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고 베트남의 호이안으로 여행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호이안의 구시가지는 1999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인기가 많은 곳으로 내가 방문한 날도 관광객으로 들끓었다. 나는 우선 유명한 구시가지부터 둘러보기로 하고 가이드북만 챙겨 길을 나섰다. 그런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주위에는 사람은커녕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작은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 내가 묵는 호텔로 가는 방향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천만다행으로 거기 있던 아저씨가 호텔까지 오토바이로 바래다준다는 것이 아닌가! 순간 너무 고마워 그 아저씨의 모습이 천사로 보이기까지 했다. 아저 씨의 오토바이를 타고 호텔에 도착한 나는 고맙다고 악수를 청하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아저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줬다.
방으로 돌아와 너무 더워 속옷만 입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누구냐고 물었지만 대답도 없이 계속 노크를 하는 것이었다. 뭔가 이상해서 얼른 옷을 주워 입고 이름을 말하라고 하 니(말한다고 아는 것도 아니지만)그 쪽에서 "me"라고 대답했다. 낯선 땅인데 그렇게 말할 만한 사람이누가 있겠는가. 뭔가 이상해 문 쪽으로 가서 유리창 너머를 살펴보니 조금전 날 태워준 아저씨의 실루엣이 흐릿하게 보였다.
너무 놀란 나는 "무슨 일이야? 당신이 여기 왜 있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갑자기 태도를 바꾸더니 철컥철컥하며 문을 열려고 힘을 쓰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겁이나 "help me!"를 외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내 소리를 누가 들었는지 밑에서사람이 올라오는 것 같았고 그는 이내 사라졌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나는 문을 열고 밑으로 내려갔다. 직원이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니가 내 방 번호를 그 사람에게 가르쳐줬지?" 했더니 시치미를 떼는 건지 진심인지 모르는 일이라고만 했다. 밖으로 나가보니 아저씨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그 날 나는 아저씨가 호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까봐 나가지도 못하고 종일 '어떻게 방 번호를 알았을까'를 추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끝내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며칠 후 하롱베이에서 한국인을 만나 이 이야기를 했더니 한국식으로 너무 친절하게 인사하면 상대방이 오해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갑자기 헤어지며 돌아설 때 미끄러지게 웃던 그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순간, 나 자신은 고마워서 한 행동이 오해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각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여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