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doba

중세 이슬람 최대의 도시 ‘코르도바Cordoba ’

태양의 나라 코스타 델 솔에서 남부 스페인의 멋진 자연에 흠뻑 취했지만 이제는 어린 시절 TV에서 해주던 만화 <신밧드의 모험>에서나 봤던 꿈과 모험 그리고 신비의 세계로 상징되던 이슬람 문화를 즐길 시간이다. 스페인 어디를 가도 웅장한 성당의 모습에 반하게 되지만 너무 많이 보다 보면 다소 식상해질 수 있는데 이럴 때는 이슬람문화를 만날 수 있는 남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로 오면 꿈과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진기한 현상을 만날 수 있다. 

세비야를 출발한 지 1시간 30분 후에 안달루시아의 이슬람 문화를 좀 더 만날 수 있는 중세 유럽 이슬람 최대의 도시였던 코르도바에 도착했다. 일주일 내내 비를 만나지 않아 날씨가 좋았지만 하필이면 코르도바에 들어서자마자 거센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코르도바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문화 유적임을 우산을 들고 걷는 동안 실감할 수 있었는데 코르도바는 대항해시대 무역항이었던 세비야로 중심지가 이동하기 전까지 스페인 남부 최대 도시였다. 특히 이슬람의 지배하에 있던 10세기쯤에는 인구가 50만 명을 넘었을 정도라고. 코르도바의 중심부에 위치한 역사지구는 당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역사지구의 옛 골목길들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 만큼 미로처럼 좁은 길들이 이어져 있어 천천히 돌아보기에 그만이다. 거센 비로 온 몸이 젖는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역사지구의 골목골목을 지나는 동안 역시나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특히 목적지인 이슬람 사원인 메스키타Mezquita에 도착한 순간, 이슬람이 지배하던 시절 최고의 영광을 누리던 그 명성에 걸맞은 환상적인 자태에 비를 피하지도 않고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골목골목 유적지, 최대의 모스크 메스키타 압권

스페인어로 메스키타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를 뜻한다. 메스키타는 코르도바 이슬람왕국 또는 서칼리프국이라고 불렸던 후우마이야 왕조의 시조였던 아브드 알라흐만 1세가 바그다드의 이슬람 사원에 뒤지지 않는 규모의 사원을 건설할 목적으로 785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후 코르도바의 발전과 함께 성장을 거듭하여 2만 5천여 명의 신자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는 현재의 규모로 완성됐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세력이 코르도바를 점령한 뒤로는 메스키타의 일부를 허물고 르네상스 양식의 예배당을 사원 중앙에 세워 가톨릭과 이슬람이 한 곳에 동거하는 사원이 되고 말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메스키타는 원래 로마신전이 있던 자리에 가톨릭교회, 이슬람 모스크, 이어 다시 성당을 세운 것. 현재 메스키타는 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이 공식 명칭이다.

먼저 이슬람 사원에 대해 알고 보도록 하자. 이슬람 사원의 구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입구의 사원을 상징하는 종탑(미나레트)과 몸과 마음을 씻는 정원, 그리고 기도를 드리는 기도소. 메스키타 역시 입구의 알미나르(Alminar; 탑)를 지나면 세비야 대성당에서 실컷 봤던 오렌지 나무의 정원과 분수대가 있고 지금은 성당이 된 건물로 들어서는 구조이다. 

메스키타는 세비야 대성당과 함께 이슬람 사원을 가톨릭 성당으로 개조한 대표적인 곳이지만 그 정도는 다르다. 세비야 대성당은 히랄다 탑을 제외하면 성당의 모습이 대부분인 반면, 메스키타는 이슬람 사원의 원형이 대부분 남아 있는 것이 그 차이라 하겠다. 

자, 그럼 들어 가볼까? 우산도 없이 돌아다니느라 흠뻑 젖은 탓에 물기를 간단히 털어낸 후 내부로 들어서니 입이 떡 벌어진다. 외관과 입구 부분에는 이슬람 모스크의 외형이 그대로 남아 있는 데 중심부로 들어가니 카톨릭 예배당이 있어 이게 모스크인지 성당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남북 180미터, 동서 130미터의 23,000평방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로 내부에는 적색과 백색의 벽돌을 교대로 짜 맞춘 8백 56개의 둥근 기둥이 아치를 이루며 천장을 받치고 서 있는데 장관이 따로 없다. 

또한 곳곳에 이슬람의 정교하고 부드러우면서 화려한 문양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모스크 내부는 별도의 조명장치 없이 기둥 주위의 기름등잔을 이용한 조명으로 다소 어두운데다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더욱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이다. 어슴푸레한 빛 속에서 아치 기둥사이를 걷다 보니 마치 탈출구 없는 미로에 들어선 듯 하다. 

이슬람 사원에서 보기 드문, 고대 로마의 수로를 모델로 했다는 말발굽 모양의 이층 아치 구조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자이크 중 하나로 알려진 천장의 정교한 모자이크를 보면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스페인의 로마인의 다리

메스키타를 돌아보고 나오니 성벽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로마인의 흔적이 남아있는 ‘로마인의 다리’가 있다. 안달루시아 지방을 관통하는 과달키비르 강이 메스키타 근처에 흐르고 있는데, 메스키타와 강 건너편의 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가 바로 로마시대에 만들어졌다는 ‘로마인의 다리’. 여전히 그치지 않는 비 때문에 온 비에 젖은 몸이 천근만근 무겁지만 포기할 수도 없고 어찌할 것인가? 

한 손에는 간신히 구한 부실한 우산을 한 손에는 비에 젖을까 노심초사하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니 피로도가 몇 배는 더하다. 어쨌든 스페인에 있는 로마인의 다리라니 그 궁금증이 그나마 발걸음을 재촉하게 도와준다. 어디에 위치한지는 몰라도 그저 관광객들이 몰려가는 곳으로 가면 대충 목적지가 나온다는 경험상의 데이터에 따라 따라가니 역시나 나온다. 

날 좋을 때는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는데 오늘은 그나마 비가 오는지라 다소 한적한 분위기의 로마인의 다리가 앞에 펼쳐진다. 이 다리는 길이가 230미터에 이르고 16개의 고풍스러운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2천 년의 세월을 꿋꿋하게 견뎌낸 다리는 지금도 여느 다리보다 튼튼해 보인다. 

 

이 다리의 역사는 BC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에게는 시저로 잘 알려져 있는 로마의 지배자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가 BC49년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에 입성한 후 아프리카에서 폼페이우스 등의 반군을 물리치고 로마의 막강한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나 대패한 폼페이우스의 두 아들인 그나에우스와 섹스투스가 스페인으로 달아나 다시 반란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이를 정리하기 위해 직접 스페인으로 가 코르도바에 도착하게 된다. 직접 코르도바까지 올 줄 몰랐던 두 사람은 당황하고 코르도바의 과달키비르 강 건너편 성에 들어앉아 나오질 않자 로마군 병사들을 시켜 만든 다리가 바로 ‘로마인의 다리’이다. 

평소 같으면 관광객들 때문에 제대로 구경하지도 못했겠지만 이날은 비가 와서 그런지 운치 있게 다리를 천천히 건널 수 있었다. 다리 중간에 코르도바의 수호성인이라 불리는 대천사 라파엘 석상이 세워져 있고 다리 끝에 ‘칼라오라 탑Calahorra’이 보인다. 이 탑은 원래 요새로 지어졌으나 현재는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탑에 오르니 코르도바의 시내 전경과 오기 전 들렀던 메스키타도 한 눈에 들어온다. 지금은 한가로이 경치를 관람할 수 있는 곳이지만, 수많은 로마인의 피로 뒤덮였던 역사적인 현장이라 생각하니 사뭇 엄숙해진다. 

아, 코르도바가 유명한 것이 또 있다. 바로 오페라 <카르멘>을 낳은 곳이라는 것. 오페라의 원작소설 <카르멘>의 작가인 메리메는 ‘로마교를 건너는 섹시하고 매력적인 집시 여인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듯이 로마인의 다리 양편 기념품 가게에서는 오페라 <카르멘>과 관련된 기념품들이 제법 보인다. 

이왕이면 카르멘의 음악을 들으면 건넜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미 비 오는 날의 만석인 소지품으로 그럴 여유를 부리기에는 무리. 코르도바에 들렀다면 메스키타 인근에 자리한 유대인 지구도 빼놓지 말자. 특히 이 지구에 숨어 있는 ‘꽃 골목’은 여행객들로 언제나 북적거린다. 

두 사람이 지나치면 어깨가 닿을 만큼 좁은 골목에 늘어선 집들에는 창문이든 벽이든 화분들이 줄줄이 달려 있다. 파티오Patio(파티오는 건물로 둘러싸인 안마당을 꽃과 식물로 채운 스페인 특유의 실내정원)로도 유명한 코르도바에는 매년 5월 파티오 축제가 열리는데 이때는 역사지구 전역이 ‘꽃의 도시’로 변모하니 꼭 들러보기를 추천한다.

 

Granada

세계 최고의 걸작, 알함브라 궁전을 품은 그라나다Granada

코르도바에서 비를 실컷 맞으며 돌아다닌 지라 온 몸이 으슬으슬한 것이 감기 기운이 돈다. 비 오는 코르도바를 뒤로 하고 그라나다로 향했다. 사실 그라나다로 가는 목적은 단 하나, 바로 알함브라Alhambra 궁전을 보기 위해서이다. (스페인어로 h발음이 없어 현지에서는 알암브라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그라나다 시내로 들어서니 늦은 저녁 10시다. 

서둘러 체크인을 하고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시내로 나섰지만 거의 다 문을 닫은 지라 문 닫기 전의 식료품점에서 이것저것 사와 숙소에서 피로와 허기 그리고 감기기운까지 달랬다. 10일 간 코스타 델 솔을 달리다 보니 오랜 일정에 작은 실수를 하게 된다. 바로 알함브라 궁전 예약을 하지 못한 것. 분명 뭔가 찜찜했는데 워낙 정신도 없고 감기기운 탓에 잠에 골아 떨어지고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 택시를 잡아타고 알함브라 궁전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도 현장 판매가 있겠거니 했는데 역시나 매진. 인터넷도 이미 3개월까지 전량 매진. 방법이 없다. 미리 준비하지 못했는데 방법은 현지 여행사에 의뢰하면 그나마 구할 수 있다는데…… 이번은 기회가 아닌 듯 했다. 

안타까움을 안고 터벅터벅 내려오다 궁전 주변을 도는 관광열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게 기회가 될 줄이야. 관광열차가 알함브라 궁전 맞은편 알바이신 지구의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 멈춰서는 순간 이곳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 궁전의 전망이 상당히 멋진 것을 발견했다. 투어버스에서 내려 전망대 위로 올라갔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이 일품이란다. 전망대 종탑에서 알함브라 궁전을 바라보는데 정작 궁전 안에서는 이런 경치를 볼 수 없으니 서로 비겼다며 애써 위안을…… 솔직히 여행에서의 행운은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당연히 날씨가 좋아야 함에도 흐리고 비가 내리며 망치는 것이 일상이니 절대 행운에 여행의 중요한 부분을 기대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그라나다는 이베리아 반도의 남부, 안달루시아에서도 남부 해안선 근처에 가까운 대도시이다. 코르도바에서 출발해 끝없이 펼쳐진 구릉지를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다 보면 산악지대에 둘러싸인 그라나다 평원을 만날 수 있다. 그라나다는 8세기 초반부터 이슬람 왕조의 지배 아래 크게 번영을 누렸으며 1492년 가톨릭 세력에 점령되기까지 이슬람교도의 마지막 거점 도시였다. 

이런 이유로 서유럽에서 이슬람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알람브라 궁전과 이슬람풍의 구시가지 거리는 다른 유럽 도시에서 만나기 어려운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실제로 알바이신 지구의 아랍 골목은 이곳이 유럽이 아니라 아랍의 한 도시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알함브라 궁전은 미리 여유 있게 3개월 전에 인터넷에서 사전 예약(www.ticketmaster.es)을 하거나 아니면 조금 비싸더라도 그라나다 현지 한인여행사를 통해 예약하면 편리하게 그나마 관람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니나 다를까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여유롭게 여러 대의 버스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라나다를 상징하는 전 세계 이슬람 문화권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알함브라 궁전은 그라나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발 740미터 아싸비카 언덕Assabica Hill에 위치하고 있다. 에스파냐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의 무하마다 1세 알 갈리브가 13세기 후반에 착수하기 시작해 14세기에 이르러서야 완공됐다. 

알함브라 궁전은 크게 찰스 카를로스 궁전과 나스르 궁전, 왕의 여름 별궁인 헤네랄리페와 요새였던 알카사바 성채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백미는 단연 나스르 궁전. 왕의 집무실이자 생활공간인 나스르 궁전은 기하학적인 글자와 문양으로 이슬람 미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알함브라를 한 눈에, 산 니콜라스 전망대

예매도 하지 않고 와서 낭패를 당한 사람이라면 주저하지 말고 어서 관광열차를 타고 알함브라 궁전의 외관 전체를 볼 수 있는 알바이신 지구의 산 니콜라스 전망대Mirador de San Nicolas로 가라. 이곳에서 바라보는 알함브라 궁전은 멀리 뒤쪽의 높은 산맥을 타고 넘는 구름 배경까지 더해져 환상적인 전경을 연출한다. 

특히 해 질 무렵 산 니콜라스 전망대에 오르면 붉게 물들어가는 알함브라 궁전의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꼭 놓치지 말자. 이곳이 연일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는 이유도 이 풍경을 보기 위해서이다. 산 니콜라스 언덕에서 시내 중심부로 향하는 아래로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 천천히 산책하듯이 내려가다 보면 좁은 미로 같은 골목에 다다른다. 

이곳이 바로 앞서 말한 알바이신 지구의 아랍 골목이다. 어깨를 부딪칠 만한 좁은 카페에서 물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의 이국적인 모습과 상점마다 진열되어 있는 아랍 문화의 기념품들, 저렴한 가죽 제품들이 관광객들에겐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다. 그라나다 주요 관광지를 가장 단시간 내에 보려면 길게 꼬리를 이은 관광열차를 타고 도는 것을 추천한다. 

도심의 시티버스처럼 그라나다 곳곳의 주요 관광 포인트들을 마치 곡예 운전 하듯이 오르내리며 순환하고 있어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