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하루의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포기할 마음은 결코 없었다. 엄마가 좋니 아빠가 좋니 하는 물음에 그만 울음을 터뜨려 버린 아이처럼, 나는 그 둘의 옷자락을 붙잡느라 하룻동안 비엔나에서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했다. 한 손엔 모차르트의 신탁을, 다른 손엔 클림트의 관능을 붙잡고 버틴 비엔나에서의 한나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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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하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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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려오기 전인 11월의 아침. 비엔나 국립 오페라하우스 앞은 '짝퉁 모차르트' 들로 가득하다. 끝을 한껏 감아올린 은회색 가발과 붉은 재킷을 걸친 모차르트들은 밤에 있을 오페라 공연 티켓을 행인들에게 팔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백 25년 전인 1781년부터, 35살 짧은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비엔나에서 보낸 모차르트의 도시생활 역시 티켓을 파는 그들과 결코 다르지 않았으리라. 오로지 신만이 부여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남자는 그날의 초겨울 아침에도 푼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에게 음악을 의뢰할 계약자를 찾아 거리를 배회했는지도 모른다. 천재라는 칭송을 받으며 비엔나의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것도 잠시. 유행에 민감하고 싫증을 잘 내는 이 도시의 경박한 귀족들에게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여타 평범한 음악가들의 그것과 구분해 낼 능력이 없었다. 남들(살리에리를 포함해)이 중요한 행사의 연주곡을 잘도 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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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낼 때 모차르트는 싸구려 무도회용 음악을 작곡해주고 푼돈을 벌어야만 했다. 그는 계약자가 요구하는 대로 모든 걸 맞추어 주는 '음악 재단사' 이기를 거부하고 대신 궁핍을 택한 자유인이었다. 물론 그 자유의 대가는 혹독했다.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모차르트는 죽음 후에 더욱 각광을 받는다. 비엔나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훨씬 뒤인 1869년에 이 멋진 국립 오페라하우스의 첫 공연으로 '돈조반니'를 선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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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테판 대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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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하우스 북쪽으로 케른트너 거리를 따라가면 도시의 명소인 슈테판 대성당의 화려한 지붕과 첨탑을 만난다. 도시의 랜드마크인 이 성당은 불과 1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3년간 살았던 모차르트에게도 익숙한 장소였을 것이다. 1791년에 모차르트의 차가운 시신은 이곳의 시신보관소(성당 외벽에 표시가 되어 있다)에서 간단한 장례 절차를 마쳤다. 그가 남긴 빛을 청산해야 했던 미망인 콘스탄체는 남편의 장례식을 비용이 적게 드는 '3급' 으로 치르길 원했고, 모차르트의 시신은 다른 이름 없는 시신들과 함께 시외의 마르크스 묘지에 묻혔다. 슈베르트나 베토벤, 브람스 등과는 달리 모차르트의 정확한 묘가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된 사연이 여기에 있다. 비엔나 시내가 담긴 이 모든 이야기들은 모차르트의 말년이 얼마나 힘겹고 고통스러웠는지를 짐작케 해 주는 단서가 된다. 그런데 추락을 거듭했던 비엔나에서의 바로 그 10년 동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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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차르트의 대표작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책에서는 이를 모차르트의 '절대 음악성'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차츰 귀가 먹어가는 고통 속에서 '운명 교향곡'을 작곡한 베토벤처럼 대부분의 음악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악보 속에 녹여 넣기 마련인데, 모차르트의 음악에서는 그런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는 그가 다른 작곡가들보다 한층 더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매일 같이 지인에게 돈을 보내달라는 편지를 써야했던 궁핍한 생활을 하고, 사람들의 무관심속에 잊혀져가는 자신의 재능이 너무나 안타까워 성격마저 차츰 광적으로 변해가는 가운데서도 그가 만들어내는 선율은 갈수록 아름다워지기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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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크극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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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중심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지르는 여정을 모차르트와 함께 한 다음,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환상 도로(링)를 따라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길은 구스타프 클림트가 동행해 주었다. 오후 2시. 피가로하우스를 나와 화려한 그라벤을 지나 프로이트나 트로츠키가 당구를 치곤 했다는 카페 첸트랄에 앉아 예술가 클림트를 생각한다. 구태의 연한 표현방식에 반기를 들고 분리파 운동을 펼쳤던 클림트가 만약 이곳에서 모차르트를 만난다면, 종교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갈구한 음악가와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카페 첸트랄 서쪽에 있는 부르크극장에는 크림트의 초기 미술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건물 내부 중앙에서 양쪽으로 뻗은 계단 중 왼쪽 계단의 천장화. 1883년에 비엔나 장식미술학교를 졸업한 클림트가 직업예술가로서 1888년에 최초로 받은 대형 주문이 바로 이 작품이었다. 반 고흐나 피카소, 잭슨 폴락의 그림처럼 얼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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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기만 해도 '그의 것' 이라 구분 할 수 있을 만큼 개성적인 클림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그는 진부함과 매너리즘을 혐오했다. 부르크극장에서의 작품을 시작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그는, 이 작품으로부터 정확히 10년째인 1897년에 비엔나의 예술가집단인 쿤스틀러하우스를 탈퇴한다. 옛 영광에만 안주한 예술계에 대한 경고이자 반항이었다. 그 뒤 그는 비엔나 분리파(Secession, 제체시온)를 결성해 초대 회장을 맡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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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체시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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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오페라하우스에서 남쪽으로 두 블록 떨어져 있는 제체시온 건물에 가면 '우리는 삭막한 일상과 너절하고 하찮은 것에의 집착, 그리고 모든 형태의 악취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다' 던 헤르만 만의 말만큼이나 도전적인 '분리파 클림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건물 지하에 있는 '베토벤프리즈'는 클림트가 1902년에 분리파 전시회에 출품한 것이다 '사회의 몰이해와 고독과 싸운 베토벤' 이라는 주제로 다른 작가의 족각 등과 함께 구성된 작품의 일부다. 창백한 피부를 가진 나체 여성의 섬뜩하기도 하고 에로틱하기도 한 모습이나 금빛 물감, 주석도금, 가짜 보석 등을 사용한 모습에서 이후 그가 열어젖힐 '황금시대'의 작품을 어렵지 않게 떠오릴 수 있다. '키스'를 보지 않고 클림트를 이야기할 수 없기에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가는 동안 동쪽으로 가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해야 했다. 비엔나의 환상도로 남동쪽 외곽에 있는 벨베데레 궁전은 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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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과 하궁으로 나뉘어 있다. 클림트의 그림은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또 한 명의 화가인 에곤 실레의 그림과 함께 상궁에 있다. 금색 물감과 금박이 빛나는 클림트의 대표작이 있는 곳은 2층의 오른쪽 끝 방. '황금시대'를 맞이한 클림트 예술의 정점인 '키스'를 보면서, 1.8미터에 달하는 생각보다 훨씬 큰 크기에 한 번 놀랐고 따뜻한 조명을 받아 이리저리 반짝이는 표면의 화려함에 두 번 놀랐다. '아름답지만 부패하기 쉬운 장식성과 관능성' 이라는 비판데 직면했던 클림트가 1905년에 분리파 회장직을 사임한 것은 그 비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인지 아르누보의 장식성의 한계를 예감했기 때문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키스가 발표된 1908년에는 적어도 그의 눈동자에 금빛 파도가 넘실대고 있었음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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