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월간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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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1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슬로베니아]     도시분류 : [류블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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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FIELD] 짝사랑 같은 슬로베니아 여행

도비라Trip in Slovenia, like a one-sided love

짝사랑 같은 슬로베니아 여행

세상에는 감출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감기와 가난, 그리고 사랑이다. 이중 사랑은 시대와 민족,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겪을 수밖에 없는 감정의 동요다. 어떤 사랑도 내 안에서 생겨나지만 때로 나를 떠나지 못하고 입술 안에서 빙빙 돌다가 가슴앓이로 끝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사랑과 만나 한 편의 영화처럼 뜨겁고 차갑기를 반복하며 정열적이고 화려한 꽃을 피워내기도 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의 내릴 수 없으며, 남에게는 쉽게 조언하지만 내게 찾아오면 쉬운 어떤 것 하나도 쉽지가 않은 것이 사랑이다.

난 여행을 사랑에 비유한다. 평범하게 살아왔고, 무엇 하나 필요한 것 없는 만족스러운 일상을 살다가 누군가의 여행 사진에, TV에 지나가는 낯선 도시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여행의 가슴앓이가 시작된다. 누구나 그런 일을 거치지만 모두가 마음을 뺏기는 건 아니다. 또 마음을 뺏긴 사람이라도 모두가 여행을 떠나는 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사랑처럼 여행도 통하는 무언가에 반응한 사람이 실행에 옮기게 된다. 여행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에겐 특징이 있다. 처음의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쉽다는 것이다. 

류블랴니차 강은 고풍스런 건물과 어울리며 동화 속 풍경을 연출한다.세상 말로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겨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경우와 정말 비슷하다. 여행에 빠져든 사람은 일상의 다양한 부분이 여행에 초점을 둔 삶으로 변한다. 

여행과 관련한 책을 많이 읽게 되거나, 여행 사진에 관심을 갖고, 휴가나 방학에 맞춰 여행지를 찾아보기도 한다. 수입의 일정 부분은 여행을 위해 저축하기도 하고, 여행 동호회와 모임에 가입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여행과 사랑에 빠진 사람 중 이후 여행과 이별했거나 거리를 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마치 어둠의 세계처럼 발을 들이기는 쉽지만 빼기는 어려운 것이 여행과의 사랑이고, 여행의 맛이다.

류블랴나 성에서 내려다 본 도시의 풍경.유럽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

유럽은 여행과 사랑에 빠진 사람에게 진정한 로망이다. 파리의 에펠탑이나 로마의 콜로세움 사진을 보고 유럽으로 날아갈 계획을 세우는 사람을 많이 봤다. 일본이나 홍콩 여행을 시작으로 여행의 범위를 넓혀 유럽으로 떠나기도 하고, 오랜 기간 비용을 모으고 정보를 수집해 방학이나 긴 휴가를 얻어 유럽나라들을 여행하기도 한다. 

여행과 사랑에 빠졌다면 최소 파리와 로마는 다녀와야 어디 가서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정도랄까. 유럽여행에 단계가 있다면 보통 처음엔 서유럽으로 시작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 스페인,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이 이곳에 있는데 동선이 짧고 기차와 항공 같은 교통편이 잘 돼 있어 묶어서 여행하는 일이 많다. 

초짜 사랑꾼들은 나라 별로 수도와 명소 위주로 동선을 짠다. 차츰 노하우가 생기면 기간이 길어져도 하나의 국가만 선택해 소도시 위주로 여행하기도 한다. 사랑도 해 본 사람이 더 잘하듯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똑같았다. 10여 년 전 처음 유럽을 찾았을 때,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 포르투갈 등의 명소를 다녔다. 

첫사랑이 그렇듯 강렬했고, 낯설었으며, 짜릿했다. 가는 곳마다 평소 보지 못했던 이국적인 풍경에 마음을 쉽게 빼앗겼고, 쉼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후 유럽의 동서남북 곳곳을 다녔지만, 사람과의 첫사랑처럼 그 시간, 그곳에서 가졌던 설렘과 떨림은 여전히 오롯하게 남아있다.

무수한 외세의 침략에도 과거 도시의 모습이 오롯하게 남았다.슬로베니아라는 짝사랑

여느 짝사랑과 다르지 않았다. 우연히 마주한 사진 한 장. 유리알처럼 투명한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작은 섬, 섬과 맞춤이라도 한 듯 예쁜 교회 하나가 그 위에 올라앉아 있다. 사진은 고요히도 멈춰 있는데 사진을 보고 있는 나는 더없이 설렜다. 마음은 동요했고 욕심이 생겼다. “가고 싶다.” 처음 블레드 호수의 풍경을 사진으로 만났을 때 일이다. 

슬로베니아가 정확히 지도 어디에 있는지, 어떤 나라인지도 자세히 몰랐다. 그저 아름다운 풍경 사진 한 장은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꿈꾸게 하기에 충분했다. 짝사랑은 대상과의 실제 사랑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가슴앓이로 끝나기도 한다. 사실 후자가 더 많다. 혼자 하는 사랑이라고 아쉽고 부족한 것만은 아니다. 마음에 담은 상대를 멀리서 지켜보고, 배려하고, 알아가는 것마저도 때로는 아름답다. 

과거 공격과 방어용으로 건축된 성이 현재는 박물관과 전망대, 웨딩장소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행 역시 실제로 떠나지 못 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여행지에 관한 역사와 문화 등을 공부하고 여행 코스와 숙소, 비용 등을 알아보며 실제로 떠났을 때를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이런 짝사랑의 과정은 실제 여행으로 이뤄졌을 때 정해진 시간과 비용으로 더 높은 만족을 얻기도 한다. 슬로베니아를 마음에 품고 정보를 찾아봤다. 

우리나라 전라남북도 면적과 비슷한 작은 나라,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지배, 오래되지 않은 독립. 많지 않은 정보에도 사진 한 장으로 시작된 관심은 점점 더 커갔다. 사실 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자기의 관심사의 넓이와 깊이를 마음대로 정하지 못한다. 그저 이끌리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따를 뿐이다. 그 즈음 슬로베니아로의 여행 기회가 찾아왔다.

슬로베니아의 기원과 현재까지의 역사가 담긴 국기.국기에 담긴 역사 이야기

슬로베니아라는 이름은 남 슬라브어로 ‘슬라브인의 땅’을 뜻한다. 정식으로 슬로베니아라는 이름을 얻은 건 1991년 독립하면서다. 슬로베니아의 국토는 시대를 거쳐 오며 수많은 대국 영토에 속해 있었고 다양한 민족이 이곳에 머물고 떠나기를 반복했다. 

국기만 봐도 슬로베니아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현재의 국기는 과거 이 땅에 머물던 신성로마제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지배를 받던 크라인 공국에서 유래했다. 공국은 왕이나 군주가 아닌 공작이 통치하는 작은 나라로 당시 크라인 공국은 백,청, 적색의 삼색기를 사용했다. 

오늘날 슬로베니아를 상징하는 깃발로 사용된 건 1948년 혁명 당시 슬로베니아 민족주의자인 로브로 토만이 류블랴나 시내 곳곳에 이 깃발을 세우면서부터다. 혁명은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지만 통치국이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이 깃발을 슬라브 민족의 상징이 아닌 이 지역의 깃발로 인정했다. 이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와해되면서 여러 국가로 분리됐지만, 이때도 슬로베니아는 독립하지 못했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로 귀속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카르스트 지형의 대표 격인 포스토이나 동굴 입구. 리고 얼마 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때 독일이 슬로베니아 전역을 점령했는데, 반나치 저항군들이 크라인 공국의 백청적 삼색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대전 이후 국토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이후 유고슬라비아)으로 편입되면서 백청적 깃발 안에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 별이 붙게 된다. 

이때부터 유고슬라비아의 구성국인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고 이 깃발을 공식으로 사용하게 됐다. 현재 국기에는 붉은 별을 빼고 왼쪽 한 편에 산 모양의 국장을 붙여 넣었다. 이 국기가 사용된 것은 1991년부터다. 1991년 6월 25일 슬로베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유고슬라비아에서 독립을 선포하면서 비로소 슬로베니아 공화국이 수립됐다. 현재 국기에 들어 있는 산은 슬로베니아의 최고봉인 트리글라브산이다. 

높이 2,864미터로 슬로베니아는 물론 이탈리아에서부터 이어져 온 율리안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이다. 슬로베니아는 독립과 함께 국가의 높은 기상을 상징하며 최고봉 트리글라브산을 국기에 디자인했다. 세 개의 봉우리 아래엔 두 개의 물줄기도 넣었는데 슬로베니아의 강과 바다를 상징한다. 봉우리 위에 떠 있는 3개의 별은 14~15세기 슬로베니아왕조의 원조라고 여기는 첼례 지방 영주의 군대 휘장에서 따왔다고 한다. 디자인은 단순하지만, 국기 안에 슬로베니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블레드 호수는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쉼이 된다. 슬로베니아를 있게 한 열흘

슬로베니아의 독립은 ‘10일 전쟁’을 통해 이뤄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에 속해 있던 슬로베니아는 1980년 통치자 티토의 죽음과 함께 독립을 모색하게 된다. 이때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강화되면서 지배하에 있던 나라들이 들고 일어났다.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구성 공화국에는 슬로베니아와 함께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공화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이 있었다. 

세르비아를 주축으로 한 독립은 유고슬라비아와의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때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슬로베니아에는 세르비아 인이 거의 없어 명분이 적었기 때문에 전쟁했던 나라 중 피해가 가장 적었고 제일 먼저 독립할 수 있었다. 1991년 6월 25일 슬로베니아는 독립 선포와 함께 유고슬라비아와 내전을 시작했는데 10일 만에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이를 10일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은 7월 7일 브리유니 평화 조약의 서명과 함께 공식으로 끝났고 비로소 슬로베니아는 자유를 얻게 됐다. 수많은 나라의 지배를 받다가 내전을 통해 최근 27년 전 독립한 국가라고 하기에 슬로베니아의 첫인상은 너무 평화로웠다. 

포스토이나 동굴로 오르는 계단. JAMA는 슬로베니아 말로 동굴을 뜻한다. 수도 류블랴나에 도착했을 때 다른 유럽 나라 도시와 또 다른 설렘을 느꼈다. 흐린 날씨가 고풍스러운 건축물, 거리의 이미지와 더해져 묘한 그림을 만들어 낸다. 풍광은 전혀 다르지만 아름다운 블레드 호수 사진에서 느꼈던 감정이다. 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 사랑스럽다. 슬로베니아(Slovenia)는 유럽 국가 중 유일하게 이름에 사랑(Love)을 품고 있다. 

수도 류블랴나는 슬라브어로 ‘사랑하다(Ljubiti)’라는 뜻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사랑에 빠지는 일이 특별한 게 아니다. 류블랴나는 곳곳의 광장과 골목, 건축물 등 모두가 예쁘지만, 전망대 격인 류블랴나 성을 먼저 보는 게 좋다. 류블랴나 성은 올드 타운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있어서 밑에서 올려다볼 때도 절경이다. 

이곳은 비탈에 연결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조금씩 지면에서 멀어질 때마다 도시의 풍경이 영화 필름처럼 지나쳐간다. 케이블카에 오른 관광객은 피부색과 언어가 다르지만,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외친다. 동굴 안이라고 보기에 높이와 넓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류블랴나 성은 15세기 합스부르크 왕국 시절, 오스만의 공격 방어용으로 재건되었다가 17세기에는 요새와 감옥, 병원 등으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슬로베니아 박물관과 함께 웨딩 장소로 쓰인다. 지정학상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있으니 전투에서 더없이 좋은 위치였을 것이다. 전망대로도 더할 나위 없다. 

성도 아름다웠지만, 원통형 계단을 따라 성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만나는 도시 전경에서는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발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류블랴니차 강과 그 뒤로 미니어처처럼 아기자기하게 들어찬 건물 사이로 프레세렌 광장과 메스트니 광장이 이어진다. 이들은 바로크와 아르누보 풍 건축양식의 절정이다. 

성에서 가만히 내려다보는 도시의 전경은 환상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블레드 호수를 기대하고 왔는데 슬로베니아와의 사랑은 이미 류블랴나 성에서 시작됐다.

동굴은 열차를 타고 들어가서 약 3킬로미터를 걸으면서 관람한다. 독특한 지형이 만든 관광자원, 포스토이나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특별한 것을 꼽으라면 바로 지형이다. 작은 나라지만 세계에서 카르스트 지형으로 유명하다. 카르스트는 물에 녹기 쉬운 석회암 같은 암석으로 구성된 곳으로, 대지가 빗물 등에 의해서 용식 되며 생성된 지형이다. 국내에는 강원도 삼척시와 영월군, 충천북도 제천시와 단양군 등에 이 지형이 있다. 

자국의 지명 크라스에서 어원을 가져왔을 정도로 슬로베니아에는 카르스트 지형이 많다. 약 1만 개가 넘는 석회동굴이 있다고 한다. 이 중 15개만 볼 수 있는데 연중 개방하는 곳은 세 곳뿐이다. 크라스 지방 포스토이나에는 슬로베니아 최대의 포스토이나 동굴이 있다. 길이가 장장 24km로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자연문화유산 중 동굴로는 1년 내내 개방하는 유일한 곳이다. 지상과 전혀 다른 지하세계 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세계적 명소로 꼽힌다.

동굴 관람구간의 끄트머리엔 1899년 세계최초로 만든 지하 우체국이 있다. 현재는 기념품 판매점으로 사용된다.덕분에 어지간히 동굴을 다녀봤다는 사람도 이곳에 오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 동굴의 역사는 최소 200만 년이 넘는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것도 200년이 되었다. 27년 독립국 슬로베니아의 역사와 언밸런스해서 더 놀랍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17세기에 일부가 발견되었고 1818년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의 방문을 준비하던 중 현재의 구간이 발견됐다. 

그리고 이듬해 일반인에게 동굴을 공개했는데 이때 동굴을 발견했던 사람이 가이드를 했다고 한다. 이후 1872년 동굴 안에 조명과 철로를 설치하고 열차를 이용해 본격적인 관광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고종이 조선을 통치한지 9년째에 접어든 시기였다. 당시 동서양의 문화와 과학기술이 많이 달랐음이 느껴진다. 열차를 타고 동굴로 들어서면 강한 찬바람에 기선제압을 당한다. 

해가 뜬 직후의 블레드 호수는 말 그대로 거울에 세상을 비춘 듯 데칼코마니 풍경을 연출한다. 처음엔 놀이동산의 기구를 타는 기분인데 지하로 내려갈수록 느껴지는 위압감이 대단하다. 열차는 지하 65미터로 내려가서 멈춘다. 여기서부터 3킬로미터를 걸으면서 구경한다. 분명히 동굴 속인데 눈앞에 펼쳐진 석순과 석주, 종유석의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마치 거대한 인공 구조물을 지하에 옮겨서 세운 것 같다. 

자연의 웅장함과 신비로움은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섞여 관람 내내 기분 좋은 긴장함이 되어 준다. 사방으로 고개를 돌리며 걷다 보면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댄싱홀에 도착한다. 동굴 안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다. 1899년 세계최초로 만든 지하 우체국도 있다. 얼마나 넓은지 실외 광장에 온 느낌이다. 종종 이곳에서 대규모 공연이 열리기도 하는데 동시에 1만 명이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그저 대단하다.

피란은 마치 이탈리아 남부 소도시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말로는 부족한 호수의 아름다움, 블레드 호수

드디어 사진으로 봤던 호수의 땅, 블레드다. 슬로베니아 북서부에 있는 작은 도시지만, 명실상부 최고의 관광지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율리안알프스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아서 생긴 빙하호 블레드 호수가 있다. 난 이곳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뺏겨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슬로베니아를 짝사랑했다. 실제로 마주하니 마음이 멍해진다. 

꿈에 그리던 상대를 만난 것처럼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았다. 괜히 아름답다거나 그림 같다는 말로 지금의 낭만을 헤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어스름을 틈타 다시 호수로 나왔다. 카메라를 들고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볼 요량이었다. 사방이 컴컴하지만 낯선 도시가 위협적이지 않다. 잘 보이지 않는 한 치 앞이 베일에 싸인 보물상자처럼 기대돼서 걸음을 재촉했다. 

서서히 어둠이 걷히면서 물안개가 잔잔히 깔린 호수가 드러났다. ‘와!’ 입가에서 외마디 탄성이 흘러나온다. 잔잔한 호수와 그 가운데 떠있는 작은 섬 하나가 이렇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니. 때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느껴봐야 알 수 있는 것들. 그날 새벽 블레드 호수에서 받은 감동은 직접 와봐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호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는다. 그래서인지 호수를 향해 설치된 벤치가 유난히 많다.태양이 바다에 안기는 시간,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들며 도시가 시시각각 다른 장면을 연출한다.150년 전, 처음 도시가 생길 때도 호수의 고요한 정경과 인근 온천수의 효능을 강조하며 아편 중독자와 천식 환자의 요양을 목적으로 시설과 건물을 세웠다. 이후 휴양을 원하는 유럽의 부호들이 이곳에 별장을 지었고 지금의 도시로 성장해왔다고 한다. 호수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은 물이 귀한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섬이기도 하다. 

섬과 육지로 작은 나룻배가 쉼 없이 드나드는데 플레트나라고 부르는 이 배에 오르면 구름을 탄 듯 호수를 가로질러 섬으로 들어갈 수 있다. 섬 안에는 ‘성모 승천 교회’가 있다. 1465년 고딕 양식으로 세워졌는데 현재의 모습은 17세기에 정비된 것이다. 이 교회에는 52m의 종탑이 세워져 있다. 교회 내부에서 줄을 당겨서 울린다. 종을 울리는 사람의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덕분에 호수 한가운데 있는 작은 교회지만 슬로베니아 젊은이들에게 결혼식 장소로 인기가 높다.

 

다른 슬로베니아 도시와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항구도시 피란. 

작은 바다, 거대한 풍경, 피란

사람의 감정이 위험한 건 마음을 놓을 때 허점을 찔리기 쉽다는 것이다. 간절히 바라고 원하던 블레드 호수를 만끽하고 돌아서는 길 피란을 만났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흔들리듯 순식간에 피란에 빠졌다. 처음 지도를 보고 내륙국가로 알았을 만큼 바다와 접한 부분이 거의 없는 슬로베니아. 

남서쪽에 손바닥만큼 바다와 접하면서 숨통을 텄다. 크로아티아의 남쪽, 이탈리아의 북쪽과 마주하고 있는 46.6평방 킬로미터 작은 도시 피란 덕분이다. 바다가 보이는가 싶더니 해안에 늘어선 요트가 마치 다른 나라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곳은 오랫동안 베네치아공화국의 지배를 받은 데다 크로아티아 항구도시와도 인접해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렇다 보니 어디를 가나 이국적인 슬로베니아에서 또 다른 이국적인 면모를 가진 곳이다. 여전히 이곳 사람들은 슬로베니아어와 함께 이탈리아어를 공용으로 사용한다. 

도시 위, 바다를 지나는 범선 한 척이 마치 하늘을 나는 듯 묘한 느낌이다. 

해안선을 따라 베네치아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빼곡하다. 붉은 지붕이 푸른 바다와 어울려 시선을 사로잡는다. 중세도시라 할 만큼 도시 전체가 중세건축물과 문화유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관광객이 많다. 이곳은 바이올리니스트 주세페 타르티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을 딴 타르티니 광장은 마을의 중심이면서 해안과 주택가, 거리와 골목을 잇는 허브 역할을 한다. 누구나 피란에 오면 이곳에 매료돼 잠시 머물며 걷게 된다. 국내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이 작은 광장을 배경으로 촬영됐다. 이곳에서 이어진 골목으로 들어가 오르막을 따르면 하늘이 열리면서 언덕이 나타난다. 

그 위에 성 조지 대성당이 있다. 이곳은 슬로베니아의 유일한 바다인 아드리아해와 피란의 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 역시 말이 필요 없다. 태양이 바다에 안겨 사라지는 순간, 전망대에 올라 황금색으로 물드는 바다와 피란의 풍경을 마주하고 있으면 왈칵 눈물이라도 쏟을 것처럼 진한 감동의 교차를 느낀다. 그리고 돌아서는 길, 슬로베니아에 빠져든 사랑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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