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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구분
[2006년 11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이탈리아] 도시분류 : [피렌체]
기사제목
[ESSAY] 꽉자, 24살의 선물 EUROPE
| 2006년이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은 날, 운동화 끈을 매다가 문득 내가 이 신발을 신고 어떤 길을 걷고, 뛰었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생일이 다가오면 생일여행을 떠나던 나, 동생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야심한 밤에 떡볶이를 만들던 나, 말수만큼이나 웃음이 많은 나, 장국영을 너무나 좋아해서 그가 나온 중국 영화는 다 섭렵해버린 나, 초여름의 바다와 가을의 하늘을 좋아하는 나, 슬픈 일이 있으면 전화기 붙잡고 펑펑 우는 나, 술을 마시면 벽을 붙잡고 웃는 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지난 24년 간의 내 인생을 통째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러고 보니 24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잘 살아온 것 같다. 그런 내가 고마워서 선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스럽게 꿈꿔오던 35일 간의 유럽여행이라는 선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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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푸치노 한 잔에 미소짓다 |
| 여행을 하면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여행을 떠나기 직전까지의 시간인 듯하다. 그 설렘의 최절정을 나는 인천공항에서 느꼈다. 48L의 가방을 꼭 끌어 앉고 커다란 건물 속에 서있는데 웃음이 튀어나오고 만세 삼창을 하고 싶은 간질간질한 기분. 공항 창문에 맺힌 빗물마저도 지금은 로맨틱하게 보일 뿐이다. 꿈이라면 깨지 않기를. 앞으로 내게 어떤 일들이 생길까? 잘은 몰라도 이 여행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니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겐 소중한 선물이 될 것 같다. 첫 여행지인 벨기에의 브뤼헤에 도착하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빨간 우산을 쓰고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촉촉이 젖은 건물들을 하나하나 눈여겨보았다. 어쩜 이 곳은 이렇게도 비와 잘 어울리는 것일까? 성당 앞을 지날 때,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빛에 이끌려 들어가니 자상한 표정의 성모 마리아 상이 나를 맞이한다.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아주머니를 보니 울컥 눈물이 나려 한다.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괜찮아, 라고 말하는 듯 미소를 짓고 있는 마리아 상 앞에서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여행을 하며 알게 모르게 느꼈던 외로움과 고독감이 밀려온다. 다시 빨간 우산을 쓰고 호스텔로 가던 길에 아담한 카페를 발견했다. 따뜻한 뭔가가 필요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카푸치노 한 잔에 몸을 녹이고, 잔잔히 들려오는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맛있는 커피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 같다. 각설탕 하나를 입에 물고 아직도 외롭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외롭지 않았다면 이런 기분도 느껴보지 못했겠지? 나는 아직도 브뤼헤에서 마셨던 카푸치노 한 잔의 향을 잊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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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 피렌체. 다시 올게 |
| 야간열차를 타고 이탈리아 피렌체에 도착하니 이른 아침이다. 몸은 피곤하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소설책의 배경이 되었던 두오모에 조금이라도 일찍 오르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계단을 오를 땐,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피렌체의 전경을 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가뿐하다. 땀 한 줄기가 이마에서 흘러내릴 때 쯤, 붉은 지붕과 파란 하늘이 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벽에는 연인들이 남긴 사랑의 흔적이 새겨져 있다. 이 곳에서라면 누구든지 사랑하는 이가 생각날 것 같다. 벽에 기대어 앉아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무르며 피렌체의 전경과 전망대를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내 옆에 앉아있던 한국인 커플이 말을 걸어왔다. “혼자서 왔나요? 참 멋진 곳이죠?” “네. 어쩐지 모두들 사랑하는 사람과 온 것 같아서 심통이 좀 나네요.” “멋진 곳을 이렇게 찜 해 놓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다시 오면 되죠. 아름다운 곳은 시간이 가도 아름다우니까요. 좋은 여행하시길 바래요.”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곳엔 다 가보려고 했고, 더 많이 보려고 시간을 쪼개 건성으로라도 눈도장을 찍어댔다. 그러다보니 내가 뭘 봤는지 기억나지 않고, 뭘 느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구나. 나는 다시 이곳에 올 수 있구나. 그때까지, 이곳은 여전히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좀 여유로워졌다. 다음엔 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곳에 와야지. 그리고 아주 오래 이 아름다운 건물들을 바라봐야지. 그저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생각하니 이런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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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게 뭐예요? |
| 35일의 여행 일정 중에서 프랑스에서만 2주일의 시간을 보냈다. 1주일 간은 파리에서, 그 이후에는 프랑스의 남쪽에 있는 소도시들을 돌아 다녔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가끔씩 프랑스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그곳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들이 떠오른다. 프랑스 파리에서, 영어로 ‘몽마르트 언덕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나 영어 몰라’하고 휙 뒤돌아 가버리는 빠리지엥. 갑자기 사기가 확 꺾인다. 지나가던 관광객들 뒤를 졸졸 좇아가니 커다란 샤크뢰쾨르 성당이 나타난다. 아! 여기가 몽마르트 언덕이구나! 그 뒤에서는 거리의 음악가들이 연주를 하고, 옆에서는 사람들이 햇빛을 맞으며 쉬고 있다. |
나도 성당 앞 계단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프랑스 아비뇽에 살고 있다는 마크. 어쩐지 범상치 않아 보이는 그를 보고 있으니 문득 묻고 싶은 것들이 생긴다. “마크,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해요?” “살아가는 순간순간을 즐기는 것이 아닐까? 맛있는 밥을 먹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으로 여행을 가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이렇게 몽마르트 언덕에 가만히 앉아서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도 인생을 즐기는 것 중 하나겠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중요하지 않나요?” “많은 돈을 벌고, 좋은 옷을 사고, 좋은 집을 사고. 그런데 죽고 나면 그것도 소용없어. 내가 죽을 때 나만 죽는 거니깐. 세상도 같이 죽어주진 않거든.” “그럼, 돈이 많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는 건가요?” “남들이 뭐라고 하던 내가 행복한 것을 해야지. 한 철학자가 있었어. 그는 괴팍해서 남들처럼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열심히 일을 하지는 않았어. 돈이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지. 누더기 옷을 입고 지냈지만 그 옷이 편해서 좋다고 했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하고, 관심이 가는 것이 생기면 그것에 대해서 공부했어. 그렇게 자신의 생각만을 고수하며 평생을 살다가 그도 인간이기에 죽었어.
그 후 그의 생각은 철학으로 남았고, 사람들은 그를 철학자로 기억하게 되었지.” “와~멋진 이야기에요. 나는 영화 아멜리에를 보면서 아멜리처럼 행복을 주위 사람들에게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그래, 사람마다 자신만의 이상향이 있지.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그것을 잊지 않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한다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어. 우주도 끝이 없는데,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지.” “그런데 한국에서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해요.” “한국은 달리는 자전거라서 그래. 지금 멈추면 한국의 성장도 멈추거든. 그럼 쓰러지는 수밖에 없어. 그래서 사회가 열심히 일하라고 부추기는 거야.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 자유롭게 살아!” 인생 선배 같았던 마크,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왠지 속이 시원해진다. 무리하며, 위만 올려다보며 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너도 나도 힘들다는 취업난에 사회로 나간다는 것 자체에 지fp 겁을 먹고 있었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어야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자유롭게 살라고 말하던 마크, 그는 여전히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자유롭게 지내고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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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시스의 바다는 파란 비단 같다 |
| 여름이라 그런지 너무 덥다. 이런 날엔 수영이라도 하고 나면 살 맛 나겠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내 손은 짐을 싸고 있었다. 지중해로 가자! 거기서 수영이나 실컷 하자는 생각에 프랑스 남쪽에 있는 까시스 행 기차표를 구입했다. 까시스는 프랑스 사람들이 즐겨찾는 휴양지인 듯 했다. 니스 근처에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의 안 보인다. 까시스에서 본 지중해는 바람에 흔들리는 파란 비단 같다. 이런저런 생각할 것도 없이 지중해 속으로 뛰어들어 땀을 식히고, 파도와 놀았다. 온 몸에 힘을 빼고 출렁이는 물결에 몸을 맡긴다. 내가 엄마 뱃속 양수 속에서 지냈던 10달도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해안가에서 선글래스를 낀 채 온 몸에 오일을 바르고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니 영화의 한 장면 같다. |
| 저녁에 산책이나 할 겸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등대에 닿았다. 작은 등대에 기대어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지중해로 빠져든다. 파도가 안녕하고 손짓하는 것 같다. 하늘은 꽃잎 색으로 물들어 운치를 더하고 옆에 앉은 프랑스 아가씨들의 말소리는 음악처럼 감미롭다. 이럴 땐 프랑스어를 모르는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되네. 지금 누군가가 “왜 살아있나요?”하고 물으면 “바다가 얼마나 감동적인지 좀 더 느끼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해야지. 그리고 이보다 더 멋진 것을 보기 위한 기대로 살아가겠다면 그건 욕심일까? |
| 여행이 끝나갈 즈음, 나는 체코의 루지네 공항에서 인천 행 대한항공 탑승을 기다리며 지난 35일 간을 되돌아보았다. 이 여행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매번 물어봤던 질문이 있었다.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뭔가요?” 사람마다 대답이 달랐지만, 하나같이 멋진 대답들이었다. 나는 여행 중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매번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지금 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뭐니?” “진심으로 세상과 마주하는 나.” 나는 그렇게 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열심히 살아갈 수 있을 거란 자신감과 함께. (곽자경 부산 사상구 모라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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