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ps Villages Travel by Mountain Train

산악열차로 여행하는 알프스 마을들

 

과거 인기를 모았던 <인디아나 존스>같은 어드벤처물을 보면 꼭 등장하는 장면이 있다. 낡은 열차나 자동차를 타고 광활한 숲을 내달리는 모습이다. 여행과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봤을 자연에서의 행복한 일탈. 위험을 무릅쓴 도전이 아니라 산 한가운데에 놓인 선로를 따라 숲과 계곡, 능선을 가로지르는 신나는 경험이다. 스위스와 프랑스가 어깨를 맞댄 소도시 마티니(Martigny)에서 특별한 산악열차에 올랐다. 철로를 따라 만나는 알프스의 속살과 작은 마을들. 그리고 목적지인 프랑스 샤모니(Chamonix). 일주일간 마티니에 머물며 열차가 멈춰서는 역마다 내려서 알프스 산촌마을을 경험했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은 첩첩산중 알프스 마을의 속살을 차분히 소개해본다.

에디팅 편집부 글과 사진 이두용 트래블 인플루언서

산이 많은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에는 나라와 나라를 잇고, 산과 도시를 잇는 열차 노선이 많다. 하지만 인기 있는 구간을 달리는 대중적인 노선을 제외하면 여전히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열차가 많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산악열차인 몽블랑 익스프레스(Montblanc express)다. 스위스 외곽의 작은 마을 마티니에서 프랑스의 산악도시 샤모니까지 연결된 철로를 달리는 열차다. 이 열차는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을 넘지만, 직선코스로 고작 90분이면 운행을 마친다. 열차에 올라 산을 넘고 계곡을 건너다보면 외교부와 통신사에서 보내온 국가가 바뀌었다는 메시지가 휴대폰에 뜬다.

일주일간 이곳에 머물며 하루에도 여러 번 열차에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아침엔 프랑스에 오신 걸 환영한다고 했다가,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땐 스위스에 오신 걸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살면서 이런 환대를 받기도 쉽지 않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기차를 타고 한참, 산을 돌고 물을 건너는가 싶다가, 또 산을 돌고 물을 건넌다. 목적지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할 때쯤 드디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더 이상 직진할 수 없는 마을에 도달한다. 그곳이 마티니다. 스위스 국내선으로는 종착역이지만 알프스를 넘어 샤모니로 향하는 출발점인 곳이기도 하다. 설레기 시작했다.

예술의 도시라고 불리는 곳

알프스가 속해있는 나라와 도시를 여러 번 다녀온 적이 있어서 이곳에 오면서 상상한 마티니의 모습이 있다. 드넓은 평야에 소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그 뒤로는 아름다운 만년설을 자랑하는 높은 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을 거라 믿었다. 알프스 산악열차의 출발지라고 하니 더 그랬는지 모른다. 그런데 사방에 둘러싸인 산봉우리는 유럽 곳곳에서 봤음직한 적당한 높이의 산인 데다 마티니는 도시라고 하기엔 고요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의 모습이었다.

다소 허한 마음이 들면서 아쉬웠다. 하지만 마티니역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마을 안내판을 보고 나서 아쉬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곳에는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는 미노타우로스 석상을 시작으로 문화재와 보물에 버금가는 역사유물과 예술작품이 곳곳에 있다. 미노타우로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로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진 존재다. 이 석상은 현재 마티니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마을을 수호하는 절대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알프스를 찾아서 왔는데 예술마을이라니. 덤 치고는 대단하다.

이미 유럽 전역에서는 마티니가 고대의 역사적 유물과 근대 예술작품이 공존하는 예술도시로 소문이 나있다. 이곳은 기원전 로마시대에 무역을 위한 요충지였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수 천 년이 지난 지금도 도시 곳곳에서 로마시대 유적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로마 원형 극장이다. 이 유적은 고대 로마시대의 상징적인 기념물로 5,000명의 인원이 둘러앉아 검투사와 투우소가 싸우는 장면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곳은 현재도 다양한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외에도 로마시대의 건물터가 보존된 피에르 지아나다 유적과 르 도무스 뒤 지니 유적, 르 테메노스 유적 등 다양한 유적이 고대 로마시대에 이곳이 어떤 위치였는지를 말해준다. 고대의 유물만으로 마티니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기는 이르다. 거리를 걷다가 만나는 조각상과 조형물들은 근대와 현대 미술의 걸작으로 불리는 작품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마티니 시내에는 세계적인 조각가 로댕과 헨리 무어의 작품을 포함해 40여 개의 조각상과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마티니에 도착하면 바로 산악열차에 올라 마을을 떠나려고 했는데 계획과는 달리 이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작은 도시지만, 마티니만으로도 충분히 볼거리는 많았다. 이곳이 예술의 도시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가 또 있었다. 고대 유적지 피에르 지아나다에 위치한 박물관에 가면 해답지를 만날 수 있다. 유적지 옆에 말끔하게 지어진 이 박물관은 현재의 마티니를 예술의 고장으로 거듭나게 한 이유다. 엔지니어였던 레너드 지아나다는 1976년 자신의 소유지였던 이곳에서 갈로로만 사원의 유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당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동생의 넋을 기리기 위해 이곳에 박물관을 짓고 세기의 예술작품을 사모아 도시 곳곳에 설치하고 전시하기 시작했다.

1978년부터는 이 박물관에서 세계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전을 유치했다. 전시회가 성공을 거두면서 매년 전시 규모를 키워갔다. 현재는 해마다 5~6개월간 대형 전시를 진행한다. 현재 이 전시는 박물관만의 행사가 아니라 마티니 전체의 축제로 거듭났다. 매년 이곳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보기 위해 전 유럽에서 400만 명이 넘는 인원이 마티니를 찾는다고 하니 실로 대단하다. 산악열차를 타기 위해 이곳을 찾았더라도 하루나 이틀 정도 여유를 두어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유적과 조각상, 조형물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다. 매년 6개월간 열리는 전시 기간에 찾는다면 더 없는 행운이다.

현대의 무선통신이 발명된 곳

드디어 알프스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다. 마티니에서 출발하는 산악열차는 1906년 건설된 철로를 다닌다. 하지만 건설 당시는 물론이고 현재까지도 세계 최고의 안전기준을 따른다고 한다. 출발지 스위스 마티니에서 프랑스 샤모니까지는 국경을 통과하고 중간에 15개의 역을 지나지만, 직선거리로는 23km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알프스산맥 봉우리에 놓인 28개의 철교와 구름다리를 지나는가 하면 20도가 넘는 경사를 오르기도 한다. 열차가 오르는 경사로는 거의 놀이공원 롤러코스터 수준이다. 빨간색으로 도색한 열차가 푸른 하늘과 녹음이 짙은 배경과 어울려 또렷하고 아름답다. 드디어 첫 출발이다. 열차는 철로가 1m 폭이라 크지 않다. 하지만 어릴 적에 탔던 기차가 떠오를 만큼 고즈넉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열차가 드디어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속도를 낸다. 아주 빠르지는 않다. 마티니를 벗어나면 정차역인 베르나야(Vernayaz)에서 살벙(Salvan)까지 경사 20도의 랙트레일 철로를 오른다. 고지를 향하는 열차는 평지를 달릴 때와 다르다. 정말 롤러코스터가 스릴 넘치는 하강을 위해 정점을 향해 오를 때의 느낌이다. 몸이 뒤로 젖혀지고 움직일 때마다 ‘텅텅텅텅’하는 소리를 낸다. 그 묘한 떨림은 오른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마티니 시내의 풍광과 맞물리며 최고조가 된다. 사람은 두려움과 떨림에서 어떤 대상에 대해 매력의 상승이 이뤄진다고 한다. 과거 한 TV 프로그램에서 스릴 있는 놀이기구를 타면서 이성의 호감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이후 조용한 카페에서 다시 테스트했는데 같은 이성인데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그 테스트가 맞는 것 같았다. 평지에서 본 마티니와는 달리 경사진 능선 철로에서 내려다본 도시가 훨씬 아름다웠다.

랙트레일 구간이 끝나면 열차는 살벙에 멈춰 선다. 이곳은 무선통신 발명가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의 혼이 살아있는 고장이다. 원래 마르코니는 이탈리아 사람이다. 결핵으로 요양 차 이곳에 왔다가 두 달간 머물며 무선통신 관련 장치를 제작했다. 그리고 1895년 이곳에서 세계 최초로 무선통신을 성공 시켰다. 그는 독일의 과학자 헤르츠(Heinreich Hertz)가 발견했던 전파를 무선으로 이용하는 발진기를 만들었다. 이후 안테나를 고안해 그 위에 달고 감도 높은 검파기를 개발해 수신기를 제작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만들어진 장치는 전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주는 기기와 연결해 모르스 전파 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무선통신 기기로 완성됐다. 기계적인 구성은 하늘과 땅 차이지만 원리만으로 보자면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첨단 스마트폰과 비슷하다고 한다.

놀랍다. 마르코니는 완성된 장치를 가지고 실제 살벙과 마레꼬뜨 1km 구간에서 세계 최초로 무선통신을 성공시켰다. 1km 떨어진 곳에 장치를 든 사람을 세워두고 반대쪽에서 보낸 신호가 도착하면 깃발을 들어 확인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것이 최초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1년 뒤 1896년 마르코니가 이탈리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3km 구간에서 성공한 것을 공식적인 최초로 인정받았다. 살벙역에서 돌길을 따라 50m 정도만 내려오면 마르코니 박물관이 있다. 조용하고 작은 마을 분위기에 걸맞게 박물관도 아담하다. 마치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 느낌이다.

하지만 마르코니와 관련한 당시의 발명품과 소품들은 마르코니가 발명한 무선통신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박물관 인근 성당 옆엔 타이타닉 호 추모비가 있다. 1912년 타이타닉 호 침몰 당시 마르코니가 발명한 무선통신 장치를 이용해 외부에 구조요청을 했고 덕분에 700명이 구출될 수 있었다고 한다. 120년이 흐른 지금도 살벙에는 마르코니의 명성과 기록이 오롯하게 남아 있다. 마을 곳곳에서 숲으로 연결된 동화 속 풍광 같은 길을 따라 즐기는 트래킹은 살벙의 또 다른 재미다.

알프스가 만든 자연 휴양지

알프스 산악열차가 정차하는 모든 역에 역사적인 의미나 특정한 테마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어느 곳에 내려도 저마다의 가치는 충분하다. 자연이 알프스에 내려준 축복은 레일을 따라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곳곳에 숨어있는 알프스의 마을이 여행객에겐 선물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마르코니가 살벙에서 무선신호를 보내 세계 최초로 교신에 성공했던 마을 레 마레꼬뜨(Les marécottes)는 열차가 멈춰서는 역 중 깜짝 선물 중 하나다. 스위스 외곽 도시인 마티니와 비교해도 작은 마을에 불과했던 살벙보다 더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이다. 이곳 마을 한쪽에 위치한 마레꼬뜨의 이름을 내건 동물원과 수영장이 있다. 사람 몇 명 살지 않을 것 같은 고요한 곳에 수영장이라니, 신기하다.

입구에 서면 자연 그대로를 이용해 만들어진 외형에 또 놀란다. 인터넷과 책자를 보고 찾아갔다가도 ‘여기가 거기인가’ 싶을 정도다. 1960년 알프스에 서식하는 50마리의 동물로 문을 연 마레꼬뜨 동물원은 방문객도 이곳에 사는 동물도 즐거운 공간이다. 현재 180마리로 늘어난 동물가족은 자신들이 태어난 알프스 환경 그대로에서 생활하고 있다. 동물원 주인장인 마릴렌은 “알프스에 여러 종류의 동물이 살지만 실제로 보기엔 어려워서 어떤 동물이 서식하는지 알 수 있도록 동물들의 생태를 그대로 보존해 동물원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동물 중에서 늑대와 곰, 마모트가 가장 인기 있다고도 귀띔했다. 이 지역 이름이기도 한 마레꼬뜨는 다람쥐처럼 생긴 설치류 마모트(marmot)의 프랑스어다.

동물원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서울대공원 같은 시설을 생각하면 안 된다. 마을의 전체 규모가 서울대공원보다 작을 수도 있다. 자연으로 둘러싸인 곳에 슬렁슬렁 울타리를 쳐놓고 아담한 공간을 만들어 동물원이라고 간판을 내걸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알프스의 나지막한 능선으로 소풍 나온 기분을 내며 가족과 둘러보고 쉴 수 있어 좋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해 울타리 안쪽에 있는 동물들도 전혀 갇혀있는 듯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위험에서부터 보호를 받는 느낌이다. 뿔을 높이 세운 산양이 바위에 앞다리를 걸치고 있는 모습이 늠름하다. 산행 중 만났다면 위협적일 수 있을 텐데 생생한 느낌과 안정감이 좋다. 동물원 한 편엔 알프스에서 흘러내린 빙하수로 채운 수영장이 마련돼 있다.

이곳 역시 주변의 바위와 숲의 지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물이 모이는 곳에 수영할 수 있는 공간과 쉴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해 수영장으로 꾸몄다. 세상의 어떤 수영장보다 자연 친화적인 곳이다.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사람이 자연으로 들어와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라니. 동물원과 수영장만으로 꾸며졌지만, 알프스에서 쉬었다가 가기에 이보다 좋은 휴양지가 있을까 싶다.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가 멋지다. 더욱이 이곳은 알프스의 청정을 유지하기 위해 관광객이 많아지는 분주한 계절에도 입장 손님에 제한을 둔다고 한다. 찾아오기에 불편한 곳임에는 틀림없지만 충분히 만족할 만한 곳이다.

전기로 부자가 된 휴양도시

레 마레꼬뜨역에서 세 정거장을 더 가면 웰빙의 도시 팡우(Finhaut)에 도착한다.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마을을 돌아보는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곳이지만 팡우만 꼼꼼히 들여다봐도 복지국가 스위스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알프스산맥에 위치한 마을들은 과거부터 자연에서 쉼과 건강을 얻고자 찾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유럽 전역에서 환자와 노인, 쉼이 필요한 사람들이 수 세기 동안 수없이 방문했다. 무선 기술을 발명한 마르코니가 살벙에 머물렀던 것과 같은 이유다. 팡우 역시 오래전부터 휴양도시로 유명했다고 한다.

프랑스 국경과 등을 맞대고 있는 데다 알프스의 깨끗한 물과 공기 덕분에 서유럽에서 많은 사람이 쉼 없이 드나들었다. 더욱이 팡우는 잘 구비된 호텔들 덕분에 영국 사람들이 휴가와 요양을 위해 많이 찾았다고 한다. 오늘날의 팡우는 관광객이 적다. 휴양지로 얻는 수익보다 큰 자원을 가졌기 때문이다. 바로 에모송(Emosson)댐이다. 바베린(Barberine)댐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댐은 매일마다 어마어마한 전기를 생산해낸다. 이 전기는 팡우 근처 스위스 도시는 물론 국경 너머 프랑스에까지 공급된다. 당연히 전기세는 톡톡히 받는다. 발레주에서 최고 부자마을이 된 팡우는 더 이상 외지인을 위한 휴양시설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댐은 전기 생산 외에도 에모송 인공호수를 보러 온 관람객 덕분에 인기가 높다. 단순 관람뿐 아니라 작은 배낭을 메고 댐 주변 하이킹 코스를 걷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팡우역에서 댐까지는 걸어서 2시간 남짓 걸린다. 하지만 이동할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하고 차량 접근도 쉬워 이곳에 왔다면 댐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더구나 트레킹의 천국인 스위스에서 청정자연을 걸어올라 댐에 다다른다면 댐과 호수를 돌아보는 것만큼 트레킹도 추억이 될 것이다. 팡우에서 둘러볼 곳이 댐이 전부는 아니다. 팡우의 진짜를 보고 싶다면 주민이 사는 마을에 가봐야 볼 수 있다. 주민이 고작 300명 남짓한 도시인데, 마을로 들어서면 정말 없는 게 없을 정도로 알차게 들어선 복지공간에 놀란다.

50명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실내수영장에 다양한 종목이 가능한 체육시설과 강당, 사방으로 이어진 트래킹 코스에 자세한 안내도와 이정표들, 여기에 최근 통나무로 지은 실내 클라이밍 암장까지. 자연에서 누릴 수 있는 온갖 레포츠 시설이 완비돼 있다. 알고 보니 팡우는 유럽에서 소문난 자전거의 고장이기도 하다.

산책코스와 트래킹코스뿐 아니라 다양한 산악자전거 코스를 보유해 자전거와 관련한 세계적인 이벤트가 많았다고 한다. 마을 중심엔 오랜 시간 팡우와 관련한 자전거 자료를 빼곡히 모아놓은 작은 박물관도 있다. 대낮에도 걸어 다니는 사람 한 명 마주치기 힘든 작은 마을인데 복지와 그에 걸 맞는 시설은 너무 훌륭했다. 기회가 된다면 이곳의 주민으로 팡우에서 1년 정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알프스 최고봉 몽블랑에 오르다

스위스 마티니에서 출발한 산악열차는 10개의 정거장을 지나 프랑스 국경을 넘는다. 출발하고 고작 1시간 남짓이다. 그리고 5개 역을 더 지나 프랑스의 지붕인 종착역 샤모니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90분이 짧지만, 결코 짧지 않다. 거듭 얘기하지만 난 일주일간 이 일대에서 머물렀다. 종착역의 정식 지명은 샤모니 몽블랑(Chamonix Mont-Blanc). 몽블랑이라고 하면 동명의 만년필 브랜드를 떠올린다. 사실 이 브랜드의 로고도 몽블랑산(4810m)을 상징하고 있다. 더욱이 만년필 펜촉에는 몽블랑 높이를 의미하는 4810이란 숫자가 찍혀있다.

기차에서 내려 역을 벗어나면 이전까지 마을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활기찬 거리가 등장한다. 번화한 도심의 모습과 비교하면 소박하지만, 청정 자연에 조성된 아름답고 풍요로운 마을을 찾아온 사람이 의외로 많다. 샤모니는 전 세계 등반가들 사이에서 알피니즘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장비가 좋아지고 다양한 등산 루트가 생겨난 요즘도 오르는 데 여간 어렵지 않은 몽블랑. 1786년 미셸 가브리엘 파카드(Paccard Michel Gabriel와 자크 발마(Balmat Jaques)가 이곳을 정복하면서 세계의 산악인들이 몽블랑을 비롯해 8,000m급 고산에 눈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그들이 세계 최초로 정상에 오른 이후에도 100년이 넘는 시간 몽블랑은 많은 산악인을 죽음으로 내몰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샤모니 거리를 걷다가 마을 중앙에 들어서면 손가락으로 몽블랑 정상을 가리키는 두 남자의 동상을 만났다. 미셸 가브리엘 파카드와 자크 발마의 동상이다. 지금이라도 짐을 꾸려 몽블랑을 향해 출발할 것처럼 둘의 표정에 생기가 묻어난다.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은 과거 두 남자가 올랐던 코스를 따라 몽블랑에 올라본다. 이곳에는 200여년의 시간을 지나오며 두 사람이 걸었던 초등 코스 외에도 이미 무수한 등산로가 생겨났다.

그들이 올랐던 길 역시 몇 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트레킹을 즐기는 이로 하여금 난이도와 시간에 맞춰 도전할 수 있게 프로그램화되었다. 샤모니 어디에서도 올려다볼 수 있는 봉우리 에귀 뒤 미디(3,842m). 이곳은 평소 등산을 즐기지 않았던 사람도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샤모니의 명물인 케이블카 덕분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접경지에 솟아올라 있는 이 봉우리는 ‘한낮의 바늘(Aiguille du Midi)’이라는 이름처럼 맑은 태양이 뜨는 날이면 뾰족한 정상이 바늘처럼 반짝인다.

샤모니까지 왔는데 등산이 꺼려진다고 정상탈환까지 포기하면 아깝다. 에귀 뒤 미디 산 아래에 있는 탑승장에서 케이블카에 오르면 해발 2,317m에 위치한 플랑 뒤 레기유까지 올라간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케이블카에서 샤모니 시내를 내려다보면 세상을 다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능선을 따라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플랑 뒤 레기유에 내리면 에귀 뒤 미디로 향하는 케이블카로 갈아탄다. 여기서 오르는 케이블카는 별도의 기둥 하나 없이 외줄에 의지한 채 정상까지 올라간다. 산세를 해치지 않고 자연 그대로 관광자원화 시킨 이들의 기술이 놀랍다. 정상과 가까워지면 케이블카는 수직으로 서 있는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오른다. 창밖으로 보고 있으면 돌에 부딪힐까 봐 아찔하다.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세상은 계절을 막론하고 겨울왕국이다. 사방으로 눈과 얼음이 새하얗게 펼쳐져 있어 장관이다. 경사면은 고드름이 음표라도 되는 양 리드미컬하게 달려있다. 산 아래는 한여름이었는데 신비롭다. 정상 전망대 한 편에는 하늘에 떠 있는 모습을 기념사진으로 촬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낭떠러지 위에 투명한 부스를 만들어놓았는데 관광객에게 필수 인증코스가 됐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고 알프스를 떠나왔다. 찾아가기 불편하고 대중적이지 않아서 추천하긴 힘들다. 하지만 도시 생활이 힘들고 사람과의 관계가 흔들릴 때, 어딘가 멀리 떨어진 청정자연으로 떠나고 싶다면 이곳은 좋은 답안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