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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구분
[2006년 01월호] 대륙분류 : [북아메리카] 국가분류 : [캐나다] 도시분류 : [재스퍼]
기사제목
[ESSAY] 물과 빛에 취한 로키에서의 이틀 Jewel of the ROCKIES
| 학창시절, 유키 구라모토의 ‘Lake Louise’를 들으며 루이즈 호수의 어떤 점이 그를 이토록 서정적이게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나는 바로 인터넷을 뒤져 이 루이즈 호수가 로키 산맥에 있으며 세계 10대 절경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누가 무슨 권리로 ‘세계 몇 대 무엇’을 정하는지 정말 궁금한데다 그 속에 숨은 일방향성엔 결코 동의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유키의 피아노 선율이 머릿속에 맴도는 한 그곳은 내게 있어 몇 년간 세상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 1위였다. 소원을 이루고 2년이 지난 지금도 로키는 그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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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JUNE, 04:00 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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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루하고 불편했던 그레이하운드 버스에서의 밤이 지나고 밝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차창 양옆으로 깎아지른 산들이 뉘엿뉘엿 뒤로 흘러간다. 로키산맥. 저 이름 없어 보이는 봉우리들 하나하나가 우리나라 최고봉인 백두산, 한라산보다도 훨씬 높은 것들이라 생각하니 새삼 그 규모가 놀랍다. 하긴 그 험준함 덕에 아직까지도 인간의 손길에 닿지 않은 채 살아남을 수 있었겠지만.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험한 산맥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쭉 뻗은 4차선 도로라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조그마한 태백산맥을 가로지르는 영동고속도로가 최근까지도 고속도로라 불리기 민망한 수준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하늘을 뚫어버릴 듯한 기세로 날을 세운 산들과 햇빛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강이 만들어 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원초적인 풍경이다. 높이가 수십 미터는 되어 보이는 캐나다의 거대한 침엽수림도 산의 실루엣 앞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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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JUNE, 09:00 AM |
| 화이트혼은 루이즈 호수 스키장이 위치한 해발 2,057미터의 산이다. 이곳은 산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뛰어나며, 여름에도 스키장 곤돌라를 개방한다. 곤돌라 이용권(학생 19.95달러)을 사면 아담한 랏지에서 꽤 정갈하게 마련된 아침 뷔페를 먹을 수 있다. 전날 오후 3시 이후 거의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어서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배고픔을 해결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동양인은 나 하나 뿐. 아직 깃발 든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전이라 그런지 비로소 중국인 천지인 밴쿠버를 벗어나 캐나다 본토(?)로 들어온 느낌이 든다. 곤돌라를 타고 산을 올라가니 루이즈 호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제일 높은 두 산인 템플(3,453 미터)과 빅토리아(3,459 미터)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그 품 안에서 에메랄드 색으로 빛나는 루이즈 호수가 보인다. 과연 로키의 보석(Jewel of the Rockies)이라 불릴 만 하다. 옆에 서 있는 일본인 할아버지들은 사진이 취미인지(아니면 직업인지) 기다란 망원렌즈와 무거운 삼각대까지 가지고 올라왔다. 이 정도 거리에서 저런 망원렌즈로 찍는다면 정말 환상정인 사진이 나올 것 같다. 내게는 28밀리미터 광각렌즈뿐, 하지만 아쉬움은 없다. 이곳은 말 그대로, 카메라를 갖다 대기만 하면 그림이 나올만한 곳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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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JUNE, 11:00 AM |
| 밴프와 재스퍼 국립공원 일대는 그리즐리(회색 곰)와 검은 곰의 최대 서식지다. 정부도 이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어, 곰과 마주쳤을 때의 대처방법이나 곰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을 알려놓은 표지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흔히 알려진 ‘죽은척하기(Play Dead)’의 방법이 실제로 통한다는 것이다. 항상 통하는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잘 골라서 써야한다. 곰이 새끼나 자기 먹이를 지키려고 공격하는 이른바 ‘방어적 공격’일 때는 이 죽은척하기가 효과를 발휘한다. 배를 깔고 엎드려 발을 벌리고 두 손으로 목과 머리를 감싸고 꼼짝도 하지 않으면 곰이 와서 씩씩거리다가 그냥 돌아간다고 한다. 하지만 배가 고파 공격하는 ‘포식성 공격’일 때는 오히려 모든 힘을 다해 소리 지르고 돌을 던지며 미친 듯이 저항해야만 위기를 모면할 가능성이 조금이라고 생긴단다. 이때 만약 죽은척하기를 한다면 그야말로 아주 곱게 곰한테 봉변을 당하는 꼴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곰의 공격이(보통의 경우 곰은 사람을 피하며 공격해 오는 일은 드물다고 하지만) 방어적인 것인지 배가 고파 그러는 것인지 별로 확실치 않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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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JUNE, 19:00 PM |
|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버스를 탄 데다 곤돌라를 타기 위해 왕복 3킬로미터 정도를 걸었던 터라 피곤해서 일찍 숙소로 들어왔다. 레이크 루이즈 알파인센터는, 여태까지 내가 묵어 본 인터내셔널 호스텔 중에 단연 최고라 할 만 하다. 아늑하고 깨끗한 응접실과 전혀 삐걱거리지 않는 튼튼한 원목 2층 침대, 머리맡에 달린 할로겐 독서등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가이드북에서도 ‘천국’ 이라는 둥 ‘궁전’이라는 둥 극찬을 아끼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나보다. 오늘 밤, 이틀 만에 편안하고 안락한 잠을 청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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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JUNE, 09:00 AM |
| 가이드북과 달리 레이크 루이즈 정션에서 루이즈 호수와 모레인 호수까지 가는 무료 셔틀버스의 운행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성수기인 6월 27일 이후부터나 가능하단다. 루이즈 호수(5킬로미터)와 모레인 호수(15킬로미터)까지의 거리가 결코 만만치 않아 자전거를 빌려 (35달러/일) 가기로 했다. 지난번 미 서부지역 여행 때 샌디에이고의 포인트 로마에서도 그랬지만 오르막길을 두 시간 이상 자전거로 오르기란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더군다나 여긴 로키산맥의 한 가운데다. 오르막의 수준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자전거를 타기보다는 거의 끌어가며 30여 분간 오르막을 오르자 모든 고생을 보상하고도 남는 환상적인 광경이 나타났다. 새파란 하늘, 눈 덮인 빅토리아산, 에메랄드빛 호수와 빨간 보트들이 만드는 색채의 대비는 말이나 글로 설명하기 참으로 힘든 풍경이었다. 이세상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 푸른 빛깔의 호수를 바라보며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으니 강가에 묶여 있던 보트들이 하나 둘씩 물 위로 나오기 시작한다. 둘, 셋씩 짝지어 노를 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나도 일행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상념은 접고 다시 길을 떠났다. 호수 뒤쪽으로 난 트레킹 코스를 따라 한 시간쯤 올라가면 여섯 빙하 고원(Plain of Six Glaciers)에 닿는다. 빅토리아 산에서 내려오는 빙하들이 이곳을 통해 루이즈 호수로 녹아내린다. 6월말인데도 길은 꽁꽁 얼어있었고, 빙하 때문에 날카롭게 깎여 나간 절벽과 거기서 떨어져 나온 빙퇴석들 뒤로 멀리 보이는 루이즈 호수는 여전히 에메랄드빛으로 보석처럼 반짝였다. 모레인 호수로 가는 길은 정말 길다. 지도상 거리는 15킬로미터여서 샌디에이고에서의 30킬로미터 자전거여행을 떠올리며 도전했지만, 내 체력이 그새 약해진 건지 아니면 코스가 험한 건지(그곳까지 가는 길이 거의 대부분 가파른 오르막길이어서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코스이기는 했다), 여하튼 이 구간을 지나며 나는 말 그대로 반쯤 죽다가 살아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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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JUNE, 03:30 PM |
| 두 시간 여의 고행 끝에 도착한 모레인 호수의 첫인상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루이즈 호수보다 더 짙은 에메랄드빛이라던 호수는 흐린 날씨 때문에 제 색을 발휘하지 못했고, 호수를 감싸고 있는 산들 중 앞쪽 절반은 황량한 바위 절벽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무슨 벌레가 그렇게 많은지, 벌레들은 옷 위든 아래든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어 사람 신경을 박박 긁어놓았다. 그렇게 힘들게 올라왔건만 겨우 이 모양이라니…. 투덜거리며 돌아갈 생각을 하다 억울한 마음이 들어 입구 쪽의 바위산을 헉헉거리며 올라가 보았다. 그 때 신은 모레인 호수의 참 풍경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다. 때마침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민 햇빛 아래에 드러난 모레인 호수의 자태가 아니었다면 돌아오는 내 마음도 몹시 우울했으리라.투덜거림에서 탄성으로 바뀐 내 감정만큼이나 내려갈 때의 기분은 올라올 때의 그것과 완전히 극을 이루었다. 2시간 넘게 올라갔던 길을 단 30분만에 달려 내려오면서 느낀 그 스피드감이란! 자동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나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는 그 평범한 진리를 새삼 가슴에 깊이 새겨 넣었다. (권재현 서울 성북구 종암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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