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발행구분
[2018년 01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타이완]     도시분류 : [타오위엔]
기사제목
[OUTFIELD] 낭만에 젖고 예술에 물들다. 타이완

Travel :: Taiwan
Indulge in romance and art, Taiwan

낭만에 젖고 예술에 물들다. 타이완

천천히 다녀야만 하는 곳들이 분명히 있다. 타이완의 3번 국도가 그렇다. 하카족의 느린 숨결과 닿아있는 이곳. 서정과 우수가 짙게 밴 옛 골목에서, 아름다운 예술품을 빚어내는 장인들의 손끝에서, 수수하지만 가볍지 않은 풍경과 음식 앞에서, 순수해지는 영혼을 깨닫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이런 곳도 있었다.

글과 사진 임성훈 기자 취재협조 타이완 객가위원회hakka.gov.tw/English, 썬트래블suntravel.com.tw

익숙하지 않은 것에는 누구나 부담을 느낀다. 여행지도 그렇다. 먀오리苗栗, 신주 新竹, 타오위엔桃園현. 숱하게 다녀왔던 타이완이지만 낯선 이름과 일정에 내키지 않는 걸음이었음을 고백한다. 현지에 도착하자 가이드는 말했다. 이 지역은 하얀 오동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온 산을 덮는다고 했다. 그 모습이 꼭 눈이 온 것처럼 장관을 이룬다고 했다. 그리고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과연 그랬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듬성듬성 피어있는 하얀 꽃들만이 시야에 들어왔다. 여행을 마칠 때까지 그런 풍경은 계속 이어졌다. 시기가 맞지 않은 탓이다. 그렇다고 이번 여
행이 실패였느냐고 한다면 대답은 그 반대다. 하카족(우리식대로 읽으면 객가족 客家族이라 한다)이 예부터 터를 잡고 살았던 이 지역에서의 시간은 오동나무 꽃이 가득한 풍경보다 오히려 아름답고 멋졌다.

하카족의 문화와 삶이 녹아 있는 3번 국도

타이완 인구의 약 13%를 차지하고 있는 하카족은 중국에서 이주해 온 한족의 한갈래다. 산 넘고 바다 건너온 하카 사람들이 처음 타이완에 정착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타이완 인들에게 외면 받는 척박한 산중을 골라 터전을 잡았다. 보통의 삶을 영위해 내는 데만도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곳들이었다. 하지만 하카인 특유의 부지런함과 영민한 두뇌를 바탕으로 이를 극복하고 타이완 사회에서 곧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요직에 진출했고,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들도 대를 이어가며 계속 배출되었다. 현 타이완 총통인 차이잉원씨도 그 한 예이다. 이런 그들에게 삶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아울러 그것을 보존하고 지켜가는 데도 열심이다. 하카족의 이런 모습은 타이페이를 기점으로 남쪽으로 이어지는 3번국도를 따라 가다 보면 가감 없이 전해진다. 특히 산이 많고 골이 깊어 하카 사람들이 많이 몰렸던 먀오리, 신주, 타오위엔 등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 지역은 최근 ‘슬로 시티’로, 하카 문화 발신의 전초기지로 여행자들에게 차츰 이름을 알리고 있다.

 

1 난좡라오제의 입구에서 마주한 거대한 현수교, 캉지댜오챠오의 이국적인 모습
2 난좡라오제의 정겹고 소박한 골목풍경
3 난좡라오제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계단 골목.
4 하카족이 운영하는 작은 공방인 하오커 짜이이치에서는 간단한 DIY를 체 험해 볼 수도 있었다.
5 싼이 목조예술촌의 골목 소경. 편백나무 향이 흩날리는 예술가 거리를 산책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6 싼이 목조예술촌에서 만난 예술가 저우양(周楊)씨. 원래는 화가였지만 현재는 목조예술가로 활동 중인 그는 자연을 소재로 한 작품세계에 몰두하고 있다
7 라이탕야 가정미술관에서 만난 커다란 항아리들. 이 안에 다양한 맛을 자랑하는 식초들 이 발효되고 있다.
8 자연을 사랑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들, 바로 라이탕야씨 부부다.
9 시간의 흐름에 비켜서 있는 듯한 난좡극장의 야경


친환경적인, 그곳에 머물고 싶다

자연 속에 터를 잡고 살았던 환경적인 영향 때문일까? 이번 여행에서는 유독 자연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하카족 사람들과 가게
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먀오리현의 싼이향三義鄕에 위치한 ‘쭈오예샤오우 卓也小屋’다. 이곳은 친환경적인 천연 염색제품과 오가닉 푸드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곳이다. ‘탁 씨네 작은집’이라는 이름에서 소박하고 협소한 공간을 예상했지만 3만 제곱미터를 넘는 넓은 면적에 놀람도 잠시,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공방에서 ‘쪽 염색’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과정은 간단했다. 다양한 크기의 나무막대기에 무명천을 고무줄로 묶은 후 푸른 빛이 도는 쪽물에 삶아 내자 아름다운 문양을 가진 손수건 하나가 뚝딱 완성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천연 염색 제품을 만들어 내자면 쪽물에 담그고 빼기를 수십 번, 손도 많이 가고 소요 시간도 한참을 들여야만 하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단다. 실제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들이 공방 옆 매장에 전시되어 있는데, 그 오묘하고 깊은 색감이 감탄을 자아낸다. “쪽 염색에 쓰이는 재료는 산람과 아쌈잎이예요. 예쁜 색깔도 얻을 수 있지만, 기능적인 면도 뛰어나기 때문인데요. 이 잎들의 성분은 방충에 효과가 있어요. 벌레들이 아주 싫어하지요. 깊은 산속에서 살아 나가고 일을 해야만 했던 하카 사람들이 이 잎으로 염색된 옷을 즐겨 입었던 것은 그래서예요” 쭈오예샤오우의 주인인 여사장 탁 씨는 이렇게 말한 후, 힘주어 덧붙였다.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이런 자연의 것들이 언젠가는 인공적인 도시의 것들을 이길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요”

먀오리현의 농촌 한구석에 위치한 ‘라이탕야 가정미술관賴唐鴉家庭美術館’에서 만난 부부 또한 자연을 사랑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들
이다. 서예와 조소를 공부한 남편과 생물학을 전공한 아내는 이 지역의 자연에 반해 귀농을 결심했다. 그리고 여기서 식초를 연구하고, 생산하기 시작했다. 친환경적인 발효식초다. 매실, 포도, 감귤, 올리브, 오엽송, 사과 등을 재료로 한 식초는 종류만도 12가지나 된다. 이를 위해 100여 개
나 되는 커다란 항아리가 이 집의 한쪽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식초가 완성되기까지는 1년의 세월이 걸리고, 두 번의 발 효과정을 거친다. 첫 발효과정인 6개월 동안은 알코올 성분 가득한 술이 되고, 두 번째 6개월을 거치며 비로소 식초가 된다. 식초를 만들고 남은 재료는 모두 비료로 사용된다고 하니 알고 보면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식초제조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 집의 식초는 피를 맑게 해주고 혈액순환에 도움을 준다. 마침 레몬을 넣은 오엽송 식초를 시음할 기회가 있었는데 역시! 그 시원한 맛과 깔끔한 목 넘김에 정신까지 맑아지는 듯하다. 식초와 함께 이 집을 빛내고 있는 것은 예술가인 남편 라이탕야씨의 다양한 조각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비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아 궁금했는데 사연은 이렇다. 이 동네에는 벌레가 많다. 식초에 사용되는 과일나무를 재배하는 데 있어

조금의 농약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레가 많은 곳은 나비들이 특히 좋아하는 환경이 된다. 즉, 나비는 유기농과 청정지역의 심볼과 같다. 그리고 부부가 꿈꾸는 자연 친화적인 삶을 상징한다.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부부는 천연 염색한 옷을 손수 지어 입고,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음식을 먹으며, 이웃주민 들에게 무농약 농사를 설득하는 등 아름다운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런 노력의 결과는 마치 그들이 만드는 식초처럼 잘 발효된 듯하다. 매년 봄이면 이 동네가 나비들의 천국이 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1 과거 먀오리현과 타이중시를 잇던 철길인 '구 산선 '이 지나던 교각인 롱텅단교. 약 50m 높이의 다리로 건축 당시만 해도 산악철도 가운데 제일 높은 교량이었다. 하지만 1935년 발생한 대지진에 의해 파손되었고, 지금의 모습은 파손될 당시의 흔적 그대로다.
2 쭈오예샤오우의 매장에 전시된 천연염색 제품들. 깊은 색감이 인상적이다.
3 5 옛 건물들이 시선을 끄는 베이푸라오제의 골목 풍경
4 손수 염색한 천을 들고 웃고 있는 쭈오예샤오우의 사장 탁 여사.
6 강렬한 색감과 허름한 집기가 묘한 대비를 이루는 어느 식당의 모습. 베이푸라오제에서 만난 풍경이다 7 베이푸라오제의 오래된 펌프를
직접 체험해 보고 있는 어느 일본인 여행자
8 본문에 소개하진 않았지만 신주현의 루오우서원도 빼놓을 수 없는 스폿이다. 과거에는 이름난 서당으로, 또 유명한 건축물로 지역 내에서 이름을 떨쳤다. 현재는 숙박, 농경지 체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여행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사 진은 방문자들이 농경지 체험을 즐기고 있는 유쾌한 모습.

전통이 숨쉬는, 걷고 싶은 옛 거리들

라오제老街, 옛 거리 Old Street 라는 뜻이다. 하카족의 문화를 찾아 떠난 이번 3번 국도 여행에서 라오제의 산책은 여행의 깊이를 더하는
시간이었다. 여행지에서 뒷골목을 배회해 보는 것은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다. 하지만 골목마다 많은 시간이 쌓였고, 관
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오고 가는 이 지역의 라오제는 일단 걸어봄이 마땅하다. 먀오리 현의 난좡라오제南庄老街, 신주현의 베이푸라오 제北.老街, 타오위엔의 싼컹라오제三坑老街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산과 논으로 둘러싸인 먀오리현의 동북쪽은 하카인들이 특히 많이 사는 곳이다. 하카 문화가 비교적 많이 남아 있는 것도 그래서다. 이곳의 중심가였던 난좡라오제를 걷다 보면 이런 분위기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옛 거리의 입구는 거대한 현수교와 맞닿아 있다. 이름은 ‘캉지댜오챠오康濟吊橋’. 154m 길이의 이 다리는 과거 산에서부터 목재를 원활하게 운반할 요량으로 만들어졌다. 본래 이 거리가 가옥 13채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는 역사를 말해주듯 ‘13간 노가十三間老街 (쓰산젠라오제)’라고 디자인된 벽면을 거치면 비로소 타임슬립이 시작된다. 백 년이 지난 만물상, 우체국을 시작으로 1868년 개교한 학교, 1800년대의 분위기를 고수하고 있는 간판들이 줄줄이 나타나 시선을 사로잡는다. 라오제의 중심에 서 있는 난좡극장은 시간의 흐름에 비켜서 있는 이 거리 산책의 백미다. 예전의 극
장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외관과 더불어 과거 사용되었던 영화 관련 소품 등을 전시해 두고 있는 내부도 볼만하다. 지금은 하카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 범상치 않은 분위기 때문에 기념사진의 스폿으로 외지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하카족의 전통과 문화가 깊게 살아 있는 신주의 베이푸라오제, 특히 이곳에서 경험하는 ‘레이차’ 맛은 특별하다. 레이차는 땅콩, 참깨, 콩 등을 갈아 여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하카의 전통음료다. 곡물이 가득 들어간 덕분에 건강에 좋고 허기를 달래기에도 그만 이다. 직접 만들어 볼 기회도 가질 수 있지만 상당한 체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체크 포인트. 반경 250m 거리에 고적으로 지정된 유산
만 5개가 있을 정도로 예스러운 분위기의 건물들이 가득한 것도 베이푸라오제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싼컹라오제는 타오위엔에 있는 옛 거리로 과거 이 주변은 하카족이 제일 먼저 정착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거리에는 벽돌집들이 많이 보이는데 교역을 통해 경제적
으로 윤택해 지면서 이런 식의 가옥이 들어섰다는 귀띔이다. 100m가 채 되지 않는 거리로 타이완에서 가장 짧은 라오제라는 설명도 더
해진다. 그래도 골목마다 쌓인 사연과 세월의 무게는 다른 라오제들과 비교해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예술 정신, 하카 문화를 빛내다

먀오리현의 싼이 지역은 나무로 유명하다. 그야말로 나무천지다. 길고 곧은 나무들이 사방에 가득하다. 이곳에 목조 예술 마을이 자리를 잡은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목조 예술을 리드할 목적으로 타이완의 한 건설 회사에서 조성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예술가들만 20여 명. 주로 타이완 예술대학 동문이다. 단일 마을에 많은 예술가가 자리를 잡다 보니 집적효과가 생겼다. 재료의 수급도 쉽고 저렴한 가격으로 흥정도 가능하게 되었다. 정보공유는 덤처럼 따르는 부산물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목조 예술품은 대부분 편백나무를 사용한다. 타이완에서 많이 나는 품종이기도 하고, 유약을 쉽게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어 작품활동에 쉽기 때문이란다. 참고하자면 히노키탕으로 유명한 히노키가 바로 편백나무
다. 싼이 목조예술촌의 끝과 끝은 목조박물관과 갤러리가 둥지를 틀고 있다. 규모도 크고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알차게 시간을 보
낼 수 있다. 특히 ‘아트누트리 갤러리 Artnutri Gallery’ 에는 수준 높고 재미있는 그림이 많아서 산책에 지친 다리를 쉬어가며 허기진 탐미 의식을 채우기에 알맞다.


1 3 싼컹라오제의 소경. 옛 건물, 노인, 그리고 낡은 문의 조화가 그럴듯 하다
2. 1922년 지어진 베이푸라오제의 충서당.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문화재로 예약을 해야만 들어가 볼 수 있다.
4 타오위안에 있는 롱탄성지의 모습. 글자가 적혀 있는 종이를 태우는 소각장이다. 예부터 하카인들은 글자가 적혀있는 것을 아무 데서나 함부로 태우지 않았다. 활자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다. 그래서 태어난 시설이 바로 이런 활자 소각장이다

5 싼컹라오제에서 만난 재미있는 풍경. 단체 체조 덕분인지 이 동네는 유독 장수하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한다
6 싼컹라오졔의 초입에 있던 빨래터의 모습. 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 라 제일 위에서는 음식물, 그다음은 일반 빨래, 제일 끝에서 는 변기를 씻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7 하카풍 식당과 하카족 노인의 완벽한 콜라보.
8 오동나무 꽃을 소재 로 만든 이색적인 작품

이전글 다음글 리스트

메인페이지 | 회사소개 | 정기구독 | 뚜르드몽드 기사검색 | 커뮤니티 |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