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나의 집, 나의 궁전 

총 거주민이 3,500명 정도 되는 한 마을이 있다. 마을 안에는 10개 의 레스토랑과 5개 이상의 작은 식당, 2개의 큰 극장, 4개의 바, 쇼핑몰, 병원, 수영장 등을 비롯해 주민들이 생활하며 필요한 모든 시설과 서비스가 알차게 들어서 있다. 이 마을 전체와 모든 주민들이 통째로 바다 위에 떠 있다 상상해보자. 

그와 같은 규모의 선박이 바로 마제스틱 프린세스Majestic Princess 호이다. 그녀는 2017년 3월에 완성된 프린세스 크루즈사의 가장 최신판 걸작이다. 규모 14만 톤 이상의 이 대형 선박은 총 길이 330미터에, 19층으로 세워진 높이는 69미터에 달한다. 63빌딩을 뚝 떼어내 물 위에 눕혔다고 상상하면 쉽다. 

물론 높이 249미터의 63빌딩보다도 더 거대한 배이지만. 어마 어마한 규모 덕분에 마제스틱 프린세스는 어떤 항구에 정박되어 있어도, 아무리 멀리에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래서 이미 배 위에 올라타기도 전에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아직 차로 좀 더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서부터 두 눈에 선명히 들어오는 저 거대한 배의 탑승객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 흐뭇했다. 마제 스틱 프린세스 탑승객으로서의 자부심은 여행이 끝을 향해 갈수록 더욱 진해 졌다. 두 곳의 기항지에서 잠깐의 외출 후 다시 그녀에게 돌아가던 길은 여행의 것과는 다른 종류의 설렘이 발걸음을 가볍게 하더라. 그것은 단순한 귀갓길의 들뜸과는 달랐다. 

익숙하고 편안한 안식처로 돌아간다는 안심과 또 다른 여행지로 이동하는 흥분이 공존하는 것이었다. 이번 크루즈 여행은 총 3곳의 항구를 거치며 부산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대만의 ‘기룽항Keelung Port’에서 마제스틱 프린세스에 처음 올라타고, 하루 이상의 항해 끝에 ‘나가사키Nagasaki’에서 반나절 기항, 그 다음 날은 ‘사카이 미나토Sakaiminato’에서 반나절 기항하는 여정이다. 일회적으로 진행된 노선 이었지만 나에겐 마제스틱 프린세스부터가 여행지였다. 

사전 온라인 체크인으로 출력해놓은 서류들과 함께 북적이는 승선 과정을 마친 후, 처음 배에 입장한 순간을 잊지 못한다. 마제스틱 프린세스 호의 주요한 이벤트들이 대부분 열리는 장소이자, 언제나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 ‘피아짜Piazza’의 화려한 자태가 모든 피로를 눌러 내렸다. 

사방에서 반짝이는 금장과 대리석 바닥, 세 개의 층을 연결하는 원형 계단 등이 우아한 천장 아래로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피아짜의 위엄을 목격한 이후로 마제스틱 프린세스의 품격에 대한 확신은 흔들린 적이 없었다. 첫 방문이었던 대만 땅을 조금이라도 더 밟아 볼 생각보단 어서 그녀 품에 파고들고 싶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선실 

한 번의 크루즈 여행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객실 문 앞으로 향하는 순간 더욱 긴장됐다. 일반적인 경비로는 크루즈의 넓고 쾌적한 객실에 머물기 쉽지 않다는 근거 있는 편견이 있지 않은가. 허나 마제스틱 프린세스는 달랐다. 선박 내의 1,780개 객실 중에 80퍼센트의 객실에 개별 발코니가 마련되어 있어 탑승객 대부분이 내방 안에서도 고요히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역시나 개별 발코니가 포함되어 있던 나의 객실 번호는 M108, 15층의 뱃머리 코너 룸이었다. 마제스틱 프린세스 객실의 ‘인테리어 룸’, ‘발코니 룸’ 다음의 단계인 ‘디럭스 발코니 룸’에 속한다. 디럭스 발코니 룸 중에서도 배의 머리와 꼬리 코너에 자리하는 모든 객실은 다른 객실보다 2배 이상 넓은 발코니가 주어진다. 물론 뱃머리의 코너 룸은 항해 중 바람이 워낙 강해 발코니 이용이 수월 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의 갑갑함은 당연히 예상하던 중에 만난 객실이었기에 발코니와 객실의 남다른 면적에 먼저 감동했다. 거기다 널찍한 욕조가 들어서 있는 화장실과 큼직 한 킹사이즈 침대가 채운 침실 모두 이상적이다. 특히 마제스틱 프린세스의 모든 침대에는 수면의 과학을 오래 탐구한 전문가의 노하우가 담겨 있다.

‘침대 장인’으로도 불리는 ‘닥터 브루스Dr.Breus ’가 미세한 흔들림이 지속되는 항해 중의 크루즈에서도 질 높은 수면을 선사하기 위해 특별 제작한 매트리스들이 마제스틱 프린세스 호의 모든 객실에 갖춰져 있다. 안정적인 높이와 적절한 푹신함, 넉넉한 너비, 보드라운 시트로 완전하게 제작된 침대가 매일의 밤과 아침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이 멋진 침대 위에서 반쯤 드러누워 맛보는 가벼운 아침식사의 낭만 까지 곁들이면 더 바랄 것이 없어진다. 

모든 탑승객들이 이용 가능한 24시간 룸서비스 기능을 통해 언제든 원하는 음식과 음료, 주류를 전화로 주문해 받아볼 수 있다. 일부 추가 결제가 이뤄지는 메뉴들도 있지만 무료 메뉴들부터도 매력적이라 매 주문마다 행복한 고민에 빠졌었다. 아침식사는 선내에서만 접속할 수 있는 크루즈 사이트에서 전날 밤 미리 주문해 놓거나, 주문서를 작성해 방문에 걸어 두고 잠들면 된다. 

통 크게 한 주전자로 배달된 부드러운 커피와 빵 몇 조각만으로도 바다 한가운데 내리쬐는 아침햇살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보고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크루즈 속에서 객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이미 행복해지는 것이 이 완전한 휴식의 함정이다. 

크루즈의 낮을 만끽하는 방법 

선실에 붙잡혀만 있고 싶던 마음을 흔든 건 바다였다. 망망대해에서 덩그러니 항해 중인 크루즈를 만나는 첫 아침, 드디어 마제스틱 프린세스 호 그녀가 가장 반짝이는 순간들을 포착하기 위 해 데크 바깥으로 나섰다. 햇빛이 바로 내리쬐는 크루즈의 17층 데크. 난간에 기대 바다의 바람 과 물결에만 둘러싸인 나의 크루즈를 직접 목격하며 괜한 해방감에 젖었다. 

내가 해야 할 일들과 돌봐야 할 사람들로 북적이던 육지의 모든 의무감과 완전히 동떨어진 바다 위에 나는 지금 있다. 이제 마제스틱 프린세스 호에서의 시간을 채우기 전, 가장 필요한 건 매일 아침 방문에 꽂히는 선상 신문이다. 그 신문에는 매일 달라지는 체험 프로그램들의 일정과 선내 서비스 안내, 레스토랑 등의 시설을 이용하기 전 참고할 내용 등이 알차게 차 있다. 특히 아침 스트레칭 강습, 줌바 수업, 사격 시뮬레이션, 밤하늘 천문학 투어 등 크루즈의 숨은 매력이 담긴 프로그램들이 그득하다. 

그 중 원하는 것의 시간과 장소만 맞춰 찾아 다녀도 크루즈의 하루가 금세 채워진다. 시간표 에 맞춰 움직이기 귀찮은 날이라면 언제나 열려 있는 피트니스 센터, 탁구장, 실내외 수영장, 농구장 등을 찾아가 자유롭게 몸을 풀어도 좋다. 마제스틱 프린세스는 3천 명의 승객이 함께 생활 하는 크루즈 내에서도 프라이빗 한 휴식을 가능하도록 같은 성격의 시설들을 여러 군데 마련해 놓았다. 한 시설 당 최대 사용 인원이 넘지 않도록 신경 쓴 것이다. 

더불어 크루즈의 거대함을 느끼고 싶을 때면 바다 쪽으로 불쑥 나와 있는 16층의 ‘씨워크Sea Walk’를 아슬아슬 걸어 봐도 좋다. 해수면 40미터 위에 유리 바닥으로 만들어진 18미터 길이의 씨워크는 스릴도 만점이지만 기념사진을 남길 장소로도 제격이다.      

오늘은 뭘 먹을까 

크루즈 여행은 간혹 지루하지 않냐는 오해를 받는다. 하지만 마제스틱 프린세스에선 매일 세 번 ‘뭘 먹을까?’라는 고민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루할 틈이 없다. 총 15곳. 크루즈 내의 정찬 식당, 캐주얼 레스토랑과 부페, 카페와 바 등 각기 다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모든 시설 의 개수이다. 참고로 내가 이 배와 함께 보낸 5일의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어도 7곳만을 방문할 수 있었다. 

그러니 일주일 이상의 일정 속에서 매일 레스토랑 방문 일정을 짜놓고 움직이지 않는 이상 크루즈 내의 모든 레스토랑을 즐기는 일이란 결코 만만치 않다. 이중 5 곳의 레스토랑은 사전 예약과 추가 요금이 필요한 정찬 식당이며, 그 외는 모두 무료로 이 용할 수 있다. 

무료로 이용 가능한 곳 중에선 가장 방대한 종류의 음식을 매 끼니 다르게 선보이는 뷔페 '월드 프레쉬 마켓플레이스World Fresh Marketplace'와 고급스러운 코스 요리가 서빙 되는 ‘심포니 다이닝 룸Symphony Dining Room’, 피아짜 광장 곁에서 24시간 간식과 음료를 제공하는 ‘인터네셔널 카페International Cafe’, 맛과 질로 입소문 난 정통 화덕 피자집 ‘알프레도 피자리아Alfredo’s Pizzeria’를 가장 애용했다. 

언제나 기항지의 로컬 음식을 선상에서 실현시키는 마제스틱 프린세스 호이기에 16층 '누들 바Noodle Bar'의 매일 달라지는 메뉴 중 김치와 탄탄면을 골라 맛보며 얼큰하게 속을 달래기도 했다. 더불어 프렌치 레스토랑인 ‘라 메르La Mer’는 크루즈 속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이다. 예약을 잡기도 쉽지 않은 비결은 당연히 맛의 품격에 있다. 또 제대로 된 스테이크가 맛보고 싶은 저녁에는 7층의 ‘크라운 그릴Crown Grill’을 추천한다. 

300명 이상의 셰프가 탑승하는 마제스틱 프린세스 호에서는 거기에 1,000명 이상의 주방 스탭이 힘을 합쳐 매일 15톤의 음식이 만들어진다. 크루즈 곳곳에 자리하는 주방의 개수만 총 12개다. 거기다 아무리 방대한 양과 메뉴의 음식을 조리하더라도 승객의 피드백에 집중하며 메뉴 수정과 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러니 매일 밤 크루즈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땀을 빼는 한이 있더라도 이 배의 맛깔난 음식들을 맛보는 재미는 한시도 놓치지 말라. 

 

8가지 마제스틱 프린세스 활용법

1. 선상 메신저 

망망대해 위에서 함께 여행 온 지인들과 어떻게 의사소통해야 할까. 마제스틱 프린세스 호에서는 추가 요금만 내면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지만, 이를 원치 않을 경우에도 모든 승객들이 선상 메신저 프로그램을 통해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Princess@Sea’ 메신저 서비스를 제 공하는 크루즈 홈페이지에서는 매일 달라지는 프로그램 일정표 확인과 아침식사 주문도 가능하다. 

 

2. 공차 

마제스틱 프린세스 호는 중국과 대만, 일본 등 아시아 국가를 자주 기항하기에 여러 면에서 아시아 여행자를 배려한다. 그중 하나인 공차 매장을 선내 7층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 먹어보지 못한 종류의 버블티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3. 사격 시뮬레이션 

만약 선상 신문에서 ‘Bullseye Fixed Target Practice’ 프로그램을 발견한 날이라면 지나치지 말자. 선상 18층의 야외 농구장 한 편에 마련된 사격장은 프로 램을 진행하는 승무원이 문을 열어줘야만 입장해 사용해볼 수 있다. 묵직한 훈련용 총이 생생함을 더한다. 

 

4. 공식 환영 만찬일 

크루즈 여행의 두 번째 날 저녁은 언제나 가장 화려해진다. 마제스틱 프린세스 호의 선장이 주최하는 ‘Captain’s Champagne Waterfall’ 행사가 광장 피아짜에서 펼쳐진다. 거대한 샴페인 잔이 탑처럼 쌓여 있고 그 앞에서 잔을 채우며 기념사진도 남길 수 있다. 이 시간이면 모든 승객들이 마법처럼 드레스업을 하니 잘 빠진 옷 한 벌은 챙겨 가자. 

 

5. 선상 야외 영화관 

매일의 낮과 밤 16층과 17층 야외에서 보이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영화가 상영된다. 이른 바 ‘Movies Under the Stars’로 불리는 이 서비스는 영화관 실내처럼 깜깜한 바다의 밤을 즐기는 색다른 방법이다. 제공되는 담요를 아늑하게 덮은 채, 인근 누들 바나 월드 프레쉬 마켓플레이스에서 간식을 챙겨와 깊은 밤 최신 영화에 집중해보자. 

6. 면세점 

선상 7층에서 무언가를 찾거나 이동할 때는 언제나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전 세계 크루즈 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면세점 ‘Shops of Princess’가 7층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 브랜드 종류는 중저가에서 명품 브랜드까지 두루 마련되어 있다. 본래 조금 더 저렴한 크루즈 면세점이지만 거기에 특별 할인이 적용되는 상품들이 매일 업데이트 되니 수시로 가 체크해보자.

 

7. 화려한 프로덕션 쇼 

크루즈 승객이라면 매일 밤 대형 프로덕션 공연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특히 박진감 넘치는 무대 연출의 뮤지컬 ‘Fanstastic Journey’를 비롯해 낭만적인 스토리의 ‘Fiera’ 등으로 프린세스 극장은 언제나 화려하다. 인기 공연일수록 관람객이 많아지니 일찌감치 가 자리를 잡아 두는 것이 좋다.

 

8. 카드 키 

언제든 지갑은 소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크루즈 에서는 안녕이다. 크루즈 승선 과정에서는 모두가 선실 카드 키에 본인 신용카드를 등록하기 때문에 선상에서의 모든 소비 활동이 이 카드 키 하나로 해결된다. 여행 중간 본인의 지출 내역이 궁금하다면 5층의 서비스 데스크에 문의해 확인할 수 있다. 

기항지 투어 

NAGASAKI

나가사키의 분홍빛 오하나미 

마제스틱 프린세스 호에서 하루를 꽉 채운 휴식을 만끽한 후 처음 내린 곳, ‘나가사키Nagasaki’다. 오전 10시부터 승객들의 하선이 시작되고, 크루즈는 오후 4시경 다음 기항지로의 항해를 시작하는 일정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오래 고민했다. 

크루즈 자체에서 별도의 요금으로 예약할 수 있는 기항지 투어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기에 많은 승객들이 이를 선택해 효율적인 반나절 투어를 경험하고는 한다. 허나 꽃구경이 아직 배고프던 나에게 정답은 계절에 있었다. 때는 3월의 마지막 주였으므로 나가사키의 벚꽃이 절정에 다다라 있는 시기다. 그 와중에 알게 된 곳이 나가사키의 ‘타테 야마 공원Tateyama Park’이다. 

700그루의 벚꽃 나무가 매 봄마다 장관을 그려낸다는 이곳은 나가사키 시민들에게도 사랑 받는 장소다. 오직 일본의 벚꽃 풍경을 감상하겠다는 일념 하에 씩씩하게 걷고 걸었다. 타테야마 공원은 나가사키 항구에서 도보로 15~20분 거리인 나가사키 기차역에서 약 2킬로미터 더 떨어져 있다. 서울이었다면 간단하게 걷는 거리이지만, 항구 인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언덕배기인 나가사키의 지형을 고려하면 수월한 여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원의 절경에 감탄하기 전, 나가사키 주택가의 소소한 풍경과 화려한 정원들을 훔쳐보며 걷고 싶다면 만족스러울 것이다. 물론 기차역 앞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서울보다 푸근한 나가사키의 날씨 속에서 언덕을 따라 빼곡하게 지어진 주택 가 사이를 비집고 걷자니, 홀로 여름을 맞은 것처럼 땀투성이가 되었다. 그렇게 언덕 한두 개를 넘자 드디어 저 멀리 봉곳한 분홍빛 언덕이 보인다. 벚꽃 나무로 뒤덮여 있는 타테야마 공원이다. 

때마침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한 공원 은 이미 ‘오하나미Ohanami’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꽤나 북적였다. 일본에서는 꽃구경을 ‘오하나미’라 한다. 특히 가장 현지인처럼 오하나미를 즐기기 위해선 간단한 먹거리와 돗자리를 들고 공원에 가 제일 마음에 드는 벚꽃 나무 아래에 자리를 잡은 채, 원하는 만큼 먹고 쉬며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분홍 빛 화사함 속에서 넋을 놓고 있다가 순간 바람이 살랑 불어 벚꽃 잎이 내 머리 카락과 콧등, 옷자락에 달려와 앉을 때면 저릿할 만큼 행복했다. 벚꽃이 절정에 달하는 3월 말과 4월 초에는 공원 내에 각종 노점들이 들어서 따로 먹거리를 챙겨 가지 않아도 괜찮다. 이날의 나처럼 나무젓가락에 둘둘 말려 있는 ‘하시마끼’를 간단히 사들고 아무 데나 걸터앉아, 벚꽃 천국에 감탄하고 그에 행복한 사람들 모습에 미소 지으며 벚꽃 바람이 또 불어주기를 기다려도 좋다.

SAKAIMINATO

사카이미나토의 요괴 먹방 

첫 방문인 일본의 돗토리 현인데 그 안에서도 ‘사카이미나토Sakaiminato’라니 참 생소했다. 나가사키 만큼 번화한 항구 도시라기 보단 마을에 더 가까운 사카이미나토 시에는 유명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질 좋은 대게와 만화 <게게게의 기타로>이다. 한국에는 <요괴인간 타요마>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이 만화는 인간을 도와주는 착한 요괴들의 모험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요괴 소년 ‘기타 로’와 그의 눈알 아버지 ‘메다마 오야지’, 고양이 소녀 ‘네코 무스메’, 쥐 인간 ‘네 즈미 오도코’ 등의 인물들이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게게게의 기타로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애정은 사카이미나토의 공항 공식 명칭을 ‘요나고 기타로 공항’ 이라 지을 정도로 유별나다. 이는 세계 최초로 공항 명칭에 요괴 이름이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이 고요한 항구 도시의 상징이 시끌벅적한 기타로가 된 이 유는 만화를 만든 이, ‘미즈키 시게루’가 이곳 출신인 덕분이다. 일본 ‘요괴 만화의 거장’으로 칭송되는 미즈키 시게루는 93세의 나이로 2011년 세상을 달리 하기 전까지 게게게의 기타로를 비롯한 수많은 요괴 만화들을 탄생시켰다. 놀라운 것은 젊은 시절부터 화가를 꿈꾸며 일했던 그가 태평양 전쟁 시기에 징병 되며 왼팔을 잃는 수난을 겪었지만 그 이후에 화가, 만화가로서 더욱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요괴 문화를 선도하는 인기 작가가 된 이 후에 그의 고향 사카이미나토에 그의 이름은 딴 ‘미즈키 시게루 로드’가 탄생했고, 2003년에는 그 길에 ‘미즈키 시게루 기념관’이 들어섰다. 800미터에 달하는 이 거리는 게게게의 기타로에 등장하는 각종 요괴 캐릭터들로 장식돼 있어 매년 사카이미나토 시민보다도 많은 수의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거리 위에는 100개도 훌쩍 넘는 요괴 동상들이 세워져 있다. 이를 일일이 발견하며 걷는 걸음도 즐겁지만 거리를 따라 이어지는 각종 상점들에서 요괴의 모습을 띤 각종 먹거리들을 섭렵해보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재미다. 대부분의 사카이미나토 여행자들은 요나고 기타로 공항에서 ‘요괴 열차’를 이용해 요괴 거리를 찾는다. 비록 요괴 열차는 아닐지라도 크루즈에서 제공하는 유료 셔틀버스 서비스를 이용해 사카이미나토 기차역까지 편안하게 도착 했다. 

기차역의 거대한 게게게의 기타로 벽화를 감상하며 시작한 미즈키 시게루 로드 산책 동안 수차례 지갑을 열었다. ‘고베 베이커리’에서 각종 요괴들의 얼굴로 꾸며진 귀여운 빵 을 한 아름 사고, 요괴 아트로 장식된 카레라떼도 마시고, 기타로의 아버지인 메다마를 닮은 자석과 경단도 샀다. 메다마는 몸은 죽었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눈알 한쪽에 혼이 깃들며 탄생한 요괴이다. 왼쪽 눈이 없는 기타로를 위해 언제나 아들의 왼쪽 정수리에 붙어 있는 이 요괴가 나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