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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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호]     대륙분류 : [중동]     국가분류 : [이스라엘]     도시분류 : [예루살렘]
기사제목
[COVERSTORY] 종교와 역사의 도시, 예루살렘 산책

Walking in Memories Jerusalem

종교와 역사의 도시예루살렘 산책

구시가지 크리스찬 구역에 위치한 아프티모스 시장. 성지 순례길에 있으며 각종 기념품을 판매한다.

순례 길에서 시작한 예루살렘 여행

사해에서 25킬로미터, 지중해 연안에서 5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다. 기원전 3천년, 가나안인의 한 부족이 예루살렘 동부에 성시를 지으며 이 땅의 역사가 시작됐다. 성경학자 스티븐 빈츠는 저서 <예루살렘, 거룩한 도성>을 통해 수메르어인 ‘예루’는 토대와 지역을 의미하고, ‘살렘’은 평화를 뜻하는 ‘살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전한다. 

즉, 예루살렘의 이름에는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 깃들어 있는 셈이다.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성지순례지’로 잘 알려져 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예루살렘을 이야기할 때면 가장 먼저 성경을 떠올린다. 그러니 예루살렘에온 이상 성지순례 코스를 따라 걷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의 시작점인 올리브 산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장소다. 

올리브산에서 보이는 유대인의 무덤과 황금산. 유대교인이라면 자신의 성전이 있던 곳을 바라보는 자리에 묻히고 싶어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황금 사원. 모하메드가 재림한 이슬람의 성지로 691년에 건축한 것을 보수하며 지금까지 유지해왔다. 둥근 돔에 500킬로그램의 황금을 입혀 멀리서도 눈에 들어온다. 외형은 처음 세웠을 때와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다. 오전 시간에는 모스크 외부를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데, 내부는 이슬람교도만 입장이 가능하다. 

올리브산 언덕을 내려가는 길에는 겟세마네 동산과 만국교회가 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가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만찬을 하고, 피땀을 흘리며 기도를 한 곳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교회를 세운 것이 만국 교회다. 12개국에서 헌금해 만들어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가장 안쪽에는 예수가 기도했다는 고난의 바위가 자리하고 있다.

비아 돌로로사 4처소는 지하에 있는 기도실이다. 마리아가 십자가를 진 예수를 만난 곳에 세워졌다.

성지순례의 하이라이트는 비아 돌로로사다. 예수는 공개 재판을 받은 후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간다. 구시가지의 다마스커스 게이트 안쪽, 1처인 안토니우스 요새에서 시작한 이 길은 약 400미터이상 이어진다. 길을 따라가면 성경과 경외서에 기록된 사건을 토대로 한 14개의 표식 및 예배당을 만날 수 있다. 

가이드는 비아 돌로로사를 걷기에 앞서 주의를 준다. “많은 교인들이 비아 돌로로사에 모습에 실망하곤 해요. 장사꾼의 호객 때문에 생각보다 더 번잡하거든요.” 3처를 시작으로 시장을 관통하는 길에 들어서면 여행자와 현지인으로 북적댄다. 복잡하게 엉킨 좁은 골목도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한 수를 더한다. 

예수가 이 길을 걸었다는 것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스라엘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비아 돌로로사를 걷고 싶어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순례객들은 성처들을 하나씩 찾아가며 십자가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며 예수가 산 고난의 삶을 가늠해 본다.

성분묘교회에만 여러 개 처소가 있을 정도로, 모든 공간이 종교적 의미를 품고 있다.

겟세마네 동산에는 1천년 이상 산 올리브나무가 심어져 있다.

비아 돌로로사의 마지막에는 성분묘교회가 기다린다. 10처에서부터 14처까지 모두 교회 안에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곳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혔으며 다시 그 무덤에서 부활했다고 믿는다. 예루살렘의 고고학자 단 바하트는 성분묘교회에 대해 “그곳이 무덤인지 불명확함에도 이곳만큼 예수의 무덤이라 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라고 말했다. 

이곳은 기독교역사에서 가장 핵심적인 곳이자 주요 성지 중 하나이지만, 의외로 여러 종교가 얽혀 있다. 기독교 외에도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콥트 교회, 에티오피아 교회, 아르메니안교회까지 총 6개의 종파가 함께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예배당은 고요하고 엄숙하다. 상인들의 호객으로 지친 순례객에게 묵상을 허락하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다.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검은 정복을 입고 긴 수염과 구레나룻을 휘날리는 유대인.

유대교 그리고 유대인

평화의 도시라는 의미와 달리, 예루살렘에서는 과거부터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미국 유대교 잡지 <모멘트 매거진>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2차례 완전히 파괴됐고, 52차례의 공격을 받았으며 44차례 점령과 탈환을 반복했다고 한다. 고대 예루살렘의 거의 모든 사건은 성벽 안쪽, 즉 구시가지에서 일어났다. 예루살렘은 성벽을 경계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오늘날 1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구시가지에는 크리스천, 무슬림, 아르메니안, 유대인까지 네 개의 서로 다른 종교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간다. 성지 순례객은 유대인 구역까지 가지 않는다. 이슬람 구역과 크리스천 구역에 걸친 비아 돌로로사를 걷고 다른 지역으로 향한다. 유대인 구역은 구시가지를 이루는 네 곳의 구역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폐쇄적이다.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시간을 내 가볼 만하다. 1세기 헤롯 시대의 도로인 카르도를 비롯해 2천 년 전 예루살렘의 모습, 유대인의 생활상도 볼 수 있다.구시가지에서는 통곡의 벽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하는 유대인. 성경이 모두 눈물 때문에 젖었다.

솔로몬은 기원전 957년, 현재 황금 사원이 있던 자리에 성전을 세운다. 이 1차 성전은 기원전 586년에 바빌론에 의해 파괴된다. 이후 유대인은 다시 이곳에 돌아와 같은 자리에성전을 짓는데, 헤롯은 유대인의 신임을 얻기 위해 성전을 확장한다. 헤롯의성전은 기원후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무너졌다. 

로마군이 휩쓸고 간 자리, 남은 것은 서쪽 벽의 일부였다.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반란을 진압합니다.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있다면 발견즉시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리죠. 그는 유대인을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 반란이 더욱 거세질 것을 예상해 일 년에 단 하루만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 수 있게 합니다. 

그 하루는 기원후 70년, 성전이 파괴된 날이었죠.” 유대인들은 성전이 없고 터만 남아있는 풍경을 보며 울었고, 기도했다. 즉, 통곡의 벽이라는 이름은 로마 군인의 시각이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만든 것이다. 여전히 유대인은 벽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로 젖은 성경과 함께 기도한다. 메시아의 강림, 유대인 성전 재건을 바라며 통곡하는 것이다. 안식일과 월, 목요일에 통곡에 벽에 온 여행자들은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황금 사원에 기댄 무슬림. 관광객에게는 오전 시간에만 열려 있다.

유대인 남성은 13세 생일을 맞은 주의 월요일과 목요일에 성인식을 한다. 이날은 성문에서부터 통곡의 벽까지 이어지는 악단의 연주, 행진을 볼 수 있다. 남자 구역에 들어갈 수 없는 가족의 여자들은 건너편에서 까치발을 들고 축하의 의미로 사탕을 던진다. 벽 아래편에서는 유대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한다. 

이스라엘은 유대교 국가이지만, 모두가 유대교의 교리를 철저히 따르는 것은 아니다. 유대교 신자들은 전통 관습을 지키는 강경파와 비교적 관습에서 자유로운 온건파로 나뉜다. 강경파는 검은 정복을 입고 머리를 땋은 사람들로 이스라엘 유대교 신자의 20퍼센트에 해당한다. 그들이 먹고, 입고, 활동하는 것은 모두 철저히 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강경파 유대교인은 안식일에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을 찬양하는 일에 몰두한다. 율법 상 불을 피울 수 없기에 전날 요리를 해놓고 미리 음식도 사둔다. 금요일 해 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가 저물고 한 시간 뒤까지가 안식일이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주말인 셈이다. 

안식일이 되면 관공서를 포함한 거의 모든 기관과 상점이 문을 닫는다. 버스나 기차도 최소한으로 운행한다. 한 주의 시작은 일요일 아침. 다시대중교통이 활발히 다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간다.

신시가지에 가면 서울의 번화가만큼이나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스라엘의 뿌리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 박물관

이스라엘은 유대교의 생활방식을 존중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다. 공식적으로 15개의 종교를 인정한다. 종교로 인한 분쟁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교는 금지한다. 그러나 분쟁은 지금도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계속되고 있다.3천 년 전, 현재 팔레스타인 땅에는 에게해에서 넘어온 이주민이 살고 있었다. 모세가 이끄는 유대 민족은 원래 주민들을 쫓아내고 이 땅에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다. 

왕국의 역사는 기원전 722년에 막을 내린다. 이후 아랍 민족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1800년대 후반,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팔레스타인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시오니즘 운동이 일어난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고국인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 국가의 건설을 주장하고 현재 시나이 반도와 웨스트 뱅크 등을 점령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긴장감이 더해진 것은 1974년. 이곳에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수립되면서부터다. 

1988년 요르단은 이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이스라엘에 넘기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계속 영토 분쟁을 거듭한다. 1993년 팔레스타인은 오슬로 협정으로 자치권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이 독립 국가를 추진하면서 이를 부정하는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을 압박해오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러한 분쟁의 한 축에 나치의 공격을 받은 유대인이 있다는 것이다.

일요일은 군인들의 ‘선데이 컬쳐’. 박물관, 미술관으로 견학을 나온 군인들을 볼 수 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나치는 유대인을 학살한다. 수백만의 유대인이 홀로코스트로 희생되는데, 전쟁 전 폴란드에는 유대인이 3백 32만 명이었으나, 전쟁 이후 3백만이 죽었다. 예루살렘에 위치한 야드바쉠은 이스라엘에서 정부에서 홀로코스트의 아픔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기념관이다. 

야드바쉠이라는 단어에는 ‘메모리얼’, 그리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다’는 뜻이 있다. 이사야 56장 5절에는 “기념물과 이름을 주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기념물과 이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가 야드바쉠이다. 전시실을 둘러보면 영상, 사진, 문서를 통해 당시 유대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안내자인 리즈는 미국 태생의 유대인으로 이스라엘에서 35년간 살았다. 

부모님이 폴란드인인 까닭에 야드바쉠에 대한 애착이 더 크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시품을 볼 수 있도록 건축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곳의 모든 자료는 독일에서 받았어요. 나치군은 전쟁의 승리를 예상했고, 승리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자료를 남겨뒀죠.” 야드바쉠을 제대로 보려면 최소 2시간은 필요하다. 

밖에서 본 야드바쉠의 내부. 안에서는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 자연 채광이 특징인 건물로 삼각형의 구조는 깊은 어둠에서 햇빛이 있는 밝은 미래로 나아간다는 뜻을 지닌다.

전쟁생존자들의 인터뷰 기록만 200시간일 정도로 방대한 규모의 사료를 보유하고 있다. 모든 기록이 잔인하고 충격적이기에 만 13세 이하는 입장할 수 없다. 그들이 비록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탄압하고 있을지라도, 유대인의 아픈 역사와 과거는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래도 전시관을 걷다 보면 왜 유대인이 이스라엘 땅에 집착하고 애국심이 강한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이스라엘은 내셔널리즘이 강한 나라다. 

유대인은 ‘각 세계 흩어져 살던 유대인은 공통된 역사와 과거를 나눌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역사와 과거를 공유하기 가장 좋은 곳이 바로 박물관이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박물관을 가보자. 이스라엘 박물관은 고고학 박물관, 유대학박물관, 현대미술관으로 나뉘는데, 세 곳에 걸쳐 전 세계에서 수집한 유물 50만점을 보관, 전시한다. 

고고학 박물관에는 선사시대에서부터 이르는 극동, 남북 아메리카 등의 유물이 있다. 가자지구에서 발견한 5천 년 전의 옹관은 미술관의 메인 작품이다. 특별 전시관의 작품은 자주 바뀌는 편. 로마 시대, 비잔틴 시대 등의 유물이 주를 이루며 유대인의 전통과 결혼, 죽음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유품도 많다. 특히 원본을 그대로 가져온 이탈리아와 인도의 유대교 회당이 눈길을 끈다.

성벽 밖의 술탄 풀에서 ‘이스라엘 문화축제’가 있었다. 유명 아티스트의 공연이 펼쳐졌다.

예루살렘의 현재신시가지를 걷다

구시가지를 걷고 있노라면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오른 것 같다. 성벽 밖 신시가지는 전혀 다른 세계다. 아름다운 스카이라인과 고층 건물이 들어서서 같은 예루살렘이 맞는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풍경을 동시에 즐기는 방법은 성벽 위를 걷는 것이다. 램파트 워크는 총 3.4킬로미터의 성벽 길. 좁은 성벽 위를 걸으며 구시가지가와 신시가지를 내려다볼 수 있다.램파드 워크에서는 예민 모셰 지역이 잘 보인다. 

이곳은 예루살렘 성벽 밖에서 사람들이 처음으로 살기 시작한 곳으로 욥바 게이트 바로 앞에 위치한다.1890년, 성벽 안에 사는 인구는 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넘쳐났다. 이를 본 영국유대인 모세 몬테피오르는 성 밖으로 사람들을 이주시키기 위해 낮은 세율, 일자리 제공과 같은 혜택을 고안한다. 성 안을 고집하던 사람들은 전염병을 피하고 혜택을 누리기 위해 예민 모셰로 향했다. 

예루살렘에서는 세그웨이를 타보자. 시간당 가격도 그다지 비싸지 않은 편이다.

램파트 워크에서 신시가지를 바라본 전경

현재 이 동네는 예루살렘에서 가장 집값이 높은 구역이다. 조용하고 깨끗한 주거지역, 성벽과 가까운 거리가 특징이라 이곳에서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신시가지의 벤예후다 거리와 마밀라 스트리트는 서울의 홍대나 명동과 같은 번화가로 각종 숍과 음식점이 자리한다. 

특히 안식일이 끝난 토요일 오후에는 예루살렘의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나와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주말 밤을 즐긴다. 예루살렘은 걷기 좋은 도시다. 예루살렘을 여행하는 동안 하루 2만보를 채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름철에는 낮 기온이 35도에 이르지만, 그늘에 가면 금세 땀이 식을 정도로 시원했다. 

구시가지의 관광지는 반드시 걸어서 둘러봐야 하지만,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분위기를 즐기는 정도라면 세그웨이를 타도 좋다. 언덕이 많아도 길이 평평해 초심자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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