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발행구분
[2007년 05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대한민국] 도시분류 : [남해]
기사제목
[INFIELD] 사람 향기 가득한 남해안의 보물섬 namhae - 지족해협
| |
다랭이마을에서 북서쪽으로 1024번 도로를 따라가면 창선면과 삼동면을 잇는 다리인 창선교가 나온다. 지족해협이라 불리는 창선교 아래의 좁은 물길은 물살이 빠르기로 유명한 곳이다. 섬 동쪽에서 흘러드는 조류가 강진만으로 빠져나가기에 이 해협은 너무 좁아, 바닷물은 숨이 차도록 속도를 높여 지체를 만회하려 한다. 수많은 섬들로 미로처럼 얽힌 남해안의 곳곳엔 이렇게 물살이 빠른 장소가 많다. |
 |
| 5백년 전, 조선을 침략한 왜구에 맞서 홀로 바다를 지켜낸 이순신도 이런 물살을 능수능란하게 이용했다. 동쪽의 한산도 앞바다에서, 서쪽 끝의 전라도 울돌목(명량)에서, 그리고 이 섬의 서쪽 해안인 관음포(노량)에서 그는 거센 물살에 몸을 맡긴 채 왜선 앞에 섰다. 조선의 물살은 항상 그의 편이었다. |
지족해협을 쏜살같이 빠져나온 물살은 강진만을 서쪽으로 돌아 이순신이 전사한 관음포까지 내쳐 달릴 채비를 한다. 썰물로 빠져나갔던 바닷물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간엔 물살이 더욱 빨라져, 으르렁거리며 배를 밀쳐내고 창선교의 시멘트 기둥을 할퀴어 댄다. 이때는 물길의 세세한 방향까지 눈에 보일 정도로 바다의 기세가 사납다. 5백년 전 이순신의 판옥선처럼, 이 거친 물살을결연하게 막아서고 있는 참나무 기둥들이 해협 곳곳에 보인다. 이들은 남해 주민들이 참나무 기둥을 갯벌에 박아 만든 죽방렴(竹方?)이다. 물론 부채꼴로 펼쳐 선 기다리는 건 성난 왜구가 아니라 멸치와 도다리, 학꽁치 등이다.
이곳 사람들은 격한 조류에 맞서 배를 띄우는 대신 바다가 물러난 갯벌에 참나무 기둥을 박고 대나무로 발을 엮은 뒤 파도를 기다린다. 천둥같이 밀물이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면, 어부들은 물 빠진 갯벌을 터벅터벅 걸어가 울타리 중앙에 있는 통을 건져 올린다. 그 속엔 밀물 때 바닷물에 떠밀려 넓은 입구로 들어왔다가 썰물 때 좁은 출구를 통과하지 못한 고기들이 영문도 모른 채 갇혀 있다. 몸에 상처 하나 없고, 자신들이 잡힌 줄도 모르는 이 ‘행복한 물고기’들은 시장에서 수십 배 비싼 값으로 팔린다. 가천마을 사람들이 삽과 호미로 산을 깎을 때, 바닷사람들은 이곳에서 참나무 말뚝을 박으며 십 년, 이십 년, 혹은 백 년, 이백 년을 살아 온 거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이제 죽방렴은 지족해협의 물살과 하나가 되었다. |
|
| 제주도 하면 한라산을 떠올리듯, 사람들은 이제 남해를 찾을 때 가천에는 다랭이논이 있고 지족해협엔 죽방렴이 있음을 기억해낸다. 사실, 남해의 많은 볼거리들이 이런 식이다. 애초부터 있었던 땅과 바다에 나중에 덧입혀진 삶의 흔적들이, 이제는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다랭이논과 죽방렴도 그렇고, 바람을 막기 위해 사람들이 심어 가꾼 물건마을의 방조어부림이나 60년대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를 가슴이 품은 독일마을도 그렇다. 이들은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에 사람 냄새를 불어넣으며, 그렇게 남해만의 풍경에 방점을 찍는다. 날개 펼친 나비의 매혹적인 무늬처럼.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