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에서 루체른까지

독일에서 여행 준비를 한 우리 가족은 2005년 10월 28일, 스위스로 출발하며 대장정의 막을 올렸다. 슬슬 여러 걱정이 앞선다. 큰 차를 운전한 경험이 없어 괜찮을지, 지도만으로 과연 유럽 여러 나라들의 곳곳을 잘 찾아다닐 수 있을지 등등 여러 가지들로 다소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일단은 부딪혀보자. 길을 잃으면 헤매면 되는 거다. 독일의 평소 겨울 날씨와 달리 그날은 아침부터 쾌청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를 빠져나와 고속도로에 진입, 30분 정도 운전을 하니 그런대로 운전이 익숙해진다. 마음도 편안하고 뭔가 잘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게다가 독일어와 영어가 되는 두 통역이 있지 않은가.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독어권이기 때문에 둘째 녀석이 인간 네비게이션이 되기로 했다. 예정보다 늦은 출발로 일단 스위스 바젤에서 자기로 결정, 가이드북을 보고 캠핑장을 찾아갔다(신기하게도 정확하게 도착했다). 아니, 이 밤에 이렇게 잘 찾을 수가 있단 말인가? 로봇 운전수는 속으로 감탄했다. 캠핑카를 주차하고 샤워장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한 후 오랜만에 한국 음식을 맛보았다. 김치와 소시지를 넣은 부대찌개에 좋아하는 소주 한잔,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옆에 있으니 세상이 다 내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오는데 코 큰 할아버지가 날보고 뭐라고 한다. 독어인 것 같아 둘째 통역을 불렀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는단다. “코리아!”라고 했더니, 무척 좋아하면서 손으로 저쪽을 가리킨다. 거기엔 빨간색 마티즈 한 대가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헝가리인이었는데, 헝가리에까지 마티즈가 팔리니 괜히 뿌듯했다. 10월 29일, 오전 8시 30분에 바젤에서 그린델발트로 향했다. 한참 동안 안개 속을 헤집고 가니 갑자기 앞이 뻥 뚫리면서 알프스가 나타난다. 몇 년 전에도 융프라우에 다녀왔지만 직접 도로를 달리며 보니 거대한 사진 한 장이 바로 앞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환상적인 풍경에 절로 신이 나 엑셀레이터에 힘이 들어갔다. 그린델발트가 가까워지면서 터널을 통과하자 왼쪽 차창 너머 거대한 호수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곳이 바로 그 유명한 툰 호수였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 아래 알프스가 한눈에 보인다. 날씨도 우리를 반기는구나. 이제 차를 세우려는데 캠핑장 한 곳은 벌써 만차고, 다른 한 곳은 하루 입장료가 100유로다. 너무 비싸 철수하고 조금 더 올라가니 그린델발트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 있다. 정면에는 눈으로 뒤덮인 베터호른, 슈테크호른, 아이거봉들이 우뚝 서있고, 가격도 20유로로 저렴했다. 주차 후, 점심을 간단히 먹고 오후에는 하이킹을 하기로 했다. 비수기라 곤돌라 운행을 중단해 3시간 30분 동안 꼭대기까지 하이킹을 하는데, 고산지대라 두통이 오기 시작했다. 저혈압이 있어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캠핑지를 아래로 옮겼다. 저녁 무렵, 캠핑장 두 곳을 들렀으나 며칠 전에 휴장했단다. 마지막 남은 한 곳에 들어서니 석양을 그대로 비추는 호수, 호수를 둘러싼 산, 멀리 그림 같은 집들이 보인다.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있는데, 알고 보니 바로 이곳이 오전에 지나쳤던 툰 호수였다. 우리는 호수 제일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한참동안 호수를 바라보았다. 물 위를 떠다니는 백조와 오리들은 사람이 다가오면 먹을 것을 달라고 그 긴 목을 쭉 뺐다. 오후 12시 30분, 툰 호수를 출발해 계속 달리니 알프스 산맥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길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곳, 티틀리스 산을 향해 왕복 2차선의 좁은 길을 굽이굽이 오른다. 길이 험해서 그런지 버스나 큰 차는 아예 보이지 않고 형형색색의 오픈카와 오토바이만 오갈 뿐이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만년설이 손에 잡히고 아래에는 만년설이 녹아 형성된 작은 호수가 보인다. 산 정상을 넘으려니 숨이 꽉 막힌다. 게다가 오른쪽은 보기만 해도 아찔한 천리만길 낭떠러지다. 현기증과 함께 손이 땀이 찼다. 2단 엔진 브레이크로 조심조심 내려가니 뒤에 스포츠카도 추월하지 못하고 졸졸 따라온다. 턱수염인지 머리카락인지 알 수 없는 털을 휘날리며 달리는 바이크 마니아들만이 잽싸게 차 사이를 빠져나갔다. 2시간에 걸쳐 한참을 내려가니 커브길에 아까 지나간 바이크가 사람과 함께 나뒹굴고 있다. 그러게 조심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