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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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6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이탈리아] 도시분류 :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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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자유를 선물하다_EURAIL

언제든 떠날 수 있고, 어디서든 타고 내릴 수 있는 유레일패스는 자신에게 선물하는 자유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달리는 고속열차 안에서 나무늘보 같은 삶은 절로 수백 배의 속도로 수백 킬로미터를 가로지른다. 단지 무거운 육체를 기차에 싣는 것만으로도 시시각각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다니. 삶에 무임승차한 기분이란 이런 걸까?

바람이 실어온 두오모의 종소리

여행은 밀라노에서 시작됐다. 너무 눅진 감도, 바싹 마른 감도 없는 ,그저 적당히 고상한 날씨가 이어지는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 밀라노에는 한 달에도 수 번씩 국제적인 박람회가 열리고,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그들의 쇼가 넘실댄다. 이런 밀라노를 대표하는 장소가 바로 두오모 성당이다. 철제 바들로 담장이 쳐진 성당의 한 쪽은 칙칙한 잿빛, 다른 한 쪽은 밝은 상아색이다. 얼마 전부터 오염된 성당 표면을 닦아내는 작업을 하는 중이란다. 그동안 보아온 성당의 중후한 색은 사실 때가 탄 것일 뿐이군. 살짝 배신감이 든다. 그러나 두오모 성당의 종소리는 여전히 맑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선들 바람에 실려 '밀라노의 응접실' 이라 불리는 쇼핑몰 '갈레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라 2세'의 거대한 유리돔 아래서 한 손에는 밀라노의 명물인 젤라또를, 다른 한 손에는 명품 브랜드의 로고가 새겨진 커다란 쇼핑백을 든 관광객들의 귀를 울린다.

광장의 알록달록한 소 모양 오브제 근처에서 기념사진을 찍던 이들도 고개를 종소리에 따라 돌린다. 종소리는 대여섯 명의 학생이 석고상을 다듬고 있는 '아카데미아 브레라'의 어느 교실에도 잠깐 들러 점심시간임을 알렸다. 디자이너 숍과 갤러리, 카페가 늘어선 학교 앞 길 '비아 브레라'를 지나는 바람에는 희미해져 가는 종소리 대신 달콤한 과자 냄새가 실린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카더라

밀라노에서 로마로 향하는 기차 안. 부러 역방향의 좌석을 골라 앉는다. 창밖으로 4월의 풍경이 예의바르게 뒷걸음질친다. 포도나무와 사이프러스, 물을 잔뜩 부어 색을 희석시킨 듯 연한 노란색의 집들. 두눈은 암시에라도 빠진 것처럼 지나간 시간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중이다. 흐르는 풍경에 상념을 씻겨내는 사이 볼로냐 중앙역에 닿았다. 적색의 벽돌을 쌓아 만든 볼로냐 대학에선 천재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학생들을 가르친단다. 봄이면 국제 아동 도서전이 열리는 곳이라고도 한다. '비포선라이즈'의 주인공처럼 기차가 떠나기 전 자리를 박차고 내려 볼까? 그러나 비스듬히 기댄 몸은 편안한 1등석 좌석에서 쉽게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무료로 제공되는 음료와 스낵을 받아드니 내리기가 더 귀찮다. 여행을 시작한 지 불과 이틀째, 서울에서부터 줄곧 따라온 익숙한 관성의 궤도를 벗어나기엔 역부족인 모양이다. 과격한 즉흥성은

아마도 여행 중반 이후에나 발휘되지 않을까? 모험은 뒤로 미루고,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다. 이탈리아 전역을 커버하는 유로스타 이탈리아에는 식당 칸이 따로 있다. 일반 레스토랑만큼 메뉴가 다양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음식이 허술하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나이프와 포크로 스테이크를 썰어 한 입 베어 물고 우물우물 씹는 동안 창밖으로 푸른초원과 높다란 산, 흐르는 냇물이 번갈아 지나간다. 여기에 와인까지 곁들이니 제법 그럴 듯하다. 그 사이 주황빛 셀로판지를 대어 놓은 듯 창밖으로 저녁 해가 길 게 내린다.

바다 위로 이어지는 유레일 라인

다음 날 아침, 항구도시 앙코나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수로 넘어가기 위해서다. 앙코나는 작은 항구도시지만 밀라노에서 가장 가깝고 물류의 드나듦이 많아 사시사철 붐빈다. 지어진 지 2천 년이 넘었다는 산타마리아 성당과 구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꼭대기에 지어진 성당 세인트 치실리아는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 잠시 이곳에 머무르게 된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만난 그리스인 마리아는 운전기사가 행인에게 양보를 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리스에선 차가 그냥 지나간다" 며 "그리스에 가면 차를 조심하라"고 당부한다. 언어나 기질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비슷한 점이 많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유대감이나 동질성은 생각보다 큰 모양이었다. 이탈리아에서 그리스로 가는 배는 앙코나와 바리, 베니스, 브린디시에서 출발해 그리스의 코푸나 이고메니차, 파트라스에 도

착하게 된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만 여행할 경우 이탈리아-그리스간의 유레일 리즈널 패스를 이용하면 기차 이용은 물론, 양국을 오가는 페리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페리 이용료는 기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수퍼패스트 페리'의 경우 6월과 9월에는 1인당 15유로, 최성수기인 7월과 8월에는 1인당 30유로씩 비용을 더 내야한다. 앙코나에서 파트라스 사이를 왕복 운행하는 슈퍼패스트페리는 길이 10층 높이의 대형 선박으로, 내부에는 카지노, 수영장, 레스토랑, 면세점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각종 파티와 초콜릿과 와인, 살사, 결혼 설계 등을 주제로 연일 흥미로운 수업도 열려 21시간 동안의 여정이 지루하지 않다.

그리스의 대표적인 두 도시 이야기

아테네 북부에 위치한 테살로니키는 우리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테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도시다. 북부의 알바니아와 마케도니아는 물론, 서쪽으로는 이탈리아, 동쪽으로는 터키까지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여서 고대로부터 테살로니키를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쟁탈전이 치열했다고 한다.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까지는 야간열차를 타고 이동하면 6시간 정도가 걸린다. 테살로니카에서 이스탄불까지는 7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영국까지 육로로 이동할 수도 있다. 32시간 정도가 걸리는 장거리 여행이지만, 되도록 돈을 아껴야 하는 학생들의 경우 이렇게 육로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테살로니키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5시 반. 문을 연 가게가 거의 없지만 도시를 잘 아는 기사의 안내로 한 식당을 찾아갔다. 테살로니키는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아테네에서 만난 한 그리스 사람은 배 둘레의 살을 살포시 집으며 "고향인

테살로니키에 다녀올 때마다 3킬로그램씩 살이 찐다"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다. 아침은 단출했지만 색달랐다. 진흙을 섞은 것 같은 진한 그리스식 커피도 꽤 인상적이었다. 아테네에서 질리도록 먹었던 무사카와 그릭샐러드 대신 아네라스띠(치즈를 얹어 오븐에 구운 송아기 고기)와 마니야띠끼(요거트를 얹은 육포 샐러드), 아까또노마스끼(너무 맛있어서 '말이 없는 샐러드'라는 뜻이다)말로만 듣던 지중해의 성찬을 직접 맛볼 수 있었다. 테살로니키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화이트 타워가 있는 해안도로다. 테살로니키에서 가장 오래된 길이라는 이 해안도로 옆으로는 수십 개의 카페와 펍이 늘어서 있다. 이 근처의 가게들은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해안의 정취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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