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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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9월호]     대륙분류 : [남태평양]     국가분류 : [프렌치폴리네시아]     도시분류 : [타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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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일생에 한 번쯤은, 프렌치 폴리네시아

At least Once in Your LifeLiving the Dream, Tahiti

프렌치 폴리네시아 여행의 시작, 타히티

누구에게나 첫 프렌치 폴리네시아는 타히티다. 118개 섬의 중심이자, 프렌치 폴리네시아 인구의 3분의 2가 사는 곳. 이곳에서 로컬과 함께 시내를 걷고 수풀이 무성한 계곡을 탐험했다. 진짜 프렌치 폴리네시아를 만나고 싶다면 타히티를 지나쳐선 안 된다.

6월 말에서 7월에는 타히티의 대표적 축제인 ‘헤이바 이 타히티'를 만날 수 있다. 

타히티 섬의 블랙 샌드 비치. 모두의 꿈, 프렌치 폴리네시아로 향하다

“타히티로 여행을 가는 이들의 대다수가 커플이거나, 이제 막 결혼식을 마친 부부예요” 여행 전 만난 타히티관광청 담당자의 첫마디였다. 정말 그랬다. 일본 나리타에서 타히티로 가는 에어타히티 누이AirTahiti Nui 비행기 안, 혼자 앉아 있는 여자는 나 하나뿐이었다. 커플들은 늦은 시간까지 곧 도착할 천국 같은 섬에 대해 속삭였고 이따금 서로를 마주 보고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옆자리는 비어 있고 남은 일을 처리하고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은 나도 그들과 같았다. “나는 지금 천국보다 아름답다는 타히티로 가고 있어”

정식 명칭은 프렌치 폴리네시아French Polynesia. 우리에겐 프렌치 폴리네시아보다 ‘타히티’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프렌치 폴리네시아는 소시에테Society, 투아모투Tuamotu, 마르키즈Marquesas, 오스트랄Austral, 갬비어Gambier의 5개의 제도 안에 118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 다섯 제도와 해역은 약 40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이는 서유럽 전역에 해당하는 크기. 그 중 소시에테 제도에 우리에게 익숙한 그 이름, 타히티Tahiti섬이 있다. 내게 타히티는 아주 먼 곳처럼 느껴졌다. 일생에 단 한 번, 신혼여행으로나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였을까. 아니면 단순히 이름이 낯설어서였을까. 

이른 저녁, 해안가 공원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실제로 타히티에 가는 길은 정말 멀었다. 인천에서 도쿄 나리타를 거쳐 타히티 파아아Faa’ 공항까지는 환승을 합해 총 20시간이 걸린다. 인천에서 나리타까지 두 시간 반. 나리타에서는 여섯 시간의 환승 대기가 기다린다. 그리고 나리타에서 다시 11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면 드디어 프렌치 폴리네시아 여행의 시작, 타히티섬에 도착한다. 

공항에 들어서자 전통 음악과 댄스 공연이 여행객을 환영했다.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린 탓에 턱없이 짧게 느껴졌지만, 타히티에 온 기분을 내기에는 충분했다.

파페에테를 걷다 보면 관광객보다 로컬을 더 많이 마주치게 된다. 입국을 마치면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곧장 타히티 본섬을 여행할 것인가, 페리 또는 다음 비행편을 이용해 이웃 섬으로 떠날 것인가. 한국인 여행자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후자로 마음이 기운다. 타히티보다 훨씬 더 유명한 보라보라Bora Bora와 모레아Moorea가 목적지이기 때문이다. 타히티 여행에 허락되는 시간은 주로 귀국 전 한나절 정도.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상징인 산호라군이 상대적으로 덜 아름답다는,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이유 때문이다.

룰로트 푸드트럭은 오후 5시 반부터 준비를 시작해 자정까지 이어진다. 파페에테,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활기찬 도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타히티섬이었다. 에메랄드빛 산호라군도 궁금했지만, 그보다 더 알고 싶은 것은 로컬이 사는 모습, 그러니까 ‘진짜 타히티’였다.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인구는 24만 5천명. 그중 18만 명이상이 타히티에 산다. 타히티인은 태평양을 향해 당당히 서 있는 여왕처럼 보인다 하여 타히티를 ‘여왕의 섬’이라 부른다. 118개 섬 중에 이렇게 대단한 별명을 가진 곳은 타히티가 유일하다.

르 마르쉐 시장의 청과물 코너타히티섬은 타히티 누이Tahiti Nui, 타히티 이티Tahiti Iti 두 곳으로 나뉜다. 타히티어로 ‘누이’와 ‘이티’는 각각 ‘크다’, ‘작다’는 뜻이다. 여행자는 공항과 페리 터미널로 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타히티 누이에 있는 파페에테Papeete 근처 호텔에서 1박을 한다. 파페에테는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수도이자 행정 중심지로 관공서, 은행, 쇼핑점,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다. 

주민들도 파페에테와 주변 해안가 근처에 산다. 과연, 파페에테는 현지인으로 북적였다. 오전 11시, 파페에테의 중심가인 포마레 거리Pomare Boulevard에 들어섰을 땐 이제 막 오픈을 준비하는 레스토랑의 분주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여유롭고 느긋한 섬, 휴식의 섬이란 수식어가 이곳에서만큼은 어울리지 않았다.

검은 모래도 무척 인상적인 타히티 펄 비치 리조트 아래에 있는 블랙 샌드 비치파페에테에 도착해 타히티관광청의 마리냐를 만났다. 우린 인사를 나눈 뒤 르마르쉐Le Marche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은 입구부터 떠들썩했다. 꽃가게를 시작으로 생선가게, 과일가게, 채소를 파는 상점이 줄지어 늘어섰다. 여행객의 눈길을 끄는 흑진주, 파레오 등의 기념품 상점도 있었지만 시장은 작은 편이다. 물론,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곳을 여행하든 시장은 여행객의 흥미를 유발하니까. 타히티 물가가 높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관광지가 아닌 시장의 물건들 또한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현지인인 마리냐가 느끼기에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리조트 정원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카약몇몇 특산품을 제외하곤, 거의 모든 제품을 수입하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2층에 있는 마에바Maeva 레스토랑으로 갔다. 간단한 한 끼 식사도 우리 돈으로 2만원을 훌쩍 넘기지만, 그나마도 싼 편이고 시장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 관광객에게 인기라고 한다.

활기찬 파페에테는 오후 4시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한없이 조용해진다. 시장의 북적임을 이어받는 곳은 룰로트Roulottes 푸드트럭이다. 푸드트럭은 오후 여섯시부터 자정까지 부둣가의 바이에테 광장Vaiete Place에 열린다. 볶음 요리, 카레, 구운 돼지고기, 피자, 따뜻한 크레페 등을 판매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술을 팔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이런 큰 단점을 상쇄할 만큼 음식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있어 현지인과 여행객의 사랑을 받는다.

미스 타히티와 기념 촬영을 하는 사람들진심 어린 타히티인의 환대

며칠 뒤, 시장을 한 번 더 방문했다. 상인들은 카메라를 들고 그저 기웃대기만 하는 내게도 똑같이 친절했다. 이날 시장 안쪽에서는 퀼트 경연 대회가 열렸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던 나는 어느새 타히티 사람들 손에 이끌려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였다. 다행히 그 누구도 나를 ‘방해꾼’과 같은 불편한 시선으로 보지 않았다. 퀼트를 시연하던 노파는 바늘을 놓고 좀 더 가까이 오라며 내게 손짓했다. 여행지에서 오랜만에 느끼는, 대가 없는 친절이었다.

시장에서 퀼트 시연을 보인 할머니. 미소에서 다정함이 묻어난다.폴리네시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폴리네시아인이 곧 타히티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바람과 물의 흐름, 별에 대한 지식을 이용해 카누를 타고 바다를 항해했다. 이 위대한 원정으로 폴리네시아인은 프렌치 폴리네시아를 비롯해 하와이, 이스터섬, 뉴질랜드에 닿았다. 폴리네시안을 제외하고 타히티를 처음 발견한 건 유럽인이었다. 

영국의 사무엘 월리스Samuel Wallis 선장이 이끄는 배가 타히티 섬을 방문했을 때 그는 타히티를 ‘조지 3세의 섬’이라 명명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던 프랑스 항해사 루이 앙투앙느 부갱빌Louis-Antoine de Bougainville은 얼마 후 타히티 반대편에 도착해 이 땅이 프랑스 왕의 영토임을 주장했다.

야자수 그늘 아래서 책을 읽고 해변에서 선탠을 하는, 우리가 상상하던 그 휴양지다.1800년대, 타히티는 더 이상 비밀스러운 낙원이 아니었다. 고래잡이, 영국 선교사, 프랑스 원정대가 이곳에 왔고, 프랑스와 영국은 섬의 통치권을 두고 끊임없이 대립했다. 결국 1880년, 프렌치 폴리네시아는 프랑스의 식민 통치 아래 놓인다. 1958년까지 타히티의 모든 섬은 프랑스의 해외 영토로 재구성 됐다. 

타히티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즉 프렌치 폴리네시아라 이름으로 자치권을 확립하며 프랑스 공화국 내의 해외 국가가 된다. 부갱빌은 1768년에 이 땅에 왔을 당시 타히티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프렌치 폴리네시아는 우리에게 아주 젠틀하고 친절했습니다. 타히티인은 서로에게 선의를 가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집에 사람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항상 대문이 열려 있습니다. 삶에서 필수적인 것들에 대해 이들은 소유권을 가지지 않고, 만물이 모든 사람에게 속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파페에테의 시원한 도로 끝에 저 멀리 항구가 보인다.비록 삶의 방식은 변했지만, 그들의 성향은 예전과 다르지 않은 듯싶다. 여행 중 모든 타히티인은 따뜻했다. “아마 타히티에 오래 머문다면 자주 그들의 집으로 초대받을 거예요. 타히티인은 이방인을 초대하고, 대접하는 걸 기쁘게 여겨요. 우리도 이제 친구이니, 다음 여행에는 꼭 나에게 연락을 해야 해요.” 부갱빌이 느낀 친절과 선의 역시 아마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파페에테 시내를 가득 채운 아기자기한 벽화들. 도시의 분위기를 더욱 활기차게 한다.폴 고갱 그리고 타히티

프랑스의 화가 폴 고갱Paul Gauguin은 타히티를 방문한 사람 중 가장 유명하다. 작품으로 인정받기 이전에 ‘타히티에서 숨을 거둔 프랑스 예술가’로 더 잘 알려졌다. 그는 이국적인 풍경과 원시적인 세계를 그린 작품으로 서양 예술계에서 입지를 굳히길 바랐고, 자신의 영감을 채워줄 목적지를 찾아 나섰다. 마침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타히티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곳이었다.

프렌치 폴리네시아의 넘버원 기념품은 흑진주. 표면에 상처가 없고, 모양이 원형일수록 가격대가 높다.1891년, 63일간의 여정 끝에 그가 타히티에 도착했을 때 이미 수도 파페에테는 서서히 서양 문명에 잠식되고 있었다. 고갱은 도시를 뒤로하고 시골에서 타히티인들과 함께 산다. 강렬한 색채로 원시적인 세계를 표현한 <타히티의 여인들>을 비롯해 그가 지금의 ‘폴 고갱’으로 남을 수 있던 작품 대다수가 이 시기에 탄생했다. 

2년 뒤 그는 꿈을 안고 프랑스로 돌아가지만, 그의 작품은 크게이목을 끌지 못한다. 1895년, 고갱은 다시 타히티로 가는 배에 몸을 싣고, 마르키즈 제도의 히바오아Hiva Oa에서 1903년 5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파페에테에서 5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고갱의 타히티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이 있었으나, 현재 운영을 종료한 상태다.

고갱은 자신의 수필집이자 타히티 생활기를 실은 <노아 노아>에 타히티의 첫인상을 적었다. “처음 보기에 이 섬은 별로 색다른 것이 없고, 다만 태고의 대홍수로 잠긴 산봉우리만 겨우 수면 위로 수줍은 듯 고개를 내밀고 있을 뿐이다.” 문장과 달리, 고갱은 태고적 신비를 간직한 타히티를 사랑했고, 타히티 사람들과 자연을 수많은 작품으로 남겼다. 이곳의 풍경은 그의 그림이 그려진 시기와 비교해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유일한 차이점은 그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것뿐이다.

바다를 떠나 깊은 계곡 속으로

타히티 섬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은 바다가 아니라 산에 있었다. 타히티에 머무는 동안 파페누 밸리Papenoo Valley를 여행했다. 오전 10시에 호텔 앞으로 온 사륜구동 차는 해안가를 지나 깊은 산속으로 향했다. 파페누 밸리는 타히티 누이의 정 가운데 위치한다. 깊은 계곡까지 가는 길은 꽤 험난하다. 반드시 숙련된 드라이버와 가이드가 함께해야 한다. 

산 입구에서 마라마 사파리Marama Safari의 가이드 레오니는 단단히 맨 안전벨트를 풀었다. 오프로드를 즐기기 위해서는 안전벨트가 필요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레오니는 운전하는 내내 섬의 자연을 예찬했다. 그녀는 식물도감을 읽듯 미국인 여행객 여섯 명과 내게 타히티의 자연, 기후, 시골 생활에 대해 설명했다. 

빵 나무 열매, 노니, 체스넛 나무, 타로 등 사진 속에서만 본 열대 식물들을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열대 과일은 곧장 따서 먹어도 돼요. 먹은 뒤 씨를 던지면 그 자리에 또 나무가 자라죠.”

트럭을 개조한 차에 탑승해 오프로드를 달린다.그녀가 노니 세 개를 따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은퇴한 사람들은 종종 숲에 들어와 열매를 따고 길거리에서 팔죠. 비가 많이 올 때면 우산 대신 식물의 커다란 잎사귀를 쓸 수도 있어요. 파페누 밸리의 자연은 모두의 것이에요”. 넓은 길은 분화구를 향해 가며 점점 좁아졌다. 하늘엔 먹구름이 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렸다. 

토파타리Topatari, 바이 하루루Vaiharuru, 푸라하Puraha 폭포 등 크고 작은 수십 개의 폭포를 보는 동안 비는 쏟아지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아마 파페에테는 지금 맑을 거예요. 산속은 건기, 우기를 가리지 않고 매일 비가 내리죠”. 수많은 폭포, 과일나무, 무성한 수풀 모두는 이 비로 만들어진 것. 특히 비 내리는 바히리아Vaihiria 호수의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호수의 이름을 딴 ‘바히리아’라는 노래도 있는 아름다운 바히리아 호수.파페에테 시내로 오니 시계는 어느새 오후 여섯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신발은 진흙으로 뒤덮였고 머리는 비에 젖어 헝클어졌다. 일행 모두가 서로의 초라한 행색을 번갈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중 그 누가 천국이라 불리는 섬에서 이런 모습일 줄 알았을까. 옷의 먼지를 털어내며 빌 브라이슨의 말을 떠올렸다.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생각했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 아닌가.” 익숙한 것이 주는 안락함이 그리워져 더는 여행을 떠나지 않겠다 결심한 적이 있었다. 

타히티 여행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될 말은 요라나Iaorana. 타히티 식 인사이다.그럴 때도 나는 낯선 땅에서 이방인의 신분으로 거리를 헤매야만 했다. 그러나 여행의 마지막 밤이면 어김없이 여행을 와서,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호텔 발코니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런 풍경을 모르고 살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고. 타히티의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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