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gapore & Hongkong

엄마와 싱가포르&홍콩 8박 9일 여행

 

세 달 전.

몇 년 만에 엄마와 목욕탕에 갔는데, 못 본 사이 엄마가 쿵! 하고 뒤로 미끄러지셨다. 엄마는 한동안 정신을 잃었고, 깨어나서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계속 했다. 혼비백산엄마를 챙겨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까지 무슨 정신으로 갔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으셨지만 뇌진탕, 타박상, 급격한 시력저하 증세가 있어 한동안 치료를 받으셔야 했다. 게다가 전부터 아파오던 손 저림 증상이 심해져 왼쪽 손바닥은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힘든 일을 많이 겪은 엄마의 모습에 속상하기도 하고 죄책감도 들었다.

결혼하고는 신랑이랑만 잘 지내느라, 엄마가 건강한 게 감사한 줄도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겨울 날씨 때문인지 엄마의 건강과 컨디션은 빨리 회복되지 않았고, 반강제로 집에만 갇혀(?) 있는 엄마를 위해 따뜻한 나라로 휴양여행을 가기로 계획했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박수경

박수경 ;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기승전 여행만을 외치며 여행에 의한 여행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장기 자유여행을 해 본 적이 없는 엄마를 위해 여행 기간도 일부러 8박9일로 길게 잡았다. 엄마가 손바닥 수술한지 얼마 안 된 터라 수영은 하지 못해 일단 휴양지는 배제했다. 고민 끝에 선택한 곳은 깨끗하고 안전한 싱가포르와 엄마가 가고 싶어 하셨던 드래곤스백(Dragon's Back)이 있는 홍콩까지 2개국을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싱가포르

“공기가 너무 좋아!!” “여기 와서 피부가 좋아졌어!!” “손이 하나도 안 아프네”

“정상회담 했던 곳이 어디야? 우리 거기 가보자”

싱가포르 더운 날씨에 헉헉거리는 나와 달리 엄마는 건강과 컨디션이 좋아지셨다. 엄마는 여행책자를 보며 의욕적으로 싱가포르에서 가고 싶었던 곳을 이야기 하셨다. 걱정했던 현지음식도 맛있다고 하시며 나보다 잘 드셨다. 따뜻한 남쪽나라로 여행을 제대로 온 것 같다. 무엇보다 깨끗한 공기와 도시 곳곳 울창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덕분에 어딜 가든 엄마는 대만족 이었다. 엄마와 여행오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주롱새 공원(Jurong Bird Park)

싱가포르 여행의 시작은 주롱새 공원(Jurong Bird Park)으로 시작했다. 엄마와는 동물원보다 새(Bird) 공원이 나을 것 같았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세계 최대 규모의 새(Bird) 공원이라기에 꼭 봐야할 것 같았다. 싱가포르는 대중교통이 잘 되어있어 나 같은 길치도 구글맵 만 검색하면 전철과 버스를 이용하게 쉽게 다닐 수 있었다. 평일에 방문한 주롱새 공원(Jurong Bird Park)은 사람이 별로 없어 조용한 공원을 산책하듯 여유롭게 구경 할 수 있었다.

또한 공원 내의 교통수단인 파노라마뷰와 모노레일의 합성어인 파노레일을 탈 수 있어서, 더운 날씨임에도 엄마와 힘들지 않게 공원 전체를 둘러 볼 수 있었다. 하루에 2번 한다는 새 쇼(Show)는 시간이 맞지 않아 볼 수 없었지만, 펠리컨(Pelican)에게 먹이 주는 모습은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펠리컨(Pelican)을 처음 본 나는 신기해서 바로 앞에 가서 사진을 찍다 예상보다 큰 크기와 철장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떨면서 살금살금 도망갔다. 펠리컨이 그렇게 무섭게 보일 줄이야. 이외에도 다양한 많은 종류의 새들을 볼 수 있었고, 철창 없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도 많았던 덕분에 걷다가 팔에 엄청나게 큰 새똥을 맞고 소리를 지르며 기겁하기도 했다.

스카이파크 전망대(Skypark at Marina Bay Sands) &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

싱가포르 하면 생각나는 상징적인 건물인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을 둘째 날 아침 일찍부터 방문했다. 호텔 투숙객만 즐길 수 있는 루프탑 수영장은 이용할 수 없지만, 바로 옆 스카이파크 전망대는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다. 지하 1층에서 티켓을 구입하고 엘리베이터로 단번에 57층까지 올라간다. 전망대 발을 내딛는 순간 싱가포르 탁 트인 파노라마 시내의 전경이 펼쳐진다.

우리는 전망대에서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먹으며 화창한 날씨와 싱가포르 전경을 오랜 시간 만끽했다. 전망대를 내려와서는 바로 옆에 위치한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로 바로 이동했다. 몇 년 전 신랑과 싱가포르 여행을 했을 때 제일 좋았던 장소여서 엄마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던 곳이다.

하늘높이 우뚝 서있는 슈퍼트리들,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채워진 대형유리 온실 플라워 돔, 엄청난 규모의 실내 폭포가 맞이하는 클라우드 포레스트 돔은 다시 봐도 신비로웠다. 평소 자연을 좋아하는 엄마는 예상대로 감탄을 연발하며 이곳저곳을 자세히 둘러보셨다. 엄마와 난 풀내음과 꽃향기가 만발한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에서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느긋한 오후 시간을 보냈다.

클락키(clarke quay)

우리는 클락키(clarke quay)에 위치한 호텔에서 4박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했다. 클락키(clarke quay)는 싱가포르 강을 따라서 형성된 지역이다. 강가를 따라 레스토랑, 카페, 바 등이 밀집되어 있어 지역 자체가 관광지인 곳이다. 오전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강의 운치를 느낄 수 있고, 저녁이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신나는 음악으로 채워지며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엄마와 난 아침저녁으로 클락키(clarke quay)에서 보트키(Boat Quay)까지 강가를 따라 걸으며 산책을 하곤 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호사스럽게 누렸던 것이 바로 산책이다. 조용한 강가를 여유롭게 걷다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바빴던 일상에서 잊고 산 지 오래된 감상도 되살아난다. 엄마와 함께 산책했던 모든 시간이 행복했다.

센토사 (Sentosa)

싱가포르 휴양지를 대표하는 장소인 센토사(Sentosa)가 엄마에게는 정상회담 장소이다. 엄마는 센토사로 가는 모노레일 창밖을 보는 내내 뉴스에서 나왔던 곳이라고 신기해 했다. 우리는 모노레일 첫 번째 정거장인 워터프런트 스테이션(Waterfront Station)에서 내려 실로손 비치(Siloso Beach)까지 걸어가 마지막 정거장인 비치스테이션(Beach Station)에서 모노레일을 다시타고 돌아왔다.

다양한 어트랙션의 유혹에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회전목마도 어지러워하시는 엄마는 아무것도 탈 생각이 없으셨다. 이미 센토사(Sentosa)를 걸어서 둘러보는 것만으로 재미있어 하셨다. 그래! 놀이기구는 중요하지 않다! 엄마가 좋으면 나도 좋다!

 

홍콩

더운 싱가포르에서 시원한 홍콩으로 넘어왔다. 현지인들에게는 엄연히 겨울이지만 우리에게는 선선한 가을 날씨였다. 초고층 빌딩숲과 복잡한 시내를 걷고 있자니 홍콩에 온 게 바로 실감이 났다. 숙소는 홍콩섬에 위치한 호텔로 정하고 침사추이 오고 갈 때마다 페리를 이용했다.

사실 페리는 교통수단 체험 삼아 한번만 탈 생각이었는데, 엄마가 너무 좋아하셔서 여행기간 중 몇 차례 페리를 이용했다. 홍콩섬을 느린 속도로 가로지르는 전차도 여러 번 이용했는데, 엄마에게 페리와 전차는 재미있는 탈거리였다. 평소 같음 무조건 빠르게 갈 수 있는 교통수단을 찾아 다녔겠지만, 이번 여행은 엄마의 속도에 맞춰 나름 슬로우 트래블(Slow Travel) 마음가짐으로 여행을 했다.

드래곤스 백(Dragon's Back)

홍콩여행의 목적은 딱 하나였다. 드래곤스 백 트레킹. 처음 여행지를 정할 때 엄마가 가고 싶어 했던 곳이다. 내가 이유를 묻자 TV에서 연예인이 홍콩에 가서 산도 가고, 게(crab) 요리도 먹는 모습이 좋아 보였단다. “엄마, 우리도 연예인처럼 여행할 수 있어. 가자!”

아시아 최고의 트레킹 코스로 유명한 드래곤스 백의 가장 큰 매력은 도심 가까운 곳에서 산과 바다를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힘들게 몇 시간 산을 오르는 등산이 아닌 주변 경치를 즐기며 여유롭게 걸어 올라가는 트레킹이라 적당히 힘들어서 좋다. ‘용의허리’ 라는 이름처럼 구불구불한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탁 트인 남중국해 풍광을 볼 수 있다.

엄마가 어느 지점을 가리키며 여기가 TV에 나왔던 장소라고 너무 좋아하셔서 왠지 모르게 뿌듯하기도 했다. 평소 사진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으시던 엄마가 드래곤스 백에서는 자처해서 모델이 되셨다. 기뻐하는 엄마를 보니 홍콩에 오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킹을 끝내고 나서는 미리 검색했던 식당에서 스파이시 크랩(spicycrab) 만찬도 즐기며 연예인처럼 여행하기를 완벽히 끝냈다. Mission completed!!

스탠리 베이(Stanley Bay)

홍콩여행 마지막 날 갔던 스탠리 베이는 이국적인 휴양지 분위기가 나는 해안가 마을이다. 혼잡한 홍콩 시내에 지친 엄마를 위해 비교적 조용한 장소를 선택했다. 갈 때는 덜컹거리는 미니버스를 타고 올 때는 이층버스를 이용했다. 엄마는 이제 홍콩의 대중교통은 다 타봤다며 즐겁게 말씀했는데, 사실 정류장을 잘못 찾아서 우연히 타게 된 미니버스였다.

스탠리 베이는 아침에 방문했음에도 노천카페에는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는 외국인들이 제법 있었다. 스탠리 베이 중심거리를 따라서 스탠리 마켓(Stanley Market)이란 시장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주로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이나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엄마는 비교적 한산한 스탠리 마켓의 분위기가 마음에 드셨는지 다른 때보다 편안하게 쇼핑을 하시며, 여행 중 처음으로 엄마 자신을 위한 기념품도 구입하셨다.

엄마와 함께한 9일간의 여행

엄마와의 첫 장기 여행을 준비하며 수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계획했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여행은 깊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감동이 되고 평생의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본래 여행을 할 때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기 위해 쉬지 않고 직진하는 편이다.

여행에서 내가 쉴 때는 오직 밥 먹는 시간뿐이다. 그나마도 식당에 들어가 식사하는 시간도 아깝다고 길에서 대충 때우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여행에 대한 욕심과 급한 성격 탓에 엄마와의 여행에서도 순간순간 엄마를 힘들게 한 적도 많았다. 엄마의 속도에 맞춘다고 하면서도 어느 순간 하나라도 더 봐야 한다는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돌이켜보면 역시 나는 아직 멀었다. 그래도 엄마와 함께여서 웃고, 걷고, 나누었던 행복한 시간이 더 많았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