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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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6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대한민국]     도시분류 :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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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IELD] 그대여, 상사화 꽃길만 걸으오

붉은 꽃에 매혹되는 상사병

영광에서 처음 만난 꽃, 상사화의 탄생에 대한 전설이 하나 있다. 아버지를 여인 후 절에 머물며 탑돌이를 한 여인과 그녀를 흠모한 그 절의 수도승에 관한 이야기다. 스님의 신분으로 마음을 전할 수 없었던 수도승은 절에서 여인이 떠난 후 시름시름 앓다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내 봄이 찾아오자 그의 무덤에 이 붉은 꽃 상사화가 피어났다고 한다. 

이런 전설과 함께 꽃과 잎이 나는 시기가 달라 그 둘마저 이별하게 만드는 이 꽃은 사랑만큼 당연한 이별을 상징한다. 허나 그런 이야기들이 애석하게도 불갑산을 뒤덮은 상사화 주변으로는 웃음과 기쁨이 만연했다. 긴 목의 꽃대 위로 화려한 꽃잎과 꽃술로 장식된 꽃들이 무리를 지어 흙과 나무, 저수지를 물들이는데 그 누가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광터미널에서 불갑산으로 향하는 작은 마을버스에 몸을 구겨 넣고 20분가량 축제장으로 향하던 길, 도로 옆에 듬성듬성 피어나 있는 상사화의 자태에 절로 얕은 환호성을 내뱉었었다. 그 소리를 듣고는 앞과 옆, 뒤의 어르신들이 저 정도에 놀라서 쓰겠냐는 우스갯소리를 건넨다. 그 말 그대로, 불갑산에는 불갑사로 향하는 길목 초입부터 북적이는 인파보다 더 무성히 상사화 밭이 펼쳐져 있었다. 

더불어 축제 기간에 맞춰 불갑산을 찾은 특산품 시장, 거리의 화가와 가수 등으로 눈과 귀 모두가 시끌벅적하다. 이를 따라 조금만 완만한 길을 걷다 보면 금세 불갑사를 만난다. 매년 9월 중순에 열리는 영광의 ‘불갑산 상사화 축제’는 개화시기에 따라 축제 날짜와 기간이 조금씩 달라진다. 2017년의 상사화 축제는 9월 15일부터 24일까지 약 10일 동안 펼쳐졌다.

부드러운 상사화 헤집으며 걷는 재미1

진정으로 아름다운 상사화 무리는 불갑사를 지나며 시작된다. 불갑사 뒤편의 아늑한 불갑사 저수지 주변으로 상사화의 붉은 양탄이 온 산에 덮여 있었다. 나무가 기둥을 세운 자리를 제외한 모든 땅이 상사화 소유인 듯하다. 가파르고 완만한 산의 구릉을 너그럽게 덮고 있든, 저수지나 바위 옆에 덩그러니 피어 있든 전부 아름다운 꽃무릇 이다. 

붉은 상사화는 꽃무릇이라는 이름을 하나 더 가지고 있다. 흔히 상상하던 판판한 들판 위의 꽃밭과는 전혀 다른, 땅이 일렁이는 산의 꽃밭은 이러하구나. 높낮이가 제멋대로인 땅의 흐름 위에서 나무가 허락한 곳에만 햇빛 자락이 내려오는 상사화 융단의 아름다움은 실로 몽환적이었다. 

산에서 주로 만나는 꽃이란 몸을 잔뜩 쭈그려야만 그 세밀한 어여쁨을 관찰할 수 있지 않았던가. 허나 상사화는 30~50츠의 꽃줄기 위로 6개의 꽃봉오리를 틔우고, 각각 얇고 긴 꽃잎을 거꾸로 배배 꼰다. 꽃자루 6개에서 나온 긴 꽃술이 꽃들을 둥글게 받친 채 화려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이다. 먼발치에서도 훤히 관찰될 만큼 큼지막하게 피어오른다. 

가까이에서든 멀리서든 볼 때마다 예뻐 자꾸 반하게 되는 꽃의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이내 동백골에 다다랐다. 해발 516미터의 불갑산은 여유롭게 왕복 2시간 정도 소요되는 산으로 불갑사보다 위의 해불암, 정상의 연실봉까지 선택해 오를 수 있다. 특히 8월 말부터 9월 초에는 산에 높이 오를수록 귀하디귀한 노란 상사화를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영광의 대덕산에서 노을을 마주하다

불갑산에서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영광읍으로 발길을 돌렸다. 법성면에 가기 위함이다. 영광터미널에서 운 좋게 급행 버스를 찾아 15분 만에 법성포에 입성했다. 법성포는 굴비에 관한 맛집이 포진해 있는 영광읍 옆 동네이다. 뿐만 아니라 영광의 성스러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불교 도래지, 자연미 가득한 숲쟁이 꽃동산, 대덕산 등 방문할 곳들이 수두룩하다. 

그 날의 하늘이 맑았다면 해질녘에는 필히 대덕산을 올라야 한다. 해발 303미터로 퍽 작은 산이지만 서쪽 사면은 오르는 길이 매우 가팔라 결코 만만하지 않다. 허나 이곳이 작지만 위대한 산인 이유는 그 위에 올라서면 절로 확인할 수 있다. 곱게 짜인 논들이 와탄천의 곡류 속에 갇혀 있고, 물길의 끝에는 칠산바다가 펼쳐진다. 

논 위의 빼곡한 골짜기 뒤로는 백수해안도로가 이어져 있을 것이다. 산세를 여실히 보여주는 노을이 서서히 주변까지 금빛으로 물들이자 몸에 힘이 풀린다. 논과 산, 강과 바다가 모두 담긴 풍경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숲 속에서 감상하고 있다. 석양에 취해 해가 완연이 진 후에야 하산을 시작했다. 

발밑을 비추는 휴대폰 플래시에 의지하며 말이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왔을까, 순간 플래시가 아닌 불빛을 감지하고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조용히 불빛을 끄고 산의 어둠을 받아들이니 내 앞과 뒤로 반딧불이가 유유히 날고 있더라. 볼 때마다 꿈만 같은 반딧불이의 친절한 안내는 산길을 마친 후 터미널까지 걷는 길에도 이어졌다. 

상사화의 붉은 빛에 혹현되고 노을의 수만 가지 색에 취하다, 신비로운 반딧불이의 깜빡임까지 조우한 시간들이다. 정겨운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말소리와 그 멋진 수많은 빛깔들을 따라 곧 다시 나서리라.

 

Information

영광 가는 방법

기차역이 없는 영광은 고속버스로 여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센트럴 시티터미널에서 매일 한 시간 단위로 버스가 운행된다. 서울-영광 소요시간은 약 3시간 30분. 영광 내에선 군내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터미널 내의 군내버스 구간에 여러 행선지별 버스 시간표가 표시되어 있다. 불갑산의 경우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쯤까지 1~2시간 단위로 버스가 운행된다. 

버스요금은 거리에 따라 1,200~1,500원 정도이며, 현금 또는 티켓으로 버스 하차 시에 요금을 지불한다. 군내의 주요 터미널에는 버스 티켓 구매를 위한 매표기가 주로 설치되어 있어 이를 통해 탑승 전 미리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 버스 탑승 전 어느 정도의 대기 시간이 생기고, 순회하는 노선의 버스가 많기에 짧은 거리를 간편하게 이동하고 싶다면 택시를 추천한다. 영광군 내 콜택시 번호, 또는 친절했던 기사님의 명함을 확보해놓자.

영광에서 뭐 먹지

대마할머니막걸리

대마할머니막걸리는 영광을 대표하는 막걸리다. 술이 약해서, 또는 숙취가 두려워 막걸리를 기피해왔다면 영광에서 인생 막걸리를 만날 준비를 하시라. 처음엔 불갑산을 막 내려온 터라 막걸리가 꿀처럼 단 줄 알았다. 

하지만, 다시 거리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해 들이켜 보니 이처럼 끝 맛이 부드럽고 고소한, 술기운이 온화하게 올라 과음만 아니라면 속까지 편안한 천연 발효주가 영광에 있었구나 감탄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유통기한을 갖기 때문에 영광 내 큰 슈퍼부터 작은 편의점까지 며칠 안에 제조된 대마할머니막걸리를 판매하고 있다.

모시송편

영광터미널에서부터 절로 알게 되는 영광의 모시송편 사랑. 한적한 거리위에서도 가장 흔히 마주하게 되는 것이 떡집인데 그 모두가 모시송편을 판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영광에서는 예부터 여름의 고된 노동 후 이웃을 서로 위로하며 쌀과 모싯잎으로 반죽하고 속을 꽉 채운 큼지막한 이 송편을 즐겨 먹었다고 한다. 어찌나 넉넉한지 산행 중 두세 개만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굴비 한정식

영광은 굴비의 고장이다. 오동통한 식감으로 씹히는 굴비를 맛볼 수 있는 굴비 정식 맛집들이 영광읍 옆의 법성면에 포진해 있다. ‘굴비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법성터미널 근방의 길거리에는 굴비 상점과 굴비 식당들이 즐비하다. 법성포의 수많은 맛집들 사이에서 배회하다 작은 골목에 자리한 ‘골목 식당’에서 굴비 정식을 맛봤다. 

1인당 15,000원~20,000원 가격으로 2인 기준 2마리 이상의 굴비 구이와 함께 가자미, 꽁치, 꼬지 등의 생선구이 그리고 각종 담백한 밑반찬들이 밥상을 가득 메운다. 화려한 반찬보다는 굴비와 영광의 다양한 생선 구이 맛에 집중하기 좋은 곳이다. 특히 씹을수록 우유처럼 부드럽게 입에 감기던 굴비 살과 칼칼한 매운탕 국물이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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