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정선은 황기로 유명한 고장이다. 이 지방은 밤낮의 기온차가 큰 산지 바위틈에서 자라는 황기가 싱그러운 자연의 기운을 품기에 딱 알맞은 기후를 가졌다. 당연히 정선 사람들은 산과 이슬이 선물해 준 황기를 잘 먹는 방법을 여러모로 탐구해 왔다. 황기백숙은 그 대표적인 음식이고 여기 소개하는 향어백숙은 그 탁월한 변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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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기가 닭 대신 향어를 만났다 |
| 그런 와중에 한 할머니는 황기백숙에 닭 대신 뭔가 다른 것을 써 보고 싶었던 게 틀림없다. 백숙에 귀한 쇠고기를 쓸 수는 없는 일이고, 첩첩산중에 바닷물고기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그렇다면 자연스레 해답은 산 속 맑은 물에 사는 민물고기인 향어로 모아지지 않았을까. 향어는 옛부터 보양식재료로도 널리 쓰였으니 백숙에도 딱 어울리는 짝이다. 문제는 비린내. 닭이 아니라 물고기를 푹 고아 백숙을 만들 때, 국물 깊이 맴도는 비릿한 향을 없애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몸에 좋다는 것은 일단 입에 넣고 보는 비위 좋은 남자들이야 그렇다 치고, 이 좋은 음식을 애 키우랴 남편 뒷바라지하랴 쉴 틈 없는 우리 어머니들이 맛보지 못한다면 그건 할머니에게 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것이다. 향어리는 민물고기와, 비린내 자체가 거부감을 일으키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할머니는 직감적으로 안다. 또한 직감적으로, 그 해결책은 산에 있다는 것도 안다. 다행히도 공기 좋고 물 맑은 강원도의 산에는 향 좋은 약초와 채소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
| 결국 정선의 질 좋은 황기를 비롯해 대추, 밤, 우엉, 인삼, 녹두, 죽순 등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20여 가지 재료들을 조합해 할머니는 비린내를 없애고 몸에 더욱 좋은 새로운 백숙을 만들어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선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어백숙은 이렇게 탄생했다. 덩달아 향어백숙을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인 정선의 '할머니 횟집'도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임신한 아내가 향어백숙을 찾더라' 며 난감해하는 남편의 글을 간간이 인터넷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새 음식을 위한 할머니의 노고를 세상의 딸들이 하나 둘씩 인정한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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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결단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
| 정선 읍내에서 화암동굴 가는 길에 있는 할머니횟집에는 할머니가 없다. 30여 년 전에 향어백숙을 처음 만든 할머니는 이제 은퇴를 하고, 그것을 주인 임복희 씨가 고스란히 넘겨받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일을 더 크게 벌여보고 싶은 생각은 없는 건지, 임씨는 주문을 받고서야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수조에서 향어를 잡아 그것을 다듬고, 또 각종 약재와 함께 한 시간 이상 푹 고아 만드는 과정을 고집스레 반복한다. 그러니 이곳에 와서 기다리지 않고 향어백숙을 맛보는 방법은 오로지 예약밖에 없다. 할머니의 느린 손놀림과 호흡이, 단지 노쇠함이 아니라 정성의 반영이란 것을 임씨는 알고 있는 듯하다. |
| 뽀얀 국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솥이 불 위에 올려졌다. 가운데 있는 시커먼 물체(?)는 향어다. 이미 한 시간 이상 푹 고은 상태라 살코기는 건들면 툭 터질 정도로 잘 익어 있다. 거기에 다진 파를 잔뜩 얹고 후추를 뿌린 다음 조금만 기다리면 향어백숙을 맛볼 준비가 끝난다. 사진 기자의 눈총을 받으며 하얀 국물에 코를 바짝 대보았지만 역시 비린내는 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흔히 백숙에서 기대하는, 향기롭고 어딘가 달착지근하고, 또한 구수한 그런 향이 방 안을 맴돈다. 침을 꼴깍 삼키며, "백숙하고 비슷한데요?"라며 사진 기자를 바라보며 암묵적으로 동의를 강요했다. 살짝 치켜 올라간 그의 눈초리는 그러나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이번 맛기행 취재에 관해 처음 이야기를 나눌 때부터 '향어'와 '백숙'이 주는 묘한 이질감에 몸서리를 치던 그였다. |
| 자, 이제 그의 결단이 필요한 때다. 아니 그 전에 자기 확신에 일찍부터 마음을 점령당한 기자는 걸쭉한 흰 국물을 한 숟가락 퍼서 후후 불어 입에 집어넣었다.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비린내는 없었고 구수하고 달착지근하고 향기로운 백숙의 맛은 여전했다. 가장 기분좋은 것은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강원도 찰옥수수 알갱이. 껍질을 벗겨낸 옥수수는 알맞게 익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해 보통의 백숙에 들어가는 찹쌀을 완벽히 대신한다. 조심스레 가시를 발라내고 함께 입에 넣은 향어 살코기와의 조화도 무겁지 않아 담백하다. 맞은편에서 맛을 보는 사진기자 역시 긴장이 한결 풀린 듯하다. 주인 임씨의 할머니는 아마도, 미맹에 대식가인 기자보다는 섬세한(혹은 까탈스러운?) 그의 숟가락질에 더욱 기뻐할 것이다. 새 음식에 대한 그의 결단도 어느 정도 보상받았으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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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꼼꼼한 준비가 돋보이는 정선 관광 |
| 강원도의 '시골' 쯤으로 생각하기 마련인 정선에는 정성스레 가꾸어진 볼거리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제 더 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구절리 역과 아우라지 역 사이를 달릴 수 있는 레일바이크도 그렇고, 금을 캐던 광산과 천연 석회 동굴을 묶어 멋진 견학 코스로 만든 화암동굴도 그렇다. 이들은 ' 버려진 것' 들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없으면 탄생하기 힘든 시설들이다. 더 이상 쓰지 않는 것들을 그냥 버려두는 대신, 정선 사람들은 작은 자전거를 얹고 모노레일을 만들고 조명을 설치하는 식으로 다듬었다. 그 덕에 관광객들은 조양강으로 흘러드는 아름다운 물줄기를 보며 철로 위를 달리는 재미를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은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 폐광과 천연 동굴을 거쳐 편안하게 내려오는 코스를 어렵지 않게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2일과 7일에 열리는 정선 5일장도 꼭 한번 들러볼 만 한 장소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정선 주민들이 조금씩 가져온 싱싱한 재료들을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있는 5일장 레일바이크나 화암동굴과는 또 다른, '산촌의 변하지 않는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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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fo 할머니횟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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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_033-563-2785~6 www.grandmafish.com |
| 위치_강원도 정선군 동면 석곡2리 |
| 찾아가는 길_영동고속도로 진부나들목에서 59번 국도를 따라 정선을 지나면 화암동굴 방향으로 424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덕우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화암동굴 방향으로 조금 더 가면 우측에 보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