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
프랑스에 전하는 인사 “잘 지내?”

파리는 쌀쌀했고, 여행자를 대하는 공항이나 기차역의 직원들은 무표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여행은 살가운 사람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단 한번의 스쳐가는 인연이었으되, 결코 가볍지 않았다. 

프랑스의 하늘은 유독 낮아서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에 올라가면 닿을 것 같았다. 하늘을 바라보며, 프랑스로도 흘러갈 구름에게 온 마음을 다해 오랜만의 인사를 띄운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정기영 트래블 인플루언서 

 

마법 같은 만남, 아멜리에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의 천장화가 화려하게 그려진 오페라 갸르니에를 나와서 지하철을 탄 후였다. 지갑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도둑을 맞은 걸까? 주머니 속엔 환전해 온 돈이 없다. 객차에서 옆자리에 앉은 고수머리의 중년 부인이 황급하게 가방과 주머니를 뒤지는 여행자의 모습을 보며 “괜찮아?”라고 영어로 물어왔다. 

“돈을 잃어버렸다”라고 말했더니,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돕고 싶어 했다. 그녀의 이름은 ‘아멜리에’. 처음엔 그녀를 경계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경계심이 풀려갔다. “알고 있니? 인생은 때로 잃어버리는 날도 있고, 때로 얻는 날도 있는 거야. 또, 오늘 졌더라도 다른 날은 이기는 날도 있어. 인생은 그런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경비를 잃어버린 불운의 여행자는 어렴풋이 아멜리에를 만나려고 이 지하철을 타게(혹은 이 여행을 하게) 안배되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 볼래?” 아멜리에를 따라서 무작정 지하철에서 밖으로 나오니, 따스한 햇살이 등을 떠밀었다. 천천히 정갈한 거리를 거닐었다. 함께 거리를 걷는 아멜리에는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말하며, 빛나는 웃음을 던진다. 황금빛이 찬란한 알렉산더 3세 다리까지 탁 트인 풍경이다. 

아멜리에와 동행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길이다. 앵발리드 군사박물관을 지나기 전 알렉산더 3세 다리의 황금색의 페가수스 조각상은 황금색이었기 때문인지 기백과 고귀한 기운이 넘쳤다. 높이 솟아있는 황금 조각상들은 대개 날개가 있어, 그 날개를 여지없이 펼치고 창공으로 솟칠 것 같다. 그 너머로 파리 전역에서 보일 것만 같은, 에펠탑이 고개를 비죽 내밀고 있었다. 

“갈 데 없으면 꼭 우리 집으로 와” 연락하라며 메모지를 전하는 아멜리에가 떠나고, 에펠탑이 나올 때까지 정처 없이 걷기 시작했다. 파리의 골목들을 지나쳤다. 노천카페에서 사람들의 수다와 찻잔이 받침에 부딪히는 소리, 기물을 정리하는 소리, 신문을 접고 펴는 소리가 부산스럽게 들렸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곳도, 아름다운 노래도, 행복한 웃음도, 아름다운 사람들도, 하고 싶은 일도 가을 빛줄기처럼 무수하게 많다. 밝은 정오, 카페테라스에서 거리의 악사는 멜로디언을 연주하고, 소박한 커피를 마시면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그 카페 너머로 에펠탑이 조용히 서 있었다. 이제 막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정오였다. 

‘핫초콜릿 5프랑, 초콜릿 에스프레소 15프랑’ 

프랑스 영화 <초콜릿>의 가게에 걸려 있던 가격표이다. 영화 속 프랑스의 한 마을에 초콜릿 가게를 연 비안느는 마녀이다. 그녀는 초콜릿에 비밀의 마법을 걸었다. 어떤 마법이냐면 사람들을 변하게 하는 것이다. 

도둑질쟁이 조세핀도, 애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누크, 괴팍한 레너드 백작의 노모도 조금씩 행복하게 변모시키는 마법. 카페테라스에 앉아서 가격표를 보며, <초콜릿> 영화를 떠올렸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갈 차비만 남겨 놓고 주머니를 털어서 티라미수 케이크와 핫초콜릿을 시켰다. 테라스에 앉으려다가 파리의 쌀쌀한 가을 날씨에 백기를 들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따끈따끈한, 마법에 걸린 핫초콜릿 한잔, 부드럽게 빈속을 달래주는 티라미수 케이크 한 점! 한국보다 느리게 흐르는 듯한 프랑스의 공기가 때늦은 늦잠을 깨고는 이제야 달달한 초콜릿 향을 내며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한다. 카페에 들어오기 전까지, 빈털터리가 된 이방인에게 파리의 가을 날씨가 유독 추웠다. 

카페 주인에게 ATM 있는 곳을 안내 받아 돈을 인출할 수 있었다. 입 안에 달콤한 마법의 기운을 머금고, 2시간 남짓 걸어서 에펠탑 앞에 당도했을 때, 해가 중천에 뜬 한낮의 햇빛이 눈을 부시게 했다. 그제야 에펠탑 주변으로 색색이 물든 가을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파리는 완연한 가을의 모습이었다. 스산했지만 따스하게 햇빛이 반짝이던 그날의 순간들을 ‘아멜리에의 마법’로 명명했다. 

쾌남과의 만남, 안토니오

이채로운 파란 눈이 잠시 눈길을 피한다. 검은 잠바를 걸친 그의 키는 훤칠했다. “스위스에 가지 말고, 같이 루브르에 가요.” 처음엔 못 들은 척 했지만, 루브르에 같이 가자는 재촉에 결국 “그래요”라고 답했다. 역무원이던 안토니오는 그 길로 동료에게 프랑스어로 간단한 말을 전한 뒤 일터를 나섰다. 가을의 거리와 루브르는 광합성이 필요한 무채색을 띠었다.

 키가 큰 안토니오의 발걸음을 쫓아가느라 종종걸음을 걷기도 했다. 그는 쾌활하게 “한국에 가보고 싶어”라며 부담스럽도록 몸을 숙이고 바라본다. 

‘이 나라 사람들은 정말이지 눈을 빤히 바라보는 구나!’ 루브르에 도착하니, 한글이 먼저 반긴다. 해외 박물관에서 한국어로 된 안내서를 찾는다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구불구불한 외국어 속에, 국어의 자음과 모음이 이루는 균형미가 아름답다. 본격적으로 둘러보기 시작한 루브르박물관은 그 자체로 수장고(귀중한 것을 고이 간직하는 창고)에 가까웠다. 

화랑의 대리석 바닥을 걸으며 소실점이 보일 정도로 길게 늘어서 있는 예술품들을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감상할 수 없는 게 아쉬웠다. 루브르박물관을 관람할 때 예술 작품이 있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두지 않으면 헤매기 십상이다. 

먼저, 황금비율을 자랑하는 9등신의 조각상 ‘밀로의 비너스(Venus de Milo)’는 어디에 있을까. 쉴리관에 위치해 있다. ‘밀로의 비너스’라는 의미는 말 그대로 에게 해의 밀로 섬에서 발견된 비너스라는 뜻이다. 애석하게도 밀로의 비너스의 양팔이 잘려져 있기 때문에 그녀가 본래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팔이 원래 치맛자락을 잡고 있다’ 등 많은 추측들이 난무하고 기발한 패러디가 이뤄지는 작품이다. 전 세계에서 몰려 온 관광객들이 ‘미의 대명사’, ‘미인의 기준’으로 평가되는 이 작품 앞에 문전성시를 이룬다. 말이 필요 없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모나리자(Mona Lisa)’를 찾아갔다. 

드농관에 위치한 모나리자는 그림 속 여인의 이름이 아니라 ‘마담 리자’라는 뜻이니 상식으로 알아두면 좋다. 77*53cm 사이즈의 그림이기 때문에 실제로 보니 아담하다. 모나리자는 윤곽선을 부드럽게 하는 ‘스푸마토기법(Sfumato)’을 사용하여 모나리자의 눈매와 미소가 한층 오묘하면서 부드러워 보인다. 살며시 미소를 지은 듯도 하고, 사뭇 슬퍼 보이기도 하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게 된다. 

안토니오는 양손을 들어 자신의 양눈썹을 가리며, 모나리자 흉내를 내기도 한다. 눈썹이 없는 <모나리자>와 두 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의 공통점이 있다. 완벽한 상태가 아닌 상실되어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감상자들의 상상력으로써 더 아름답다. 사람도, 지극히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매력이 덜하듯. 

루브르를 나서기 전에 유리 피라미드 앞에서 어슬렁거리자니, 안토니오의 엉뚱한 요청에 그만 웃음이 났다. 이제 그는 자신의 양 볼을 가리키며, 프랑스식으로 양쪽 볼에 가볍게 뽀뽀하는 인사법인 ‘비쥬(bisou)’를 하자고 청했다. 멀대처럼 키가 큰 안토니오가 고개를 숙여 내 한쪽 볼에 살짝 볼을 맞댄다. 

그러더니 별안간 입술을 향해 얼굴을 돌진하는 게 아닌가! 다행히, 곧장 얼굴을 돌려서 상황을 모면했다. 밀쳐내며 가자미 눈으로 안토니오를 노려보니, 그는 능청스럽게도 어깨만 으쓱댄다. 뜻밖에도 그의 행동에 너그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여행지에서 일어난 돌발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리옹역으로 간다는 핑계로 안토니오와 지하철에서 이메일 주소만 교환하고 헤어졌다. 그러곤 몇 년이 흘렀다. 사용하지 않는 메일 계정에 우연히 로그인했다가 안토니오가 보낸 메일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에는 잘 돌아갔어? 한국에 한번 가서 만나면 좋겠어”라는 내용. 

안토니오의 메일이 몇 년 전 프랑스 여행을 전날처럼 떠올리게 해줘서 웃음이 나고 고마웠다. 잊고 지내던 동급반 친구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기분이랄까. 어느 날, 다시금 아멜리에와 안토니오를 정말로 만나게 된다면 프랑스어로 “꼬망 바 뛰?(잘 지냈어?)”라고 물어보리라. 그러면은 그들은 “트레비앙!(최고로!)”이라고 답할까. 

저는 거리를 거닐고 있었어요

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아무에게나 인사하고 싶었어요

그 아무나가 당신이었고

나는 당신에게 마구 말을 걸었어요

당신과 친해지는 것은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오, 샹젤리제

오, 샹젤리제

해가 맑든 비가 오든

정오든 자정이든

당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있어요

샹젤리제 거리에는

- 샹송 <Les Champs Elysees(오 샹젤리제)> 중 

남부 소도시, 부르고뉴의 디종

이번엔 프랑스의 남부 전통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의 디종과 본으로 향했다. 니스, 아를까지 다녀오지 못한 건 아쉬움으로 남았다. 떼제베(TGV)를 타고 디종역에 내렸다. 고즈넉한 디종만의 분위기가 왠지 발걸음마저 느리게 내딛게 만든다. 그곳에는 극히 낮은 하늘이 있었다. 

낮은 지붕 위로 자꾸만 하늘을 바라보게 됐다. 무척이나 낮은 하늘은 인간계가 궁금하다는 듯 몸을 바특하게 들이밀고 있다. 어느 화가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하늘색'의 하늘에는 구름이 웃자란 푸른 눈의 소년들처럼 활기차게 떠 있었다. 손을 들면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손을 뻗어보았지만 역시 그보다 좀 더 높은 곳에 있어서 만질 수가 없었다. 프랑스 남부의 하늘을 목을 뒤로 한껏 젖히고 바라보았다.

하늘을 조금만 덜어갈 수 있다면! 유리병에 담아가면 세관에 걸릴지도 몰라. 보안검색대에서 휘발성 액체 취급을 받고 뺏겨버릴지도 몰라. 상상하던 예스러운 프랑스 거리의 모습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디종(Dijon)은 옛 부르고뉴 왕국의 수도였다. 파리의 현대화 된 모습보다, 옛 수도의 풍경에 마음이 동한다. 

디종 구시가의 중심가, 프랑소와 뤼드 광장. 디종 출신의 조각가인 프랑소와 뤼드의 이름을 따서 만든 광장이다. 고풍적인 건물, 성당, 노천카페들이 모여 있고 분수대도 보인다. 햇빛을 가려줄만한 높은 건물이 없어서인지, 디종의 햇살은 유난히 눈부시게 빛났다. 카메라에도 강한 빛이 고스란히 담겼다. 

프랑스는 보르도(Bordeaux)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이 와인 산지로 유명하다. 디종은 머스타드가 명물로 유명하지만, 와인투어를 하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디종과 인접한 본에 있는 와인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디종은 우슈강과 쉬종강의 합류지점에 있어서, 버스 창밖으로 강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경치에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 옆에 있던 한 프랑스 여인이 “경치가 참 아름답지?”하며 말을 건넨다. 충동적으로 달리는 버스에서 내려 강변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기도 했다. 본(Beaune) 도착하니, 이곳 역시 분수대에서 시원하게 물도 뿜어져 나오고 있다. 아이 하나 타지 않은 큰 회전목마가 서 있다. 

본은 디종에서 떼제베로 20~3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본의 와인박물관(Musee de vin)은 14세기 부르고뉴 공작이 궁전으로 쓰던 곳이다. 박물관 안에는 와인을 만들 때 쓰는 도구 같은 시시한 전시물이 다였다. 본 와인박물관은 와인 시음도 못하고 어쩐지 허망했지만, 본의 아기자기한 시가지 구경하다보니 아쉬움이 상쇄되기도 했다. 

가을녘의 프랑스 남부 디종과 본의 소란스럽지 않은 잔잔한 멋의 거리를 걷던 만족감 같은 게 버무려지던 여행. 어둑어둑할 때쯤엔 숙소로 돌아와 몇 번이고 되감아 찍은 사진들을 돌려보고, 기억이 달아나기 전에 무난한 글씨체로 여행을 기록했다. 

파리 인근 소도시, 지베르니

파리에서 약 1시간 반 정도 거리의 지베르니. 지베르니엔 따뜻한 햇볕이 있었고, 다소 서늘한 공기가 있었고 너무나 아름다운 수련 연못이 있었다. 첫인상은 조용한 마을이다. 마침 은발의 다정한 부부가 대문을 나섰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며 그들을 불러 세웠다. 하얗게 칠한 집에는 곳곳에 색색의 화분이 있었고, 작은 꽃들이 피어있었다. 낮은 담 위로는 하늘이 비스듬히 내려와 있다. 흰 벽이 강도 센 햇빛에 더욱 희게 색을 드러내는 듯 했고, 그 앞에서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현상된 사진을 보면 나는 또 자꾸만 이 집 앞을 떠올렸다. 

“얼마나 머무니?” 

“오늘 하루요. 로마로 가야 해서요.” 

사진을 찍고서 노부부는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떠났다. 노부부는 아마 그 짐머의 주인이었던 모양이다. 모네 생가에 도착하자, 보이는 게 꽃 천지요, 영감의 세계였다. 모네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가꾼 정원일까. 그곳에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는 증발해 버리고, 아름다웠던 모네 정원의 단상만이 지금도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다. 어릴 적 모네는 15세에 이미 주변 인물들의 캐리커처를 그리며, 두각을 나타냈다. 모네의 <인상 : 해돋이>는 이 그림을 본 비평가 루이 르로이가 ‘인상만 남는 그림’이라고 혹평하며 이른바 ‘인상파’의 단초가 됐다. 모네는 말년에 프랑스 근교의 지베르니에서 무려 42년간 지내며 대작인 ‘수련 연작’을 250여 점이나 남겼다.

 

사진 14-2

수련 연작이 그려진 모네 생가의 수련 연못을 보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다. 모네의 수련 연작 그 자체가, 실제로 그곳에 있었다. 그림으로만 보던 모네의 수련 연작. 하늘이 비치는 아름다운 연못의 모습, 버드나무 가지가 길게 휘어져 연못에 차양이 드리워진 모습, 연못 위에 정지한 듯 떠 있는 수련잎들의 모습. 모네는 지베르니에 있는 수련 연못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수련 연작에 몰두했을까. 그는 말년에 백내장에 걸려서 시력을 거의 잃었지만 붓을 놓지 않고, 수련 연작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기분전환을 위해 수련을 심었지만, 그릴 생각은 없었다.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나의 수련 연못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발견했고, 즉시 팔레트를 집어 들었다.” 모네는 수련 작품이 고통과 좌절로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피난처’이자 진정제 같은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고 한다. 

 

잔잔한 수면 위에 떠 있는 모네의 수련을 볼 때면, 차분하게 안정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하늘에 유유히 떠 있는 구름도 버드나무의 기다란 가지도 수면 위에 반영되어 평화로이 비치고 있었다. 아치 형태의 일본식 다리마저 녹색이다! 녹색은 심리적으로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색이며,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가슴이 답답할 때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노라면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모네 생가와 갈대가 웃자란 지베르니의 경광 등등 지베르니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에 감격하는 동안 지베르니의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여유가 전염되었는지, 지베르니에 너무 오래 지체하고 말았다.

몽파르나스역에 도착하면 뛰어야 할 게 불 보듯 뻔했다. 식은땀이 맺혔다. 버스를 놓치면 로마에 갈 수 없게 되니, 경공술이라도 배우고 싶어지던 순간이다. 그로부터 Bercy역에서 무사히 로마행 기차를 탈 때까지 프랑스의 하늘은 희미해진 빛으로 시간에 쫓기는 여행객을 배웅했다. 

적당한 경비와 배기지 않는 배낭, 가죽부츠 한 켤레와 론니플래닛 한 권, 선글라스를 챙기고 다시 가고 싶은 유럽. “잘 지내지? 그 가을의 프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