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괌의 도로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남과 북, 더 자세히는 남과 북과 중부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괌 국제공항이 있는 중부 서쪽 해안에는 길이 촘촘하게 나 있는 반면 북부 지역의 도로는 이보다 훨씬 덜 촘촘하며, 남부는 해안을 따라 난 도로 외에는 섬을 가로지르는 길이 17번 도로 하나뿐이다. 그러니 차를 타고 섬 남부를 방문했다면 지름길 따위를 찾지 말고 느긋하게 해안도로를 따라 섬 전체를 일주하려 마음먹는 편이 좋다. 그렇게 바닷가를 달리면서 차례로 마주치는 마을들을 구경하고, 혹 마음이 동한다면 내륙 쪽도 한번 들여다보는 식이다. 듬성듬성 나타나는 마을들이 해안에 집중되어 있는 만큼 괌 남부의 내륙 지역은인간의 손을 많이 타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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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정글 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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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괌 동쪽 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닿을 수 있는 탈로포포(Talopopo) 지역은 폭포와 열대 우림, 그 사이를 흐르는 강으로 이루어진 내륙 관광 코스가 인기 있는 곳이다. 내륙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작은 강이 이곳에서 급한 경사를 만나 폭포를 이루고, 다시 해안을 향해 꾸역꾸역 흘러간다. 괌 유일의 정글 리버 보트 크루즈(Jungle River Boat Cruise)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섬 자체가 크지 않은 만큼 TV에서 보던 ‘아마존 정글’을 생각하면 실망할 수도 있으니, 대신 편안한 마음으로 인적 드문 곳을 산책한다는 기분으로 나서는 것이 좋다. 포르투갈과 일본에서 온 관광객 십여 명과 함께 보트에 오른 것은 오후 1시 30분. 머리 꼭대기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적잖이 부담스럽다. 다행히 보트에는 열기를 피할 수 있는 지붕이 있었고, 배가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강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 선장이 콧노래를 흥얼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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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 배를 모는 사이 차모로 계 원주민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맡은 일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은 구수한 입담(?)으로 영어와 일어를 번갈아 사용하며 가이드를 해 주고 다른 사람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야자나무 잎으로 머리띠를 만들어 각자의 머리에 씌워 준다. 영어를 쓰나 일본어를 쓰나 억양이 거의 비슷한 가이드의 독특한 언어구사력은 그 내용을 떠나 하나의 구경거리다. 그의 말투에서 예전에 거제도 해금강을 돌아보는 유람선을 탔던 기억도 오버랩되었으니 말이다. 해금강 배의 가이드는 뽕짝 음악이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가운데 경상도 사투리로, 약간의 음담패설을 섞어가며 나름대로 감칠맛 나는 설명을 해 주던 아저씨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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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패잔병의 28년에 관한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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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글 일주를 마친 보트가 출발 지점으로 돌아온 뒤, 다시 차를 타고 10여 분쯤 가면 괌에서 가장 유명한 모험담이 깃든 장소가 나온다. 바로 탈로포포 폭포와 요코이 동굴이다. 탈로포포 폭포를 구경하기 위해서는 산비탈을 20여 분쯤 걸어 내려가거나 매표소에서 케이블 카 티켓(20달러)을 사서 케이블카를 타고 가야 한다. 단, 시설이나 거리를 볼 때 케이블카의 20달러는 지나치게 비싸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강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탈로포포 폭포는 생각보다 큰 편이다. 웅장함이나 환상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지만 짙은 녹음 사이로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소리는 낮 시간의 더위를 잠시나마 씻어준다. 폭포 옆에서 오솔길을 따라 5분쯤 걸어 내려가면 한 일본군 패잔병 때문에 유명해진 요코이 동굴이 나온다. 일본인 소이치 요코는 괌이 미군에게 넘어가고 일본이 패망한 후에도 28년간 이곳에서 숨어 살았다. 전쟁이 끝났음을 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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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랐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알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는데, 어찌됐든 그는 1972년에 문명 세계로 돌아왔다. 관광객들이 괌에 오면 누구나 이 일본인의 이야기를 해 주고 괌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사실 정글 한 구석에 있는 이 동굴을 찾아온 사람은 적잖이 실망할 것이다. 주인공이 살았던 동굴은 규모도 보잘 것 없고 보존 상태도 좋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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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마을들을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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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괌 남부의 서쪽 해안은 옛날부터 원주민들이 외지인과 활발한 교류를 한 곳이다. 과거에는 스페인이 지배하던 시절의 수도가 이곳에 있었고 그 주변에는 차례로 마을들이 자리 잡아 활기를 띄었다. 섬의 중심지 역할을 중부의 투몬 지역에 넘겨 준 뒤부터는 다시 조용한 전통 마을로 되돌아갔지만, 그 시절을 증언하는 흔적들은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우마탁(Umatac)은 마을 한가운데 바다를 바라보고 선 기념비 때문에 한번쯤 눈길을 주게 되는 마을이다. 이 기념비는 마젤란이 태평양을 건너와 우마탁 마을에 처음 상륙한 것을 기념하여 세워졌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로 마젤란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이 우마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념비가 세워질 당시에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이후 마젤란의 기록과 당시의 섬 모습을 비교한 결과 현재의 투몬 지역이 마젤란의 첫 상륙지로 유력한 장소라고 한다. 마젤란이 묘사한 상륙지는 ‘새하얀 모래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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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을 갖고 있었지만 우마탁 해변은 검은 모래로 덮여있다는 사실이 결정적 근거였다. 그래서인지 기념비는 현재 돌보는 이 없이 쇠락해가고 있다. 그것 말고도 이곳 원주민들이 기념비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이유가 또 있는데, 그것은 마젤란이 자기 배에 있던 물건을 훔친 차모로 원주민 여러 명을 처형했기 때문이라 한다. 처음 만난 사람은 인사의 일부로 상대방으로부터 원하는 물건을 무조건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당시 원주민들의 풍속이었지만 그것을 모르는 마젤란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했다. 상대방 문화에 대한 무지가 애꿎은 목숨을 빼앗고 훗날 오명을 남긴 결과를 낳은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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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괌의 남쪽 끝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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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마탁 마을 바로 남쪽에는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곶이 있다. 여기에 올라가 바다를 향해 서면 오른쪽 아래에 우마탁 항구가 한눈에 보인다. 그 건너편으로 또 하나의 곶이 있어서 우마탁은 두 개의 자연 방파제로 둘러싸인 천연의 항구였음을 한눈에 알 수 있다. 필리핀 해의 거친 파도로부터 배가 안전하게 쉴 수 있었기에 범선이 돌아다니던 시절의 주요 항구가 이곳에 만들어졌던 것. 그렇게 파도로부터의 위협을 피한 대신, 당시 사람들의 또 다른 고민은 좁은 입구를 막고 공격을 해 올 해적이나 라이벌 국가의 함선으로부터 어떻게 항구를 방어하느냐는 것이었다. 1810년, 그런 고민의 결과 이 좁은 곶 끝에 솔레다드 요새(Fort Nuestra Senora de la Soledad))가 세워졌다. 현재 돌로 만들어진 초소와 세 개의 대포가 남아있는 이 요새에는 과거에 10개의 대포가 있었다 한다. 산호석을 쌓아 만든 요새의 벽과 바닥을 툭툭 발로 건드려 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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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단단하고 강인하다. 주변에 막힌 곳이 없기 때문인지 이곳에서 얼굴을 때리는 바닷바람은 한층 날카롭다. 전망은 해변 구석에 숨은 적의 배를 조준하기에 충분할 만큼 시원하고, 높은 위치에서 내리꽂히는 10 개의 대포는 어지간한 전함들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이었을 것 같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지금, 요새에는 두 눈 부릅뜬 병사 대신 한적하게 산책을 하는 관광객들뿐이다. 대포 위에 올라타 미끄럼을 타는 아이는 예전의 그 위협을 아는지 모르는지 꺄르르 웃음소리만 허공에 날린다. 과거 상선들로 붐볐을 우마탁 앞바다에도 배 한 척 보이지 않는다. 지킬 것이 남아있지 않은 항구와 위협이 제거된 요새가 만드는 이 풍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둘은 분명 쓸쓸하지만 서로 어울리는 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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