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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구분
[2007년 12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필리핀] 도시분류 : [마닐라]
기사제목
[EPISODE] 필리핀에서 테러리스트가 되다
| 지난여름 우리 가족은 필리핀, 홍콩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나이가 있으신 부모님과 함께하는 배낭여행이라 신경쓰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필리핀 마닐라에서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를 아주 어렵게 탔던 이야기는 아직도 잊지 못할 화젯거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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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칼리보)를 여행하고 마닐라로 돌아오는데 국내선 비행기가 연착되어 마닐라 공항에 늦게 도착했다. 우리가 타야할 홍콩행 비행기 이륙시간이 1시간도 채 남지 않았을 때였다.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아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해 하고 있는데, 다행히고 항공사 측에서 홍콩행 여객기 탑승객이 일찍 입국 심사를 마칠 수 있게끔 배려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입국 심사대에서 일어났다.
입국 심사관이 내 여권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순간,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몇 초간의 침묵이 흐른 뒤 심사관이 내게 옆으로 가서 대기하라고 했고, 누군가 내 여권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이유를 물었지만 잠시 기다리라는 대답뿐이었다. 비행기 탑승 시간은 다 되어가고, 가족들은 심사가 끝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이렇게 잡혀 있으니 가족들 역시 애가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잠시 후, 어떤 분이 사무실에서 나와 밀실 같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난 그분에게 "내가 왜 여기 앉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으니 설명해 달라." 고 했지만 그는 "필리핀에서 어딜 방문했느냐? 어디서 묵었느냐? 누구를 아느냐?"며 마치 범죄자 다루듯 취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당신은 1999년부터 불법무기소지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다."고 했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무엇에 맞은 듯이 멍해졌다. 난 입국시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을 했지만 그럴수록 그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그분이 다시 말을 꺼냈다. "당신은 실제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있는 사람과 동명이인이기 때문에 다음부터 필리핀 입국시 다른 사람임을 입증할 수 있는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이야기할 것이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겨우 여권에 도장을 받을 수 있었지만, 상봉의 기쁨을 느낄 여유도 없이 우리는 탑승구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해야만 했다. 극적으로 비행기를 놓치진 않았으나, 10분이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진 적도 없었던 것 같다. 필리핀 공항에서 테러리스트가 됐던 나와 애타게 나를 기다렸던 가족들에겐 정말 웃지 못할 깜짝 해프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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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현_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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