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Los Angeles pride, Downtown LA

로스앤젤레스의자부심, 다운타운

걸음 닿는 곳마다 문화와 예술의 혼이 춤을 추고, 스포츠를 향한 애정이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영화에 단골로 등장했던 마천루들 사이로는 오랜 사연을 품은 장소들이역사가 짧은 이 도시에 품격을 더한다. 다운타운에 대한 로스앤젤레스 사람들의 유별난 자부심, 그래서 이해가 간다.

글과 사진 임성훈 기자 취재협조 로스앤젤레스 관광청 Kr.discoverlosangeles.com

멋진 풍경과 짜릿한 도전, US 뱅크타워와 스카이슬라이드 US Bank Tower & Skyslide

US 뱅크타워는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고층건물 중 하나다. 한국 영화 '디워'에도 등장해 낯설지 않다. 여행자가 이 건물을 찾는 이유는 2016년 개장한 옥외 전망대 'OUE 스카이 스페이스'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야외 전망대로 높이는 약 300m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고 높이 올라간 자만이 멋진 풍경을 얻는다고 했던가. 이곳에 서면 로스앤젤레스의 황홀한 풍경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전망과 함께 인기를 끄는 것은 건물의 69층과 70층 사이에 설치된 실외 슬라이드다.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LA편에서 멤버들이 공포에 오두방정을 떨던 장면을 기억한다면 맞다.

바로 그 미끄럼틀이다. 사방이 훤히 비치는 투명 유리 소재의 슬라이드 앞에 서면 아찔하고, 오싹하다. 하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으니 총 슬라이딩 거리가 14m. 스릴과 무서움을 느낄 새도 없이 상황은 빨리 종료된다. 심각한 고소공포증 환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주저 없이 도전해 볼 만하다.

LA의 과거와 현재를 먹다. 그랜드 센트럴 마켓 Grand Central Market

LA의 음식문화를 대표해 온 재래시장으로 여행자들은 물론 로컬들의 발길도 끊임없다. 그건 오랜 세월을 이겨내며 영업해 온 결과다. 거슬러 1917년 오픈했다. 신선한 과일, 채소, 고기 등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내부는 아울러 멋진 푸드 코트로 부를만하다. 트렌디 한 맛집과 카페들이 가득해 입맛을 끈다.

특히, 바리스타 챔피언 출신 카일 글랜빌과 찰스 바빈스키가 손잡고 오픈한LA의 대표 커피 브랜드 G&B 커피(시그니처는 아몬드 마카다미아 라테)와 도시 곳곳에서 긴 행렬을 연출하는 LA 맛집의 지존 에그슬럿Eggslut은 도저히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운 가게들이다. 건물은 미국 최고의 건축가로 추앙을 받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손을 탔다.

시간이 흐르며 내부는 변화를 겪었지만, 외관은 그때 모습 그대로다. 영화 라라랜드에서 주인공들의 첫 데이트 장소로 아주 잠깐 등장했던 것, 그리고 영업시간은 주 7일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라는 것은 참고사항이다.

그랜드 센트럴 마켓의 바로 맞은편에도 전통을 자랑하는 다운타운의 명물이 자리한다. 주황색의 앙증맞은 외양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열차, 바로 앤젤스 플라이트Angels Flight다. 1901년에 처음 달리기 시작했으니 그랜드 센트럴 마켓보다 존재의 역사는 더 길다.

총 운행길이는‘무려’ 91m. 세계에서 가장 짧은 철도다. 2013년에 운행을 중단했지만, 영화 '라라랜드'에서 세바스찬과 미아가 키스하는 씬에 등장,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2017년 8월 31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과연 영화로 죽고 사는 로스앤젤레스답다.

전통이 살아 숨쉬는 서점, 라스트 북스토어 The Last Bookstore

뼈대 깊은 서점이 지닌 풍모가 예사롭지 않다. 오래된 나무 책장이 뿜어내는 향기는 그윽하다. 녹록하지 않은 품위, 올디스 벗 구디스Oldies, but Goodies! 라스트 북 스토어는 중고책방으로 LA의 도서문화를 대표해 온 공간이다. 규모도 대단해 캘리포니아에서 최대급이다. 건물 전체에 책을 이용한 공간 설치 미술을 도입해 두고두고 화젯거리.'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20'에 선정된 것도 그래서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대리석 기둥과 더불어 서점을 볼거리로 승화시켰다.

손때 묻은 인쇄물을 다루는 곳의 장점, 구하기 힘든 희귀서적에서부터 빛바랜 표지의 LP판 등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서가를 뒤지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다면(표지의 색이 화려할수록 좋다) 그것을 들고 통로 한쪽의 빨간색 소파로 향할 것. 가식적이라도 좋다. 최대한 우아한 모습으로 앉아볼 일이다. 됐다. 주변에 자랑할 만한 프로필 사진, 그렇게 완성된다.

작가는 미국의 설치 미술가 로버트테라인이다.

 

머스트 비짓 스폿, 더 브로드 The Broad

억만장자인 '엘리 브로드 Eli Broad'가 소장하고 있던 2000점 이상의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름도 '더 브로드The Broad'. 2015년 9월에 문을 연, 아직은 따끈한 신생 미술관이지만 예약 없이 입장하려면 긴 줄을 감내해야 할 만큼 큰 인기를 끈다. 이곳의 작품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컨템퍼러리와 팝 아트가 주류. 낙서화가로 불리는 장 미쉘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벌룬 독으로 이름을 떨치는 제프 쿤스Jeff Koons, 일본의 설치미술가 쿠사마 야요이草間彌生,

팝 아트를 대표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모노톤으로 작업하는 극사실주의의 선두주자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 거장들의 작품이 줄줄이 나타나 감탄을 자아낸다.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찾아가야만 하는 머스트 비짓 스폿으로 이론의 여지가 없다. 입장료는 무려 무료.

 

놀라운 벽화의 향연, 아트 디스트릭트 Art's District

솔직해지자. 이 동네에서 깜짝 놀랐다. 시선이 내달리는 곳마다 벽화, 또 벽화. 그림들의 수준도 놀랍기만 하다. 단순 그래피티와는 차원이 다른 뮤럴mural의 진수. 스웩이 넘친다. 단 몇 걸음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한다. 강렬한 색감과 섬세한 묘사의 수준, 비교 불가다. 미술관 많기로 소문난 LA에 또 하나의 미술관이 추가된 셈이다.

그것도 연중 무료이자 언제든 자유입장이 가능한 거대 야외 미술관 말이다. 아트 디스트릭트의 과거는 이렇다. 농업으로 살아오다 공장지대로 반짝. 그러다 1970년대부터 기능이 멈춰버린 다운타운의 변방이었다.

그런 이곳에 값싼 작업공간을 찾던 예술가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버려진 공장과 건물들을 이용해 예술적 재능을 발휘했다. 북쪽부터 시작된 예술적 움직임이 차츰 남쪽으로 이동해 가며 지역전체가 활력을 찾았다. 예술거리로소문난 결과는 지가와 집값 상승. 지금은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실력 있고 이름난 예술가들만이 이곳에서 터를 잡고 활동을 한다. 아트 디스트릭트에서 접하게 되는 벽화들이 수준 높은 이유다.

벽화가 압도적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갤러리들로 대표되는 실내 공간에서는 그림이나 사진 등의 전시도 활발하다. 그중에는 좁쌀만 한 유리구슬glass beads로 군용 수송차를 랩핑한 이색적인 작품도 있어 눈길을 끈다. 작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작가 랄프 지만Ralph Ziman. 색색의 유리구슬이 7천만 개나 사용된 대작이다.

다저스의 팬이 되어 버리고 마는, 다저 스타디움 Dodger Stadium 투어.

다저스라는 팀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LA를 연고로 하는 바로 그 프로야구단 말이다. 과거에는 박찬호가, 현재는 류현진이 활약하며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국저스(국가대표 다저스, 혹은 국민 야구단 다저스의 줄임말)로 불릴 만큼 많은 사랑을 받는 팀이다. 알고 보면 다저스를 국민구단으로 삼고 있는 나라는 우리만이 아니다.

노모 히데오가 뛰었고, 현재는 마에다 켄타가 몸담은 일본이나, 데뷔할 때부터 메이저리그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투수 루디 발렌수엘라의 고향인 멕시코도 우리와 그 결이 같다.

국적은 달라도 다저스로 대동단결, 이민자의 땅인 LA를 연고지로 하는 팀다운 모습이다. 다저스의 창단은 1883년. 뉴욕의 브루클린을 연고로 하는 브루클린 다저스로 출발해 1958년 로스앤젤레스로 프랜차이즈를 옮겼다. 유구한 역사는 두터운 팬덤fandom을 동반하는 것이 필연. 응원 열기도 데일만큼 뜨겁다. 그 분위기를 느껴 보고 싶다면 물론 다저스 경기를 보는 것이 최선. 차선은 다저스의 홈구장인 다저 스타디움 견학 투어에 참가해 보는 것이다.

'다저스의 목소리'로 일컬어지는 전설의 아나운서 ‘빈 스컬리Vin Scully (67년간 다저스의 경기만을, 그것도 혼자서 중계해 낸 신화적인 인물로 2016년 은퇴했다)’를 기념하는 방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스타디움 투어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다저스의 과거와 현재가 걸음마다 펼쳐진다.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가 경기장을 찾았을 때 앉았던 좌석은 옆 라인까지 통째로 뜯어서 전시 중이다. 골드글러브나 실버슬러거를 수상한 이들의 명패와 트로피도 한쪽에 줄지어 있다. 각종 기록을 수립한 선수들이 입었던 유니폼, 흑인 최초의 메이저 리거 재키 로빈슨의 사진, 선수들이 원정을 떠날 때 짐을 옮기던 박스 등도 볼거리를 더한다.

압권은 그라운드로 내려가 다저스 덕 아웃에 앉아 보는 것. 이때부터 다저스의 열성 팬이 되어 버리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스타디움 투어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역사가 쌓이고 세월이 겹치면 이런 멋진 야구장 투어가 우리에게도 이루어질는지. 답을 낼 수 없는 궁금함이 문득 뇌리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