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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의 창녕에서 다가와 동쪽의 언양으로 달려가는 24번 국도에 올랐다. 시내를 빠져나와 동쪽으로 계속 가면 단장면과 산내면, 얼음골을 지나 밀양과 울산의 경계인 석남터널이 나온다. 터널을 지나면 울산시 언양면이다. 밀양이 자랑하는 재약산을 오르기 위해 언양으로 넘어온 이유는 이쪽에서 뻗은 도로가 산 정상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단장면의 표충사에서 올라가는 길도 있지만 그쪽은 더 이상 차량이 지나갈 수 없다. 터널을 지나 처음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배내골 방향으로 가면 가파른 오르막이 십여 분간 계속된다. 고갯마루에 올랐다 싶으면 오른편에 있는 주차장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비포장길이 시작되는데, 이 길이 가을 억새밭으로 유명한 재약산 사자평까지 올라가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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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만 오지 않는다면 개조를 하지 않은 4륜구동 차량이라도 무난히 올라갈 수 있어 사자평 코스는 국내 오프로더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한동안은 웅웅거리며 올라가는 차소리 외에 바퀴에 돌이 튀어 굴러내리고 웅덩이에 고인 물이 찰싹거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하루 전날 사자평에는 비가 내렸다. 다행히 초여름 햇살이 맨살을 드러낸 흙과 자갈들을 온전히 말리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비 덕분에 재약산의 공기는 더 투명해졌고 대지를 거칠게 밀쳐내는 4륜구동의 등쌀에도 흙먼지는 머뭇거리며 솟아오르지 않는다. 삼남(三南)의 금강(金剛)이란 별명을 가진 재약산의 수려한 풍경이 창 밖으로 가까이 보인다. 정상이 멀지 않은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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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약산 정상 주변은 억새 천지다. 가을이 오면 은빛 파도가 끊임없이 훑고 지나간다. 초여름의 억새는 별로 볼 게 없어서 지금 재약산의 정상은 수수하다. 깡마른 억새 줄기 사이로 새 줄기가 돋아나고 있고 등산객의 발길로 다져진 계단 틈으로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뛰어다닌다. 해발 1,108미터의 재약산 봉우리는 1,189미터의 천황산과 1,240미터의 가지산까지 이어지지만 지금 당장엔 모든 산들이 죄다 발 밑에 있는 것 같다. 날씬한 여인의 목덜미에 도드라진 등뼈처럼 보이는 봉우리들의 곡선이 아름답다. 목덜미 위로 쏟아지는 햇빛도 한결같다. 사자평 억새밭을 지나 산길을 내려가면 표충사에 닿을 수 있다. 올라가는 길에 지나쳐 갔던 노부부를 내려가는 길에도 만났다. 좀전엔 길가에 돛자리를 펴고 과일을 꺼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열심히 나뭇잎을 골라 따고 있다. 보기엔 그냥 나뭇잎이지만 당연히 ‘그냥’ 나뭇잎일 리가 없다. 무엇인지 궁금했다. 초여름 새로 돋아난 잎들은 빛깔이 너무 아름다웠는데 이 부부의 눈은 또 다른 종류의 빛을 보고 있는 듯했다. “지금 다래나물 뜯고 있다 아인교.”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랏다던 그 다래는 열매만 먹는 줄 알고 있었다. 봄에 돋아나는 다래나무 새순은 들기름, 국간장, 땅콩가루와 함께 볶으면 묵나물보다 부드럽고 향긋하다 한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번에도 어김이 없다. 우리는 나무를 보고 그들은 나물을 따고, 우리는 빛을 보고 그들은 향을 맡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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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양의 고찰(古刹) 표충사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공사가 한창이다. 너른 앞마당에 돌과 잔디를 깔고 머리 위에 오색 연등이 매달렸다. 돌 사이에 어떤 종류의 흙을 넣을지를 놓고 인부들간에 갑작스레 설전이 오간다. 절 안이 잠시 소란스러워졌다가 이내 돌 두드리는 소리만 남고 잦아든다. 명부전(冥府殿) 뒤쪽으로 돌아가면 경사를 따라 비스듬히 올라가는 돌담과 아름드리 나무가 있어 고즈넉하게 녹음을 느끼기에 좋다. 절 앞 주차장에 선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의 수는 벌써부터 적지 않다. 한 할머니가 공손히 손을 모으고 일주문 앞에 선다. 오래도록 그렇게 서 있다. 계단을 올라 오색 연등 밑을 지나 본당 앞에 가기까지는 한참이 걸릴 것이다. 초파일이 다가올수록 불을 밝히는 연등 수가 많아질 것이다. 앞으로 얼마간은 그렇게 표충사로, 밀양으로 빛이 모여들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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