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Arizona&Utah

Great Adventure in Arizona & Utah

48 Zion Canyon
버진강이 가꿔놓은 신의 정원, 자이언 캐니언

52 Bryce Canyon
핑크빛 호리호리한 돌기둥의 집, 브라이스 캐니언

56 Arches National Park
비와 바람이 머물다 가는 곳, 아치스 국립공원

62 Monument Valley
나바호 인디언의 성스러운 땅, 모뉴먼트 밸리

68 Antelope Canyon
아름답고 우아한 곡선의 앤텔로프 캐니언

아리조나에서 유타까지, 미국 남서부 모험기
거칠고 메마른 황야를 하염없이 달렸다. 대지를 헤매는 과정에는 늘 예상치 못한 풍광이 나타나 깜짝 놀래켰다.
지구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마치 외계에 불시착한 상상마저 가능하게 하는 기이한 풍경들.
글 함희선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미국관광청 www.discoveramerica.co.kr

왼쪽 : 주유소 앞 가판대에서 컵케이크를 팔고 있던 귀여운 인디언 꼬마.
오른쪽 : 아리조나 주와 유타 주를 누비며 만난 길 위의 순간들. 로드트립의 기쁨은 우연하게 마주친 세상의 이런 장면들이다.

1 웰컴 투 유타. 끝도 보이지 않는 도로 위에서 마주친 반가운 표지판.
2 누군가 남겨두고 떠난 모험의 흔적.
3 아리조나와 유타에는 붉은 땅 위를 달리는 로드 트립의 낭만이 넘쳐난다. 
4 건조한 사막지대에서 종종 마주치는 튼실한 선인장.

“나 처럼 늙으면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사업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 이 나라 저 나라 많이 돌아다녔어요. 모르는 게 없다고 살아온 80년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 서서 보니 내가 아직도 모르는 것들이 많이 남아있었네요. 그동안 어디서도 본적 없었던,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기이하고도 멋진 장면들과 마주했죠. 그래서 기분이 묘해요. 겸손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많은 걸 몰랐던 젊음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서 새롭기도 하고. 아가씨는 나보다 반백년이나 먼저 이 광경을 마주했죠? 그럼 앞으로 내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아는 게 많다고 자부하는 삶을 살게 될 겁니다. 그럴 때면 지금처럼 여행을 떠나보세요. 여전히 알지 못하는 세상의 조각들의 존재를 발견하게 될 테니. 자연이 또 어디서 무슨 마법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잖아요. 그때 자연은 어떤 식으로는 당신을 위로해 줄 거예요. 신나게 만들어주고, 감탄하게 하고, 생각하게 할 거에요. 오늘 내가 이곳 미국 남서부에 와서 그런 것처럼.”

말없이 건네는 대자연의 위로

미국의 남서부, 아리조나 주에서 유타 주까지 거칠고 메마른 황야를 5일 동안 하염없이 달렸다. 몇 시간을 달려도 달라지지 않는 똑같은 창밖
풍경에 지치기도 했지만, 그 대지를 헤매는 과정의 끝에는 늘 예상치 못한 풍광이 나타나 깜짝 놀래켰다. 모험을 찾아 떠나는 로드트립이 주는
기쁨, 수억 년의 세월을 견뎌온 내공을 비로소 야심차게 드러내는 참으로 기이하고도 놀라운 풍경들이었다. 황무지에 뜬금없이 등장하는 바위산이며 협곡들은 외계에 불시착한 상상마저 가능하게 했더랬다. 과학적 근거들이 가이드북에 주절주절 쓰여 있었으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이로운 대자연이었다. 그런데, 지구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모습들에 감동한 뒤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 멋있다는 감탄사를 뱉어낸 다음에는 그저 지그시 바라봐주거나 직접 땅을 밟고 걸어보는 게 전부였다. 무언가 쉼 없이 하는 것에 익숙해진 터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가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3분 이상 멍하니 앉아 있으면 이내 뭔가 잘못하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 잡혔다.

그때였다. 철학자 같은 이야기로 나를 뭉클하게 만들었던 그와 만난 건. 앤텔로프 캐니언을 보기 위해 찾았던 페이지Page의 홀스슈 밴드Horseshoe Bend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엉덩이를 걸치고 있던 때였다. 문득 왜 내가 이 길 위를 헤매고 있는 지에 대한 이유를 찾고 있었는데, 백발이 다된 오스트리아 출신의 할아버지는 마치 미래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조언하듯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그의 말처럼 대자연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위로한다. 그것이 진짜 자연이 건네는 것인지, 아니면 내면에서 듣고 싶은 이야기가 허공을 돌고 돌아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오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광대한 땅의 끝에 말없이 서있는 바위산처럼 우직하게 어루만져준다.

서부영화 속 주인공처럼 길 위를 헤매면서 지구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의 조각을 보았다. 예전에 없던 경험을 하고 나니 삶을 보는 시야가
부풀어 오르더라. 자이언 캐니언, 브라이스 캐니언, 아치스 국립공원, 모뉴먼트 밸리, 그리고 앤텔로프 캐니언까지. 지금부터 지구에서 마주친 낯선 풍경 안으로 초대하려 한다. 준비 자세는 하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 멋진 역할은 대자연에게 오롯이 맡겨두고 말이다.

아찔한 절벽의 호스슈 밴드. 콜로라도 강의 물길이 페이지에 이토록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