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flowers of the Middle East

중동의 붉은 꽃

 

영화 <인디아나 존스>였다. 단번에 마음을 뺏긴, 그래서 순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한참을 TV만 바라보게 했던 최초의 영화. 암벽으로 둘러싸인 협곡을 지나면 길을 막아서며 석조건물이 등장하고, 그 안쪽으로 동굴이 여러 갈래로 이어졌다. 

어린 시절 미지의 세계를 동경했던 내게 지구상 어딘가에 있을 것도, 혹은 없을 것도 같은 곳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음을 빼앗긴 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모두 찾아서 봤다. 

그리고 자연스레 <구니스>와 <후크>, <쥬만지> 등 미지의 세계가 등장하는 영화를 즐겨보며 성장했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요르단에 머물고 딱 한 달이 지나고 페트라에 가보게 됐다. 새로움을 찾아 무작정 떠났던 중동. 낯선 땅 요르단에서의 생활은 하루하루가 새로웠다. 우연히 소개를 받아 호주에서 온 피터(Peter)라는 친구를 알게 됐고, 그가 머물던 아파트에 방을 한 칸 빌려서 살게 됐다. 

피터의 집에 들어간 이후 매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당시 영어가 서툰 내게 언어를 배울 좋은 기회였지만 한편으론 못 알아듣는 말이 많아 식사 시간을 피하기도 했다. 

“두용, 여기 알아? 요르단에서 가장 핫한 곳이야”

피터가 엽서 한 장을 내밀었는데 ‘우와!’하며 탄성을 질렀다. 어린 시절 인디아나 존스에서 날 사로잡았던 그 장소였다. “여기가 실제 있는 곳이라고? 영화 세트 아니었어?” 내 반문에 피터는 인디아나 존스부터 시작해서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해줬다. 

‘페트라(Petra)’

세계적인 명소였는데 왜 나는 요르단까지 날아와서 몇 주를 살면서도 그곳을 몰랐을까. 아파트 밖으로만 나가도 온통 낯설고 조금은 두려웠던 것투성이였던 이곳에 적응하기 위해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한 이유였을 것이다. 난 곧바로 페트라에 가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요르단에 온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차를 렌트해서 페트라로 향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으뜸

페트라. 그저 미지의 세계로 동경만 했을 뿐 할리우드의 영화 세트라고만 생각했지 요르단에 머물면서도 이곳이 진짜 존재하는 곳인지 몰랐다. 무식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는 요르단에 오래 머물 생각이었고 지금 이렇게 차까지 빌려서 혼자 페트라로 떠나니까. 렌트 회사에서 차를 빌리면서 요르단 지도책을 한 권 샀다. 

내가 머물던 곳은 요르단의 수도 암만(Amman). 페트라까지는 4~5시간 거리였다. 중앙 고속도로와 국도, 왕의대로 등 노선도 여럿이라 올라올 때는 다른 길을 이용해 볼 생각이었다. 새벽 4시, 어둠을 틈타 미지의 세계를 향해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설렘이 턱까지 차고 올라왔다. 드디어 인디아나 존스의 땅으로 떠난다. 페트라는 당연히 영화를 위해서 만든 세트가 아니라 오래전 이곳에 머물던 나바테아(Nabatea)인이 건설한 도시다. 

나바테아인은 BC 7~2세기까지 인근 시리아와 아라비아반도 등지에서 활약한 아랍계 유목민인 베두인이다. 요르단에는 페트라 일대와 와디 럼 등 광야와 사막에 아직도 이들의 일부 후손이 유목 생활을 하고 있다. 과거 나바테아인들은 이곳에 정착해 거대한 도시를 이루었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붉은 사암을 깎고 다듬어 거대한 건물을 만들고 집을 지었다. 

이곳을 선택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페트라 지역은 과거 이집트와 아라비아, 페니키아 등의 교차지점이었다. 상인들에겐 홍해와 지중해를 향해 갈 때 반드시 거치는 교역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했다. 나바테아인들은 이곳에 터를 잡은 뒤 자연스레 사막의 대상로를 지배하며 번영을 누렸다. 페트라는 동서남북의 교역을 담당했던 터라 선진 기술과 문화를 흡수해 기원전임에도 발전된 양식으로 도시가 설계되고 건물이 지어졌다. 

좁고 깊은 사암 골짜기를 따라서 극장과 은행, 법원 같은 건축물은 물론 수로를 구축해 온수 목욕탕과 진보된 상수도 시설이 갖춰졌다. 현재 남아있는 유적만 봐도 현대 도시 못지않은 시설에 놀란다. 더욱이 협소한 통로와 협곡으로 둘러싸인 바위산을 깎아 조성된 페트라의 건물은 대부분 암벽을 파서 만들어졌는데 현재의 기술로도 재현하기 힘든 수준이다. 

덕분에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지정됐다. 세계 7대 불가사의는 고대와 현대의 여러 분류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페트라가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뛰어난 문명에도 불구하고 106년 로마에 점령됐고, 6세기에는 지진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흙더미 속에 파묻혔다. 그렇게 전설로 남게 된 도시는 1812년이 되어서야 스위스 탐험가 부르크하르트에 의해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미지의 세계로 입성

지금까지 페트라에 방문한 건 10여 년간 15회가 넘는다. 내가 요르단에 머물 때 10회 가까이 찾았고 다음 해에 사진 전시를 위해서 두 번, 방송과 대사관 초청 등으로 방문해서 또 여러 번 가게 됐다. 그중 가장 큰 만족은 단연 첫 방문 때였다. 영화에서 보았던,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모습이 실제 눈앞에 펼쳐지는 일이란 정말 대단했다. 

페트라는 세계적인 유적지 이름이면서 이곳 도시 이름이기도 하다. 페트라에 도착했다고 벌써 인디아나 존스에 등장한 대단한 유적이 있는 건 아니다. 유적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있다. 페트라의 정수를 마주하면 오히려 베일에 싸인 게 낫다는 걸 알게 된다. 입구를 통과하면 하늘이 뻥 뚫린 평지를 따라 한참 걷는다. 밋밋한 주변 풍경과 뜨거운 태양에 초입은 힘들다. 

직사광선에 지칠 즈음 양쪽이 하늘로 뻗은 사암 협곡 시크(Siq)에 들어선다. 이때부터 긴장감의 시작이다. 협곡은 미국과 호주 등 대륙의 사막에서 마주할 수 있는 캐니언(협곡)과 흡사하다.  약 1.2km 길이의 시크는 거대한 바위산이 지각변동에 의해 갈라지면서 생겨난 길이다. 

좁게는 2m의 폭에 높게는 200m까지 치솟은 협곡은 거대한 용이 지나간 것처럼 구불구불 끊임없이 이어져 신비감을 준다. 시크를 따라서 20여 분 걷다가 보면 드디어 앞이 시원하게 열리면서 눈앞으로 빛을 받은 새하얀 건물이 나타난다. “와!” 아직 협곡을 벗어난 것도 아닌데 이곳에 온 사람이면 건물을 보자마자 벌써 환호한다.

협곡이 품은 사막 안쪽에 비밀스러운 광장이 있고 그 앞으로 높이 43m, 너비 30m의 알카즈네(Al Khazneh)가 서 있다. 바로 인디아나 존스에 등장했던 그곳이다. 페트라의 상징이자 관문이기도 한 이곳은 세계인을 끌어모으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요르단에 왔다면, 페트라를 찾았다면 대부분 알카즈네만 알고 온 사람이다. 

나도 그랬다. 그저 사암 절벽을 깎아낸 건축물인데 거대하고 화려하며, 아름답다. 알카즈네는 최초 성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BC 1세기 무렵 나바테아인의 왕 아레타스 3세(Aretas Ⅲ)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1층 부분은 6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세워져 있는데, 1층 중앙 기둥 좌우에는 제우스신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Castor)와 폴룩스(Pollux) 기마상을 새겨놓았다. 맨 위쪽에는 파손된 채로 있는 독수리 상 2개가 있고 2층 중앙의 원형으로 만든 톨로스(tholos)에는 ‘알-우자(Al-Uzza)’가 조각되어 있다. 

이 거대한 기둥들과 다양하고 정교한 조각 장식들은 따로 만들어 세운 것이 아니라 사암 절벽을 파고 다듬어서 만들었다.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사각 모양의 방이 있고 그 안쪽으로는 여러 개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뚫려 있다. 알카즈네는 베두인의 말로 왕의 보물창고라는 뜻이다. 

과거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곳에 보물을 숨겨 놓았다는 전설이 사막 유목민 사이에서 전해져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런 유래로 알카즈네 석상의 눈과 머리의 장식을 도굴범들이 훼손한 흔적이 많다. 현재도 이렇게 대단한데 훼손 없이 보존된 모습은 어떨지 상상도 안 된다. 

끝나지 않은 페트라의 비밀

인디아나 존스에 페트라가 등장하면서 이곳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이후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했고 최근 <트랜스포머>에서 로봇이 싸우는 무대로도 쓰였다. 그래도 이곳에 와보면 아직 인디아나 존스의 영향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다. 알카즈네 앞에 서면 지구 곳곳에서 날아온 사람 모두가 일순간 고요해진다. 

대자연과 인간의 손길이 맞닿아 이룩한 거대한 예술작품 앞에서 우리는 모두 관객이 되고, 그 시간 그곳에 속한 일부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태양이 알카즈네 위에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또 하나의 작품이다.

2013년 방송촬영으로 갔을 때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담당자와 통제구역에 올라가 삼각대를 설치해서 4시간 동안 알카즈네로 쏟아지는 빛을 타임랩스(시간의 흐름을 영상에 담는 기법) 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알카즈네가 관문이라고 말한 건 페트라의 전부이기도 한 이곳이 사실 또 하나의 입구이기 때문이다. 

이곳을 지나면 사암으로 이루어진 광활한 대지가 등장하고 사방에 높고 낮은 봉우리와 협곡, 사암 언덕에 나바테아인의 도시가 존재한다. 종교 사원과 법원, 로만 원형경기장, 은행, 목욕탕, 왕궁, 오벨리스크,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주택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 

규모가 워낙 커서 짧게는 하루에 기본 동선을 돌고, 여유 있는 사람은 3일 코스로 발굴된 구간을 관람한다. 놀라운 건 아직 발굴되지 않은 곳이 더 많다는 것. 페트라에는 등록된 유적만 800개가 넘는다. 

그중 무덤으로 추정하는 곳이 500개. 우리가 지금 보는 건 페트라의 최초 도시 모습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페트라의 정문 반대편에는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만 다닐 수 있는 좁은 후문이 있는데 그 뒤쪽으로는 아직 전문가들과 함께 꾸준히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 

알카즈네가 페트라의 으뜸 명소이자 관문이었다면 버금은 단연 알데이르(Al Deir)다. 알카즈네 뒤로 이어진 큰길을 한참 따라가면 끄트머리에 높은 절벽과 만난다. 이곳에서부터 800여 개 계단을 걸어 가파른 길을 오르는데 그 꼭대기에 알카즈네와 비슷하지만, 규모로는 더 큰 사원 하나가 나타난다. 이곳이 알데이르다. 디테일은 알카즈네만 못하다. 하지만 외형이 워낙 비슷해서 놀라고 규모에 한 번 더 놀란다. 이곳을 배경으로 트랜스포머에서 로봇의 전투 신이 촬영됐다. 

유적지 입구에서 서쪽 끝 알데이르 사원까지의 거리는 총 5km다. 하지만 이곳의 높이가 높고 계단이 가팔라서 도보로는 3시간 정도 예상하고 오는 게 좋다. 처음 페트라에 갔을 땐 그곳에서 3일간 머물렀다. 당시엔 입구 근처에 노점상도 많고 도시라는 단어보다 마을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일대가 소박하고 물가도 비싸지 않았다. 

이듬해 갔을 때 부쩍 달라진 입구 외관에 놀랐고, 갈 때마다 도시에 새롭게 생겨나는 호텔과 건물에 놀랐다. 지금은 도시의 모습도, 입구와 주변도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입장료도 많이 올랐다. 처음 방문했을 때 한국 돈으로 2만 원 정도였다면 한때 14만 원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당일권이 요르단 화폐 50JD, 한화로 8만5,000원 수준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입장료라는 평을 듣기도 하지만 관광 수입이 국가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르단으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요르단 국민과 국가 거주자에게는 1JD(1,700원)를 받는다. 요르단에 처음 갔을 때 난 4개월을 머물렀고 이듬해 2개월간 살았는데, 그땐 거주하는 집의 거래 계약서를 들고 가서 1JD(당시 1,200원)에 입장했다. 페트라에 자주 갈 수 있었던 이유다. 

영화 마션의 무대 화성으로

요르단에서 볼만한 곳이 페트라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요르단은 얘기한 것처럼 유명 관광국가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가톨릭, 이슬람 성지다. 미지의 세계를 떠올리게 하는 인디아나 존스가 페트라에서 촬영됐다면 우주를 무대로 하는 영화들은 다수가 와디 럼(Wadi Rum)에서 제작됐다. 페트라의 감동으로 한껏 들떠있던 마음을 가라앉히며 자동차 핸들을 와디 럼으로 돌렸다. 페트라에서 와디 럼까지는 2~3시간 정도 소요된다. 요르단은 국제면허증만 있으면 차를 빌리기 쉽고 도로도 정비가 잘 돼 있는 데다 며칠간 곳곳을 여행한다면 렌트비가 교통비보다 저렴해서 렌트를 추천한다. 

더욱이 자동차 핸들도 우리와 같은 좌측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다. 사방에 언덕 하나 보이지 않는 사막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맞은편에 높은 민둥산이 보이더니 가까워질수록 그 높이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와디 럼에 가까워진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곳에 들어서면 주변에 보이는 모래 색깔이 점점 붉어진다는 것인데 이곳이 아니어도 요르단 곳곳에 붉은 모래가 많다. 페트라 인근의 모래도 붉은 계열인데 와디 럼의 모래는 정말 한 알씩 놓고 봐도 빨간색이다. 페트라나 와디 럼 등 명소의 색이 붉은 톤이라서 요르단을 중동의 붉은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입구에 도착하면 전망대에서 사막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이곳 역시 장관이다. 끝없이 펼쳐진 붉은 모래와 곳곳에 우뚝 선 사암 기둥과 언덕이 이구동성으로 ‘우주’의 모습이라고 외칠만하다. 수많은 우주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됐는데 그 중 가장 큰 화제가 된 건 <마션>이다. 

이곳이 화성으로 등장했는데 특별한 색채보정이나 효과 없이 그냥 촬영만 해도 화성의 느낌이 재현됐다. 주인공 맷 데이먼은 극 중에서 화성에 홀로 남게 돼 그곳 환경을 개척하며 감자를 키우면서 식량을 얻는 노력을 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와디 럼에 수차례 방문했음에도 그저 화성처럼 보인다. 실제로 와서 보기를 권한다. 

붉은 사막을 몸으로 느끼다

와디 럼은 개인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다. 세계복합유산이면서 보호구역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관광객은 이곳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륜구동 차량을 타고 사막 안쪽으로 들어가 일정 지역을 둘러보고 나오거나 사막에 마련된 숙소에서 머물며 베두인의 생활을 체험하고 낙타나 말을 타고 투어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여행은 역시 머무는 것이다. 며칠간 이곳에서 가이드인 베두인과 생활하며 그들의 문화와 식사, 음악을 즐기면서 와디 럼을 여행하면 사막을 마주하는 태도와 기분이 다를 것이다. 난 방송촬영으로 와디 럼에 갔을 때 정부 담당자들과 사막의 곳곳을 다녔다. 투어 프로그램에서 제외된 사막 안쪽은 아직 수천 년간 이어온 유목민의 삶을 오롯이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 낙타와 말을 전적으로 이용했다면 현재는 낙타, 말과 함께 자동차를 이용한다는 것만 달라졌다. 사막 한가운데서 천막을 치고 살지만, 족장은 휴대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달라진 점이다. 신기했다. 더욱이 사방이 모래뿐인 사막인데 휴대폰이 잘 터진다. 

유목민은 보통 가족과 친인척으로 이뤄진 무리가 많은데 그 안에서도 족장을 세우고 무리를 통치하도록 한다. 이밖에도 하루에 몇 차례 이슬람 전통에 따라 사우디의 메카 방향을 향해 절을 하고 기도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도 족장이 기도문을 읽고 무리를 대표한다. 

그들과 며칠을 지내면서 작은 텐트를 치고 잠도 자고, 함께 양을 몰고, 젖을 짜기도 하고, 물을 얻기 위해 한 시간을 달려 수로를 찾기도 했다. 그 추억에 와디 럼을 찾을 때마다 사막에서 며칠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 떠올라 가이드에게 그들의 이름과 특징을 대며 안부를 묻곤 했다. 

물론 사막 안쪽에도 베두인이 많아 알 리가 만무했다. 와디 럼 내에서 진행하는 숙박 캠프도 날것의 삶을 사는 사막의 베두인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잠을 자는 천막도, 제공되는 음식도, 밤에 펼쳐지는 음악과 춤 공연도 비슷하다. 

서쪽 붉은 언덕으로 해가 떨어지면 캠프의 프로그램은 절정을 맞는다. 모닥불에 나무가 타는 소리와 요르단 전통 악기의 울림, 건조함 가득한 모래바람이 천막으로 둘러싸인 캠프 안을 채운다. 요르단 음식인 만사프, 막클루바에 아랍식 커피까지 곁들이면 분위기는 최고가 된다. 늘 같은 말이지만 그 시간, 그곳에서 느끼지 않으면 아무리 설명해도 모를 느낌이다.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우주와 화성을 엿보다

천막에서 눈을 뜨면 열에 아홉은 기침부터 한다. 천막 숙소는 문도 제대로 없는데 다 벽도 천으로 둘러있어 새벽 내내 불어 닥친 사막의 세찬 바람에 쉼 없이 펄럭인다. 잠도 청하기 전부터 침구 위에 모래가 떨어져 있는 걸 보게 되는데 잠에서 깨면 온몸에 모래로 서걱거리는 느낌이다. 

호흡기로 어느 정도의 모래가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 자연스레 아침나절엔 기침이 난다. 그렇다고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다. 팀을 짜서 사륜구동 차량에 올라 사막으로 향했다. 벌써 수차례 왔지만 설렘의 폭은 늘 꼭대기까지 오른다. 

페트라가 분명 신비롭고 대단하지만, 매번 같은 장소와 풍경, 코스를 마주한다면 이곳은 면적이 720㎢에 개방된 곳도 워낙 넓어 올 때마다 처음 마주하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르단 역시 중동에 있기 때문에 국토의 80% 이상이 사막과 광야다. 드넓은 페트라 유적이 최고의 관광지라고 해도 대부분이 사막인 지역에서 와디 럼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자동차가 모래를 밟고 올라서면 그때부턴 배를 탄 듯 차는 휘청거리며 질주한다. 아찔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다. 차량 옆으로 뿌려지는 붉은 모래가 물결처럼 곱다. 40여 분 달려서 사막 안쪽으로 들어가면 밖에서는 보지 못했던 독특한 지형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이어진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우주에 들어온 느낌, 정확히는 화성에 첫발을 내딛는 기분을 만끽한다. 이곳은 약 3억 년 전 지각 작용으로 이루어져 최하층에는 화강암이 있고 그 위로 석회암층, 가장 상부에 사암층이 있다. 솟아오른 사암언덕과 봉우리들이 유난히 독특하게 보이는 이유다. 가장 높은 언덕은 해발 1,745m로 높지만 와디 럼이 고도가 높은 지역에 속해 평지도 해발 1,000m 수준이다. 와디 럼은 사막 지역이지만 베두인 외에도 페트라처럼 과거 동서남북의 상인들이 드나들던 곳이었다.

아라비아반도에서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해있어 아라비아 상인의 교역로 역할을 했다. 덕분에 와디 럼과 페트라를 비롯한 요르단 곳곳에 각기 다른 시대와 문화, 민족과 종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와디 럼은 1916년부터 아랍 지역에서 활동했던 로렌스(Thomas Edward Lawrence)가 이곳을 통과하여 요르단 최남단의 아카바 항구를 점령하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무대로도 유명하다. 

곳곳에서 로렌스의 실제 흔적도 볼 수 있는데 로렌스의 스프링(Lawrance's Spring)과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이 대표적이다. 와디 럼에 간다면 반드시 늦은 밤, 사막 위로 떨어지는 은하수와 무수한 별을 보기를 추천한다. 

사방에 조명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하늘의 별이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지. 땅바닥에 가만히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얼마나 멋진 추억인지는 역시 경험으로만 알 수 있다. 그 순간만큼 페트라와 와디 럼은 살짝 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