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Japan
Theme 2. Healing & Onsen

Kumamoto, Oita Healing Trip

가을의 문턱에서, 구마모토·오이타 힐링 여행
주말 내내 해가 중천에 들 때까지 잠을 자고 밀린 드라마도 챙겨봤지만 잘 쉬었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좁은 방 안에서만 보내기엔 이 좋은 가을날이 아쉬워 오로지 휴식을 목적으로 일본 규슈九州 여행길에 나섰다. 구마모토와 오이타에서 만난 산, 바다 그리고 온천은 내 안에서 힐링의 의미를 새로이 썼다.
글과 사진 김수현 기자

1 아마쿠사·레이호쿠 올레 코스에서는 아마쿠사의 자연환경이 잘 드러난다. 해역공원을 지나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에 있는 특이한 돌들과 신비로운 지형이 두 눈에 가득 담긴다. 해역공원에는 경관을 감상하고 바비큐를 해먹을 수 있는 캠핑장이 있다. 캠핑장의 가격은 가족당 500엔.

규슈 역시 질긴 더위가 쉽사리 물러나지 않은 듯했다. 비나 한번 시원하게 쏟아지면 금세 가을 냄새 물씬 날 텐데. 서울이나 규슈나 참 오래도 여름이 이어졌다. 이번 여름은 특히나 더 길지 않았던가. 지난 추석 연휴와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마주한 사람들의 옷차림은 폭염과 가뭄으로 농민들 속 까맣게 태운 그 계절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하늘 한번 올려다보고 달력에 눈길 두면 가을은 가을이란 생각이 든다. 가을은 참 묘한 계절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다 어느 지점에서 있었기는 했냐는 듯 휙 사라지지만 여운은 오래 남는다. 

살짝 열린 가을의 문 앞을 기웃대다 여름을 나며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짧은 가을 정취를 마음껏 누리고자 규슈의 구마모토熊本와 오이타大分 현으로 떠났다.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가끔 가슴 속에서 꺼내 추억하고픈 온전한 휴식이 이번 여행의 목표다. 잠시나마 바쁘고 정신없던 지난날을 머릿속에서 비우고자 향한 곳은 산과 바다 그리고 온천이다.

바람 따라 걷는 아마쿠사·레이호쿠 올레 코스

운동량을 측정하는 웨어러블 기기가 인기라지만, 하루 걷는 시간이 30분도 안되는 나 같은 이들에겐 폼 나는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위로하는 힐링 여행을 꿈꾸며 텔레비전에 이별을 선포한 나는 자연을 먼저 떠올렸다. 시간이 없어, 혹은 일과가 고단했단 것을 핑계 삼아 집에서 도보 10분 남짓인 지하철역까지 걷는 게 운동의 전부인 내가 큰맘 먹고 선택한 건 규슈의 올레 코스. 수려한 풍광을 감상하며 지역의 문화와 역사까지 알 수 있는 좋은 곳이다. 하루하루 변하는 계절을 만끽하고 자연 안에서 휴식을 찾는 여행자에겐 더없이 만족스러운 목적지고.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개장한 규슈의 올레 코스는 총 15개다. 그 중 구마모토 현을 가로지르는 아마쿠사·레이호쿠 天草.北 코스는 트레킹에 능숙한 사람에게는 쉽고, 올레길 첫 탐방객은 쉬엄쉬엄 걸으며 숲길의 매력에 서서히 취해가는 길이다. 4~5시간 걷기에만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턱없이 부족한 체력 때문에 완주가 부담스럽다면 긴 거리는 차로 이동하고 중간 포인트에 잠시 내려 산책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시작점은 토미오카 항富岡港, 이곳에서 출발해 성벽을 따라 옛길을 걷다 보면 이나리 신을 모시는 이나리 신사 .荷神社가 나온다. 초록색 나무들과 대비되는 빨간 도리이가 이제 막 규슈 올레길에 첫발을 내디딘 내게 이국의 정취를 더해준다. 그늘 한점 없는 곳에선 땀이 등줄기를 타고 쉴 새 없이 흐르지만, 무성한 나무 아래는 한참이고 쉬어가고픈 서늘함 기다린다. 그늘에서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다시 올레길을 즐기면 금세 토미오카 성富岡城이 나온다. 대규모 농민봉기인 시마바라 아마쿠사의 난島原天草一揆이 발생한 역사적 장소로 잘 알려졌지만, 토미오카 반도의 지질명소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열심히 올라온 길 못지않게 내려가는 코스도 볼거리가 한 가득이다. 토미오카 성에서본 특이한 지질들을 가까이에서 만나기 위해 올레길 표식을 따라 해역공원海域公園~시라사키이와白岩崎~토미오카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코스를 걸어본다. 작은 길 한쪽에는 늦은 오후 햇빛을 머금은 바다가 빛나고, 반대편 푸른 녹음 안에는 이파리 한 점, 두 점에 여름이 오롯이 남아있다. 아마쿠사·레이호쿠 올레 코스는 크리스찬 공양비吉利支丹供養碑, 시키성터志岐城跡로 이어지다 온천센터 앞에서 끝난다. 단풍 시즌인 10월이면 분명 청량한 공기를 들이켜려 먼 길을 떠나온 사람들로 넘칠 것이다. 가파른 계단과 평탄한 오솔길이 조화를 이루는 코스는 역경과 순탄함이 혼재하는 우리의 일상과 닮았다. 긴 구간은 차로 이동하며 짧게 체험했음에도 길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귀한 시간을 가지기엔 충분했다.

사계절 풀 향기 그윽한 그곳

“일본 건축법에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져 사람이 죽으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어요. 그래서 최근에 세운 건물들은 약한 지진쯤은 거뜬히 견딜 정도로 튼튼하답니다. 구마모토 시내 도로는 떨어진 타일을 다시 붙이는 정도였어요. 물론 시골의 집이나 문화재는 지금의 건축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지어진 까닭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컸지만 말이죠.” 여느 지역과 다르지 않은 구마모토 시내 풍경에 놀란 일행을 향해 현지 가이드가 넌지시 한마디를 건넸다. 올봄, 구마모토 현이 주목받은 건 다름 아닌 규모 6.5와 7.3의 지진 때문이었다. 과거 몇 세기 동안 영주가 자리한 도시로 이름을 떨친 구마모토 시는 지금도 규슈의 중심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인구 70여만 명이 사는 이곳의 명물은 오사카 성, 히메지 성과 함께 일본 3대 명성으로 꼽히는 구마모토 성熊本城이다. 안타깝게도 지난 4월의 발생한 강진 때문에 성의 상당 부분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당분간 출입을 막아놓은 공간도 많아 아쉬움이 크다. 현재는 복원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인데, 정부는 이번 지진을 교훈으로 삼고 성을 더욱 튼튼하게 짓기 위해 복원 기간을 15년 이상으로 잡고 있다고 한다. 긴 시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일본인 특유의 정확성과 세심함이 빛을 발할 훗날의 구마모토 성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구마모토 성을 제외한들 구마모토 시내에 볼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오래 산 이들이 추천하는 건 도심 관광이 아닌 아소산阿蘇山 여행이다. 구마모토와 오이타 두 현에 걸친 아소산은 구마모토의 자랑이다. 그동안 성을 구경하느라 뒷전으로 한 아소산을 제대로 짚어 볼 기회. 버스도 좋지만 일본 최대 칼데라 지형의 산을 구석구석 둘러보기 위해선 차를 렌트하는 것이 진리다. 반대로, 구마모토 현을 렌터카로 여행하는 이들에게도 등 떠밀며 권하고 싶은 곳이 아소산이다. 호기롭게 출발한 여행자들을 금세 풀 죽게 만드는 유일한 요소는 날씨다. 해발고도 1592미터에 이르는 산의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진짜 아소산의 장엄한 풍광을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금껏 아소산에 몇 번 이나 온 인솔자도 구름에 가려진 모습만 수두룩하게 봤다며 속상함을 내비쳤다. 고맙게도 이날만큼은 가을이 자랑하는 높고 청명한 하늘이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이 정도면 아소 다이칸보大觀峰로 가도 좋겠다는 말을 남기고 벌써 저 만치 걸어간 그의 뒷모습에선 들뜬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아소 분지가 한눈에 보이는 아소 다이칸보 전망대는 아소산 여행자들의 둘도 없는 쉼터다. 칼데라 호 안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풍경. 여기에 질세라 산봉우리에 맞닿은 파란 하늘은 굳이 특별한 수식어가 필요치 않을 만큼 감동적이다. 1년에 한 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3월경에 아소산 곳곳에선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른다. 여름철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게끔 땅을 고르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초지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이때 맞춰 아소 신사阿蘇神社에서는 불의 신을 기리며 한해의 풍요를 기도하는 축제가 열린다. 봄이든 가을이든, 울창한 자연이 산등성이 바람을 타고 넘실대는 아소산 여행은 계절과 시기를 막론하고 후회 없는 선택이다.

1 아소 다이칸보를 내려오는 중 예쁜 사슴들을 만났다. 
2 그늘 한 점 없는 산에서 더위를 씻은 듯이 가시게 해준 밀크 아이스크림. 다이칸보 아래 휴게소에서 판매한다. 나름 이곳의 명물이니 꼭 맛보기를. 
3 지진의 여파가 한눈에 보이는 구마모토 성. 검은색 기왓장이 모두 떨어진 까닭에 지붕이 하얗게 보인다. 일본의 성 중 가장 남성적이라는 구마모토 성의 옛 모습을 다시 보기 위해서는 약 15년의 시간이 필요할 듯싶다.

4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곳은 역시나 온천만 한 것이 없다. 아마쿠사 코마츠야 나기사칸은 바다 앞에 자리한 깔끔한 료칸 호텔. 전통식 료칸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경험할 수 있다. 
5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름다운 아소의 풍경을 즐기는 사람들.

1 구로카와 마을의 온천들은 모두 아기자기하다. 사진 속 료칸은 후지야 료칸. 중심가와 조금 떨어져 있는 조용하고 작은 골목길에 자리한다. 
2 구로카와의 온천을 이용하고 싶다면 이 온천 패스를 구입하자. 물론 패스 없이도 료칸에 따라 500엔에서 700엔 사이의 입장료를 내면 된다. 하지만 3곳을 1,300엔에 이용할 수 있는 것도 이득. 사용 기간은 개시일로부터 6개월이다. 
3 동굴탕으로 유명한 신메이칸 료칸. 마을 내 가장
번화가인 카와바타거리에 위치하며 규모는 마을 내에서 꽤 큰 편에 속한다. 
4 유후인의 료칸을 방문한 꼬마 손님. 

5 먹을 것, 볼 것 많은 유후인의 아기자기한 거리. 한국 여행객이 좋아하는 곳으로 여기저기서 한국어가 들려온다. 
6 자전거로 유후인을 여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페이지는 본문 일부만 발췌하여 기록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