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California

Thanks, my Road!
그저 걷기만 해도 행복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 주의 국립공원들을 지나 고원의 호수와 함께 걷는 길.

자연의 숨소리를 들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여정. 일상에 치여 앞을 보기조차 암담할 때, 나는 걷는다.
사진과 글 밝은벗 이겸 여행사진작가 에디팅 채병길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어디론가 늘 떠나고 싶어 한다. 도시가 싫어서라기보다는 지쳤기 때문이다. 휴식을 취하고 돌아오고 싶은 것이다. 이따금 돌아오지 않는 여행자의 길을 택하는 이들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 어떤 선택이라도 좋다. 삶은 한 번 뿐이고 온전히 자신만이 몫이기 때문이다. 공유할 수 없는 것이 삶이다. 또한 여행이 그렇다. 빌딩 숲을 걷는 여행자의 숨소리가 불규칙하고 아슬아슬 한데 반해 숲길을 걷는 자의 숨소리는 평온함을 이어가기 마련이다. 산길을 걸으며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과 만나게 된다는 것, 생각의 정리와 마음의 정체를 살피는 것이다. 물론 집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트래킹 중엔 그보단 조금 더 좋은 조건들이 만들어진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Yosemite National Park에 발을 디디는 순간 자연의 안온함이 시작된다. 또한 1,000미터 높이로 솟아 오른 세계 최대의 거대한 화강암 절벽 엘 케피탄 El Capitan과 739미터로 미국에서 가장 높은 브라이들 베일 폭포 Bridal Veil Falls 앞에 서면 그 장엄함에 경외감을 느낀다. 우리가 자연스럽다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자연스럽다’는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송어들, 해발 3,000미터로 오르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 Sierra Nevada 트래킹의 시작점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이거나 해발 4,418미터의 마운틴 위트니 Mt. Whitney를 오르면서이다. 어느 곳에서 시작 하든지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중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걷는 즐거움은 수많은 보석들과 만나는데 있다. 보석들의 정체는 해발 3,000미터 이상에 숨어 있는 호수들이다. 호수들의 숫자가 너무도 많아서 미처 그 이름을 붙여 주지 못한 것들이 무수히 있을 정도다. 큰 고개 밑에 있거나, 큰 산을 끼고 있는 호수 들을 이름을 얻었고, 그렇지 않은 인적이 드문 곳의 호수들은 그냥 호수로 통칭되고 있지만, 이 이름 붙여지지 않은 호수들의 아름다움을 어찌 부를 수 있을지가 고민거리일 정도다.
만년설이 녹아 생긴 호수들은 산 아래와 연결된 물길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곳에 송어가 살 수 있었던 것일까? 궁금증이 생기면 답을 찾기 마련이다. 송어가 생긴 이유인즉, 하류에 있던 송어를 사냥하던 새들과 그곳을 오가던 새들에 의해 송어의 알이 옮겨진 것이다. 송어의 알들이 새들의 다리에 붙어서 해발 3,000미터의 호수에 옮겨지고 번식되었다고 한다. 확률로 보자면 희박하지만 이 또한 자연스럽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호수들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려면 일단 산을 올라가야 한다. 산 정상을 바라보며 물빛의 경이로운  출렁임을 만나게 되면 다음에 보게 될  호수에 대한 기대치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아름다움을 무엇에 비할까? 모든 것은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했던가? 고원에 이르러 느끼는 대가는 매우 달콤하다. 아름다움에 취해 발길을 옮긴다. 
아침에 일어나기 무섭게 텐트를 걷는다. 지고 다니는 집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는다. 여정이 길어질수록 식량은 가벼워지는데, 텐트는 그렇지 않으니 몸이 지칠 때는 야속하기까지 하다. 달팽이 마냥 평생을 지고 다닐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발걸음이 무겁다. 트래킹을 시작한지 11일째가 되니 몸도 표시를 낸다. 삐걱거리는 손수레마냥 걸어간다. 바지 두 개, 긴팔과 반팔 티셔츠 하나씩, 양말 4켤레, 팬티 3개, 바람막이 상의 하나, 우의 하나, 식량과 그 외에 잡다한 것들이 내 짐이다.

산중 호수에서의 풍성한 식탁
곰이 사는 곳에 객으로 들어와 걷고 있으니, 음식물로 인한 곰의 습격을 막기 위한 베어박스가 추가 되었다. 식량은 온통 탄수화물들뿐이다. 무겁고 부피 큰 것을 제외시키다 보니 밀가루를 주식으로 삼게 되어 각종 면류만으로 다양한 주식을 꾸리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베어박스의 무게가 압박으로 작용하는 것은 이것을 먹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먹을 수도 없는 4킬로그램의 원통을 트래킹을 마칠 때까지 지고 다녀야 하다니 말이다. 생각 같아선 물에 불려서 끓여 먹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를테면 압축 전분 같은 것으로 만들면 어떨까? 조금 가지고 왔던 김치마저 떨어지니, 4킬로그램의 김치와 쌀이 더욱 그리워진다.
그제, 어제, 오늘, 내일, 모레 그리고 계속 라면과 비빔면, 짜장라면의 반복이다. 조그만 베어박스에 되도록 많은 양을 넣다 보니, 조리를 끝내고 식사 시간이 되면 젓가락을 사용하지 못할 만큼 가루가 되어 있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라면의 맛? 한마디로, 좋다! ‘좋다’고 말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마저도 고맙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있을 때 놓치지 않고 축적해 두는 자취생들 마냥, 충분치 않은 식량이 식욕을 자극하는 이유이며 반찬이다. 언제 이 같은 경험을 해보랴! 맛있게 신나게 먹자! 의, 식, 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먹을거리다.
여러 차례의 트래킹을 하며 느끼는 것은 살아가는데 그리 중요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과 지식을 쌓을수록 거만해질 요소가 늘어간다는 것, 세상의 이치 또한 자연의 일부분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이성을 잃을 지경이 되면 자기가 이성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 등이다. 일상생활에서 누리고 있었던 아주 기본적인 것들 중 먹을거리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학식과 재산, 명성이 배고픔 앞에서 한 순간에 녹아 버리는 경우를 볼 때도 있다. 평생을 걸고 쌓아 왔던 것들이 뒷전으로 밀려난다. 가려지고 외면하고 싶었던 인간의 본래 모습을 보게 된다.
인간에게 큰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죄가 되는 것은 유희와 쾌락일 것이다. 자연계에서 인간만이 유희와 쾌락의 연장선상에서 사냥을 한다. 먹기 위해 사냥을 하는 것보단 스포츠 레저로써 죽임을 서슴지 않는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 트래킹을 하다 보니, 온전히 먹기 위한 목적으로 낚시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도시 생활을 하는 내겐 참 드문 경우다. 역시 먹을거리가 우선임을 다시 확인케 한다.

정상이 아니어도 충분히 행복하다
식량 조달을 위해 호수에 낚싯대를 드리운다. 해발 3,000미터를 넘으면 어김없이 산중 호수가 나타나는데, 이곳에 송어가 있다. 이 높은 곳에까지 올라오는 강태공이 없는 지라 송어는 정신없이 잡힌다. 미끼를 넣으면 바로 입질을 한다. 즐기기 위해 낚싯대를 드리우지 않았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나, 자연의 이치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터이니 내 영역 밖이다. 무지개 송어라고 불리는 어종들이 대부분으로 비린내가 적은 편이다.
이곳에 서식하는 송어는 흙냄새가 나지 않는다. 고소한 단맛이 난다. 육질엔 탄력이 있어서 굽거나 매운탕을 끓여도 부서지지 않을 정도. 산중에서 트래커들을 만날 때면 낚싯대를 배낭 한 귀퉁이에 달고 다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데, 이들 또한 우리와 같은 목적에서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 트래킹을 할 때는 호수가 얼마만큼 거리에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식량 조달 계획을 세우면 조금이나마 탄수화물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송어가 뛰노는 호수가 풍요로움뿐만 아니라 풍성한 식탁을 연상케 한다. 이 높은 산중에서 송어구이를 맛보게 될 줄이야.
시작이 있으니, 끝도 있겠지? 몸이 무거워 질 때면 위안 삼던 말. 드디어 여정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 계획했던 일정의 끝이 가깝게 다가오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아껴서 걷고 싶어진다. 트래킹의 마지막 정점은 마운틴 위트니 Mt. Whitney 높이는 해발 4,418미터로 시에라 네바다 산맥 최고봉이며, 미국 전역에서는 알래스카 매킨리 산에 이은 제 2봉이다. 미국 본토 48개 주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요세미티국립공원을 시작으로 세쿼이아 국립공원 Sequoia National Park과 킹스캐니언 국립공원 Kings Canyon National Park을 거쳐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해발 3,000미터의 산들을 하루에 하나씩 넘어 왔다. 그리고 지금 마운틴 위트니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 위트니 페스(Whitney pass)에 와있다. 이제껏 지고 온 25킬로그램의 배낭을 벗어 바위 한쪽에 벗어 놓는다. 그리곤 물과 아주 가벼운 간식만을 챙겨서 정상을 향해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족히 3킬로미터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리곤 다시 올라갔던 길로 내려오면 모든 산행은 끝이 난다. 그동안의 여독으로 몸은 지쳤고 정신은 맑다. 마운틴 위트니가 정상이 트래킹의 정점이며, 클라이맥스인 셈이다. 그러니 이제는 최대한 가벼운 짐으로 정상에 올라서서 그동안의 노고를 자축하며 그 기분을 만끽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상을 바라보는 마음은 가볍고 즐겁지만은 않다.
최고점을 향해가는 발걸음엔 흥분이 섞여 있는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오르기 시작한  정상이지만 그것에 대한 기대감이 없고, 지금까지의 여정만으로도 충분하게 누리며 즐겼기 때문이다. 내게 정상을 정복한다는 의미는 없었다. 그저 여분의 즐거움이며, 마운틴 위트니의 정상은 내겐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3k미터를 차분하게 걸어서 정상에 서니, 사방을 둘러친 시에라 네바다의 산군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걸어 왔던 360킬로미터의 길들이 아득히 펼쳐진다. ‘고맙다! 내게 이런 멋진 시간을 선사한 길들아, 고맙구나!’ 나와 함께 했던 오솔길에게 그간의 크고 작은 감동을 선물 받은 것과 무엇보다 건강하게 이곳까지 도착하게 해준 것에 대해 고마움을 전했다.

달팽이집 같이 어리석은 파편들
내려오는 길, 나는 속도를 더욱 늦추었다. 이제는 카메라도 배낭 안에 넣어 두었고 내 두 손은 비어있다. 그동안 수고한 두 손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 또한 매순간을 기록하느라 분주히 움직였던 나의 몸에게도 배려를 하고 싶다. 중간 중간 휴식을 취하며 되도록 이면 늦게 내려오고 싶었다. 위트니 페스에 도착해 벗어 놓았던 배낭을 다시 짊어졌다. 그리곤 걸음을 옮겨 본격적인 하산을 하며 알게 되었다. 함께 산을 내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에 설렘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정상을 향해 올라가던 그때의 희망찬 기대감은 보이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달했다는 성취감을 보이지 않았다. 다리를 절며 뒤뚱거리는 사람, 앞 사람을 추월하기 위해 부담스럽게 바짝 따라가는 사람, 하산 길마저 해치우려는 듯 급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들이었다.
또한 알게 되었다. 우리의 배낭이 무겁다는 것을, 크다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무게와 부피였지만, 우리들의 짐은 줄어들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마치 달팽이마냥 집과 그 안의 모든 것들을 우겨넣고 있는 내 짐 속엔 없어도 될 만한 것들이 수두룩했다. 물질적인 것들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나만이 아는 짐들이 잔뜩 있었다. 불필요한 염려와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기대치와 앞으로의 계획들 따위가 있었다. 이것들이 나의 짐이 되어 다시 오지 않을 ‘지금’을 무겁게 하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얼마동안 나의 배낭과 뒤뚱거리며 달려 내려가는 배낭들을 번갈아 가며 바라볼 수 있었다. 이번 산행은 이것으로 족한 것이었다. 이 모습이 지금의 나라는 것을 보았다. 산은 오르려고 길을 나선 것은 아니다. 이번 여정에서 나는 오르려고 걷지 않았다. 수직상승 하는 여정은 고되다. 그것은 여정이 아니라, 고행과도 같은 것일 게다. 여정은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며, 그로써 만족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그저 여정이다.   

Information

Schedule
전체 일정을 탄력 있게 잡아 두는 것이 좋다. 산행 속도는 개인별로 다르고 현지에서의 컨디션이 전체 일정을 좌우하는 경우가 생기므로 항공권 구입 시 귀국 날짜를 여유 있게 정해두는 게 좋다.

Accommodation
정해진 숙소는 없다. 배낭을 내리고 텐트를 치는 곳이 숙소. 어둠보다 별들이 더 많은 면적을 차지 할 만큼 밤이 아름답다. 이 호텔에 몇 개의 별을 달아 주어야 할지가 고민이라면 고민.

Needs
신발
사이즈는 평소 신던 것보다 두 치수정도 큰 것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루 평균 25킬로미터를 정도 걷게 되는데, 이럴 경우 발이 붓거나 열과 습기로 인한 상처가 생길 확률이 높다. 또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게 되고, 컨디션이 다른 지면들을 반복해서 통과하다 보면 엄지발가락을 비롯한 여러 부위가 신발의 안쪽 면과 마찰을 일으키게 된다. 만약 지속적으로 이렇게 걷게 된다면 일정을 포기하거나, 다른 일행들의 도움 없이는 여정을 지속하지 못하게 된다.

양말
반드시 두 켤레 이상(두께가 서로 다른 것) 겹쳐 신는 것이 좋다. 피부에 가해지는 과도한 마찰을 줄일 수 있다. 물집이 생길 것에 대비해 바늘과 실을 준비하자.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통과 시킨 후, 양쪽으로 끝을 충분히 남겨두면 물이 빠져나간다. 그 후 실을 배내면 된다. 오래 놓아두면 상처가 오염될 수 있으니 염두 해 두는 것이 좋다.
 
비상약품
일반적인 상비약 외에 높은 고도에 올라 갈 때를 대비해 ‘고지대 처방약’을 준비해두자. 국내에 있을 때 의사와 상의해서 정하는 것이 좋다.

비상간식
주식과는 별도로 섭취하는 즉시 에너지로 전환 될 수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칠 때 먹으면 늦으니, 미리 미리 규칙적으로 섭취하는 것이 좋다. ‘초콜릿 바’와 같은 열량이 높은 것들로 준비하면 좋다.

라이터
불을 피울 때 필요하지만 각자 하나씩 준비 하는 것이 좋다.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