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가면 유명 갤러리만큼은 반드시 들리곤 한다. 예술에 문외한이지만 책에서 봤던 그림이나 조각상을 실
제로 볼 때 머리끝이 쭈뼛 서고 온몸에 전율이 스치는 게 좋아서다. 여기서 말하는 유럽은 서유럽과 남유럽. 그
러나 예술 열풍은 북유럽에도 몰아쳤다. 딱딱한 회색빛의 도시일 거라 생각했던 오슬로는 밝았다. 따사로운 햇
살이 가득해서만이 아니다. 겨울의 모진 바람 속에도 예술의 꽃은 만개했다. 예술도시로 언급되는...

머릿속 노르웨이는 눈과 겨울의 나라였다. 올 초에 개봉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때문이었던 걸
까. 영화 속 눈보라가 몰아치고 모든 것이 얼어붙은 아렌달 왕국까지는 아니더라도 겨울의 이미지는 언제나 노
르웨이와 함께였다.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한대성 기후로 겨울이 길고 이때의 평균기온은 영하 15도에 달하
니. 그런 노르웨이에 여름이 왔다. 백야로 오후 10시에도 누군가가 내게 오전 10시라 한다면 아침이라...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 때로는 웰링턴 대신 수도로 착각하곤 하는 유명한 이름의 도시. 오클랜드에는 생
기 넘치는 도시적 문화가 있고, 손닿는 거리에 대자연이 만들어놓은 놀이터가 있다. 작은 카메라 하나 들고 거
리에 뛰어들어 그들만의 시티라이프를 사진 속에 담았다. 센트럴 오클랜드에서 포착한 이 도시의 평범한 날들

여행할 때마다 수면으로 떠오르는 뻔한 호기심이 있다. 유럽의 도시라면 “가장 오래된 것이 무엇일까?”, 북미
나 아시아의 도시라면 “가장 새로운 것이 무엇일까?”라는 것. 뉴질랜드에서 가장 큰 도시, 오클랜드Auckland
에서 던진 첫 질문도 당연히 그거였다. 이 도시에서 새것이라 부를 수 있는 따끈따끈한 일이 무엇이냐고 말이
다. “당연히 윈야드 쿼터라고 해야겠네요. 최근 몇 년 동안 오클랜드의 워터프론트에서 서서히 발전하고...

저 멀리 포도밭 너머로 도시가 보이죠? 오클랜드의 다운타운이에요. 우뚝 솟아있는 스카이 타워가 또렷하게 
보이잖아요.” 따사로운 가을 햇볕이 내리쬐는 포도밭 한가운데 털썩 주저 않아 몇 잔째 들이부은 와인에 헛것
이 보이는 거라 착각했다. 가까운 섬에 형성된 도시 중에 하나일 거라 짐작하기도 했고. 그런데 자세히 바라보
니 그게 아침에 떠나온 바로 그 오클랜드더라. 테이스팅으로 넘긴 레드와인 몇 방울에 취한 게 아니었다...

흐읍-. 숨을 들여 마시다가 호흡을 잠깐 멈추고 말았다. 일부러가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놀라서 숨이 
저절로 막혔다. 시선이 머무는 곳 전부, 360도 파노라마 뷰 모두다 시각적으로 나를 공격했다. 아주 자극적인 
방식으로. 핑크에 가까운 주홍빛 돌기둥들이 땅위로 삐죽빼죽 솟아오른 모습은 마치 외계인들이 UFO를 타고 
날아와 치토스 과자를 지구를 향해 마구 던져놓은 것처럼 기이한 형색이었다...

공원의 방문자센터 앞은 정신없이 북적댔다. 걸음마를 시작한 지조차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어린 아이를 대동
한 가족부터 젊은 커플과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운동화의 끈을 질끈 동여매고, 급수대에 줄을 서서 물병
을 가득 채우고, 얼굴이며 어깨까지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느라 난리였다. 너도나도 손에 쥐고 있는 전혀 예
쁘지 않은 투박한 나무 지팡이가 ‘우리 지금 제대로 걸으러 갑니다.’의 순간을 더 멋스럽고...

나 처럼 늙으면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사업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 이 나라 저 나라 많이 돌아다녔
어요. 모르는 게 없다고 살아온 80년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기 서서 보니 내가 아직도 모르는 것들
이 많이 남아있었네요. 그동안 어디서도 본적 없었던,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기이하고도 멋진 장면들과 마주했
죠. 그래서 기분이 묘해요. 겸손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론 많은 걸 몰랐던 젊음으로 돌아간 기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