노 고도 루트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 두 영지는 고로 와카야마를 방문했다면 놓쳐선 안 될 여행지이다. 해발 1,000미터 산 정상 위에 넓은 평지가 조성되어 있는 고야산에서 처음 신곤 불교를 창시하고 이를 위한 터전으로 가꾼 이는 고보 다이시 대사였다. 그렇게 약 1,200년 전부터 사찰 단지가 조성되어 가장 번성할 때는 2천 개에 가까운 사원이 한 데 모여 있었다고. 현재는 117개의 신사가 옹기종기 모인 불교의 보금자리로 지상과 천계를 잇는 새로운 차원의 세상을 실현해 놓았다.
지금은 불교대학과 함께 순례자와 여행자에게 잘 곳과 배움을 선사하는 수십개의 사찰,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안락한 시내를 조성하고 있다. 산 속의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머물고 스치는 지점이기에 편의점과 같은 시설도 갖추고 있다. 현세를 딱 한 입만 베어 문 듯한 길거리가 아기자기해 산책길이 더욱 즐겁다.

고야산의 심장, 단조가란

고야산 위 종교 도시로 입장하기 위해 가장 먼저 다이몬 게이트를 통과했다. 서쪽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늠름한 자태로 세워져 있는, 고야산 여행의 출발점이다. 불교에서는 서쪽에 낙원이 있다고 믿는다. 고로 다이몬 게이트를 통해 서에서 동으로 입장하며 모두가 성스러운 땅에 발을 디디는 것이다. 그 이후로 시작되는 길을 따라 죽 늘어선 사찰과 여러 건물들을 지나 첫 번째로 향한 곳, 바로 단조가란이다. 세 개의 큰 사찰들이 모여 있는 단조가란 단지는 고야산 신곤 불교의 중심지다. 단조가란에 들어선 후 해발 천 미터 위의 햇빛이 이토록 부드러울 수 있음에 감탄했다. 시원시원하게 펼쳐진 넓은 부지 때문인지, 높이를 가늠하기 힘든 무수한 삼나무 때문인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인간이 지은 사찰과 이곳 자연이 아주 은은하고 온화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고야산 어디든 즐비한 고목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기 위함인지, 단조가란에서 가장 중요한 신사 곤본다이토는 무려 48미터의 높이로 모두의 시선을 빼앗고 있다. 신곤 불교 제 1의 신이 모셔져 있는 장소다운 늠름함을 풍긴다.

일본 전통 건축미가 매혹적인 곤고부지

고야산에서 단조가란 다음으로 꼽히는 신사는 단연 곤고부지이다. 단조가란의 사찰이 한 눈에 담기지 않는 큰 규모의 웅장함을 내비치고 있다면, 곤고부지는 일본 불교의 고대 건축 철학과 미학을 가장 여실히 체감할 수 있는 장소이다. 신사 외관에서부터 풍기는 건축물로서의 아름다움 때문에 신곤 불교의 본산이 라는 그 의미가 희미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신발을 고이 벗고 내부로 들어서니 아름다운 전통 그림으로 장식된 미닫이문 ‘후스마’로 모든 방들이 화려하고, 일본 최대의 바위 정원인 ‘반류테이’를 조우하며 잠시 말문이 멎었다. 모든 자연물은 그만의 기운과 혼을 갖는다는 이곳의 믿음을 담아 작은 바위, 흔한 나무의 기가 주변 모래 위 무늬로 잔잔히 표현되고 있다.

상상 그 이상의 슈쿠보 체험기

이처럼 대단한 신사들을 방문해보는 일 외에 고야산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또 있다. 고야산의 템플 스테이, ‘슈쿠보’에 묵어보는 것이다. 이곳의 117개 사 찰들 중 52개의 사찰이 순례자와 여행자들에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은 결코 단순한 숙박업소가 아니다. 투숙객에게 식사와 숙박, 사찰 체험을 모두 제공하기 때문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사찰마다 각기 개성이 다르기에 그들만의 규율과, 제공하는 체험의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나와 일행이 하룻밤을 묵은 슈쿠보는 단조가란 바로 곁의 ‘사이젠인’이라는 작은 사찰이었다. 오래된 본관 건물 곁으로 새로 지은 객실 건물이 딸려 있는데 모던한 다다미방이 웬만한 료칸 부럽지 않게 쾌적했다. 거기다 고야산이니 당연히 속세와 단절된 캄캄한 밤을 지새울 것 같았던 예상에 반전도 선사한다. 최근에는 공유 와이파이를 갖고 있는 슈쿠보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하지만 슈쿠보마다 각기 다른 규
율과 체험 방식을 갖고 있으니 입실과 동시에 이에 관한 정보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테면 사이젠인은 사찰 출입문 시간이 오전 6시부터 오후 9시까지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 시간 전후로는 문이 잠겨버린다. 더불어 매일의 아침 불공 시간은 오전 6시 30분. 투숙객들은 사찰의 수도승, 다른 투숙객들과 함께 불공에 참여한 후 조식이 제공되는 방으로 다같이 이동했다. 특히 독특했던 건 화장실과 목욕탕은 공용 시설만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객실에서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오직 세면대뿐. 특히 몸을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공용 목욕탕은 저녁 9시반까지만 문이 열려 있어 이곳의 규율을 따르기 위해선 노력하지 않아도 일찍 씻고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불편함조차 이곳이 선물하는 긍정적인 문화적 차이를 당해내진 못했다. 이는 저녁과 아침을 장식한 사찰 요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명 ‘쇼진 요리’로 수 세기 동안 고야산의 수도승들이 먹어온 방식을 고수한 한상차림이다. 채소와 식용 야생 식물만을 사용하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장 자연적으로 조리하며 각 음식이 내는 색감의 조화까지 고려하는등 나름의 법칙 아래 조리된 음식들만을 상에 올린다. 그 맛이 어찌나 순수하게 좋은지 매번 내 앞에 놓인 모든 그릇의 바닥을 드러내었다.

숲의 정령이 사는 곳, 오쿠노인

슈쿠보에서의 아침은 평화로웠다. 최면과도 같은 스님 불공 소리에 매료되며 잠결을 헤집고 나와 달디 단 산의 공기와 함께 아침을 맞았다. 그런 맑은 정신과 함께 찾아간 곳은 강한 기운이 흐르는 고야산의 묘지 ‘오쿠노인’이다. 고야산 1,200년의 역사를 처음부터 함께하는 오쿠노인은 안치된 묘만 약 20만 개에 이르며 날로 그 숫자가 늘고 있는 일본 최대의 공동묘지이다. 묘지 입구에서 출구까지 이어지는 2킬로미터의 길 옆으로 빼곡한 비석과 묘지들이 삼나무와 이끼의 품속에 뒤섞여 있다. 일본 내에서도 이토록 수많은 묘가 긴 시간을 거치며 켜켜이 한 데 모여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특히 오쿠노인에 모셔진 수많은 영혼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구석구석 함께 세워진 크고 작은, 다양한 모습의 불상들이 흥미롭다. 겨울이면 추위를 피하라고 옷감을 턱받이처럼 걸쳐주고, 여름이면 뜨거운 햇빛을 피하라고 챙 넉넉한 모자를 씌워주기도 하는 고야산의 신자들. 그 섬김의 방식이 내심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얼굴 전체에 곱게 화장이 된 불상도 있었다. 이런 불상을 만지면 예뻐진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그 주변에는 여러 동전과 나뭇가지, 꽃들이 수북하다. 오쿠노인은 오래된 만큼 보이지 않는 규칙으로 훌륭히 유지되고 있는 공동묘지이다. 묘지들을 구분 짓는 구역이 세밀히 정해져 있으며 그 구역의 담당 사찰이 해당 묘지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각 묘지의 주인은 담당 절에 필요한 관리비를 주기적으로 지불하는데, 사실 오쿠노인의 관리비는 비교적 비싼 편이라고 한다. 까마득한 과거에서부터 알아주었던 오쿠노인의 강하고 좋은 기운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예찬은 여전히 한결같아서, 오늘날에도 기 센 고야산 정상에 묘 자리를 두면 그 기운이 이어져 후손들의 삶까지 평탄해진다는 믿음이 있다고. 그래서 여러 이유 불사하고 일본의 내로라하는 가문, 대기업 인사, 정치인 등 모두가 오쿠노인에 묘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이 귀에 들리지 않을 만큼 오쿠노인의 숲과 이끼에 나는 한참을 반해 있었다. 세상에 숲의 정
령이 실로 존재한다면 분명 그들의 보금자리는 이곳이리라는 믿음 외에 다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만큼 고즈넉한 삼나무 숲이 마치 다른 차원의 시공간과도 같은 비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쩌면 이는 오쿠노인의 길 끝에 마련된 고보 다이시 대사의 영묘 기운이 사방에 퍼져 있는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오직 참배만을 기억하는 길, 구마노 고도

와카야마에 자리한 또 다른 성지, 구마노. 고야산과도 이어지는 이 땅은 영겁의 역사와 신성함을 품은 채 매일 수많은 순례자들을 반긴다. 이곳을 영지로 만드는 세 개의 신사, 구마노 산잔과 함께 말이다.
구마노 혼구 타이샤, 구마노 하야타마 타이샤, 구마노 나치 타이샤 3개의 신사로 이뤄진 구마노 산잔은 구마노를 찾는 모든 순례길의 목적지이다. 이곳으로 향하는 네 갈래의 길을 통틀어 우리는 구마노 고도라 부른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구마노 산잔을 잇는 나카헤치, 오헤치, 고헤치, 이세지 중 오늘날 가장 많은 순례자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와카야마의 타나베와 구마노를 잇는 나카헤치이다. 중세시대 때부터 교토나 서쪽에서 참배길을 시작하던 조상들 역시 이 경로를 애용했다. 이처럼 옛날에 만들어진 길을 뜻하는 ‘고도’라는 단어가 적절하게 쓰이기도 힘들 것이다. 외국 여행자로서 구마노를 처음 방문한 이들은 이곳의 종교 자체에 강한 이국적인 감흥을 느낀다. 그만큼 구마노 신앙은 독특하다. 구마노가 속하는 기이산지에 뿌리 박혀 있던 자연숭배사상, 중국과 한국에서 전파된 불교 등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융합해 완성된 신앙이기에 순수한 불교 이상의 토속 문화를 품고 있는 것이다. 구마노 신앙이 처음 등장한 헤이안 시대에는 신비로운 신의 영지에 닿기 위한 귀족 순례자들이 교토에서부터 30~40일에 걸쳐 구마노 고도를 걷고는 했다. 다이몬자카 길에서는 헤이안 시대 의상을 입고 숲을 걸으며 그런 과거의 참배길을 직접 상상하는 체험도 제공한다. 예나 지금 이나 간절한 걸음의 목적지 중 하나인 나치산 속 ‘구마노 나치 타이샤’ 신사는 인근의 나치 폭포를 신으
로 모시는 장소다. 본 신당과 일체인 세이간토지 삼중탑이 화려한 나치 폭포와 함께 완성시키는 절경은 구마노 성지와 나치산을 상징하는 모습 중 하나로 여겨진다.


기이산지 참배길 규칙

1 ‘인류의 유산’을 모두 함께 지킨다.
2 항상 기원하는 마음을 갖고 걷는다.
3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마음의 교류를 돈독히 나눈다.
4 동식물을 손상시키지 않고 가져가지 않으며 소중이 여긴다.
5 계획과 장비에 만전을 기하며 여유를 갖고 걷는다.
6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7 불조심을 한다.
8 쓰레기는 갖고 돌아가 길을 깨끗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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