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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르르르~’ 하고 돌아가는 스풀(낚싯줄이 감겨 있는 동그란 원통) 소리에 반쯤 감겨있던 눈이 번쩍 떠졌다. 걸렸다! 능숙한 선원 팻은 벌써 활처럼 휘어진 낚싯대를 붙잡고 있다. 수면 아래서 시퍼런 지느러미가 질주를 시작하고, 1미터가 넘는 물고기와 뱃사람의 사투가 시작된다. 배멀미는 잊어버렸고 내리쬐는 태양은 더 이상 따갑지 않다. 이 순간, 우린 태평양의 진정한 아일랜더(Islander)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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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조심스레 들여다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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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유명 호텔과 쇼핑시설이 몰려있는 괌의 중심부인 투몬(Tumon)에서 타를 타고 해변을 따라 남서쪽으로 15 분쯤 달리면 나오는 피시아이 마린 파크(Fisheye Marine Park)는 바로 그런 장소다. 해변에서 검푸른 바다 쪽으로 꽤나 들어간 곳에 ‘피시아이 마린 옵저버토리(Fisheye Marine Observatory)’라 적힌 둥그런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이곳과 육지를 잇는 2백여 미터 길이의 다리를 건너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하나가 덩그러니 나오고, 그 계단 끝에서 갑작스럽게 바닷속 세상이 펼쳐진다. 분명 그다지 깊지 않은 산호초 위에 있는 건물이었는데 어찌하여 이리 깊나 했더니, 알고 보니 이 건물이 있는 자리는 2차대전때 폭탄이 떨어져 생긴 구멍이라 한다. ‘태평양의 이 작고 외진 섬에 웬 폭탄?’ 하는 사람은,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동서양의 패자가 맞붙었던 1940년대 초의 전쟁사를 한번 들여다보길. 괌은 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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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웨이 해전에서 전세를 뒤집은 미국이 오키나와와 일본 본토로 진출하기 위한 중요한 교두보였다. 여하튼 무시무시한 폭탄 덕에 얕은 해안가에 생긴 10 미터가 넘는 깊이의 구멍은 바다 가운데로 나가지 않고도 여러 종류의 바닷속 물고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수중 전망대와 육지를 잇는 다리 중간에 달린 자그마한 간이 부두는 바닷속 세상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들이 꼭 찾는 곳이다. 수영을 할 줄 모르거나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즐길 수 있다는 광고문구와 ‘시워커(Seawalker)’라는 이름이 크게 써 있는 부두. 이곳에서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고 있다. 어깨까지 물에 잠길 때쯤 육중한 크기의 헬멧이 머리 위에 씌워진다. 그리고는 바이바이. 이따금씩 물 위로 올라오는 흰 거품만이 아래에서 어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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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얌전한 바다와의 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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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리창을 통해 보고 헬멧을 둥근 창을 통해 바다를 경험하고 나면 슬슬 바다가 만만해 보이기 시작한다. 손바닥만한 녀석들 말고 저 광활한 바다에 어울릴 만한 ‘큰 놈’도 한번 만나보고 싶고, 무엇보다 땅을 벗어나 바다로 한번 나가보고 싶어진다. 몸을 들었다 내려놓는 태평양의 파도를 직접 느끼고 싶어지는 것이다. 피시아이 마린 파크가 있는 피티(Piti)에서 미 해군 기지가 있는 아프라(Apra) 항을 지나 남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나오는 아갓(Agat) 지역은 북쪽의 아갓냐(Hagatna)와 함께 레저를 위한 뱃놀이의 주요 거점이다. 부둣가 주차장은 평일에도 차로 거의 매워져 있고 선착장에는 손님을 들이고 내리는 배들로 분주하다.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배에 오르더니, 잠시 후 배는 길다란 바나나보트를 뒤에 매달고 선착장을 빠져나간다. 먼 바다에서는 신나게 허공을 가르는 패러세일러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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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이처럼 바다와 본격적으로 ‘부비부비’를 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우리가 탄 배도 서서히 선착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목표는 괌 연안의 야생 돌고래를 찾는 것. 날씨나 계절에 따라 부침이 있지만 어지간한 경우 10~30여 마리의 돌고래를 한 번의 항해동안 볼 수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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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바다에 도전장을 내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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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생 돌고래 떼의 헌신적인 접대(?)까지 받고나니, 이제 기자의 간은 스멀스멀 배 밖으로까지 비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조스 한 마리 잡아서 ‘사시미’ 뜨는 거야!” 철없는 기자와, 또 거기에 쉽게 동조해 주는 사진 기자는 아갓 선착장 맨 구석에 정박해 있는 ‘아일랜드 걸 (Island Girl)’ 호에 오르며 그렇게 객기를 부렸다. 오후 내내 이 멋진 이름의 배를 타고 낚싯대를 드리울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구릿빛 피부와 날렵한 이두박근은 평생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어도 한번쯤 ‘바다사나이’가 되는 것은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 아니던가.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으로 들뜬 마음은 ‘배 위에서는 신발을 벗어 달라’는 선장의 조용한 ‘경고’를 듣고서야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후다닥 신발을 벗고 ‘캡틴’에게 인사를 한다. “Nice to meet you, Sir!” 선장 레이가 아일랜드 걸을 몰고 다시 바다로 나가는 동안, 그를 보조하는 선원인 팻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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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싯대와 미끼를 점검한다. 배 뒤쪽에 모두 세 개가 달려 있는 낚싯대는 살아있는 미끼가 아니라 가짜 미끼를 쓴다. 알록달록한 끈과 눈이 달린 미끼는 물속에서 움직일 때 하얀 거품을 내며 물고기들을 유혹한다. 배 한쪽에 놓인 아이스박스엔 이날 오전에 잡혔음직한 고기 두어 마리가 놓여 있다. 샛노란 색깔이 인상적인 길이 1미터 정도의 고기는 ‘마히마히’라 불리고 이보다 작은, 다소 큰 고등어를 닮은 등푸른 생선은 괌 주변에서 가장 많이 잡히는 ‘보니타’다. 아마도 이 둘을 오늘 자주 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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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쨰, 바다와의 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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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 해안을 좀 벗어났다 싶을 즈음, 갑자기 왼쪽에 있는 낚싯대가 파르르 떨리며 스풀이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팻은 벌써 낚싯대에 가 있고, 기자만이 뭘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서 있다가, 중앙에 있는 의자에 가 앉으라는 소리에 엉거주춤 의자로 가 앉았다. 팻이 의자와 연결된 홈에 낚싯대를 끼우고 스풀 손잡이를 넘겨준다. ‘네 것이니 한번 잡아 보라’는 뜻이다. 왼손으로 대를 힘껏 잡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힘껏 돌리기 시작했다. 따르르 따르르 하는 소리가 반복되면서 점점 손끝에 불규칙한 진동이 느껴진다. 손가락만한 바늘에 입이 뚫린 고기의 절망적인 질주. 하지만 ‘절망적인 질주’니 ‘처절한 몸부림’이니 하는 인간적인 표현은 그 순간 눈곱만큼도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이 놈을 반드시 무릎꿇리겠다’는 포식자적 본능이 아드레날린을 쏟아낸다. 이윽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낚싯줄에 이끌려 보니타 한 마리가 펄쩍 배 위로 뛰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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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팻은 눈부신 동작으로 몸부림치는 보니타를 아이스박스에 처넣었다. “와우! 내가 해냈어!” 사실은 그저 줄을 감기만 했을 뿐이지만, 또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보니타를 시작으로 커다란 마히마히 네 마리와 날렵한 검 같이 생긴 바라쿠다 한 마리를 차례로 잡은 우리는 만선의 기분으로 뱃머리를 아갓 선착장으로 돌렸다. 첫 번째 보니타와 네 번째 마히마히를 ‘감아 올린’ 기자는, 평소 팔 근육 좀 키워둘걸 하는 후회와 함께 한시간 전부터 배멀미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파도가 센 날임은 아침부터 느껴왔지만 해안을 조금 벗어나서 직접 맞닥뜨린 파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파도에 실려 아일랜드 걸 호는 앞뒤로 공중을 향해 치솟기도 하고, 양옆으로는 끊임없이 요동을 쳤다. 처음 한두 시간은 설렘과 자신감으로 버티고 그 다음 두어 시간은 월척의 기쁨으로 파도의 요동을 생각할 틈이 없었지만, 흥분상태가 끝나고 난 마지막 한 시간은 멀미와의 싸움이었다. 다행히 출발하자마자 사정없이 바다에 위 속의 ‘미끼’를 토해 내던 현지인 가이드와 달리 기자는 끝까지 ‘마음가짐만 뱃사람’으로서의 자존심만은 지켜냈다. 신물을 삼키며 버틴 끝에 배는 무사히 선착장에 닿았다. 무서운 파도였고 힘든 싸움이었다. 결국 아이스박스의 고기뿐만이 아니라 바다에 대한 두려움도 다시 갖고 돌아온 셈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쪽이 ‘훨씬 남는 장사’다. 쪽빛 바다와 한바탕 주먹다짐을 벌이고 나니, 어린 시절 골목 패거리 친구들과의 우정이 그랬듯, 괌의 바다가 한참은 더 가까이 다가와 있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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