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untour

나눔을 실천하는 착한 여행

여행과 봉사활동.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가 만나 전 세계에 사랑을 전한다. 연못에 던진 조약돌 하나가 수면에 큰 파동을 일으키듯이 작은 손짓, 행동 하나로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다시 타오르게 하는 여행이야말로 볼런투어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다.

글 김수현 기자 사진·자료제공 오동준, 알에이치케이코리아

이력서나 프로필의 취미란에 주저 없이 ‘여행’을 쓰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주변에서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여기저기서 터지는 감탄사와 함께 온갖 질투와 부러움을 샀었는데, 지금은 여행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가 됐다. 여행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며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일하며 돈도 벌고 여행도 하는 워킹홀리데이의 인기는 매년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어학연수를 가장한 문화체험을 떠나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며 소위 스펙 중 하나로 꼽히는 해외봉사활동에 대한 수요도 마찬가지. 이중에서도 봉사활동을 겸한 여행은 금전적으로는 경비를 절약할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는 돈으로 환산하지 못할 만큼의 배움을 얻게 한다. 2년이 넘는 기간 여행과 봉사활동을 함께 한 <하얗게 웃어줘 라오스>의 저자 오동준의 말에 의하면 다른 여행과는 비교하지 못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개발도상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아이들에게 하얀 미소를 찾아주기 위해 칫솔과 치약을 가득 안고 떠나는 그의 여행은 특별하다.

가치 있는 삶을 찾아서

많은 여행업체와 환경단체 및 NGO 등을 통해 지역의 환경 보전과 문화발전에 기여하는 볼런투어Voluntour가 주목을 받고 있다. 볼런투어는 자원봉사활동을 뜻하는 ‘볼런티어Volunteer’와 관광을 의미하는 ‘투어Tour’가 결합한 신조어로 여행을 하며 일정 기간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활동을 말한다. 주민들은 여행자에게 새로운 문화와 경험을 선사하면서 지역사회와 환경의 변화를 얻고, 여행자들은 현지에 도움을 제공하며 보다 성숙한 자아를 찾게 되는 것이 활동의 목적. 그러기에 일반적인 여행이 아닌 볼런투어를 떠나기 위해서는 남다른 결심이 필요하다. 오동준의 경우도 그랬다. 자체휴강을 일삼으며 집안에 누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던 어느 오후, 무심결에 시청한 다큐프로그램에서 장애인들과 휠체어를 타고 농구를 하는 학생들을 보며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 의미 있는 삶이라 판단한 그는 그 길로 도서관으로 향했고 삼수 끝에 특수체육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특수학급의 교사가 된 이후 건강한 꿈과 정신을 갖고 조금씩 변해가는 학생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지만, 평소에 좋아하던 여행을 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가치 있는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볼런투어였다.

한국국제협력단의 봉사단원으로 라오스 방비엥 지역에 도착한 그는2년간 방비엥중학교의 체육교사로 활동하며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라오스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여행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귀국 3개월을 남기고 우연히 만난 한국인 치과의사에게서 머지 않은 미래에는 아이들의 하얀 미소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무분별한 불량식품과 콜라 등의 유입으로 치아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 제대로 된 치위생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아이들의 건강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활동기간을 연장하고 자비를 털어 도움이 필요한 소수민족 마을을 돌기 시작했다. 이렇게 출발한 ‘치카치카 프로젝트’는 한국국제협력단의 정규활동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라오스를 넘어 파키스탄 등 아이들의 치위생 건강이 시급한 지역이라면 어디든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800개의 칫솔을 손에 든 이방인

볼런투어의 연장선인 치카치카 프로젝트는 혈혈단신으로 칫솔 800개와 치약 200개를 들고 떠난 라오스 루앙남타의 소수민족 마을에서 시작됐다. “일단 무작정 국도의 이정표를 따라가요. 그럼 마을이 한 개 나오죠. 그 마을에서 산속으로 7~8km가량을 들어가면 또 다른 마을이 나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마을이 열 군데가 있다 하더라도 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민족이 산다는 거죠.” 매번 각기 다른 민족을 만나고 색다른 문화를 체험한다니. 여행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보다 더 달콤하게 들릴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정작 여행은 두 세 시간 남짓 가파른 산속을 헤매는 건 기본이었으며, 도착한 곳에서의 봉사활동 또한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소수민족 마을은 보통 산길을 빙 둘러 있는데, 마을이 산 속으로 열 개씩 이어져 있으면 난감해진다. 국도가 나와야 어떤 방법으로든 귀가를 할 수 있건만 안으로만 깊게 들어가면 돌아오는 길에서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은 마을은 가이드북에도 제대로 나와있지 않고, 수도와 주요관광지에서 멀리 떨어진 북부지역에 갔으니 50여 개의 소수민족이 있는 라오스에서 라오어 하나로 모든 이들과 소통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렇게나 순박한 라오스 사람들이지만 낯선 사람의 방문에 어른들은 경계태세부터 갖췄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건만 신분증 없이는 마을에 들어올 수 없다며 냉랭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 그는 매번 서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여행을 떠난 지역이 라오스라서, 소수민족 마을이라서 어려웠던게 아니었냐고? 천만에. 볼런투어는 이런 예측 불허의 상황을 종종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먼저 손을 내민다면 분명 진심을 알아 챈 사람들은 맨발인지도 모른 채 한달음에 뛰쳐나와 반겨 줄 거라고 얘기한다. 오직 당신만을 향한 때묻지 않은 환한 미소와 함께 말이다.

여행은 돈이 들어가는 취미활동인지라 봉사활동을 겸해 떠났더라도 역시나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는 볼런투어 동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여유 있게 돈을 들고 갔지만 차비 외에는 쓴 일이 거의 없었다더라. 멀리서 몸소 사랑을 실천하러 온 이방인을 위해 사람들은 앞다투어 숙식을 제공해주었으며, 심지어 다음 마을에 도달할 때까지 먹을 식량을 바나나 잎에 싸서 챙겨줬다고. 라오스 이후에 진행한 파키스탄 치카치카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앉았다 가라며 손짓을 하는 친절한 사람들 덕에 어떤 날은 스무 잔이 넘는 차를 마신 적도 있단다. 잘 차려 입은 옷에 관광지 앞에서 기념사진 찍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여행이었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것들. 물론 가끔씩 사람들에게 속기도 하고, 어려움에 부딪혀 좌절할 때도 있겠지만 이것이야 말로 나와는 다른 세상을 두 눈으로 마주하게 하는 볼런투어만의 묘미가 아닐까.

두 팔로 세계를 안는 방법

칫솔과 치약이 없다고 볼런투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지 여행과 봉사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충분히 많다.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렵다면 단체와 함께 첫발을 내디뎌도 좋다. 오동준 역시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 볼런투어를 시작했다. 한국국제협력단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개발도상국에 기술, 의료 및 교육을 지원하는 단체로 2년의 파견 기간을 갖는다. 일반단원은 만 20세 이상으로 각 분야에 대한 전문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하며 서류심사와 면접, 신체검사가 끝나면 6주간 국내에서 훈련을 받은 뒤 현지로 떠난다.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 한 나라에 대해 자세히 알기를 원하고, 오랜 기간 여행과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최고의 선택일 테다. 현지에 도착하면 생활 및 주거비용을 지원받으며 활동에 필요한 금액 역시 따로 지급된다.

자원봉사를 하며 외국인 친구도 사귀고 마음 맞는 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면 국제워크캠프를 눈여겨 보자. 서로 다른 국적, 언어, 문화를 가진 10~15명의 인원이 모여 2주에서 3주가량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항시 모집하기 때문에 봉사활동과 여행을 함께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활동이 봉사에 좀 더 비중을 두었다면 워크캠프는 기간이 짧아 유럽이나 미주로 배낭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이 선호한다. 원하는 지역에서 환경, 농업, 건설, 문화, 교육 등의 다채로운 활동을 선택할 수 있으며 소정의 참가비용을 내고 비행기 표를 구입해 개최지에 도착하면 나머지 숙식해결 방법은 캠프별로 상이하다. 워크캠프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 각지에서 모인 봉사단원들을 만나 때로는 부딪히기도 하고 어려운 문제를 함께 극복해 나가며 글로벌 마인드를 배우는 것에 있다.

볼런투어를 꿈꾸는 대학생들에게는 기업체에서 후원하는 해외봉사단에 지원해 보기를 추천한다. 주로 방학기간인 1~2월과 7~8월에 떠나며 항공료를 포함해 활동 및 투어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전액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주요단체로는 현대자동차그룹의 해피무브, 지마켓의 GLOVE 청년 봉사단, LS그룹의 해외봉사단 등이 있다. 지마켓 해외봉사단은 대학생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참여도 가능해 비교적 경쟁률이 높은 편이다. 주로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이용하는 지원자를 대상으로 하니 미리 준비할수록 봉사단원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 밖에도 조금만 관심을 둔다면 봉사활동과 해외여행을 함께할 프로그램을 여럿 찾을 수 있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강인한 체력과 나눔의 정신뿐이다.

사랑을 배우는 볼런투어

볼런투어 선배인 오동준에게 특별한 여행법을 물었더니 오히려 기자에게 볼런투어가 특별한 여행인지 반문한다. 대신 나와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눈높이에서 삶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오직 볼런투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행법에 대한 다소 추상적인 답변과는 달리 봉사활동을 겸한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을 향한 충고는 분명했다. 으레 짐작으로 개발도상국이니까 당연히 금전적인 도움이 필요할거라 판단하는건 그들에 대한 실례를 범하는 행동이라고. 대단하지는 않지만 시장에서 파는 과일을 사서 건네는 것을 시작으로 작은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라 말했다. 무엇보다 마음을 나누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냐며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의 앞에서 그동안 여행지에서 어쩌면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해왔던 모든 행동들이 머리 속을 스치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칫솔과 함께 전한 사랑은 아이들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을까. 그는 이번 겨울 다시 한 번 라오스 루앙남타로 떠난다. 여전히 건강한 미소를 간직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담아서. 물론 봉사활동을 했던 북부지역은 심한 빈곤을 겪고 있는 탓에 아이들이 제대로 된 치위생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건강을 유지할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작은 노력이 차곡차곡 쌓인다면 언젠가는 분명 빛을 발하는 날이 올 거라고 그는 믿는다. 아무리 어두울지언정 새벽이 찾아오지 않는 밤은 없다. 그는 지금 볼런투어를 통해 새벽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큰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듯이, 지구상 어디에선가 누군가의 착한 여행이 세계를 희망이라는 단어로 물들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당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사랑으로 세계가 하나 되는 그날 또한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