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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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말레이시아]     도시분류 : [코타키나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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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키나발루산,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키나발루산, 코타키나발루, 말레이시아

고산병에 철저히 대비하다

산은 곧잘 오른다. 그런데 도통 4,000미터의 산은 가늠이 안됐다. 10년 전 인도 여행을 하며 3,250미터 지대인 ‘레Leh’에서 닷새를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처음 고산병을 앓아 봤다. 나는 호흡이 가빠지고 배가 살살 아픈 것 외에는 심각한 증상이 없었는데, 일행 중 한 명은 일정 내내 몸을 못 가누기도 했다. 느리게 걷기, 호흡 조절, 체온 올리기와 같은 예방책이 있지만 고산병엔 역시 하산이 답이다. 이를 대비해 여행 전, 동네 의원에서 아세타졸을 처방 받았다. 

코타키나발루 시내에서 2시간만 나서면 믿기지 않는 풍광의 ‘키나발루 국립공원Kinabalu National Park’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 사바주 북부에 위치한 키나발루산 등반은 첫날 팀폰 게이트Timpohon Gate에서 라반라타Laban Rata 산장을 오르고, 둘째 날 정상까지 왕복, 다시 하산하는 일정이다.

첫째 날, 우리는 미리 도착해 국립공원 인근 로지Lodge에 묵었다. 당일 새벽부터 시내에서 미니버스를 기다리는 수고를 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앞서 고도에 적응하기 위한 결정이다. 저녁식사를 마친 후, 나는 고산병 예방약 반 알을 삼켰고 함께 한 우성이는 오한이 있어 감기약을 먹었다.

경관이 멋진 라반라타의 식당 테라스

라반라타 산장

구름이 발아래로 깔리는 라반라타 산장

출발일 아침. 이승인지 저승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의 자욱한 안개 속에서 괴이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관리소에서 수속을 마친 뒤 불필요한 짐은 전부 맡기고 영문 이름이 써진 목걸이를 받아 걸었다. 옆에서 내리 눈을 깜빡이던 말레이시안 청년 ‘헨리’가 우리의 가이드로 배정되었다. 

차분한 말씨가 인상적인 그의 고무샌들을 보니 야무지게 끈을 조여 맨 내 등산화가 우습기만 하다. 라반라타 산장은 해발 3,272미터에 위치해 있다. 총 6킬로미터의 거리를 1,400미터의 고도를 거슬러 오르는 것인데, 그 시작점인 팀폰 게이트가 이미 해발 1,800미터 이상이다. 고산을 등반할 경우 1시간 동안 1킬로미터를 오르는 것이 평균이다. 

서둘러 오르다가는 페이스 조절에 실패해 일정을 망쳐 버릴 수 있다. 라반라타 산장으로 향하는 길에는 총 7개의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첫 쉼터에선 잠깐의 휴식 후 곧장 발길을 옮기며 점심식사가 예정된 제 4쉼터 라양라양Layang-Layang에 부지런히 도착했다. 종이봉투에 담긴 도시락엔 빈약한 샌드위치와 작은 생수, 바나나와 비스킷이 들어있다. 

이제 반 왔으니 반 남았다. 1시간 뒤에는 제 6쉼터인 윌로사Villosa를 지났다. 오후가 되면서 찾아온 더위와 습기에 나는 티셔츠만 입은 채 등산을 지속했다. 일곱 번째 쉼터를 지나 산장까지 가는 마지막 1킬로미터. 부지런히 오르다 만난 바위에 몸을 뉘이니 배낭 무게에 한껏 조여진 갈비뼈가 풀어진다. 금방 또 걸음을 멈추고 마는 내게 헨리가 말했다. 

“2분밖에 안 남았어.” 정말이다. 라반라타의 지붕이 시원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산장에 도착한 우리는 다른 등산객들과 자축하며 기념 촬영을 했다. 산장에서 일찌감치 체크인을 하고 식사를 마친 후엔 우성이와 가볍게 산책을 나섰다. 해가 기울어진 3,000미터 상공은 낭만적이다. 구름이 발 밑에 깔리는 아름다운 노을을 바라보며 손을 맞잡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라반라타 산장의 저녁 노을

키나발루산 정상 표지판에서 우성이와 필자

4,095.2미터동남아 최고봉에 오르다

새벽 2시. 잠을 잔 건지 모르겠다. 바람을 막아줄 옷을 겹겹이 입고 털모자와 랜턴을 착용했다. 체온 변화에 민감한 나는 보온팩을 앞뒤로 휘감았다. 정상까지의 거리는 4킬로미터 남짓, 헤드랜턴 말고는 아무런 불빛도 없다. 헨리의 안내를 따르며 산장 오솔길로 오늘의 걸음을 시작한다. 엊저녁 냉수마찰 이후로 줄곧 고산 증세를 보이던 우성이는 말없이 내 앞으로 걷고 있다. 

차분한 숨소리와 입김만이 피어 오르는 까만 새벽은 고독하고 또 고요하다. 그 경건함 속에 어느덧 1킬로미터 지점을 지났다. 이제부터 두 걸음 앞도 뿌옇다. 지옥길이 시작됐다. 나무가 낮아지고 바닥이 젖은 화강암으로 바뀌면서 찬바람이 몰고 오는 이슬이 뺨을 치고, 로프 구간의 줄은 꽁꽁 얼어 손바닥을 저릿하게 했다. 나는 바쁘게 물을 꺼내 마시고 간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모래주머니를 묶은 듯한 발목과 가뿐해져 가는 등에서 고지가 머지않았음을 확신했다. 

영차. 까만 산 그림자 위로 여명이 밝아온다. “코앞이야.” 내 속내를 눈치 챘는지 헨리가 웃으며 말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로우 피크Low’ Peak’가 빼꼼히 고개를 내어 정상까지 오르는 내 뒤꽁무니를 살펴주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정상 표지판이 지척이다. 우성이의 서른 번째 생일, 드디어 동남아시아 최고봉에 올랐다. 이렇게 멋진 생일선물이 또 있을까. 장엄하게 솟아오른 회색 봉우리들이 신성한 정상의 기운을 내뿜고 있다. 고되게 산을 올랐던 시간을 전부 보상받는 듯했다. 

경치를 즐기는 동안 일출이 시작됐고 우린 그 장관에 흠뻑 취해 넋을 놓았다. 한밤의 어둠을 뚫고 모인 사람들의 입가에는 모두 미소가 걸렸다. 30분쯤 지나니 오한이 들고 축축했던 땀도 식어간다. 뒤이어 오르는 등산객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할 때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구름을 맞대고 걷는 우성이의 뒷모습을 따르며 섭섭함에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표지판의 숫자가 산의 높이를 가늠케 한다. 정상 위 고인 웅덩이에서 함께

하룻밤 기분 좋은 꿈같은

라반라타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하루 두세 번 내린다는 소나기가 이제야 내린다. 우리는 시원한 빗줄기를 뚫고 내달려 관리소에 도착했다. 완주 인증서를 받고는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입산허가증을 받고 출발한 것이 어제라니 믿기지 않는다. 꿈을 꾼 것 같다. 

기분 좋고 기나긴 꿈. 키나발루산의 축축한 이슬, 어둠과 별, 정상에서 맞이한 일출, 그리고 우리의 친구 헨리. 한동안 많이 그립겠지. 하지만 금세 괜찮다. 아직 코타키나발루에서의 여정이 사흘이나 남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탄중아루TanjungAru의 석양과 투명한 툰쿠 압둘 라만 해양국립공원Tunku Abdul Rahman National Park의 바다가 지금 우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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