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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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9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프랑스] 도시분류 : [샤르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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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삶을 꾸밀 줄 아는 사람들의 도시

유럽에 처음 가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서양 문화의 수천 년 역사를 볼 수 있는 파리, 로마, 베네치아, 프라하, 베를린, 빈 등에 끌리게 마련이다. 이런 큰 도시를 보기에도 시간은 한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바쁜 일정 속에서 작은 도시가 주는 소박한 멋과 여유에 눈 돌리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2003년에 떠난나의 여행은 복잡한 도시와 빽빽한 일정에서 벗어나 작은 도시들을 거닐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나의 여행지는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샤르트르. 이 곳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은 소박하고아기자기한 그 곳 사람들의 인간성에 대한 놀라움과 흐뭇함이라고 하면 적절할 듯하다. 나는 이 도시에서 샤르트르 대성당의 평안함과 거대함 외에도, 사람은 진정 아름다운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물 다섯 가지 길 이야기

샤르트르에 살던 한국인 친구마저도 발견하지 못한 것을 내 카메라가 발견해 지금도 여간 자랑스럽지가

않다. 어느 여름 날, 나는 뜨거운 거리를 걷다 잠시 멈춰 휴식을 취했다. 그때 문득 내 눈에 개구리가 보

였다. 그것은 벽에 붙은 작은 간판이었다. 'rue de la Grenouillere(개구리 길)!' 보자마자 웃음이 나 일

단 사진부터 찍었다. 찰칵!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rue de la porte Morard(모라의 길)' , 'rue

aux Pretres(성직자의 길)' , 'rue des Poulies(도르래 길)', 'rue de Puits d' Or(황금 우물의 길)' , 'rue

aux Cois(침묵의 길)' , 'rue de Pot Vert(초록 항아리의 길)' , 'rue de la Foulerie(가죽 압착 공장 길)'

등 인상적인 길들이 속삭이듯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길이 말을 한다면 거짓말일까? 더운 날씨 탓인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는데, 나는 사람들이 길을 만들어 놓고 숨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이 곳의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모양들은 샤르트르 사람들의 미적 감각을 충분히 드러냈다. 길의 각 디자

인마다 개성과 위트가 넘쳐나는데다 그 안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있었다. 개구

리 길은 작은 골목에서 개구리가 튀어나와 나를 따라올 것만 같았고, 성직자의 길에서는 구도자처럼 참

회하는 기분으로 걸어가야 할 것 같았다. 도르래 길에 있는 집들은 왠지 프라하처럼 집집마다 그 안에서

장난감을 만들고 있을 것 같고, 초록 항아리 길에는 구석구석 예쁜 정원이 숨어 있을 듯한 느낌이 들었

다. 특히 황금 우물의 길은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는데, 표독스러운 여자의 얼굴과 그녀의 손에 가방

처럼 들려있는 우물의 이미지가 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어떤 전설과 관련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게

했다. 황금 우물에 욕심을 낸 못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보았다. 또, 닭 그림의 표지가 붙

은 침묵의 길도 재미있다. 닭은 프랑스의 상징이기도 한데, 이 길은 '닭처럼 말이 많은 당신이지만 여기

서 만큼은 입술을 막고 조용히 가야한다' 고 은근히 비꼬며 충고하고 있는 듯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대

단한 수다쟁이들이니까 말이다. 길에서 얻은 독창성에 흐뭇해진 마음으로 길을 따라가다가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벤치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 그의 옆엔 주차 금지 팻말이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여기는

잠자는 곳이 아닙니다' 라는 표시 아니면 정반대로 '나를 깨우지 마세요' 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

였다. 왠지 정겨워지는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이 도시가, 이 마을이 이방인의 땅 같지만은 않았다.

2만 9천 시간을 들여 만든 집, 메종 피카시예트

여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친구가 소개해 준 노부부의 집으로 땀을 아끼지 않으며 걸어갔다.그 곳은 시내 중심에서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는 거리에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집' 이라는 강력한 추천에 매번 그렇지만 나는 또 한번 속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좁은 골목으로 보이는 입구의 갑갑함과 떠돌이 고양이의 음침한 시선은 아름답기는커녕 으스스했고, 적은 돈이지만 입장료를 내는 일이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정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순간 우리는 다른세계로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삶에 대해 무척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집을보니 삶을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이 어디선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이 곳은 기쁨이 충만한,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에덴이었다. 꽃과 도자기로 만든 정원, 도자기 조각만으로 세운 성... 이 곳은 꽃과 도자기로 만든 천국이었고, 결코 슬픔이나 눈물 따위는 들어설 수 없는 집이었다. 그 때의 인상을 글로 쓰기란 참으로 어렵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 미묘한 느낌들이 시선가는 곳마다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도자기 조각을 만든 것들은 여백 없이 빡빡하게 장식돼 있었지만 전혀 조잡하지 않고 오히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어느 한 곳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또 '집이란, 정원이란 이렇게도 지어질 수도 있구나' 하며 다시 한 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도자기와 타일 소재가주는 독특함과 인간이 가진 아기자기한 감수성이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벽에는 프랑스의 거의모든 성당이 모여 있고, 정원에는 남자와 여자의 상이 주인을 대싱하고, 어설픈 에펠탑도 꽃들 사이에 귀엽게 솟아 있었다.

타일로 만들어진 의자가 행복한 남녀를 초대하는 그 세계에서는 생화와 조화의 구별조차 무의미했다. 이 인상적인 집을 노부부둘이서 꾸미는데 무려 2만 9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노부부는 어디에 있을까 궁금했지만, 길에서처럼 이번에도 역시 이 세계를 만든 주인공은 만나지 못했 다. 만약에 만났다면 나도 그들처럼 늙어가길 소망하며 억지로라도 사진 촬영을 했겠지만, 끝내 그들은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