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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1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대한민국] 도시분류 : [태백]
기사제목
[OUTFIELD] 어느 겨울, 기차 여행_Where the Railway 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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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털옷을 걸친 기상 캐스터는 12월의 두 번째 주말, 태백 지역에 15센티미터 정도의 눈이 쌓일 거라고 했다. 이번 주말엔 눈사람처럼 둥글둥글해지더라도 옷을 잔뜩 껴입고 가야겠군. 아니, 그보다는 아침 8시 열차 출발 시간에 맞출 일이 더 걱정이다. 행여 늦기라도 하면 기차는 가차 없이 떠날 것이다. 출발 12시간 전부터, 나는 바짝 긴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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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으로의 기차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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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행이다. 7시 반, 청량리 전철역에서 “아직도 안 왔냐!”는 사진팀장의 ‘독촉’ 전화를 받으며, 나는 내심 안도했다. 적어도 8시 5분 전, 젖은 머리를 날리며 집밖으로 뛰쳐나가는 상황은 아니니까. 그렇게 위안하며 계단을 뛰어오른다. 청량리 기차역 입구에는 이미 여행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인사를 하고 이름을 대니, 아침으로 먹을 시루떡과 물, 여행할 장소에 대한 정보가 담긴 책자가 담긴 쇼핑백을 건넨다. 가방에는 여행 시 입장권 대신 쓰일 파란 이름표도 들어있다. 8시 10분 전, 개찰구를 통과해 플랫폼에 선다. 잠시 후 찬 바람을 어깨에 실은 기차가 들어왔다. 색 바랜 6량짜리 무궁화호다. 좌석 번호를 찾아 자리에 앉는다. 의자 등받이를 15도 정도 뒤로 젖히고 몸을 기대니, 안도감이 몰려온다. 드디어 떠나는구나! 슬며시 미소가 떠오른다. 겨울, 태백으로의 기차 여행에는 어딘가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예를 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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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것. 까무룩 잠들었다 눈을 떴는데 진한 갈빛을 띠던 산이 어느새 설탕 가루라도 뿌린 듯 하얗게 반짝이고 있다거나, 꿈인가 눈을 비비면 유리에 닿은 눈이 꽃비처럼 퍼지는. 4시간 후, 태백역에 도착했다. 조용했던 기차 안은 이내 술렁이기 시작한다. 누군가 지금 막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이 바로 크리스마스예요”하고 폭탄선언이라도 한 것처럼. 밖은 잔뜩 흐리고 바람은 거셀 것이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기차에서 내린다. 그러나 공기는 생각보다 따스하다. 이는 태백산맥이 차가운 북풍을 막아주기 때문이라는데, 태백산 건너 바닷가 마을과는 평균 5도 이상 차이가 난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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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와 마을에서 까치밥을 뻇어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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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스에 올라 여행의 첫 목적지인 너와마을로 향한다. 이곳은 육백산 허리에 위치한 전통 산간오지마을로, 예전부터 화전민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나무로 지붕을 올린 너와집은 강원도 등 산간지방에서 많이 발견되는 주거형태다. 지붕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 비라도 오면 물이 새서 살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이지만, 습기를 먹으면 나무가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아 비가 새는 일은 별로 없다고 한다. 또 통풍이 잘 돼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데워진 내부의 공기가 집 밖으로 쉽게 빠져나가지 않아 따뜻하다. 마을입구에서 경운기 3대에 나눠 타고 아스팔트로 포장된 산길을 올랐다. 제법 매끄럽게 포장된 길이지만 미니 경운기에 난민처럼 쭈그리고 앉아 있으니 엉덩이가 얼얼하다. “자, 내리세요. 문화재로 지정된 물레방아를 보시겠습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마을에서 수확한 대부분의 곡물을, 이 물레방아로 빻았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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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다. 80년 이상 묵은 소나무로 만든 너와는 보통 1년에 한 번 정도 아랫장과 윗장의 위치를 바꾸고 3년에 한 번 정도 새 기와로 교체하는데, 부엌에서 장작불을 지피면 그 연기가 너와를 그을려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7~8년 이상 사용하기도 한다. 지붕을 얹은 후에는 칡넝쿨로 단단히 동여맨 후, 군데군데 냇돌을 얹어 주어야 바람에 날리지 않는다. 물레방아 옆에는 구리색 흔들다리가 놓여 있다. 현대식 다리가 흔치 않던 시절엔 주변 지역을 큰다리목이라 불렀단다. 다리를 보고 먼저 어린아이들이 달려가고, 그 뒤를 아빠가 좇는다. 엄마는 금세 무너질 것 같은 다리에서 쿵쿵, 힘주어 발을 구르는 아빠와 아이가 걱정돼서 빨리 돌아오라고 성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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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 그림같은 겨울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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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털털거리는 경운기에 오르니, 잠시 후 제법 커다란 너와집 앞에 선다. 중요 민속자료 33호인 김진호 가옥이다. 150년 전 건축된 건물로, 15년쯤 전부터는 정부에서 인수해 관리하고 있다. 건물 안에 들어서 주위를 쓱 둘러본다. 나무로 둘러친 집 안은 의외로 기와집과 유사하다. 담장과 마당, 집을 한 세트로 묶어놓은 것 같다. 기온이 따뜻한 남쪽의 집은 ‘1’자, 중부는 ‘ㄱ’자, 북부는 ‘ㅁ’자라는데, 너와집은 태백산자락에 지어진 집답게 딱지를 접어놓은 것처럼 네모났다. 집 밖으로 나오니 아직 따지 않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린 커다란 감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나무 아래서 군침을 꿀꺽 삼키고 서 있으니 집을 안내해준 동네 분이 나무 위로 훌쩍 올라가 ‘우직’ 가지 째로 딴 감을 건네준다. 눈 덮인 너와 지붕 아래서 잘 익은 홍시를 먹었더니 입도 배도 흐뭇하다. 그저 제 밥 뺏긴 까치한테 미안할 따름이다. 다음날, 느지막이 아침식사를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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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평으로 향한다. 처음 도착한 곳은 신라 봉평비. 사다리꼴 모양을 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해 만든 이 비석은 노예를 다스리는 법인 ‘노인법’에 대해 언급해 당시 체계화된 법령이 존재했음을 시사하고, ‘난이 일어나 이를 정벌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어 당시 신라가 활발하게 영토를 확장했음을 알려주는 등 신라 시대의 사회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쓰인다. 봉평비 바로 옆은 봉평 해수욕장이다. 바다를 마주한 사람들은 “역시 겨울 바다가 최고”라며 감탄을 한다. 어린아이들은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를 잰걸음으로 피했다가, 슬며시 돌아가는 파도의 뒤를 힘껏 좇는다. 그러다 소리 없이 다가온 파도가 발을 적시면 파도와 같은 속도로 걷고 만다. 나중엔 아예 신발을 벗어 멀찌감치 치워놓고 맨발로 파도를 맞는다. 애꿎은 돌이며 조개도 던져본다. 해변 끝에선 네 개의 발자국이 손을 꼭 잡고 해변을 걷는 부부를 좇는다. 하늘은 세탁기에서 막 꺼내 넌 빨래처럼 파랗다. 겨울 바다는 어떤 피사체라도 한 폭 그림으로 치환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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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양마을 체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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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산양마을. 마을에 도착해 가장 먼저 산양서원에 들렀다. 이곳은 황희 정승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824년 처음 세워진 곳으로, 1868년 향교로 전환되었다가 최근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오늘 서원에 들른 이유는 가훈 쓰기 체험을 하기 위해서다. “우리집 가훈은 잘 살자다”란 아빠의 말에 아이는 자못 심각하게 “열심히 살자고 해야지” 한다. 서원 안에는 이미 지필묵이 준비되어 있다. 자세를 단정히 하고 먹을 간 후, 붓에 먹을 묻혀 가훈을 쓰기 시작한다. 둘러보시던 마을 훈장님이 가훈을 한 장씩 써주신다. 참을 인자가 들어간 가훈을 앞에 두고, 한 가족은 “참자. 내가 먼저 참으마”, “아니, 내가 참을게”라며 옥신각신한다. 이어 마을 회관으로 가서 감자떡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감자떡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 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감자를 일주일 동안 물에 걸러 만든 감자 전분을 사용해야 더욱 쫄깃하다.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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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분을 더운 물로 반죽해 만든 쫀득한 떡을 동그란 항아리 모양으로 빚고, 그 안에 삶은 콩과 팥을 넣어 푹 쪄낸다. 찜통에 넣기 전, 꼭꼭 눌러 공기를 빼주어야 나중에 터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동그랗게 빚는데 싫증이 났는지, 납작한 떡에 콩을 꾹 눌러 박아 사람 얼굴 모양을 만들거나 길게 치대 구렁이 모양을 만들어 넣는다. 돌아오는 길. 기차는 20여 분 연착됐지만, 윤기가 자르르한 감자떡과 가지 째 딴 모과, 그리고 살짝 언 감을 양 손에 들고 기차에 오르는 이들의 얼굴이 뿌듯하게 빛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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