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mpressive Trekking Under The Sky

울레리, 고라파니, 그리고 푼힐

내게 여행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할 자신이 없다. 오늘도 무엇 때문에 길을 나서느냐는 말에도 선뜻 답하기 어렵다. 처음 왜 길을 떠났던가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한참을 고민해도 쉽게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 여행을 마칠 때쯤이면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을까?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장창영 트래블 인플루언서

히말라야로 들어가며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때로는 그냥 떠나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평소 언젠가 가보고는 싶었지만 이번처럼 네팔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올지는 몰랐다. 하지만 한 번 눈에 들어오니 그 이름이 자꾸만 입에서 되뇌어졌다. 나중에는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카트만두로 떠났다. 그리고 만난 게 포카라였다. 포카라에서 만난 홍텔 사장님은 내게 푼힐행을 권했다.

아마 운이 좋으면 1박 2일도 가능할 거라면서. 포카라에서 다른 일정을 잡지 못했던 나에게 그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푼힐로 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퍼밋(permit)과 TIMS(Treckers’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를 받아야 한다. 네팔 정부의 주 수입원은 관광객과 등산객에게 퍼밋과 팀스이다. 퍼밋은 네팔 정부에서 인정하는 입장권과 같다. 입장권 없이 마음대로 들어갈 수는 없지 않은가? 포카라에서 여행업을 겸하고 있는 망갈 사장님의 도움을 받아 퍼밋과 팀스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푼힐이건 ABC이건 트레킹을 떠나는 이들은 대부분 여정을 나야풀(1,070m)에서 시작한다. 보통의 경우에는 나야풀에서 울레리(2,080m)까지 지프차로 가서 트레킹을 시작한다. 하지만 우기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우기에는 울레리까지 지프차가 가지 못할 수 있다. 비로 산길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네팔에서 우기 때는 산사태 때문에 도로가 언제든지 끊어질 수 있다. 이 경우, 트레킹의 출발지는 울레리가 아닌 힐레(1,510m)이거나 티켓퉁가(1,540m)가 된다.

울며 올라간다는 울레리

힐레에서 울레리까지는 끝도 없이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 산길이다. 게다가 최악은 돌계단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비 때문에 의도적으로 돌로 계단을 만든 것이겠지만 정작 산을 오르는 입장에서는 아니올시다이다. 돌계단을 올라본 이는 알겠지만 오르거나 내릴 때 무릎이 받는 하중은 엄청나다. 그렇기에 돌계단 오르기는 결국 다시 같은 길로 내려올 경우, 고행을 거듭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포카라에서 로컬버스를 타고 3시간 만에 도착한 나야풀에는 지프차가 몰려 있었다. 기사들은 손님이 없어서인지 모여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내게 걸어갈 것인지 아니면 지프차로 갈 것인지를 묻는 사람이 한둘 있을 뿐이었다.

물어보니 울레리까지는 걸어서 6시간이란다. 6시간이라니 내가 그걸 감당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혼자라도 빨리 출발하는 게 훨씬 이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프차를 타고 가는 동안 생각 이상으로 산길은 험했고 더 독했다. 내가 아는 한 등산은 가장 정직하다. 두 발로 땅을 딛는 순간, 자연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길을 열어준다. 처음 내 계획은 울레리까지 지프차로 간 후 고라파니까지 4시간 정도의 산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야풀에 도착해보니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우기라서 도로가 끊기는 바람에 티켓통가까지만 차가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여러 기사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니 확실해 보였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우연히 주워들은 힐레라는 지명 하나가 상황을 바꿔 놓았다. 네팔에서 모든 가격은 흥정이 가능하다. 한참 가격 흥정을 하고 티켓통가까지 가기로 했으나 기사는 나를 힐레에 내려놓았다. 물론 가는 도중도 쉽지는 않았다. 우기로 엉망이 된 길은 왜 지프차만이 갈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심지어 가는 도중에 차바퀴가 진흙 구덩이에 빠져 한참을 고생하기도 했다. 힐레 지명을 보는 순간 뭔가 찜찜했지만 기사는 여기서부터 걸어가면 된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며 돈을 챙겼다.

적어도 약속한 장소까지는 데려다주는 게 그의 임무이자 책임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혀 미안한 내색도 없이 나를 내려두고 떠나버렸다. 그 상황에서 내가 그곳이 힐레인지 티켓통가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나중에 고향이 울레리인 친구에게 들으니 힐레에서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하는 티켓통가까지는 구간이 험하기 때문에 4륜 구동이 아니면 가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가격이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고생했다고 기사에게 팁까지 주려했으니.

힐레, 여정의 시작점

힐레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힐레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동안 카트만두와 포카라처럼 도시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힐레의 분위기가 신선했다. 도심의 번잡함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시골 풍경이었다. 간결하면서도 정겨운 건물들, 게다가 논에 심어 놓은 벼이삭이 뿜어내는 초록 물결은 내 눈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처음 만난 곳이 다른 데였다고 할지라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행 초입은 대부분 설렘으로 시작하고, 그 여운은 제법 오래 간다.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어쨌거나 고라파니까지 가는 도중에 몇 명의 동행을 만났다. 자기 몸보다 더 큰 짐을 지고 가던 젊은 포터는 울레리까지 간다고 했다. 듣기로는 울레리까지 3시간 이상 걸린다고 했는데 험한 돌계단을 그 짐을 다 지고 올라가야 한다니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한숨이 났다. 누군가는 빈 몸으로도 힘든 길이지만 자기 몸보다 더 큰 짐을 지고 가야 하는 이도 있는 법이다. 살다 보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다른 짐을 짊어져야 할 때가 종종 있다. 그 짐이 나를 억누를지라도 우리는 견뎌야 한다. 포터들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네팔에는 이런 말이 있다. 힘을 쓴 대로 대접받는다. 포터들은 자신이 짊어지고 올라간 무게만큼 대가를 지급받는다. 고라파니 롯지에 있던 냉장고를 어떻게 가져왔나 궁금해서 주방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글쎄 그걸 포터 한 명이 들고 왔단다.

놀라는 나를 보며 씩 웃더니 주방 한편에 있던 김치냉장고를 보여준다. 주방 아주머니는 많은 돈을 주었다고 강조했지만, 이건 단순히 돈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상에 그걸 1500m 고지부터 등짐으로 들고 왔다니. 물론 날이 좋은 날에는 울레리까지는 지프차로 이동이 가능했을 테지만 그래도 거의 1,000미터 높이를 저걸 들고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정말 인간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히말라야에서 포터는 직업이자 히말라야를 대표하는 단어이다. 그들은 가이드 겸 짐꾼, 그리고 요리사를 병행한다. 다행히도 전 세계에서 히말라야를 찾는 이들 때문에 먹고살지만 반대로 이곳에 오는 이들은 포터의 존재를 감사할 일이다. 그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에베레스트 등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느끼는 가장의 무게

울레리 가는 길에 만났던 가족은 유쾌했다. 남자는 자신의 고향이 울레리라고 말했다. 가족을 데리고 10년 만에 귀향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아내와 중학생이 된 아들과 딸아이가 함께 하는 귀향이었다. 몇 시간을 오르면서도 그는 자신이 학교를 가기 위해 한 시간씩이나 걸려 산길을 오르내렸다는 이야기며 주변 마을에 대해 이야기를 꺼넸다. 10년 만의 귀향이라니, 그 정도라면 할 말이 많을 법도 하다. 포카라에서 티켓퉁가까지 4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다시 3시간 이상의 산행을 해야 하는 길, 만약 우리 가족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족과 만난 덕분에 지겨울 뻔했던 산행은 비교적 즐거웠다.

그 친구는 쉴 때마다 자신의 동네 이야기를 해주었다. 초행길에 그런 든든한 동행이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들과의 만남은 울레리까지가 전부였다. 그래도 몇 시간을 함께 걸어왔으니 헤어질 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다행히 같이 출발했던 할머니와의 산행은 좀 더 이어졌다. 마침내 도착한 할머니 댁은 근사한 정원이 있는 집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할머니가 부러웠다. 세상에 몸 누일 집이 있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이던가.

할머니와 헤어져 가다 보니 떡하니 잔뜩 짐을 짊어진 말이 골목을 막아서고 있다. 주인은 대체 어디 갔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고, 말만이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었다. 어쩌자고 주인은 말을 거기다 세워 놓고 사라져 버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아마 잠시 세워두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지나가는 마을 아주머니에게 하소연을 해보았으나 그냥 웃고 말 뿐이었다. 어쨌거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말 옆을 통과해야만 했다. 내 우려와 달리 다행히도 말은 순했다.

어이, 스페인 친구들 좀 쉬자구!

울레리에서 같이 걷던 일행과 헤어져 만난 게 스페인 친구 데이빗과 얼레이였다. 사실 시간이 2시가 넘었기 때문에 고라파니까지 갈까 말까 망설이던 참이었다. 계획은 울레리에서 잘 생각이었으나 우연찮게 지나쳐버린 터라 다시 또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 목적지까지가 한 시간 반이라니 차라리 올라가는 편이 더 낫지 싶었다. 산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건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오는 일이다. 결국 가다 보니 반탄가니까지 갈 수 있었다. 거기 휴게소에서 만난 게 데이빗과 얼레이였다. 39세와 36세. 다행히 고라파니로 가는 길이어서 함께 출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체력이 좋은 두 친구는 좀처럼 쉬지 않았다. 간혹 중간에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지만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다.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자 딱 1분만 쉬어가자는 말이 저절로 나왔으나 그들은 내 바람과 달리 계속 걸었다. 유일한 휴식은 얼레이가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쉬는 시간뿐이었다. 그래도 울레리보다 고라파니까지 가는 길은 그나마 나았다. 이전에 울레리까지 가는 길은 대부분 오르막에다 돌계단이었으나 고라파니는 평지에 가끔 내려가는 길도 제법 있어서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걸었을 때, 거머리의 습격을 받았다. 워낙 포카라에서부터 경고를 많이 듣고, 실제 거머리에 물린 상처를 직접 보았기 때문에 더욱 신경이 쓰였다. 걷는 도중 조금이라도 불쾌한 느낌이 들면 몇 번이나 목덜미를 쓰다듬곤 했다. 쉴 때는 일부러 나무 주변을 피하기도 했다. 거머리 기피제도 바르고 소금도 잔뜩 뿌렸건만 목덜미에서 한 마리를 떼어낸 후, 나중에 손에 붙은 한 마리를 제거한 게 다행히도 내가 만난 마지막 거머리였다.

평지에서는 좀 덜했지만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스페인 친구들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결국 한 시간 남짓 남겨두고는 그들에게 먼저 가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같이 가는 것도 중요했지만 내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가는 게 더 중요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어두워지기 전에 고라파니에 도착하는 일이었다. 산에서 어두워지는 것은 가장 위험하다. 더군다나 이런 고지에서 비까지 내린다면 꼼짝없이 산에 걷힐 수도 있다. 비까지 맞고 저녁에 기온이 더 내려간다면 저체온증까지 갈 수 있다. 고지에서 저체온증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무의식적으로 걷다 보니 돌제단이다.

돌제단이 나온다는 것은 마을이 멀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그래도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해는 남아 있었지만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산행에서 만나는 잔잔한 비는 열을 식혀주지만 거센 비는 걷는 자체를 힘들게 한다. 쏟아지는 장대비는 사람을 힘들게 하고 몸을 지치게 하는 법이다. 다행히 비는 10여 분만에 잦아들었다. 어느 순간 파란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만큼이나 파란 지붕이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산행의 끝이 보이는 고라파니

울레리부터 산행 4시간 여만에 드디어 사람의 흔적을 만난 셈이다. 조금 더 가자 ‘WELCOME TO GHOREPANI’라는 안내문이 선명한 문이 나온다. 그 옆 사무실에서 누군가 내게 오라고 손짓을 한다. 등산객의 퍼밋 심사를 하는 곳이다. 물어보니 스페인 친구들은 15분 전에 통과했다 한다. 이제는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도착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다시 또 이어지는 돌계단.

하지만 이미 목표점에 도달해서인지 그리 힘들지 않았다. 이어서 나오는 고라파니 마을 표지판. 2860m. 1500m부터 두 발로 걸어와서인지 뿌듯함이 가슴 저편에서 밀려왔다. 그동안 제대로 된 산행 한번 안 하다가 하루에 1300m 높이를 올린 터라 쉽지는 않았다. 마을 사람에게 알려준 대로 푼힐 방향으로 걷다 보니 두 갈래 길이 나온다. 그런데 두 군데 다 최종 목적지는 푼힐이다. 나는 오른쪽을 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데이빗과 얼레이를 만났다. 새벽 6시에 숙소에서 출발하여 고라파니 롯지에 저녁 6시 반 무렵 도착했다. 실로 기나긴 하루였으나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하루이기도 했다.

나이스 뷰 롯지(Nice view Lodge)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받고 한숨을 돌렸다. 저녁 7시 무렵, 안나푸르나 남벽이 잠깐 얼굴을 보여주었다. 불과 5분 남짓이었을까. 길어야 10분을 넘지 않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안나푸르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불과 5분 남짓이었다 할지라도 그 인상은 강렬했으며, 안나푸르나를 만난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지금은 우기이고, 우기 때는 누구도 날씨를 장담할 수 없다. 평생을 롯지에서 산 지엔 바투르(Gyan Bdr) 할아버지조차도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다.

푼힐,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람들이 고라파니를 가는 이유는 푼힐 전망대가 그 위에 있기 때문이다. 고라파니는 다른 트레킹 코스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고라파리 롯지에서 머물면서 전열을 가다듬고 기력을 회복한다. 고리파니 롯지는 다음으로 떠나기 위한 사람들이 머무는 정거장과 같다. 오늘까지 누군가가 머물던 자리를 또 다른 누군가가 채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트레킹의 혹독함과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고 눈앞에 펼쳐진 대자연과 마주한다.

푼힐 전망대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롯지에서 새벽 4시쯤에 출발하는 게 좋다. 조금 여유를 부린다 해도 4시를 넘길 때쯤이면 롯지에서 서서히 출발해야 한다. 롯지에서 푼힐 전망대까지는 대략 40분. 그 시간이면 해가 뜨기 전에 전망대까지 도착하기에는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좀 더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건 이번처럼 빡빡한 여정에서 내게 주는 작은 선물이기도 했다.

롯지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가다 얼마 가지 않아 티켓 매표소가 나온다. 100루피밖에 되지 않지만 티켓을 사지 않고 무사통과할 때의 느낌은 유쾌하다. 그러나 새벽시간에 티켓 매표소가 닫혀 있다는 것은 날씨가 그만큼 좋지 않다는 의미이기에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아침에 만난 데이빗과 얼레이는 새벽에 푼힐 전망대까지 갔으나 구름 때문에 일출을 못 보았다 한다. 하기야 나도 새벽에 일어나기는 했으나 창밖으로 구름이 잔뜩 낀 것을 보고 다시 잠을 청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꼬박 하루를 롯지에서 머물렀다. 단지 푼힐에서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하여. 다른 이유도 있다. 그동안 두 번의 백두산, 베트남 사파, 중국 옥룡설산, 스위스의 휘르스트까지 3000미터급을 몇 차례 다녀오기는 했다. 그때마다 특별히 문제는 없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적어도 고라파니에 가기 전까지는. 롯지에서 숙소를 배정받은 게 2층이었다. 1층에서 멀쩡하던 몸이 2층에서 갑자기 이상해졌다. 다시 1층으로 내려오면 문제가 없다가도 2층에만 올라가면 속이 울렁거렸다. 급히 고산병 약을 챙겨 먹었지만 몸의 회복은 더뎠다.

2860고지에서는

물 한 잔이 50루피.

비싼 듯해도 여기까지 들고 온

사람을 생각하면 전혀 비싸지 않다.

온전히 걸어서만 올 수 있는 나라에서

그 정도야 오히려 싸다

계단을 묵묵히, 땅을 벗 삼아 걸어온

정직한 걸음을 돈으로 환산하기에는 그렇지만

그게 여기 방식이다

- <롯지의 계산 방식>

롯지에 밤이 찾아오면

저녁시간대에는 롯지의 난로에 불이 들어온다. 고지대이다 보니 저녁이면 제법 공기가 차다. 난로에 장작을 넣다보면 그제야 하나둘 사람이 모여든다. 사람들은 따뜻한 불을 찾아 난로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여행 이야기를 나누거나 차를 마시기도 한다. 젖은 빨래가 조금씩 마르고 사람들의 몸도 따뜻해질 때쯤이면 난로 불씨가 조금씩 사그라든다. 하나둘씩 방으로 떠나는 이들이 생기고 다음날 산행에 대한 기대가 그 빈자리를 차지한다.

나는 이틀을 롯지에 머물렀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3일이다. 그 기간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가끔 테라스에 나와 구름 뒤에 숨겨진 안나푸르나를 보는 것뿐이었다. 다른 일이라고는 할 게 없었다. 시간이 나면 글을 썼고, 때가 되면 식사를 했다. 간간히 창밖으로 내다보아도 안나푸르나는 도무지 얼굴을 보여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바람난 강아지처럼 들락날락거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새벽 산행에서 일출을 보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다음날, 새벽 알람에 맞추어 일어나 서둘러 산을 향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가는 내내 만난 사람은 없었다. 전망대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우기라서

안나푸르나는 딱 그만큼만

보여주었다

5분이나 10분쯤.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구름 뒤로 사라져 버렸다

구름 낀 산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난로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시간이 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며

산과 같이 늙어가는 일뿐이었다

- <구름산이 말을 건다>

 

푼힐로 가는 길

안개속에서 만난 푼힐 전망대 구조물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다행히 푼힐 전망대에서는 몇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새벽 산행을 마다하지 않고 이들이 모인 이유는 오늘은 일출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일출을 기대한 순간, 우리는 이미 산에 어느 정도 묶여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 달리 산은 구름 뒤 저편에 있을 뿐이다. 해가 뜨고 난 이후에도 30분 이상을 기다려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내 발로 가장 정직하고 성실하게 걸어서 3210m 고지에 도달했으니까. 그것만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했다. 남들이 서둘러 내려간 산길을 내려오는 내내 산을 혼자 독차지하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일출 시간이 지나자 더 이상 푼힐 전망대로 올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신과 나만이 거기 있었다.

롯지에서는 숙박료를 받지 않았다. 내가 지불한 것은 밥과 음료수, 와이파이와 물값이 전부였다. 며칠 묵었다고 그래도 사람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들이 그랬듯이, 손자인 마루자도 롯지를 이어갈 것이다. 롯지에서 계산을 마친 후, 하산의 압권은 울레리에서 힐레까지 내려오는 돌계단이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무릎의 충격을 어느 정도 흡수해주는 흙과 달리 돌은 그 충격이 무릎으로 그대로 전해진다. 이미 한 번 경험해보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고통스럽기만 했다. 보통은 내려올 때가 더 쉬운 법인데 이번만은 그렇지 않았다.

다시 삶으로 내려서며

비 때문에 내려오는 산길 구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심지어 산비탈에서 나무뿌리가 통째로 뽑혀 내려온 구간도 있었다. 그 옆으로는 100여 미터 가까운 절벽이 이어졌다. 만약 실수로 구르기라도 한다면 도저히 혼자 힘으로 살아 돌아올 수 없는 그런 길이었다. 산길을 내려오는 도중에 5,400m를 올라갔다 왔다는 영국인 일행과 대만인 일행을 만나기도 했다. 쉬는 시간에 그들이 기용했다는 포터의 짐을 짊어져보니 40킬로가 넘는듯했다. 포터는 그 무게를 짊어지고도 보통 사람의 걸음보다 빠르게 산을 내려간다. 그 탁월한 생존능력에 찬탄을 보낼 밖에.

운이 좋게도 내려오면서 대만 여행자 둘과 지프차를 합승하여 포카라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의 명소인 사랑곶(SARANGKOT)에 그들을 내려주고 최종 목적지인 포카라에 도착하니 거의 6시였다. 돌이켜보면 길고 긴 하루였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 가장 멀리까지 걸었던 하루이기도 했다. 1박 2일 예정했던 일정이 2박 3일로 늘어나고 비록 푼힐 전망대에서 그토록 바라던 안나푸르나와 다른 산을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다른 이들이라면 어땠을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감사하기만 한 트레킹이었다. 그 산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리고 그 길을 두 발로 걸어 올라갔다는 것만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