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izona&Utah :: Zion Canyon

Magnificent God’s Garden, Zion Canyon

버진강이 가꿔놓은 신의 정원, 자이언 캐니언
자이언 캐니언은 신의 정원이라는 별칭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당당한 위용을 뽐낸다.
웅장하고, 장엄하며, 광대하다. 대자연을 옆에 끼고 달렸던, 두 눈이 황홀했던 드라이브 이야기.
글 함희선 기자 사진 최은주 기자 취재협조 미국관광청 www.discoveramerica.co.kr

1 단단한 바위산 사이로 뚫려있는 붉은 도로가 왠지 예술작품처럼 비현실적이다.
 2 협곡 안에서 캐녀닝을 즐기고 있던 사람들. 트레킹보다는 인기 없지만, 모험가들에게는 최고의 액티비티다. 
3 강물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새겨진 자국이 선명하다.

공원의 방문자센터 앞은 정신없이 북적댔다. 걸음마를 시작한 지조차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아이를 대동한 가족부터 젊은 커플과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운동화의 끈을 질끈 동여매고, 급수대에 줄을 서서 물병을 가득 채우고, 얼굴이며 어깨까지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느라 난리였다. 너도나도 손에 쥐고 있는 전혀 예쁘지 않은 투박한 나무 지팡이가 ‘우리 지금 제대로 걸으러 갑니다.’의 순간을 더 멋스럽고 빛나게 만들고 있었다. 렌터카에 몸을 맡긴 채 그저 우아하게 시닉 드라이브Scenic Drive 위를 달리고 있는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차의 속도를 제아무리 줄여 봐도, 활짝 열린 창문으로 몸을 반쯤이나 내밀어 봐도 땅바닥에 발을 대고 있는 그들과 나는 같은 곳에서 완전히 다른 공간을 경험하는 중이었다.

우람한 사내의 기세등등한 자태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프리웨이를 꼬박 3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건 유타주 남서부에 위치한 자이언 캐니언Zion Canyon 국립공원이다. “앞으로 130마일 직진하세요!” 출발할 때 단 한마디의 말만 남기고 끝까지 고요했던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따라서 무려 200킬로미터 이상을 좌회전이나 우회전도 없이 쉬지 않고 달려서 마주한 거대한 협곡이었다. 어마어마한 돌덩이가 땅위에 쉼 없이 줄줄이 박혀있는 자이언 캐니언은 기세등등한 햇살을 어깨에 메고 선 우람한 사내 같았다. 솔직히 처음엔 그 풍경이 아름답다기보다는,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남자를 만나 앞에 두고 섰을 때처럼 순식간에 압도된 기분이었다. 새파란 하늘과 대조적으로 하얗고 붉은 빛이 흩뿌려진 가파른 수직절벽들은 ‘신의 정원’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웅장하고 장엄해 전율마저 느끼게 했다. 그리고 조금씩 아주 천천히, 압도된 기분이 스르르 잦아들면서 돌에 새겨진 깊은 곡선이며, 그 위에 피어난 나무와 꽃들에 시선이 머물기 시작했다.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지 않고서야 꿈쩍도 안할 것처럼 보이는 자이언 캐니언의 단단한 바위산들을 지금의 풍경으로 탄생시킨 건 오로지 물이다. 버진Virgin강의 북쪽지류인 노스포크North Fork가 400만년 동안이나 공들여 작업해 24킬로미터 길이의 이런 얼굴로 바꾸어 놓았다. “All this is the Music of Waters.” 미국의 유명한 지질학자이자 탐험가였던 존 애슬리 파월John Wesley Powell이 1895년 이곳에 찾아와 남겼던 말도 이거였다. 여기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이 만들어낸 음악이라고. 버진강은 자이언 캐니언만 창조한 게 아니다. 이 땅에 머무는 만물에 귀한 생명을 선사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척박한 땅에서도 동물들에게 신선한 물을 제공했고, 꽃과 나무를 키웠으며, 수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면서 캐니언을 외롭지 않은 공간으로 가꾸었다. 마치 여기가 진짜 신의 정원인 것처럼.

두 눈이 황홀한 드라이브

자이언 마운트 카멜 하이웨이Zion Mount Carmel Highway. 자이언 캐니언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기 때문에 단연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도로 위에 올랐다. 사륜구동차, 오픈카, 모토바이크 등 저마다의 수단이 무엇이든, 깊은 적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깔린 2차선 도로 위를 따라 감동의 드라이브가 이어졌다. 울퉁불퉁한 돌산을 따라 오르면 오를수록 절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지그재그 모양을 한 붉은 도로 위의 자동차들은 장난감처럼 아득하게 보였다. 나처럼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없는 사람들, 자이언 캐니언을 가로질러가는 ‘통과형 여행자’들이다. 방문자센터를 지나 자이언 마운트 카멜 하이웨이에 진입하기 전, 북쪽으로 핸들을 꺾으면 또 다른 시닉 드라이브Scenic Drive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단, 이 길에는 개인차량은 출입 금지로 대신 4월부터 10월까지 무료 셔틀버스가 운영되고 있다. 왕복으로 80분이 소요되는 순환버스에 몸을 실으면 자이언 캐니언을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정복할 수 있다. 자이언 캐니언의 하이라이트인 시나와바 신전Temple of Sinawava, 패트리아치의 코트Court of Patriarchs, 앤젤스 랜딩Angels Landing, 에메랄드 풀Emerald Pools, 위핑 록Weeping Rock, 체커보드 메사Checkerboard Mesa 등 주요한 포인트의 대부분을 거쳐서 달리므로.길 위에서 바라보는 형형색색의 모래바위와 절벽 감상만이 자이언 캐니언에서 할 수 있는 일의 전부가 아니다. 시닉 드라이브 양쪽으로 펼쳐지는 협곡 안으로 들어가 속살을 비벼 봐야 한다. 산책에 가까운 쉬운 길부터 고난도 등반기술을 요하는 어려운 코스까지 160킬로미터에 달하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정비되어 있다. 모두들 하는 얘기가 직접 걸어봐야지만 자이언 캐니언의 진가를 알 수 있단다. 방문자센터에서 마주친 이들이 바로 그런 주장을 펼치는 무리다. 그들은 붉은색의 퇴적암석을 파고들어간 좁은 협곡, 그 구멍이 어찌나 깊은지 햇빛이 땅에 닿는 시간마저 오래 걸리는 그 길을 따라 걷는다. 거친 절벽을 지나면 시원한 폭포나 울창한 숲, 멋진 사암기둥이 나타나기도 한다. 잠시 시닉 드라이브를 달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두 눈이 호강했는데, 실제로 그 안에 펼쳐지는 세계는 얼마나 더 대단할까. 8.7킬로미터의 트레킹 코스를 걸어 마침내 정상에 다르면 자이언 캐니언의 장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그 유명한 앤젤스 랜딩Angels Landing을 코앞에 두고 지나쳐가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후벼 팠다.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으면 천사가 내려온 곳이라 부르게 되었을지 호기심도 한껏 차올랐고 말이다.

1시간쯤 달렸을까. 붉은 도로 위의 황홀한 여행은 서서히 끝을 향해가고 자이언 캐니언의 웅장함은 등 뒤로 저만치 멀어져갔다. 불변할 것처럼 굳세게 서있지만 끊임없이 변화중인 협곡. 지질학자들은 앞으로도 노스포크 강이 자이언 캐니언의 기반암을 수천 미터이상 더 깎아낼 것이라 예상한단다.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버린 드라이브에 스스로를 위로하는 변명으로 삼기 좋은 사실이더라. 내일도 강물이 이곳을 조금 더 예쁘게 깎아놓을 테니 다음에는 꼭 두발로 그 땅을 꾹꾹 눌러가며 걸어보자고.

1 자이언 마운트 카멜 하이웨이를 달리다보면 이런 풍경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2 3 환상의 드라이브. 자이언 캐니언에는 사륜구동차, 오픈카, 오토바이 등 저마다의 수단을 가지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통과형 여행자가 많다. 
4 자이언 캐니언의 어떤 도로를 달려도 잊을 수 없는 드라이브 코스다. 
5 강물 자국이 깊게 드러난 바위산을 뚫고 자란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