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 Map/ Italia

런더너 루나의 유럽 뒷골목 발견기1
The Secret Shops in PADOVA, SIENA, ROMA

그 나라를 제대로 알려면 뒷골목을 보라,는 진리를 찾아 떠난 런더너 루나가 전해주는 유럽 뒷골목 발견기. 관광객들은 절대 모르는 오로지 현지인들만의 공간을 공개한다.
글과 사진 루나(프리랜스 포토그래퍼) 에디팅 채병길

출퇴근 길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숙독 했을 법한 여행 책자와 근무 시간 남몰래 눈칫밥 먹어가며 찾아낸 여행 블로그와 카페. 그 모든 정보를 일목요연 정리한 코스별 여행 정보와 위시리스트는 오직 비행기에 몸 담을 그 날을 위한 바이블이 된다. 하지만 나는 끔찍이도 이런 전형적인 관광객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꿈꾸는 여행은 절대로 “관광객에 의한, 관광객을 위한, 관광객의 여행”이 아니다. 내 여행엔 제한 속도가 없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내 몸과 영혼이 그곳에서 편안히 호흡할 수 있는 자유로움. 이것이 바로 나의 여행이다. 나는 이 지구라는 외로운 별에서, 여행을 통해 지쳤던 나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위로 받고 싶다.  

 PADOVA  le fiore azzurro
꿈꾸는 문학 소녀가 되다
이탈리아의 베니스는 전세계 관광객들 사이에 머스트 비지트must-visit 도시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베니스가 속한 베네토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러나 베니스 그 이상의 이탈리아 베네토를 느낄 수 있는 유서 깊은 도시 파도바를 여행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파도바는 베니스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주 작은 도시이지만 로마제국시대 당시 문화, 경제의 중심지로 유서 깊은 문화를 간직한 숨겨진 보물과 같은 곳이다. 또한 카톨릭 문화 중심의 유럽에서 ‘성 안토니오’의 성지로 알려져 있어 매일 이곳을 방문하려는 순례자들을 발 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파도바 거리 이곳 저곳을 방황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오래된 대학 건물들은 코페루니쿠스, 단테와 갈릴레오의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제법 흐린 날씨에도 파도바는 참 걷기 좋은 곳이다. 짙은 향의 테이크 아웃 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 마냥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탈리아 유학생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대학생들, 두 손을 마주잡은 사랑스러운 눈빛의 커플들 그리고 성인의 자취를 쫓는 순례자들로 거리는 북적이지만 결코 난잡하다거나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거리 자체는 제법 진중함과 적당한 활기참으로 가득 찼다.
파도바의 골목에는 작은 상점들로 가득하다. 조금은 거칠고 소박한 아날로그 느낌의 로컬 숍들이 대다수인데, 흐린 하늘 아래 유난히 눈에 띄는 따스한 불빛과 클래식 음악이 나의 눈과 귀를 사로 잡았다. Le fiore azzurro. 우리 말로 번역하면 ‘푸른 꽃’. 마치 영화 <노팅힐>에 나왔던 작은 서점의 이탈리아 버전과 같은 느낌이다. 그다지 크지 않은, 그러나 왠지 모르게 들어가 책을 한 권 한 권 꺼내 만져보고 싶은 탐닉의 공간이었다.
몇 해 전 여행을 다니며 하나 둘 모으게 된 책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숍을 열게 되었다는 오너는 책방 주인이라기 보다 마치 개인 컬렉션 책 박물관의 사서 같았다. 볼로냐 대학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던 그녀는 단순히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교편을 놓았다고 한다. 이런 순수한 그녀의 삶 그 자체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Le fiore azzuro. 세계 여행을 하면서 읽고 감동받은 클래식 문학과 예술 서적의 리미티드 에디션을 수집하여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 그녀의 착한 마음이 마치 숭고하기까지 했다. 이탈리아 클래식 문학의 진지함과 오너의 따스한 휴먼 센스로 가득한 아날로그 감성 서점 Le fiore는 파도바에 머무는 내내 빼놓지 않고 매일 들러보게 되는 보물 창고와도 같았다. 무엇보다 서점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를 통해 영감을 받은 책을 권해주는 교감형 원투원 감성 서비스는 지친 여행객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기 충분했다.
LE FIORE AZZURO
via degli zabarella, 58 35121 padova +39-49-836-4412 www.ilfioreazzurro.it 

SIENA  Fatte a mano
토스카니의 깊은 노을에 물들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난생 처음 가본 곳에서 새삼 남은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느낌을 주는 특별한 곳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내가 스위스 스피츠Spiez에 갔을 때 처음 그것을 깨달았고, 이탈리아 시에나Siena에서 또 한번 그것을 느꼈다. 토요일 오후 3시의 시에나. 이탈리아인들이 죽도록 사랑한다는 축구 경기로 번잡했던 경기장 인근, 그리고 그에 반해 놀랍게도 한적했던 골목들은 내게 이곳에 오래 동안 머물 충분한 핑계거리가 되어주었다. 이탈리아 토스카니의 노을과 사랑에 빠지지 않은 이가 누가 있으랴. 특히 나에게 있어 노을과 관련된 모든 것은 특별하다. 노을을 열 번이 넘게 지켜봤다는 <어린왕자>의 대목을 읽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동질감은 나의 지나친 노을에 대한 애정을 설명하기 충분하다. 
시에나의 멋스런 붉은 벽돌의 중세 건물들 사이 길목, 길목마다 길게 늘어지는 노을 빛이 조금씩 사라질 때쯤, 마치 마법처럼 하나 둘 살아나는 따스한 오렌지 색의 또 다른 노을 빛을 본 적이 있다. 시에나 두오모Duomo를 찾아 올라가는 골목에 작은 간판 하나 조차 없이 자리 잡은 Bright Crazy란 독특한 뜻을 가진 캔틀 아틀리에 Fatte a mano. 
2001년 이후 10년째 스승에서 제자로 대물려 지고 있는 이곳은 오직 핸드 메이드, 크리에이티브, 웰 메이드 초만을 고집 있게 지켜온 장인 공방이다. 왁스로 어떻게 저런 초를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끝도 없이 가지게 하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두오모를 가야 한다는 목적조차 잊어버리게 한다. 더욱이 초 제작 과정의 전반을 직접 볼 수 있는 오픈 작업 공간은 너도 나도 넋을 놓고 초의 세계에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개인적으로 사진가라는 직업을 나름 자랑스럽게 여기고, 좋아하는 내가 문득 캔들 아티스트로 이직을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삼국유사의 선덕여왕의 일화 속 모란 꽃처럼, Fatte a mano엔 향기가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왁스 장미꽃이 있다. 장미잎 한 장 한 장을 왁스로 곱게 빚어 만든 한 송이의 장미꽃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을 상징한다고 하니, 로맨틱한 추억을 연인에게 선사하고픈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LET’S LOVE Must visit spot이다. 영원한 사랑을 꿈꾸는 자여 시에나로 떠나라.
FATTE A MANO
la fabbrica delle Candele via dei pellegrini, 11 53100 Siena +39-57-705-8404 

ROMA  Bottega del sellaio
이탈리아 가죽의 숨겨진 명품 브랜드를 찾다
패션 마니아들에게 있어 이탈리아는 성지이다. 언젠가 유난히도 유행과 브랜드에 민감한 친구와 쇼핑을 나선 적이 있는데, 라벨에 적힌 MADE IN ITALY 확인 작업이 그녀의 최종 구매 결정을 좌지우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명품 만을 고집한다는 ‘된장녀’들의 필수 아이템 브랜드 목록의 대다수가 이탈리아에 본점을 둔 회사들이니 이탈리아 패션은 누가 뭐라 해도 명실상부 세계 1위라 감히 말 할 수 있겠다. 때문에 패션을 사랑하는 여성 여행자는 이탈리아에서 하루에 몇 번씩이고 찾아오는 지름신을 자제하느라 꽤나 힘든 역경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사실 그다지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축에 무리에 끼는 나 역시 몇 번의 고비가 있었을 정도니 그들의 고통을 어찌 말로 표현하겠는가.
새벽부터 시작된 기나긴 걷기 여정에 지쳐 갈 때쯤, 밀려오는 피로에 나의 반쯤 감긴 눈을 번쩍 뜨이게 해 준 가죽 공방이 로마에 나타났다. Castel Sant'Angelo가 다리 저 편으로 보이는 길목 언저리에 위치한 이곳은 몇 십 년간의 작업을 통해 밴 깊은 가죽냄새가 공방의 역사를 짐작하게 한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디스플레이라는 말이 무색해 질 정도로 투박하게 걸려져 있는 장인의 작품들은 가방에서부터 신발까지 그 제품군이 다양하다. 40년 전 홀로 묵묵히 시작한 이 일이 지금은 2대에 걸친 평생 가업이 되었다는 장인의 소박한 자기 고백은 그의 작품들과 참 닮았다. 디자인에서부터 가공까지, 이 모든 과정을 이 작은 공방에서 혼자 전통 핸드 메이드 방식으로 제작한다니 작품의 한 땀 한 땀이 모두 그의 애정으로 지어진 셈이다. 
구찌, 프라다와 같은 이탈리아 브랜드의 말도 안 되는 가격에 비해 마치 가격표에 ‘0’이 하나 빠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품질 대비 진정으로 저렴했던 가격대의 제품들. 나는 장인의 손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가죽 제품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가죽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마치 <어린왕자>와 여우의 길들임 관계처럼 나에게 있어 가죽은 장인과의 신성한 상대적 관계의 미학까지 느껴질 정도이다. 
BOTTEGA DEL SELLAIO
via banco s. sporito 22 rome +39-6-6880-3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