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2. Central Japan

잘록한 일본의 허리, 루트 5

 

한국지명처럼 친숙하게 들리는 일본 지역들은 좀 더 나이 들어 비행기시간을 버티지 못할 때쯤이나 찾는 곳이라고 여겨왔다.

그렇게 만난 횡렬로 손짓하고 있는 중부지역들은 그간의 편협한 생각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곳이었다.
                                                                                         

글과 사진 홍유리 / 취재협조 화인존 02-725-8233

 

Route 1. 이시카와현

도야마 공항에 도착한 뒤, 굳이 왼편에 있는 이시카와 현으로 향한 이유는 기왕 중부지방을 가기로 했다면 지도의 반을 자르듯 횡단 해보는 것이 훨씬 재미있겠다는 단순한 마음에서였다.

생각 없이 내디딘 발걸음이 부끄러워지게도 많은 볼거리에 놀라며 비가 내리는 것도 잊은 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대와 전통의 조화, 사무라이 거리

에도 시대의 향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가나자와는 운 좋게도 전쟁이나 천재지변의 피해가 없었던 까닭에 무턱대고 향한 골목길마저도 하나의 역사다. 먼저 마주한 것은 옛 사무라이들이 살았던 집터를 볼 수 있는 나가마치 거리다. 좁은 길을 따라 줄지어 서있는 노란 흙벽의 집들과 도로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용수로의 물소리가 정겹다. 일반 용수로가 농업이나 도시용수로 쓰이는 것과는 달리 이곳은 벼락과 번개가 자주치기 때문에 화재를 막기 위한 소화용도로 사용한다.

옛 정취에 취해 노란 담을 따라 걷다 보면 비교하는 재미가 있는 중 상급무사와 하급무사의 집터가 나타난다. 상급무사 노무라저택은 입구에서부터 당시 지위를 엿볼 수 있는 요소를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준 2층의 구조로 화려한 거실과 다실, 그리고 과거 천 평의 규모를 자랑했다는 정원안의 400년 된 나무까지 눈을 돌리는 곳마다 호화로움의 끝을 볼 수 있다.

그 중 단연 최고는 2층에 있는 다도를 위한 차실이다. 연한 오동나무 위에 짙은 색의 삼나무를 나무 결처럼 붙여놓았는데, 신격화된 삼나무가 죽고 화석화되어 있는 것을 구해와 꾸며놓은 것이다. 이미 죽어있는 오래된 나무임에도 살아 숨쉬는 것처럼 바깥 정원의 풍경과 어우러진다. 넓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정원모습이 꽤 운치 있는데 늦가을과 겨울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지하수를 사용하는 정원 물이 바깥 온도보다 높기 때문에 수증기가 피어 올라 이색적인 분위기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의 호사를 누린 뒤에, 15년 전까지 실제 사람이 살았다는 하급무사의 집을 방문한다. 집 구조가 좀 전의 저택과는 달리 그야말로 실생활을 엿볼 수 있어 정겹다. 이전의 정원이 감상용이고 2층을 다실로 사용하고 있었다면, 이곳의 정원은 가족의 생계를 위한 텃밭이며 위의 공간은 무거운 짐을 놓던 다락방으로 쓰였기 때문. 집안 곳곳을 둘러보니 문득 일본인들의 수납 정리 역사의 시초를 맛본 기분이다.

 

중상급 무사의 정원을 감상하는 두사람

 

 

 

겐로쿠엔

 

‘정원’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겸손한 듯한 이곳은 비가 내리는 아침에 찾아 더 운치 있는 곳이었다. 8,750그루 나무들과 커다란 연못에 빗물이 튕기면 묘한 정취를 자아내기 때문. 자연적인 수압을 이용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분수, 성주가 어머니와 말차를 마시기 위해 만든 물위의 정자를 보며 걷다 보면 왜 이곳이 중국의 무릉도원과 비견되곤 하는지 알 수 있다.

비화호의 소나무 명소 카라사키에서 가져온 오래된 노송을 지나, 산책길을 따라 내려가면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시구레테이가 나온다. ‘보슬비 정자’란 뜻으로 정원의 풍경을 벗삼아 화과자와 말차를 함께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근처 호텔에 묶는다면 산책을 추천한다. 개장시간 전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 

입장료 어른 300엔, 어린이 100엔 
문의 076-234-3800

www.pref.ishikawa.jp/siro-niwa

 

 

Route 2. 도야마현

저질체력이라 서울에서도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내가 세계 3대 알프스 중의 하나라는 해발 3,000미터의 다테야마 쿠로베 알펜루트에 올라갔다.

 

케이블카, 고원버스, 트롤리버스, 로프웨이 등의 교통 수단을 이용하면 일본의 지붕을 간단히 정복할 수 있다. 물론, 트래킹 코스도 당연히 있으니 평소 등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걷는 것도 좋다. 고도는 높지만 험준하지 않은 편이라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고 목도가 깔려있어 오래 걸어도 피곤하기 않다.

게으른 자도 맛볼 수 있는 해발 3,000미터
첫 번째로 이용하게 되는 계단식의 케이블카를 타고 24도 높이의 경사를 레일을 따라 오르니 마치 롤러코스터의 아찔함이 떠올라 신이 났지만 7분만에 벌써 고원버스를 탈 차례다. 버스 창을 열고, 직접 산을 타듯 바람을 맞아가며 한계령 같이 구부러진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니 갑작스럽게 공기가 차가워진다. 한여름에 와도 평균기온이 5도이기 때문에 항상 따뜻한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한편의 그림같이 자연이 수놓은 단풍을 바라보며 넋을 놓다가 드라이버가 도중에 속도를 줄여 정신을 차려보니 멀리 350미터의 소묘폭포와 비나 눈이 온 후에만 볼 수 있다는 하노키폭포 모습이 보인다. 전날 내린 비 덕분에 산 정상까지 깨끗이 보인다.
무로도역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추천하자면 갑작스레 높아진 고도로 놀랜 몸을 달래주는 것. 가벼운 스트레칭과 역 앞의 약수를 맛보도록 하자. 트롤리버스를 개발하던 중에 발견한 물로 유기물이 적어 전국명수백선에 뽑힌 바 있다. 시원하게 목을 축였다면, 이제부터 다테야마 산책길을 걸어보자. 평지와 비슷한 길로 1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코스지만 특이한 화산지형에 절로 걸음이 멈춰지니 시간을 계속 잡아먹게 된다. 후각이 먼저 반응하는 ‘지옥계곡’ 유황지역과 빗물과 만년설이 만들어낸 15미터 깊이의 미쿠리가 연못이 이곳의 주요 포인트. 멀리 유야마 신사가 연못에 비춰져 옛부터 신의 부엌이라고 불렸다.
웅장한 자연 경관을 만끽한 뒤, 암흑 같은 터널을 지나며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움직이는 전망대 로프웨이를 타고 2,316미터 높이에서 내려와 다시 케이블카를 타면 일본 최대 크기 아치형 쿠로베 댐을 만날 수 있다. 492미터 길이의 댐에서 1초에 10톤 가량의 물을 계속해서 방류하고 있는 쿠로베댐의 위용을 전부 느끼고 싶은 사람은 아슬아슬한 전망대를 올라가보자. 영화 <반지의 제왕>이 떠오를 만큼 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그 값어치를 하니까. 게으른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웅장한 산들의 향연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만큼 기회도 적다.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기 때문에 11월 말까지만 개방하고 그 뒤에는 4월말쯤에야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지붕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1년 중 7개월뿐이다.

도롯코열차
우나즈키 온천에서 하룻밤 묶은 뒤에 다테야마에 오를 계획을 세웠다면, 먼저 쿠로베 협곡부터 방문한 뒤에 가는 것이 좋겠다. 1940년대에 탄광열차로 시작된 좁은 길이 이제는 관광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찻길을 따라 에메랄드 빛의 1급수 물이 흐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 빨간 다리와 색 대비가 선명하다.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이곳이 한편으로는 한인징병이 많았을 지역이라는 생각에 가슴 한 켠이 무겁지만, 등지기에는 험준한 협곡이 만들어내는 경치가 아름답다. 열차를 타고 가네쓰리 역에서 내리면 직접 땅을 파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과 피곤한 다리를 위로해 줄 족탕도 마련되어 있으니 참고.
입장료 승차역에 따라 다르다. 어른 560~1,660엔, 어린이 280~830엔
문의 +81-765-62-1011
www.kurotetu.co.jp

Route 3. 나가노현
어떻게 보면, 참 특별한 곳이다. 4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는 일본 안에서 오로지 산맥 안에 자리하고 있는 지역이니까.
전날 도야마현에서 산이라면 잔뜩 취할 만큼 봤기 때문에 다른 볼 거리를 찾아 나섰다. 일본 최대의 와사비 생산지역 중 한 곳이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있는 대왕 와사비 농장으로 향했다.

끊임없이 흐르는 맑은 물

전체 15만 헥타르, 단위에 감이 안 오는 사람을 위해서 말해보면 도쿄 돔 구장11개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이곳은 내국인에게 상당히 인기가 높은 곳이다. 그들에게 익숙한 와사비 재배지역일 뿐일 텐데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가 하니 각종 드라마나 방송프로그램에서 많이 다녀갔고 천재감독이라 불리는 쿠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꿈> 촬영을 농장 옆에 흐르는 냇물에서 찍었기 때문이다.
와사비를 재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땅이나 물 중 어느 것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곳은 전통적인 수경재배 방식으로 와사비를 키운다. 물로 키우는 것이 독특해 밭(?)으로 가까이 가보니 초록색 와사비 잎의 아래로는 흙이 아닌 둥근 자갈 돌들이 보기 좋게 깔려 있고 그 위로 쉼 없이 맑은 물이 흐른다. 본래 잡균에 약한 와사비는 일부 청정지역에서만 재배가 가능하다. 뿌리 주변에 균이 달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용존 산소량이 많은 일정한 온도의 물을 지속적으로 유동시켜줘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농경기술이 발달해 어디서나 와사비를 재배할 수는 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곳이라 이곳의 와사비는 인기도 높고 가격도 고가에 속한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이곳에서 갓 재배한 와사비를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을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에 3백 엔을 내고 한입 베어 물었다. 이런. 사실 맛있을 걸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신선한 맛에 상큼한 잔향이 남는다. 본래 생 와사비는 맵지 않은데 우리가 그간 초밥이나 회를 찍어먹던 것은 가루를 개어내 숙성시킨 것이라 그런 맛이 나는 것이니 두려워 말고 와사비 맥주나 주스를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와사비 아이스크림

 

마츠모토성
일본 3대 고성 중 하나인 마츠모토성은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성체가 검정색이어서 까마귀 성이라 불리기도 하고 전국시대 후반부에 지어졌으나 한번도 전쟁이 난 적이 없어 평화의 성이라고도 한다. 직접 방문하기 전에는 검정성체를 가진 점에만 주목했지만 막상 가보니 신기한 내부구조가 더 인상적이다. 전쟁 시 이용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6층의 성이 외부에서는 5층으로 보이게 만들어져 있으며 각 층은 나름의 용도에 맞게 쓰임새 있는 구조기 때문이다. 게다가 맑은 날에는 성에서 북 알프스가 보여 해자 위의 붉은 색 다리와 함께 아름다운 정취를 자아낸다.
문의 어른 600 엔 초 중학생 300 엔(마츠모토 시립 박물관과 공통권)
문의 +81(0)263-32-2902
www.city.matsumoto.nagano.jp

 

Route 4. 야마나시현
애석하게도 나가노현을 지나 야마나시현에서 도착해 감탄한 까닭은 뛰어난 관광지도 아닌, 늦은 밤 도착한 숙소였다.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며 많은 숙소에 묶어 봤지만 이런 호텔은 처음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기 때문에 프론트에서 말해준 주변 경치(예컨대, 방에서는 후지산주변 다섯 개 호수 중 두 번째로 크다는 가와구치호수가 보인다든가 조식을 먹을 때 창 밖으로 후지산이 우뚝 서있다는 것)는 볼 수도 없었다. 단지 객실 문을 열고 문턱을 넘는 몇 초 사이 눈에 들어온 잘 꾸며진 방 때문이다. 전통 료칸식 다다미방에 현대적인 호텔시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깔끔하고 넓은 방에는 노송나무를 이용해 만든 개인 온천이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마음만 먹으면 노천온천처럼 창을 열 수 있어 굳이 1층 전체 온천탕을 이용할 필요가 없다. 그 동안 쌓인 피로를 온천에서 말끔히 털어내니 아침조식을 먹을 여유까지 생겼다.
일본의 대표 명산인 후지산이 보이는 식당에서 야마나시현의 향토음식인 호우토우(밀가루를 반죽한 수제비를 된장국에 넣은 것)를 맛보며 후지산 끝 자락 바다가 맞닿아 있는 것 같아 감상하고 있는데 같이 간 일행 중 한 명이 말한다. “저기가 오늘 가기로 한 아오키가하라 수해야” 정말 감쪽같이 속을 뻔했다. 그래서 수해라고 부르나 보다.

 

서로 공존하는,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곳
숲으로 가는 길은 묘한 긴장감을 주체할 수가 없다. 언젠가 뉴스에서 경제불황으로 돌아올 수 없는 편도티켓을 끊고 이 숲 깊숙이 들어가는 사람이 늘었다는 통계자료를 본 적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다잡고 숲으로 들어갔다.
40 제곱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아오키가하라 수해는 본래 바다같이 큰 호수였으나 후지산 분화로 생긴 용암이 흘러와 만들어진 지형이다. 땅의 특성상 물을 보관하기가 어려운 이곳에 이렇게 거대한 숲이 생겨날 수 있었던 이유는 식물들이 공생의 관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끼가 물을 머금은 뒤에 나무들이 같은 양의 물을 함께 흡수한다. 그래서 모든 나무들의 높이가 같아 멀리서 바라보면 바다처럼 보이는 것이다. 본래 흙이 없는 마그마에 이끼가 붙어있는 땅이기 때문에 10분 정도 걷는 산책로에는 목재파편이 깔려있다. 미끄러짐과 길 잃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주의할 점은 모든 곳이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 산책길 옆으로 새면 빠져 나오기가 매우 어렵고, 마그마 표면 위라서 핸드폰이나 나침반이 말을 잘 듣지 않기 때문에 원시림을 구경하기 위한 자세는 모험 없이 얌전하게 길만 따라갔다 돌아와야 한다.
이곳에서 오랜 시간 생활한 네이쳐 가이드에게 뉴스에서 본 것을 물으니, 60년 전쯤 일본에서 유명한 작가 마츠모토 세이쵸의 소설에서 여자 주인공이 자살장소로 이곳에 들어간 것을 쓰면서부터 이야기가 생겼다고 한다. 매년 그런 일이 간혹 발생하는 건 사실이지만 언론에서 흥미위주로 많이 떠든다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노력하는 나무들이 있는 이 숲에서 죽음을 말한다는 것이 미안해진다. 

 
Route. 5 시즈오카현
고원지대가 아닌데도 넓은 풀밭이 펼쳐져 있고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는 천국 같은 모습에 차에서 내린다.

수해를 지나 마지막 목적지를 가는 길은, 그 동안 항상 높은 산이 있는 지역을 걸어 다니느라 겹겹이 껴입었던 옷을 벗게 만들 정도로 따스하다. 거의 수평으로 움직였음에도 뭔가 남쪽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도쿄와 가깝고 바다와도 접해 있는 곳이니 바다로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빽빽한 나무가 아닌 젖소들이 풀을 뜯고 있는 한가로운 풍경에 속도를 늦췄다.

요들송이 들리는 또 다른 알프스
농협협동조합에서 설립한 밀크랜드는 우유와 관련된 모든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꼬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보니 무료로 동물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이 있다. 이곳을 대표할 법한 흰 젖소와 염소들, 그리고 당나귀와 토끼를 풀밭에서 직접 만지고 뒹굴고 뛰어 놀 수 있는 곳이라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동물들과 논 뒤에는 버터 만들기 체험을 추천한다. 참가비 300엔을 내면 동물성 생크림과 물이 같은 양으로 들어있는 통과 걸러낼 채, 그리고 비스켓을 주는 데 만드는 과정은 심히 간단하다. 그저 통을 한 손에 잡은 뒤, 아래 위로 하염없이 흔들면 된다. 손이 아파질 때쯤 ‘찰랑’거리는 소리가 둔탁해지기 시작하는데 조금 더 흔든 뒤에 뚜껑을 열면 노란 고체덩어리 버터를 발견할 수 있다. 버터체험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 치즈, 소시지 만들기 체험과 승마, 소 젖 짜기 등 해볼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으니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해 보자.
이곳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요기거리는 목장에서 직접 생산한 우유로 만든 밀크 젤라또다. ‘아이스크림의 기본은 우유 맛’이라며 징그럽게도 많은 아이스크림을 해치워왔는데 평생 맛본 것 중 최고의 맛이라고 자부한다.

마루코, 초밥 뮤지엄의 세상
시미즈항까지 달려온 이유는, 일본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참치경매를 보기 위해서도 아니며 축구에 지대한 관심이 있어 시미즈 에스펄스 구단을 보려는 것도 아니었다. 이 나이에 부끄럽게도 에스펄스 드림 플라자에 있는‘마루코는 아홉살’ 뮤지엄을 보기 위함이었다.
소시민의 생활을 그려낸 마루코는 엄마들이 보고 자랐던 만화를 지금 아이들이 그대로 보고 있어 국민만화라 불리는 만화다. 500엔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가니 마루코 만화에서 만났던 모든 공간이 재현되어 있다. 집안의 모든 방에는 만화와 똑같은 가구들이 놓여 있고 수업을 듣는 교실과 해가 질 무렵까지 놀던 놀이터까지 만화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유아틱한 취향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같은 건물 내에 있는 스시박물관을 추천한다. 스시의 역사가 청동기 동남아시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잡아 놓은 생선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발효시킨(그때도 발효를 알았을까?) 밥알을 뿌려 놓았던 것이 그 시작인데 서기 700년경부터 생선 사이에 밥을 끼어 넣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후로 여러 시도 끝에 1830년경 지금의 초밥이 탄생했다. 박물관에서 나오면 초밥을 사먹을 수 있는 스시집이 모여있는데 이 지역의 특산물 시라스(투명한 멸치 종류), 벚꽃새우 초밥과 참치초밥은 꼭 먹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