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York :: Airbnb

4 Stops of Airbnb in NYC

뉴요커의 집, 넷

뉴욕을 다녀온 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있다. “뭐가 제일 좋았어?”. 나는 이 질문에 매번 같은 답을 했다. 호텔이 아닌 에어비앤비로만 여행을 한 점이라고. 도시 구석구석을 발품 팔며 방문하고, 함박웃음 지은 순간들이 많았지만 매일 아침과 밤, 포근한 쉼터가 되어준 공간들이 비로소 모든 것을 더 풍요롭게 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청하는 순간까지 한 시도 쉬지 않고 우리는 여행할 수 있었다. 바깥에서는 그 도시를, 집 안에서는 그 도시에서 사는 한 사람의 삶을. 에어비앤비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과 장소들로 보다 더 깊이 담은 뉴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에어비앤비 코리아 www.airbnb.co.kr, 유나이티드항공 www.united.com

어퍼 이스트 사이드 Upper East Side

윌라Willa는 뉴욕 맨해튼에서도 부촌으로 소문한 어퍼이스트사이드Upper East Side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집은 오래된 건물 속의 작은 원룸이다. 부자들만 모여 사는 동네 같지만 의외로 월세가 비싸지 않은 방을 자주 발견할 수 있어 이 동네를 터전으로 삼았다는 그녀는 조용하고, 의외로 소박하며, 무엇보다 센트럴 파크가 가까운 어퍼이스트사이드와 그 속의 이 집을 사랑한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좁은 계단을 올라 처음 만난 그녀의 집은 벽돌집 속 트리하우스처럼 아늑했다. 영상을 만들고 사진을 찍은 콘텐츠 제작자인 윌라는 자신의 직업을 ‘스토리텔러’라 표현한다. 세상, 여행 등 다양한 것들에 대한 영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어내는 그녀의 성향이 담긴 이 작은 아파트는 공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집이다.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모아 놓은 물건들과 나무, 돌, 식물 등을 활용한 자연적인 아이템들이 어우러진 공간에서는 그 누구라도 감성적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녀의 작업실이자 침실인 좁다면 좁은 집이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그녀의 손길이 어려있기에 특별하다. 모두 집 근처의 중고 가구숍이나 온라인 중고 가구 거래를 통해 직접 구한 가구들로 꾸며진 실내는 그녀가 스스로 의미를 둔 크고 작은 물건과 종이들로 알차게 꾸며져 있다. 그 물건들을 하나씩 따져보면 그녀가 보인다. 사진가였던 할아버지가 쓰던 오래된 카메라와
말끔한 액자들 속에 고이 담겨져 있는 그녀의 어린시절 사진들. 또 아티스트인 아버지가 나무를 캔버스처럼 다듬어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넣은 작품도 있고, 그녀의 고향인 메인Maine주에서 가져온 조개껍질들, 말발굽, 바구니에 옹기종기 담아 놓은 솔방울들, 길에서 우연히 사게 된 작업데스크 등 조화롭지만 각자의 이야기들을 지닌 물건들로 채워졌다. 특히나 작업데스크 주변이나 작은 집안 곳곳에서 그녀가 직접 손글씨로 적어 놓은 인용구들을 많이 볼 수 있는 점이 재밌었다. 내용들은 대부분 인생의 가치나, 이를 대하는 스스로의 마음가짐과 행동가짐에 대한 것들이 많다. 원래 인용구를 좋아하냐고 묻자 그녀는 신나는 표정으로 자신이 많은 경로로 모아놓고, 그때그때 원하는 펜과 종이 위에 이를 적어놓은 인용구 스크랩북을 펴보여주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거나,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망각하기 쉬운 인생을 대하는 자신의 자세 같은 것에 인용구들은 좋은 자극이 된다고 말한다. 그런 윌라의 열의와 에너지들이 꿈틀대던 공간이라 그런지, 그 속에 있으면서는 왠지 한국의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소파에 퍼져 있던 자신이 머나먼 과거 속 섬처럼 느껴졌다.

이 집 안에서만큼은 당연히 항상 사유해야하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머릿속을 건강히 해야하는 것처럼 자극된다. 에어비앤비 숙소에 묵는 일은, 특히 호스트가 머무는 공간에 들어가야 하는 숙소들은 이런 점에서 특별하다. 이는 단순히 자신이 여행하는 도시에서 사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며칠 밤 자는 일 이상이다. 한 사람의 집이란 그 사람의 인생을 가득 담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그 숙소를 선택한 여행자는 원하든 원치 않든 머무는 동안 그 사람의 인생을 아주 사적으로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며, 심지어 그 공간 안에서 호스트가 생각하고 그리던 인생, 생각들까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든 편안하도록 가장 기본적으로 꾸며져 있는 호텔과는 차원이 다른 감상이 온몸에 묻어난다. 나의 여행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그토록 장기간 서로 엉겨붙어 있던 적이 있던가 싶다. 그래서 무언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게도 된다. 일일이 집주인이 필요와 애정을 담아 사거나 모아 이곳으로 가져다 놓은 가구이고 물건일 테니, 이미 애정을 듬뿍 받은 느낌이 나는 그 공간에서는 나도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존중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무언가를 막 대할 수 없어 불편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기분 좋은 존중이다.

피곤한 몸을 뉘인 후, 다음 날 아침 윌라가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는 센트럴 파크의 재클린 저수지로 세수도 하지 않은 채 산책을 나다. 그리고 이른 오전부터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같이, 모든 세상을 거울처럼 담고 있는 저수지를 바라보며 흙길 위를 달렸다. 그토록 자유로운 감정이 얼마만이었는지 모른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소소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더 살고
싶게 하는 곳이구나 깊이 깨달은 순간이다.

차이나타운 Chinatown 아반티카의 집

아반티카Avantika는 뉴욕 속의 거대한 중국 차이나타운Chinatown에 살고 있다. 지하철역을 나서는 순간 홍콩의 뒷골목 어딘가로 떨어진 듯 사방에서 들리는 중국말소리와 영어와 중국어가 혼재된 간판들, 낡은 듯 빨간 건물들 틈에선 잠시 정신이 멍해진다. 그녀는 이처럼 이국적인 문화와 사람들, 그럼에도 뉴욕적인 면이 묻어나는 차이나타운을 사랑해마지 않는다. 나이가 지긋한 건물 속의 좁은 아파트에는 중국인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산다. 가끔씩 마주치는 이웃들 중에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눈이 마주치면 보이는 그저 환한 웃음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는 정감 어린 동네. 물론 중국어와 중국인이 넘치는 차이나타운에서의 생활에 불편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거침없는 중국 이웃들의 언행에 간혹 당황할 때도 있지만, 아반티카는 항상 모든 것은 자신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인상부터 찌푸릴 것이 아니라 뭐든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타인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세상에 불쾌하고 불편한 일은 생각보다 부쩍 줄어든다. 이런 사고방식은 각양각색의 사람과 문화가 뒤엉켜 사는 뉴욕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미덕 중 하나이다. 그녀는 이제 그저 끄덕이는 단계를 넘어 이미 차이나타운 특유의 중국도 아니고 미국도 아닌, 묘하게 역동적인 사람과 분위기에 취해 있었다. 차이나타운의 낡고 한문이 주렁주렁 달린 건물들 너머로 미드타운의 빌딩숲 그림자가 슬며시 보이지만, 그 거리는 멀지 않아도 그녀의 터전은 작은 섬처럼 고요하고 특별하다.

패션 블로거이자 의류 리테일숍에서 근무하고 있는 아반티카는 인도 콜카타Kolcata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는 히말라야와 시카고 등에서 장기간 해외생활을 하며 여러 학교를 다니고 다양한 공부를 했다. 그러다 뉴욕에 정착한 건 약 3년 전. 그녀 역시 뉴욕에 매료되어 이 도시에 둥지를 틀었지만, 사실 맨해튼에서의 삶은 달콤하지 못한 부분들도 많았다. 일단 한 달 월급 절반 이상을 월세로 지불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다. 가히 살인적인 맨해튼의 렌트를 내기 위해 뉴요커들은 끊임없이 일하며, 저축에 대한 기대조차 안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이 이 섬 도시에 옹기종기 모여 살아가고 있는 이유이다. 값비싼 월세 그 이상으로 가치 있는 경험들을 선사하는 도시가 뉴욕이기에 결코 떠날 수 없는 것이다. 1년에도 몇 번씩 짬을 내 해외여행을 가곤 한다는 아반티카 역시, 그럼에도 자신은 항상 뉴욕으로 돌아올 때 가슴이 설렌다고 했다. 세련되면서도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닮은 공간 속에서 밤을 맞으며 생각한다. 단 며칠 봤을 뿐인데도 이 도시에 살기 위해 전쟁처럼 일하는 뉴요커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윌라

“뉴욕은 정말 다양해요. 럭셔리한 매디슨가나 5번가를 걷다, B트레인을 타고 차이나타운으로 이동하면 전혀 다른 나라에 날아간 것만 같죠. 그러다 다시 L트레인으로 윌리엄스버그까지 가면 완벽한 힙스터돔의 중심에 떨어지고요. 하루에도, 단 몇 분 안에도 완벽히 다른 세상들을 만날 수 있는 뉴욕이 좋아요. 같은 도시임에도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어퍼이스트사이드를 벗어나 다른 동네로 옮기게 된다면 저의 모든 일과와 생활습관들이 바뀔 거에요. 물론 그래도 센트럴 파크는 항상 제가 뉴욕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겠지만요.”

윌라만의 가장 완벽한 뉴욕 스케줄
. 센트럴 파크 재클린 저수지를 따라 조깅하기.
. 카페 피카FIKA에서 커피 한 잔.
. 문학적인 레스토랑 더 라이팅 룸The Writhing Room에서 브런치 먹기.
. 하우징 웍스 중고품 가게Housing Works Thrift Shop에서 가구와 옷 등 빈티지 쇼핑.
. 공원 옆의 쿠퍼 휴잇 디자인 박물관Cooper Hewitt Smithsonian Design Museum에서 전시회 감상.
. 친구들과 남아프리카 레스토랑 카이아Kaia에서 즐거운 저녁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