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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리 체스터맨이 쓴 레스토랑 가이드의 ‘Flavourville’이란 제목대로 몬트리올은 ‘향기로움으로 가득한 마을’이다. 프랑스 문화를 반죽 삼아 영국과 미국, 그리고 여러 소수 민족들이 함께 구워낸 따끈한 베이글 같은 이 도시는, 존 레논이 잠옷바람으로 침대에 누워 부른 노래에 귀를 기울일 만큼 자유로운 영혼들이 사는 도시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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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문화와 역사의 모자이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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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프랑스 어가 통용되는 도시로는 파리 다음으로 큰 도시인 몬트리올의 아침은 무지개 같은 향기들이 기지개를 켜면서 시작된다. 집을 나선 사람들은 거리마다 손을 내미는 서로 다른 향기 사이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크로와상과 베이글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이 생-까뜨린 거리(Rue Sainte-Catherine)를 떠돌다 갓 볶은 커피 향과 만나고, 생-로랑 가(Boul. Saint-Laurent) 모퉁이를 돌아 나온 달콤한 메이플 시럽 향은 사람들에게 이곳이 프랑스가 아니라 캐나다임을 새삼 상기시킨다. 그래도 이곳에서 제일 맛있는 베이글을 만드는 ‘페어몬트 베이글(La Maison de L’Original Fairmont Bagel)‘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눈인사를 하며 건네는 말은 늘 ‘봉쥬르’다. ‘굿모닝’ 하고 싶었던 사람이라도 불어로만 쓰여진 메뉴판과 불어로만 들려오는 소음 속에선 어색하게나마 ‘봉쥬르’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양한 향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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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무지개는 이처럼 ‘봉쥬르’ 위에서 뻗어 나간다. 몬트리올에서는 종종 독립 이야기가 나온다. 나오기는 하는데 실제로 찬반 의견을 묻는 투표가 통과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름다운 프렌치 억양을 자랑스레 생각하면서도 굳이 영국 문화권 국가의 일부이기를 거부할 필요성은 못 느끼는 몬트리올러(Montrealer)들의 내면은 어떻게 생겼을까? 복잡하게 얽힌 그들의 뿌리를 들여다보기 위해 방문해 볼만한 곳은 퐁떼깔리에 박물관(Pointe-a-Calliere Museum of Archaeology and History)이다. 몬트리올이 빌-마리(Ville-Marie)라 불리던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박물관은 상징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몬트리올이 시작된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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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민족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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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로랑 강(영어식으로는 세인트 로렌스 강)에 면한 몬트리올 구시가에 처음부터 있던 건물 자리에 그대로 박물관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영국과 여러 인디언 부족들이 전쟁과 교류를 반복하던 시절부터 이 자리에 있던 시계탑 건물이 더 이상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 1992년. 몬트리올러들은 많은 고민 끝에 건물의 기층부와 지하 묘지와 수로는 그대로 둔 채 상징적인 모습의 박물관을 세우기로 했다. 에프롱(Eperon)이라 불리는 박물관의 외관은 시계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디자인되었고 옛 건물의 지하 구조를 그대로 보존해 알기 쉽게 꾸며진 건물 내부도 훌륭하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몬트리올의 시작부터 오늘날까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입체 극장이다. 2D 화면과 실제 무대의 공간감을 적절히 조합해 프랑스에 뿌리를 둔 몬트리올의 정체성과 거기에 다채롭게 덧입혀진 영국 및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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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전체 3백만 명의 인구 중에 1백만 명 정도가 몰려있는 몬트리올 도심은 가운데 있는 몽-로얄(Mont-Royal) 산을 중심으로 서쪽은 영국 문화권, 동쪽은 프랑스 문화권으로 크게 구분된다. 캐나다의 여느 도시들처럼 이곳에도 여러 민족들이 자신들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간직하며 모여 살고 있는데, 이들 커뮤니티들은 주로 도심 동쪽 지역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세계 어디든 있는 이탈리아와 중국 커뮤니티 외에도 그리스와 라틴, 이슬람 문화권의 사람들이 각자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몽-로얄 북서쪽에 있는 이탈리안 커뮤니티인 쁘띠-이탈리(Petite-Italie)는 몬트리올러들이 특히 사랑하는 지역이다. 멋진 이탈리아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유고, 이곳에 있는 쟝-탈롱(Jean-Talon) 시장이 또 다른 이유. 1934년에 문을 연 몬트리올 최대규모의 이 시장은 시내 최고의 주방장들이 최상의 과일과 야채를 사기 위해 항상 들르는 곳이다. 그만큼 신선하고 맛있는 식재료를 구할 수 있고, 캐나다 특유의 메이플 시럽(색깔이 연할수록 고급이다)이나 퀘벡 지역 특산물도 값싸게 구할 수 있다. 8달러(약 6~7천 원) 정도면 이런 재료로 만든 샌드위치와 커피, 샐러드나 수프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도 이 시장의 매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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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 위의 이야기를 안고 땅 밑으로 내려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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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가와 쇼핑의 중심가인 생-까뜨린 거리 북쪽에 있는 몽-로얄 산은 서울의 남산처럼 도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휴식처다. 주변이 워낙 평탄한 지역이라 높지 않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정상 부근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폐 속에 훅 하고 공기를 불어넣어 줄만큼 시원하다. 몇 군대 전망대 중에 가장 멋진 경관을 자랑하는 곳은 콘서트나 휴식 공간으로 쓰이는 건물인 샬렛(Chalet) 앞에 있는 벨베데레 콘디아롱크(Belvedere Kondiaronk).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광장은 프랑스와 영국이 아닌, 몬트리올의 뿌리가 닿아 있는 또 하나의 문명인 토착 인디언을 기억하는 장소다. 콘디아롱크는 오래 전에 이곳에 살던 인디언인 휴론(Huron) 족의 추장 이름으로, 그는 1701년에 휴론과 이로코와(Iroquois)와 프랑스의 백여 년에 걸친 전쟁을 끝내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몬트리올의 마천루와 생-로랑 강, 그 사이사이에 펼쳐진 녹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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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특히 해가 질 무렵에 아름다워서 이때쯤엔 연인과 가족과 개를 산책시키러 온 사람들로 광장이 들뜬다. 그중에 유달리 손을 꽉 맞잡고, 키스와 포옹을 번갈아 하는 연인들이 보인다. 아마도 그들은, 혼자보기 아까운 이 광경을 혼자 와서 볼 때의 비참함을 잘 아는 사람들일 것이다. 몬트리올 중심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몽-로얄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30여 킬로미터 길이의 지하보도로 이루어진 거대한 언더그라운드 시티다. 언더그라운드 시티는 10개의 지하철역과 7개의 호텔, 2백여 개의 레스토랑과 1천 7백여 개의 숍과 60개의 오피스 빌딩이 지하보도를 통해 연결된 거대한 공간이다. 지하보도와 바로 연결된 도심 주변부 2천여 채의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이곳에서 한겨울에도 얇은 티셔츠 하나만 입고 쇼핑, 외식, 영화관람 등을 할 수 있다. 덕분에 도심 가까이 위치한 주거 공간이 더 이상 주변부로 밀려나지 않았고, 요일과 시간을 불문하고 편하게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몬트리올은 심야 시간에 도심이 텅 비는 ‘도넛 현상’이 생기지 않는 도시가 되었다. |
| 언더그라운드 시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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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언더그라운드 시티를 둘러보려는 사람은 주로 몬트리올 최초의 마천루인 플라스 빌-마리(Place Ville-Marie)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곳에서 지하세계로 빠져들기 전에,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맞은편에 있는 퀸엘리자베스 호텔을 그냥 지나치지 말 것. 이 호텔은 음악계의 위대한 별인 존 레논의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다. 1969년 5월 26일부터 한 달 여간, 1742호 스위트룸에서 존 레논과 오노 요코는 세계 평화를 주장하며 유명한 ‘침대 시위(bed-in for Peace)’를 벌였다. 그들은 잠옷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노래를 만들고 세상에 평화의 꽃뭉치를 던졌다. 그 방에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는 테이블에서 존 레논은 훗날 워싱턴 평화 행진에서 25만 명이 한 목소리로 부르게 될 ‘Give Peace a Chance’를 작곡하고 그 자리에서 라이브 녹음도 했다. 존 레논 부부가 몬트리올을 침대 시위 장소로 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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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하기까지는 피치 못할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여러 문화가 한지붕살이를 하는 이 도시가 인류 공통의 가치를 찾아 헤매던 그들에게 편안함을 선물했음은 분명하다. 불어로 된 소음으로 가득한 영국 연방 국가의 도심 17층에서, 이탈리아와 이슬람과 그리스와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지척에 두고 존 레논은 그렇게 잠옷 바람으로 노래를 불렀다. 잠옷과 평화와 존 레논의 노래는, 어쩌면 우리가 쇼핑과 유흥을 좆아 땅 밑 세계로 내려갈 때 등 뒤로 사라질 몽-로얄과 구시가와 생-로랑 강을 생각하며 나눌 수 있는 가장 멋진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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