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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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베트남]     도시분류 : [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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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무이네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자유

무이네로 향하는 열일곱 시간 

이 여행을 위해 베트남으로 가는 가장 저렴한 비행 노선인 부산-다낭 왕복 항공권을 13만 원에 구매해뒀다. 무이네로 이동하기 전, 베트남의 다낭Da Nang에서 먼저 이 나라를 배웠다. 베트남 커피 ‘쓰어다’를 마시며 한국으로 엽서를 보내기도 하고, 23년 만에 처음 베트남 음식을 먹어 보기도 하고, 혼자 바다에서 수도 했다. 

하지만 시끄러운 오토바이 경적 소리, 숨이 턱턱 막히는 쾌쾌한 매연, 쉴 새 없이 달려드는 호객꾼 탓에 하루가 끝나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얼른 다낭을 떠나 무이네 사막 위에서 샌딩보드를 타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드디어 다낭에서 나짱Nha Trang을 경유해 무이네로 향했다. 

무려 열일곱 시간의 여정이었다. 다행히 많은 이들이 지옥의 버스라던 슬리핑 버스는 나에게 천국의 버스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맘껏 들으며 자고, 책 읽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구름과 나무를 바라보던 시간은 무엇보다 행복했다. 

게으를수록 행복했던 무이네     

무이네에 도착하자마자 가까운 현지 여행사에 들려 ‘새벽 선라이즈 지프 투어’를 예약했다. 단 돈 만원에! 그러고는 적당한 가격의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 꾀죄죄한 몰골을 씻어내는 것으로 무이네에서의 하루를 시작했다. 다낭 그리고 호이안과는 달리 무이네에서는 정적이 나를 감쌌다. 그 고요함에 어색해하던 나를 반긴 건 게스트하우스 찾는 일을 도와줬던 혼 아저씨다. 

호객 행위인지 친절인지 헷갈리던 와중에도 나는 어느새 아저씨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헬멧을 쓰고 있었다. 일단 먹고 싶던 햄버거를 먹으러 판티엣Phan Thiet으로 넘어갔다. 아저씨는 내가 뭘 하든 몇 시간이든 기다려 줄 테니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오라고 했다. 

나는 부러진 삼각대를 고칠 접착제, 며칠 새 자란 앞머리를 자를 가위, 저녁에 먹고 마실 맥주와 과자를 오랜 만에 만난 베트남의 슈퍼에서 구매했다. 그리고 베트남의 국민 햄버거 가게라는 롯데리아에서 햄버거를 사 혼에게로 돌아갔다. 혼은 유난히 새끼손톱이 길었다. 그 이유를 알고 나는 새삼 놀랐다. 

베트남 남자들은 미혼이거나 여자 친구가 없을 경우 새끼손톱을 길러 자신이 솔로임을 증명한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혼이 추천해준 로컬 쌀국수 집을 찾았다. 그와 함께 쌀국수를 먹고, 뒤이어 현지 카페에 앉아 쓰어다를 마시던 즐거움은 정말 짜릿했다. 마치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이 된 것만 같아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비록 혼이 나를 여자 친구라고 친구들에게 소문 내 괜히 민망해지고, 결혼하자며 한국행 항공권 가격까지 물어보는 탓에 난감하긴 했지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돼. 피곤하면 맘껏 쉬어. 바다를 보고 싶으면 말해 데려가 줄게”라고 해주는 그의 여유로움이 좋았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게으름이 정말 행복했다. 

화이트 샌듄 레드 샌듄White Sand Dune & Red Sand Dune

전날 밤 쏟아지는 비에 게스트하우스 전체가 정전이 된 탓에 무서워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미리 예약했던 선라이즈 지프 투어는 이상 없이 새벽 4시에 사막으로 향했다. 내가 베트남에 온 유일한 이유는 바로 ‘화이트 샌듄’과 ‘레드 샌듄’이다. 사실 정확하게는 사막이 아닌 사구가 맞다. 

난생 처음 보는 모래 언덕에 무척이나 두근댔다. 해가 뜰 때까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사륜 바이크를 타고 모래 언덕을 질주 해보고도 싶었지만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 그저 두 발로 걸으며 화이트 샌듄을 맘껏 즐겼다. 그 다음은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레드 샌듄이다. 

비교적 규모가 큰 화이트 샌듄에 비해 레드 샌듄은 정말 콧방귀가 절로 나올 만큼 작았다. 일몰이 아름다워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장소라고 하는데 규모가 작은데다 여행객이 많아 조금은 난잡한 느낌도 있었다. 허나 개의치 않고 계획을 실행했다. 레드 샌듄에서 보드를 타려고 베트남까지 왔으니! 호객 행위를 하는 현지인들 중 꼬마 두 명에게 샌딩 보드를 빌려 무려 세 번이나 보드를 탔다. 

사진을 부탁 한 베트남 아저씨는 내가 너무 신나 보는지 몇 번이고 “이렇게 타봐! 저렇게 타봐!“하며 사진을 찍어 주었다. 즐겁게 여행하라는 하이파이브와 함께 나의 인생 사진들을 남기고 떠났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그 곳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정말 달라지는 것 같다. 함께 지프 투어를 한 필리핀 커플도 ”너, 정말 즐거워 보여!“라고 말할 만큼 나는 제대로 즐겼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을 직접 가져가 즐기면 그만 아니겠는가! 

피싱 빌리지Fishing Village 

무이네의 사람들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오토바이나 택시 투어, 혹은 고기잡이를 주업으로 삼는다. ‘피싱 빌리지’에선 아침 일찍부터 해변의 모래벌판에서 밤새 바다에 쳐놓은 그물을 당겨 고기를 들어 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와중에 보이는 특이한 풍경 하나는 바다에 떼 지어 있는 ‘까 이뭄Chai Mum’, 둥근 바구니배 이다. 

하지만 우리가 갔을 땐 바스켓 보트에 앉아 그물을 손질하는 어부가 두 명뿐이었다. 대규모 어촌을 구경하고 싶다면 무이네 시장을 한참 지나 있는 해안가 마을을 찾는 것이 좋다. 그곳에서야 진정 우리가 바라던 모습의 활기찬 어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요정의 샘The Fairy Stream 

베트남어로 ‘수 오이 티엔Suoi Tien’이라 불리는 ‘요정의 샘’은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강이다. 요정의 샘이라 하여 마치 요정이 살아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 들어간 이곳은 붉은색 황토로 된 기이한 형상의 석회암이 깎여 높이 솟은 바위 모양을 하고 있었다. 

가는 길엔 소들이 줄지어 있기도 하고, 발등까지 차는 강물 중간에 작은 폭포가 흐르기도 하고,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황홀한 곳이다. 거기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필리핀 커플이 마치 타잔과 제인으로 보일 만큼 아름다웠다.  

여행과 연애는 너무나도 닮았다 

누군가를 잊으려 무작정 시작했던 여행이다. 만나는 법은 수도 없이 배워 왔는데 헤어지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다. 그래서 여행 안에서 그 연애를 잊으려 했다. 하지만 여행 또한 떠남에 대한 설렘과 무언가를 보고, 하기 위한 즐거움, 그걸 이루기 위해 애쓴 노력, 그리고 다시 그 즐거움들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을 모두 품고 있었다. 

여행에 대한 추억에 잠겨 다시 사색하고 외로워지는 것을 보니, 여행과 연애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역시나 헤어지는 건 힘들다. 하지만 이번 베트남 여행을 통해 나는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얼 만큼 배려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오토바이 배기통에 데여 화상을 입기도 했고, 샌딩보드를 타다 다리가 온통 멍투성이가 되기도 했고, 가끔은 오토바이 기사가 바가지를 씌워 20분 넘게 밤길을 잃어 겁에 질리기도 하고, 넘어진 삼각대 덕에 휴대폰 액정이 깨지기도, 자전거에 치이기도, 다낭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혼자 낙오가 되기도 한 정말 버라이어티 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행복했던 여행이다. 다리에 화상은 입었지만 약 사러 멀리 약국까지 가주는 호스텔 직원이 있었으니, 화상 정도야 정말 혼 아저씨의 말대로 기념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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