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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lan Jalan Ubud

잘란잘란 우붓

우붓에서 느낀 기쁨 대부분을 나는 걸으며 마주했다. 이리저리 나 있는 우붓의 길, 잘란을 잘란잘란 걸으면서. '길', ‘걷다’라는 뜻을 지닌 인도네시아어 ‘잘란Jalan’은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며 장소와 길을 찾을 때 가장 많이 보는 단어 중 하나다. 발리의 소박하고 요란한 문화를 가장 또렷이 간직하고 있는 곳 우붓을 걸으며 만난 자연과 사람, 그곳의 삶에 대한 이야기.
글 이소윤 기자 사진 진하정 기자 취재협조 인도네시아 관광청

우붓의 4가지 색

연두색
논 의 섬, 발리. 발리가 관광업으로 풍족해지기 이전에는 그들의 벼농사가 섬의 풍족함을 도왔다. 바다도 보이지 않는 섬의 내륙에 자리하는 우붓이기에 벼농사는 이들 삶의 큰 기둥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우붓에 사는 사람 우부디안Ubudian들은 모두 자기 소유의 논이 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온 가족과 나의 논. 이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공동체에 어릴 때부터 참여하며 논 관리법과 그 유지를 위한 논의 수로, 수박 Subak 에 대한 지식을 터득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기에 우붓은 여전히 곳곳이 연둣빛 논이다. 화산섬 발리에서 논을 경작하기 좋은 골짜기 속 땅을 활용하기 위해 조성되기 시작한 계단식 논은 그 멋을 가장 여실히 발산하는 곳이다. 비가 와도 아름다운 ‘뜨갈랄랑Tegallalang ’ 테라스는 그야말로 연둣빛의 천국. 전설에 의하면 이 멋진 계단식 논은 8세기부터 형성된 신성한 땅이라 한다. 우붓은 1년에 사모작이 가능한 곳이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이곳은 삼모작을 유지하고 있다. 뜨갈랄랑 테라스가 이어지는 길거리 주위로는 저렴한 기념품 및 수공예품 가게, 카페들이 이어지니 오랜 시간 머물기에도 괜찮은 곳이다. 햇빛 아래에서 더욱 빛나는 모들의 연두색은 보고 또 봐도 질릴 줄 모른다.

노란색
운이 좋게도 발리의 큰 명절 중 하나인 갈룽안 Galungan 기간에 우붓에 머물렀다. 갈룽안 당일이던 4월 5일에는 문을 닫는 상점들 사이에서 갈 곳을 잃은 것도 잠시. 거리거리를 따라 끝도 없이 세워진 판조르 Penjor 행렬과 사람들의 전통 복장 차림의 멋스러움에 눈이 멀어 버렸다. 이슬람 신자의 비율이 높은 인도네시아에서 이 섬 발리만큼은 힌두교를 따르고 있다. 힌두교에서 지식과 배움의 색인 노란색은 행복과 평화, 정신의 성숙 등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 신성한 노란색에 대한 우붓 사람들의 애정을 매 순간 목격했다. 특히 갈룽안 전후로 거리를 따라 촘촘히 세워지는 판조르 부터 연한 노랑 빛깔을 띠고 있다. 판조르는 끝이 점점 얇아지는 대나무를 기둥으로, 노랗게 말린 코코넛 잎을 엮고 묶어 이를 화려하게 장식한 구조물이다. 갈룽안 기간에 하늘에서 지상으로 잠시 내려올 조상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또 악한 기운이 집 안에 들어서는 것을 막고자 모든 힌두교 신자들이 자신의 가정집과 상점, 일터의 입구 앞에 세워 놓는다. 최대 10미터 높이에 이르기도 하는 이 독특한 상징물의 하단에는 쌀이나 과일, 과자 등의 제물을 담기 위한 작은 사당이 붙어 있다. 신과 조상에게 바치는 제물이 놓이는 이곳은 노란빛의 천이나 코코넛 잎과 야자수 잎을 엮어만든 따미앙 Tamiang 등으로 장식하더라. 더불어 갈룽안 10일 뒤에 따라오는 또 다른 명절 꾸닝안 Kuningan 에는 지상에 내려왔던 조상들이 다시 떠나가는 날을 기념하며 모두가 나시 꾸닝이라는 노란 밥을 먹는다. 어디서든 노란색이 보이면 무언가에 대한 발리 사람들의 존중이 느껴졌다. 희미하지 않고 선명한 겸손과 동경의 마음이다.

초록색

내 눈에 우붓의 논과 모가 더욱 눈부셨던 건 그 풍경 속에 늘 우붓의 정글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발리 내륙의 특별함은 어쩌면 정글에 있다. 우리에겐 한 그루만으로도 특별한 야자수와 코코넛 나무가 웅성웅성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항상 신의 나무 반얀트리가 있고, 원숭이가 산다. 싱그럽고 부드러운 모의 연둣빛과 비슷한 색을 띨지라도 우붓 정글의 씩씩함은 무엇과 견주어도 이길만한 것이다. 우람한 정글의 기량을 느끼고 싶다면 오히려 야생 원숭이들로 더 유명한 ‘몽키 포레스트 Monkey Forrest’ 를 거닐어 보자. 반얀트리의 뿌리로 사방이 뒤덮인, 초록색이다 못해 갈색에 가까울 만큼 오랜 생명력을 유지해온 정글의 세월에 기가 죽는다. 만약 이 땅에 사람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모든 곳이 이처럼 멋진 숲이었겠구나 상상했다. 그러나 아주 옛날 숲속에 지어진 듯한 고즈넉한 사원과 사당들이 더욱 특별한 그림을 만드는 것도 사실. 이국적인 모험을 그린 멋진 영화의 한 배경 속에 들어온 듯했다.

암회색

발리의 사원들은 여성스러운 섬세함을 지니고 있다. 바다 곁이 아니니 화산섬 본래의 암회색 바위들을 보기는 힘들지만 이미 모든 사원과 집들이 섬에서 얻은 돌로 세워져 있기에 산속 마을 우붓에서도 발리의 땅속 빛깔을 직접 볼 수 있다. 이 짙은 회색 돌들에 새겨진 오랜 자바 문화와 발리 사람들의 예술성에서 비롯된 석조 장식들을 보노라면 화려한 여신과 같은 자태가 느껴진다. 주로 꽃과 상징적인 동물, 신들의 모양을 우아하게 품은 채로 바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암회색 사원들. 숱한 시간을 엎고 뚜렷한 명암으로 바랜 그 모든 건물들은 하나하나가 보석과도 같다.

우붓의 풍경을 담은 장소 3곳

베벡 테피 사와 Bebek Tepi Sawah

우붓에서 먹어 봐야 할 음식 중 하나인 오리 요리. 논 때문이기도 하지만 집에서 여러 가축을 흔히 키우는 발리 사람들에게 오리는 가장 친숙한 동물이자 식재료이다. 현지식 오리 요리와 논을 품은 풍경을 한 번에 만끽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이곳. 가장 유명한 메뉴는 튀긴 오리와 밥, 세 가지 인도네시아식 삼발소스가 함께 나오는 ‘테피 사와 크리스피 덕 Tepi Sawah Crispy Duck’. 보다 인도네시아의 향신료를 만끽하고 싶다면 튀긴 오리를 특제 발리 소스에 재워 대나무 속에서 다시 구운 ‘베벡 띰붕안 테피 사와Bebek Timbungan Tepi Sawah’를 선택해도 좋다. 마치 부드러운 장조림이나 갈비찜을 먹는 듯 깊은 간장 맛이 느 껴지는 밥도둑이다.
참고 www.bebektepisawahrestaurant.com
주소 Jalan Raya Goa Gajah, Banjar Teges, Peliatan, Ubud

카페 로터스 Cafe Lotus

아름다운 발리니즈 사원을 편안히 휴식하며 꼼꼼히 관찰하고 싶다면. 1983년부터 한 자리를 무려 30년간 지켜온 이 카페는 간단한 티타임은 물론 식사를 위해서도 찾기 좋다. 특히 연못 위에 떠 있는 듯한 테라스 자리 앞에는 ‘푸라 타만 케무다 사라스와티 Pura Taman Kemuda Saraswati’ 사원의 풍경과 연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 특히 석양의 시간이 다가오면 이 사원 앞마당에서 펼쳐지는 전통 무용 공연을 더불어 구경하는 행운을 거머쥘 수도 있다는 사실. 낮과 밤 언제 찾아도 매력적인 장소다.
참고 www.cafelotusubud.com
주소 Jl. Raya Ubud, Ubud

쁘따니 레스토랑 Petani Restaurant

아주 잠시 발리의 전통미는 조금만 머금은 세련된 공간이 필요해질 때 이곳을 찾아보라. 알라야 우붓
Alaya Ubud 은 우붓 시내 속 럭셔리 호텔로, 쁘따니 레스토랑을 비롯한 여러 멋진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다. 호텔 부지 속 논의 풍경이 반짝거리는 밤에는 레스토랑에서 감미로운 라이브 공연도 소소하게 시작된다. 가격 대비 훌륭한 식사로도 유명하지만 그저 맥주 한 병 즐기며 기분 전환하기에도 부담 없는 장소다. 이날의 선택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자국 맥주 빈땅, 그중에서도 레몬 향이 가미되어 더 산뜻한 빈땅
래들러Bintang Radler 였다.
참고 www.alayahotels.com/alayaubud/experience
주소 Jl. Hanoman, Ubud

우부디안의 집, 전통가옥

1 상가 Sanggah. 발리 전통가옥에는 자신들의 조상이나 신을 모시고 기도 드리기 위한
가족 사원이 집마다 다른 크기로 마련되어 2 우마 메뗀Umah Meten. 집안의 가장 어른을 위한 공간. 주로 침실로 쓰인다.
3 발레 다우Ba le Dauh. 네 면 혹은 세 면이 벽 없 이 개방되도록 지어지는 일종의 파빌리온. 가족들이 깨어 있을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보
내는 공간이다. 이야기를 나누거나 식사나 수작업, 놀이 등은 대부분 이곳에 둘러앉아 한다.
4 발레 당인Ba le Dangin. 종교적인 의식을 위한 공간이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이곳에 수북이 공양을 쌓아놓고 기도 드린다.
5 발레 사끄남Ba le Sakenam. 집안 어른을
제외한 가족 구성원을 위한 공간. 손님도 사용할 수 있다.
6 룸붕Lumbung. 흔히 2층으 로 지어져 있으며 쌀을 비롯한 곡식 등을 두는 창고다.
7 빠온Paon. 아궁이에 불을 피워 요리를 하는 부엌. 불의 신이 남쪽에 있다고 믿기에 주로 남쪽을 향해 짓는다. 8 짠디 꾸 룽Cand
i Kurung. 전통가옥의 대문들은 모두 아담하다. 나쁜 기운이나 악귀가 집에 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또 이를 위해 대문 뒤에 알링알링Aling-Aling이라는 작은 돌벽
도 세워 놓기 때문에 이 벽을 지나쳐 들어가야 가옥 내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전통가옥은 발리 삶의 축소판

발리 사람들은 신을 섬기고 가족을 사랑하는 일을 가장 중요시한다. 말로만 듣던 이런 이야기가 가장 피부로 와 닿았던 건 그들이 살아가는 집에 들어섰을 때부터다. 이들은 힌두교의 뜻을 따라 정해진 구조로 집을 지어 대가족으로 생활한다. 물론 가족마다 자신들의 편의와 필요에 따라 확장, 변형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구조와 필수 요소들은 거의 동일하다. 여전히 발리 사람들의 약 40퍼센트가 이런 형태의 전통 가옥에서 살아간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들의 자식 부부, 그리고 또 그들의 자식까지 최소 삼대가 한 울타리 안에서 먹고 자고 논다. 집안의 아들이 결혼을 한 후 따로 집을 꾸릴 여유가 없을 경우에 아내가 남편 집으로 들어가면서 가족의 수가 늘어난다. 이때 필요하다면 집에 건물을 늘리기 위한 공사도 흔히 벌인다고. 물론 사람만이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이들답게 집 마당에는 바나나, 파파야 나무를 비롯한 온갖 꽃과 식물들, 그리고 닭과 오리, 돼지 등의 가축들이 공존하고 있다. 대도시민인 나는 구석구석 둘러볼수록 부러움이 샘솟았다. 어릴 적부터 마당 넓고 볕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상상 한 번쯤 누구나 하지 않나. 발리니즈 는 부모님 말씀만 잘 들으면 자신이 태어난 이 자연스러운 집에서 원하는 만큼 생활할 수 있다. 그러니 내 집 장만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돈을 왕창 벌고 모을 필요가 크게 없다. 또 집집마다 소유하고 있는 논에서 1년에 4번씩 쌀도 수확한다. 인간 생활에 필요하다는 의식주 중 두 가지를 타고 나는 것이다. 거기다 본래 의미 있는 날이면 이웃끼리 서로 의복을 선물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관습까지. 정녕 가만히 웃으며 살기만 해도 의식주가 절로 마련되는 삶이다. 그러니 아이들은 공부하고 싶으면 하고 아니면 말며 자유롭게 성장한다. 세계적인 휴양지가 고향이니 많은 발리니즈들이 여행업과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데 대부분 일당으로 돈을 지급받는다. 덕분에 한 달의 근무 일정이 빠듯하지 않다고. 흔히 쉬는 날이 오면 집에서 야자 잎으로 바구니나 생활소품 등을 짜 만들기도 안과 가축을 돌보기도 한다. 어쩌면 발리니즈에게야말로 발리가 진정한 휴양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섬이 진정한 휴식과 힐링을 여행자들에게 넘치게 선물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 발리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행복이 매일 켜켜이 쌓이기 때문이 아닐까.

발리의 명절, 갈룽안을 만나다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서 바다를 등지고 차로 달려 우붓에 도착했다. 우붓 시내의 중심부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우붓에 도착했음을 창밖 풍경이 목청껏 알려준다. 시내의 모든 도로가 2차선으로 퍽 아담한데 그 양옆을 따라 웬 길쭉이 높고 끝에서 축 고개를 떨구고 있는 구조물이 연달아 세워져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고향에 금의환향한 나를 온 우붓이 환영이라도 해주는 것처럼. 두 눈이 휘둥그레져선 운전하던 우부디안 가이드 수마다씨에게 서둘러 그들의 정체를 물었다. 연노란색의 마른 잎 장식들이 바람에 나풀대는 키다리 장대들의 이름은 ‘판조르’. “내일이 발리에서 아주 큰 명절 갈룽안이에요. 그래서 다들 세워 놓은 거지 항상 이렇게 많지는 않아요”. 갈룽안 당일 며칠 전부터, 갈룽안이 지나고 10일 뒤 한 맥락의 또 다른 명절 꾸닝안 Kuningandl 이 다가올 때까지 이렇게 거리를 장식하고 있을 거라는 판조르를 보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고 있는 듯한 고마움을 느꼈다. 나 역시 그랬고 다들 우붓에 처음 닿으면 놀라는 것이 수많은 상점과 레스토랑 등이 유럽 스타일로 거리거리를 꾸미고 있는 모습이다. 도시에서 사는 이들에겐 조금 색다르되 여전히 편리한 여행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는 셈이니 여러모로 더욱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짜 우붓의 속살을 보기 위해선 스스로 이를 찾아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연스레 여행자들의 취향에 감춰져 있던 현지의 문화가 적어도 이 갈룽안 기간만큼은 온 거리에서 그 자태를 완전히 뽐낸다. 각각의 집 대문 앞에 세우는 판조르를 세어 보며 길거리 구석구석에 이렇게나 많은 현지 사람들의 가정집이 자리하고 있었구나 새삼 느꼈다. 하루 뒤인 갈룽안 당일이면 그들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그 문밖을 나올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지금 우리 이렇게 행복하니 고맙습니다

4월 5일이었다. 210일을 주기로 돌아오는 발리 힌두교의 대명절 갈룽안 당일이다. 거리는 그야말로 꽃 천지다. 사람들의 얼굴과 차림새가 꽃처럼 활짝 피어 있다. 남녀노소 모두가 가진 중 가장 어여쁘고 깔끔한 전통복장을 꺼내 입고 집안의 가족 사원이나, 마을 사원에 올릴 공양을 담은 작은 바구니 짜낭 Canang은 손에 들고 머리에 이었다. 하지만 사람 구경에 넋이 나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거리에 문을 연 가게 찾기가 쉽지 않다. 외지인에 의해 운영되는 가게들이 아닌, 우붓이나 발리 현지인들이 소유하는 가게와 레스토랑들은 여지없이 문을 닫는 날이다. 사람들은 이 기간에 조상과 신이 지상에 다시 내려온다고 믿는다. 그들 덕에 악귀의 기운을 물리치며 지내온 시간들에 대한 감사함을 여러 의식으로 표출한다. 어차피 시내도 고요하니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이 명절을 일하느라 즐기지 못하고 있는 나의 가이드 수마다의 집으로 말이다. 갈룽안이면 멀리 집 나갔던 친지, 가족들이 모두 모여 가족 사원과 마을 사원을 찾는다. 그 시간들이 어떤 따스함을 지닐지 직접 보고 싶었다. 그가 사는 마을 마당안Madangan은 우붓 시내에서 차로 30분쯤 벗어나면 나오는 순수 우부디안들의 터전이었다. 어린 두 아들의 아빠이자 아리따운 여인의 남편인 수마다가 집으로 돌아오자 모여 있던 가족들이 반가움에 펄쩍 뛴다. 명절이면 즐겨 만들어 먹는다는 떡 도돌Dodol과 음료를 대접 받으며 온갖 공양들이 수북이 쌓인 가족 사원을 둘러보았다. 집안 마당을 이리저리 닭과 함께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마음껏 들으면서. 그런데 어디선가 화려한 발리 특유의 가믈란 연주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니 모두들 분주하게 대문 앞으로 나가 자리를 잡고 앉는다. 집 안주인의 손에는 쌀과 과일, 과자, 돈 등을 담은 넉넉한 짜낭이 들려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마을에서 열리는 의식 행렬이 이 앞을 지날 거에요”. 경쾌한 연주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골목의 저 끝에서부터 새하얀 옷들로 갖춰 입은 사람들이 정겨운 길을 가득 채워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행렬의 맨 앞에는 신난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어 지나가더니, 이내 가 믈란의 악기들을 든 소년 연주단이 뒤를 따른다. 쩌렁쩌렁한 연주 소리 다음으로는 마당안 마을의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각 마을마다 다르다는 악마의 거대한 형상이 지나가자 신성한 물과 작은 사당을 머리에 인 여인들과 마을의 대표 승려 한 분, 주민들이 들고 나온 제물을 수거하는 사람으로 긴 행렬의 끝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뒤로도 행렬에 자유롭게 걸음을 보탠 마을 주민들이 지나가고 또 지나갔지만. 마을의 승려는 거리로 나와 행렬을 기다리는 모든 주민들의 머리 위로 일일이 신성한 물을 축복하듯 뿌려 주었다. 입을 헤벌리고 구경하던 동네 유일의 외국인인 나조차도 빼먹지 않았을 만큼 꼼꼼하다. 골목에 뛰어노는 수많은 꼬마들이 누구 자식인지도 다 꿰뚫고 있다는, 온 마을이 한 가족인 마당안이기에 행렬 덕에 다시 만난 주민들이 서로 반가운 인사도 건넨다. 순간 이들은 매일을 진정으로 살고 있다는 짙은 느낌이 밀려왔다. 매일 나누는 이웃 주민들과의 대수롭지 않은 수다와 해 뜰 때마다 듣는 우리 집 수탉의 울음소리, 또 바람이 내 논의 모를 스치는 소리 모두가 그들 행복의 증거 같았다. 또 그 모든 사소한 행복에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릴 조상과 신을 마음속에 품고 매일을 사는 사람들. 잠시라도 그들 속에 함께 할 수 있어 참 풍요로운, 갈룽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