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don Market

Shall We Go Together?

런던의 맛과 멋을 만나다

유쾌한 웃음을 지닌 노신사는 18년째 이곳에서 낡은 카메라를 팔고 있다 했다.

환한 미소가 예쁜 아티스트는 지난 3개월간 만든 작품을 들고 오늘 처음 거리로 나섰다고 했다.

넉넉한 풍채의 아저씨는 옆을 지나칠 때마다 자신이 만든 치즈를 먹어보라며 몇 번씩 건네고, 요란한 펑크 복장의 청년은 사진을 찍는 대가로 1파운드를 달라 했다. 런던의 마켓에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들.

사람에 치이고 북적이는 건 으레 짜증 나게 마련인데 시장에서만큼은 시끌벅적한 풍경이 반갑다. 깔끔한 레스토랑보다 길거리 음식에 환호하고, 고급 브랜드 제품보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담은 무명 디자이너의 옷에 열광한다. 꼬질꼬질 손때 묻은 빈티지 제품 속에서 ‘득템’의 행운이라도 누리는 날이면 그날은 운수대통한 날! 이게 바로 시장의 매력이 아닐까? 소소한 풍경 속에서 소박한 기쁨을 발견하는 곳. 앤티크 제품이 가득한 포토벨로 마켓(Potobello Road Market)부터, 젊은 아티스트를 만난 브릭 레인 마켓(Brick Lane Market), 먹거리 풍성한 보로우 마켓(Borough Market) 그리고 독특함이 가득한 캠든 마켓까지, 런던의 마켓에서 누린 행복을 전한다.
 
골동품 천국, 포토벨로 마켓
영화 ‘노팅힐’ 그리고 런던의 마켓 하면 떠오르는 곳은? 그렇다. 노팅힐의 포토벨로 마켓이다. 포토벨로 마켓은 런던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익숙할 만큼 잘 알려진 곳이다. 혹시 너무 식상하지 않느냐고 말할 참인가?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터였다. 영화 속 배경이라는 이유 말고도 말이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에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리 어렵지 않게 그 까닭을 알 수 있었다. 2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걷는 동안 만나는 수많은 앤티크 제품과 빈티지 제품들, 무언가 애틋한 사연을 지녔을 법한 골동품이 이곳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있었다.
19세기경 식품을 판매하는 시장으로 출발한 포토벨로 마켓은 오늘날 크게 앤티크 코너와 청과물 시장, 그리고 잡화 거리로 나뉜다. 특히 매주 토요일에는 골동품을 판매하는 노점이 거리 가득 들어서 풍성한 볼거리를 선사하는데, 그만큼 인파도 엄청나므로 토요일 앤티크 마켓을 구경할 생각이라면 오전부터 서두르는 것이 좋다. 거리를 따라 자리한 노점에 펼쳐진 물건은 그야말로 다채롭다. 신발, 옷, 액세서리 등은 기본이요, 골동품 카메라와 앤티크 가구, 먼지 폴폴 날리는 책과 음반, 클래식한 문양의 그릇, 손때 묻은 장난감, 낡은 가죽 제품, 오래된 장신구, 보석, 그림, 동전 그리고 기념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물건이 방문객을 반긴다. 골동품을 구경하고, 또 골동품을 파는 사람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슬슬 배가 고파질 때쯤 앤티크 마켓을 지나 먹거리를 파는 노점이 이어진다. 각 나라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데, 포토벨로 마켓의 인기 간식인 새우튀김과 크레페는 꼭 맛볼 것. 노점의 볼거리에 빠져 숍 구경을 하나도 못했는데 어느새 가게가 하나 둘 문을 닫는다. 벌써 오후 5시가 가까워져 오나 보다. 아쉽지만 작은 기념품 하나를 사들고 포토벨로 마켓을 빠져나왔다. 되돌아가는 길에는 색색의 예쁜 집이 나란히 자리한 노팅힐의 풍경이 이어진다. 어떤 집은 짙은 푸른색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고, 또 어떤 집은 파스텔 톤으로 칠해 은은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그 길목에서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집으로 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교통 지하철 Circle, Central, District 라인 Notting Hill Gate 역에서 도보 10분
오픈시간 토요일 08:00~17:00(숍과 청과물 시장은 매일 오픈)
홈페이지 www.portobelloroad.co.uk

젊은 예술가의 감성을 찾아서, 브릭 레인 마켓
이곳에 가면 젊은 디자이너들이 손수 만든 옷이나 물건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을 만큼 빈티지의 천국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마켓에 들어서서 한참을 걸어가도 그저 그런 풍경만 이어졌다. 시계, 그림, CD, 저렴한 옷, 신발, 가방 등 여느 마켓에서나 볼 수 있는, 중국이나 동남아산 물건을 가득 쌓인 곳 말이다. 다른 마켓을 찾기로 했다. 근처에 자리한 스피탈필드 마켓(Spitalfields Market)에 가려던 참이었다. 아마 ‘백 야드 마켓(Back Yard Market)’이라 쓰인 작은 간판을 보지 못했다면 나에게 브릭 인은 재미없는 기억뿐이었으리라. 사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던 간판이었는데, 그래도 괜히 한번 그곳에 가보고 싶었던 건 이제 와 생각해보면 정말 행운이었다. 브릭 레인의 백 야드 마켓에서 만난, 자신의 작품을 들고 런던으로 그리고 마켓으로 나선 6명의 젊은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교통 지하철 Circle, Metropolitan, Hammersmith&City 라인 Liverpool 역에서 도보 20분. 백 야드 마켓은 브릭 레인 거리의 선데이 마켓 근처에 있다.
오픈시간 브릭 레인 마켓 일요일 09:00~17:00
　　　　백 야드 마켓 토요일 11:00~18:00, 일요일 10:00~17:00
홈페이지 www.visitbricklane.org, www.backyardmarket.co.uk

꿈을 좇아 런던으로 날아온 그녀
“저를 소개하고 싶으시다고요? 정말요? 너무 감사해요. 제 이름은 하세예요. 일본 교토에서 왔고, 런던에서 생활한 지는 4개월 정도 됐어요. 오늘로 이 마켓에 나온 지 5일 됐고요. 일본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서 런던으로 오게 되었어요. 내년까지 런던에 머물 생각인데 만약 기회가 된다면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 꿈이에요. 잠시 후에 이곳에서 작업을 할 생각인데, 시간 괜찮으시면 보시고 가세요. 어? 제 사진이요? 그냥 이렇게 앉아 있으면 되나요? (그녀는 사진을 찍는 동안 얼굴까지 붉히면서 수줍어했다) 죄송해요. 너무 쑥스러워서……. 사진이 잘 안 나왔을 텐데 어쩌죠?”
홈페이지 d.hatena.ne.jp/HASE-78

유쾌한 청년의 진지한 그림
“반가워요. 내 이름은 파이잘 루랏이에요. 저요? 부모님은 인도 출신이고 전 런던에서 태어났어요. 브릭 레인에 나온 지는 4개월쯤 됐나? 대학에서 미술과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졸업 후 이곳저곳 여행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죠. 자유롭게 다니면서 그림도 그리고 사진을 찍기도 해요. 그럼요. 얼마든지 구경하세요. 한국에서 오셨다고요? 런던에는 얼마나 계세요? 아, 이제 며칠 안 남았네요. 남은 시간도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랄게요.”
홈페이지 experimantal.com

양말의 화려한 변신
“이름이 어려우니까 녹이라고 불러요. 애칭이거든요. 한국 잡지에 소개하신다니 너무 기쁘네요. 태국에서 왔어요. 런던에 산지는 14년이 됐고 가족도 모두 이곳에 있죠. 2007년부터 이곳에서 제가 만든 인형들을 팔기 시작했어요. 네, 맞아요. 양말로 만든 거에요. 아이의 양말을 재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인형을 만들게 되었어요. 원래 인형만 만들었는데, 얼마 전부터 스케치한 그림을 이용해서 티셔츠도 만들고 있어요. 일일이 손으로 만들기 때문에 가격은 조금 비싼 편이에요. 작은 인형은 7파운드, 중간 사이즈는 10파운드, 큰 인형은 19파운드죠. 인형 사신다고요? 어머, 감사합니다. 조금 깎아드릴게요. 하하”

잃어버린 원숭이를 찾아서
“음… 혹시 명함 있나요? (기자가 명함을 꺼내는 동안 사진기자가 ‘PRESS’가 찍힌 기자증을 내밀자 그는 그제야 미소를 보였다) 미안해요. 취재한다고 해놓고 내 그림을 카피해 가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루이스 칸프벨이라고 해요. 런던 사람입니다. 물론 모두 제가 그린 그림이에요. 로열 컬리지에서 아트를 전공했죠. 브릭 레인 마켓에 나온 지는 2년쯤 된 거 같아요. 공상과학 영화요? 네, 맞아요. 그림 속 ‘Lost Monkey’는 제가 만든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캐릭터에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거든요. 궁금하시면 유튜브에서 보실 수 있어요. 적어드릴까요? (수첩을 내밀자 그는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주소를 적어주었다. 이곳에 공개하니 독자들도 그의 상상 속 세계를 한 번 감상해 보시길. Youtube.com/thecursedfish)”
홈페이지 www.lostmonkey.eu

깜찍한 단추 귀걸이 어때요?
“한국 잡지요? 어머, 전 너무 좋아요. 오늘 여기 첫날이에요. 아니요. 다른 마켓에 가본 적 없어요. 제가 만든 물건을 판매하는 게 생전 처음인 거죠. 제 이름은 캐롤라인 글로버에요. 이 귀걸이는 지난 3개월 동안 만든 것이죠.” (우리를 소개하자 그녀의 옆에 있던 친구는 그녀가 마치 BBC에라도 출연하는 것처럼 기뻐하더니 주인보다 더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녀 친구의 이야기) “네, 마치 단추처럼 생겼죠. 실제 단추는 아니에요. 단추 모양으로 만든 귀걸이죠. 어때요? 너무 아기자기하지 않나요? 가격도 겨우 3파운드에요. 근데 잡지 이름이 뭐라고 하셨죠? 저희가 홈페이지로 볼 수 있나요? 어머! 책을 보내주신다고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호호호(그리고 그 친구는 캐롤라인을 촬영하는 우리를 촬영했다).

작품 속에 담긴 남미의 감성
“네, 얼마든지요(조금 딱딱해 보이는 인상에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걸었는데, 그는 조금 과묵할 뿐 꽤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구스타보 오티즈라고 합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왔어요. 네, 아무래도 작품에 남미 스타일이 담길 수밖에 없겠죠. 이건 그림이 아니라 콜라주에요. 종이를 붙여서 만든 것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같은 일을 했었죠. 런던에는 3년 전쯤 왔어요(그는 ‘Relationship’ 때문에 런던에 왔다고 했다. 관계라, 아마도 여자친구가 아닐까 하고 혼자 생각했다). 이 마켓에 제 작품을 들고 나온 지도 3년이 됐네요. 제 홈페이지에 가시면 다른 작품도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도 잡지를 볼 수 있을까요?”
홈페이지 www.flickr.com/photos/precolombino

군침이 절로 도는 곳, 보로우 마켓
아침을 푸짐히 먹고 갔다가 톡톡히 후회한 경험자로서 이야기하건대, 이곳에 갈 땐 최대한 뱃속을 비우고 가도록 하자. 물론 다이어트는 애당초 접어두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맛깔스러운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맛보지 못하는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말이다. 런던 브리지(London Bridge) 역 사우스와크 성당(Southwark Cathedral) 앞에 있는 보로우 마켓은 런더너들의 식탁을 푸짐히 채워주는 식재료 시장이다. 그 역사가 250년, 규모 또한 식재료 시장으로는 세계 최대라고 하니 그야말로 먹는 것에 관해서는 없는 게 없을 정도. 게다가 재료를 만든 생산자나 농산물을 재배한 농민들이 직접 판매하는 까닭에 저렴한 가격과 신선도까지 보장돼 마켓은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과 먹거리를 구하러 온 런던 시민들 그리고 이 광경을 구경하려는 관광객으로 늘 북적인다. 사과, 수박, 체리 등 탐스러운 빛깔의 과일과 그 과일로 만든 주스, 이내 펄떡거릴 듯 싱싱한 해산물, 신선함이 살아 있는 야채류, 보기에도 풍성한 소시지와 치즈, 잘 절인 올리브, 막 구워낸 빵과 과자, 달콤한 향이 맴도는 케이크와 수제 초콜릿, 홈메이드 잼과 오일 등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펼쳐지는 먹거리가 눈과 코를 자극한다. 고맙게도 상인들은 맛있게 구운 소시지와 치즈, 초콜릿 등을 큼직하게 잘라놓고선 지나갈 때마다 먹어보라고 손짓하니 이 또한 보로우 마켓을 돌아보는 쏠쏠한 재미. 마켓의 노점에서는 간단한 샌드위치나 소시지 꼬치구이, 스파게티, 홈메이드 아이스크림 등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다양한 음식도 판매하고 있어 출출할 때 끼니를 해결하기에도 좋다.

교통 지하철 Jubilee, Northern 라인 London Bridge 역에서 보로우 하이 스트리트(Borough High St.) 방향
오픈시간 목요일 11:00~17:00, 금요일 12:00~18:00, 토요일 08:00~17:00
홈페이지 www.boroughmarket.org.uk

개성 만점의 그곳, 캠든 마켓
런던의 요란한 젊은이들과 펑크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 캠든 마켓. 하지만 (기자가 방문한 날만 그랬는지는 몰라도) 온몸에 피어싱을 하고 현란한 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무리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그곳은 여느 마켓처럼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조금은 괴기스러운 독특한 외관의 상점과 감히 소화하기 어려운 특이한 패션 아이템, 두 집 건너 한 집씩 보이는 타투와 피어싱 숍 그리고 간혹 가다 보이는 자유분방한 펑크족들이 이곳이 영국 펑크족의 본거지임을 일깨워주고 있으니 말이다. 런던 북쪽, 캠든 타운 역 근처에 있는 캠든 마켓은 캠든 마켓을 비롯해 스테이블스 마켓(Stables Market), 캠든 락 마켓(Camdem Lock Market), 전자 마켓(Electric Ballroom), 캠든 운하 마켓(Camden Canal Market) 등 일곱 개의 작은 마켓이 하나의 커다란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각각의 마켓은 비슷하면서도 저마다 특색을 지니고 있는데, 캠든 마켓은 가죽 제품과 군용 장비를, 스테이블스 마켓은 옷과 다양한 액세서리를, 캠든 락 마켓은 수공예 조각품을 취급하는 식이다. 그중에서도 운하를 따라 노천시장이 열리는 캠든 운하 마켓은 물줄기를 끼고 있어서인지 복작거리는 와중에도 어쩐지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다채롭지만 다소 점잖은 포토벨로 마켓이 지루하거나 브릭 레인 마켓의 젊은 예술가들이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다양한 기념품부터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아이템, 수공예품과 빈티지 제품까지 무난함과 독특함 사이를 넘나드는 캠든 마켓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을 듯. 시장 구경에 지치면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의자에 앉아 운하를 바라보며 차 한잔 즐기는 시원한 여유도 잊지 말자.

교통 지하철 Northern 라인 Camden Town 역
오픈시간 10:00~18:00(마켓마다 조금씩 다르다)
홈페이지 www.camdenloc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