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독일의 힘은 하루 이틀 걸려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매번 깨닫는
다. 요즘 지은 현대 건축에서도 손잡이 하나 창틀 하나도 무게나 질감이 다르다. 그러나 영국 물건들 특히 공산
품은 뭔가 어설프다. 독일의 호텔에 투숙하다 보면 화장실 변기부터 세면대 하나도 영국 호텔의 그것과는 확연
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영국 호텔의 집기들은 새 것이면 이케아 수준보다 조금 나을 정도의...

말라가, 피카소의 고향을 그리다나의 일생 92년, 내 고향을 잊은 적이 과연 있던가. 뜨거운 태양과 활기찬 사람
들,평화로운 비둘기와 피 튀는 황소가 공존하던 그곳은 짧지만 강렬했던 내 마음 속 영원한 집이다.언젠가 죽
음이 내 앞에 도래하거든, 기꺼이 그 매혹적인 도시에 내 이름과 업적들을 헌정하길 바랐다. 이 몸의 자유로운 
예술혼이 가장 처음 비상했던 도시, 바로 나의 고향 말라가다...

칼 마르크스의 말처럼 ‘종교는 인민의 아편Religion is the opium of the people’이라면 ‘여행도 아편이다’라는 
말은 어떤가? 마르크스는 불의와 부조리와 부정이 판치는 세상에서 종교는 인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줄 수 없는 존재라고 시비를 걸었다. 그런데도 인민들은 있는지 없는지도 몰라서 올 지 안 올 지도 모르는 내세
에는 잘 살 수 있다는 종교의 약속을 철석 같이 믿고 살아간다고 했다. 과연, 여행은 아편인가라는...

여행을 하다보면 바람이 잘 통하는 뒷마루에 마음을 걸어놓고 싶을 때가 있다. 비우기 위해 떠났지만 촉박한 
시간에 조급해져 오히려 쓸데없는 것까지 꾸역꾸역 밀어 넣다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남미 여행의 네 번째 도
시 엘 칼라파테에서는 그래서 좀 천천히 쉬어가기로 했다. 세상 끝에서 불어오는 파타고니아의 바람을 맞으며 
열기를 식히고 빙하의 청량함으로 몸속 가득 채우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 유럽의 모든 궁은 베르사이유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베르사이유 궁이 유
럽 궁 중에서 최고라는 말일께다. 심지어는 인간이 만든 궁 중에서 미적으로도 가장 완벽하고 기능적으로도 가
장 흠잡을 데가 없는 곳이라는 극찬까지 듣는다. 그래서 유럽의 어느 궁이라도 베르사이유의 전형을 어떤 형태
로든 따르지 않은 궁이 없을 정도. 어떤 궁을 평할 때 베르사이유와 항상 비교해서 말한다...

남미의 유럽’이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수식어는 남미 고유의 색을 찾아 나선 여행자에게 정말이지 재미없
게 들린다. 남미 배낭여행의 세 번째 도시가 아니라 서른 번째 정도로 미뤄두고 싶다. 물론 한 번 보면 넋을 잃
고 두 번 보면 머릿속에서 따라 추고 자꾸 보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게 하는 탱고를 몰랐을 때 하는 소리
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산다고 모두 탱고를 추는 건 아니지만, 거리를 걷다 보면 감미로운 선율에...

내가 꿈꾸는 파리여행은 이렇다. 정오가 되기 전 달콤한 쇼콜라 쇼를 마시며 느지막이 잠에서 깬다. 간단한 브
런치와 디저트로 배를 채운 뒤 조용한 미술관에 앉아 작품 자체에 빠져들어 본다. 오후에는 시장으로 걸음을 
옮겨 저녁준비에 필요한 식재료를 산다. 주말 아침이면 인정 넘치는 벼룩시장에서 뜻밖의 수확을 노린다. 도보
여행의 낭만을 버리지 않았다면 이는 파리 안에서 현실이 된다...

이번에는 우리에게는 요절 시인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라고 인용되
어 더 유명해진 영국 여류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882-1941) 부부의 집을 찾아 그녀의 ‘서러운 이
야기’를 한번 들어 보려고 한다. 몽크스 하우스Monk's House라 불리는둘의 집은 런던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인 이스트 서섹스 지방의 조그만 마을 로드멜Rodemell에 있다. 부부가 결혼한 지 7년 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