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국에 왜 훌리건들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그 ‘신사의 나라’ 국민들도 턱시도와 모자 뒤에 숨긴 승부욕과 열정은 세계 어느 민족 못지않게 뜨겁기 때문이리라. 영국인들은 - 좀 더 구체적으로 영국 남자들은 - 스포츠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세계 제일의 축구 리그와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를 가진 이 나라에서 남자들은 스포츠를 먹고 산다. |
| |
 |
런던 북부의 뜨거운 수탉 |
|
| |
 |
|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런던은 영국 축구의 심장이다. 최고 명문팀인 맨체스터나 리버풀의 팬이라면 이런 주장에 발끈할 수도 있겠지만, 축구뿐만 아니라 영국 스포츠의 ‘성지’로 꼽히는 웸블리(Wembley) 구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런던은 그런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 도시다. 현재 이 도시에는 아스널(Arsenal), 첼시(Chelsea), 토트넘(Tottenham), 웨스트햄(West Ham)과 풀럼(Fulham) 등 모두 5팀의 프리미어리그 소속팀이 있다. 영국의 클럽들은 1백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아무리 현재 성적이 나쁘더라도 자신의 팀을 끝까지 응원하는 골수팬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니 지구 반대편의 축구팬들이 보기에 ‘저건 뭐하는 팀...?’이라 할 정도로 무명에 가까운 팀이라도 무시하지 말 것. 그것은 축구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뽐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어설프게 아는 척하길 좋아하는 사람들 |
|
|
| 이 종종 ‘축구 하면 맨체스터지’ ‘리버풀이 최고야’ 하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만, 적어도 축구의 나라 영국에서는 강한 팀과 약한 팀은 있어도 좋은 팀과 나쁜 팀은 없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2000년대 초중반을 주름잡은 최고의 팀인 아스널과 첼시 외에 런던에 있는 다른 세 팀들만 봐도, 그들의 경기를 ‘사수’하는 홈팬들의 열정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
|
| |
|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 |
|
| |
 |
| 아스널과 함께 북부 런던의 대표적인 클럽인 토트넘 핫스퍼(Tottenham Hotspur)의 홈 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White Hart Lane)을 찾은 것은 시즌이 막 끝난 후인 5월 말이었다. 아름다운 런던 시가지를 빠져나와 북쪽으로 달릴수록 길 주변의 집들이 허름해진다. 이는 시즌 중이면 사람들로 북적거릴 경기장 주변도 마찬가지다. 도로 양편에는 칠이 벗겨진 벽과 낡은 대문이 달린 집들이 죽 늘어서 있다. 토트넘 지역은 예전부터 런던의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자본도, 도시 기반 시설도 부족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유일한 낙이 축구 관람이었음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래서 토트넘 핫스퍼의 팬은 열정적이기로 유명하고, 거기에 맞춰 팀 역시 - 성적은 빼어나지 못할지언정 - 재미있는 경기를 하기로 유명하다. 핫스퍼의 옛 구단주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는 항상 서포터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없다면 프 |
|
|
| 로축구도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은 팬들 앞에서 팬들이 원하는 축구를 하는 것이 더 적은 팬들 앞에서 우리가 원하는 축구를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래서일까. 핫스퍼의 경기는 유달리 난타전이 많다. 한 골을 넣으면 두 골을 먹고, 다시 두 골을 넣으면 또 한 골을 먹는 식의 시소게임이 이 클럽 경기의 특징이다. 화끈한 경기를 좋아하는 하층민 노동자들의 ‘기호’에 맞춰 - 일부러 그럴 리는 없겠지만 - 팀도 화끈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영표가 이곳으로 온 이후부터 핫스퍼의 경기를 경험한 국내 팬들 중에도 이 팀의 경기를 특별히 좋아하게 된 사람이 많다. |
|
| |
|
런던 남부의 권위 있는 고집 |
|
| |
 |
| 노동자들의 시끌벅적한 함성과 응원가가 귀를 멍하게 만드는 화이트 하트 레인과 달리, 런던 남부 외곽에 위치한 조용한 동네인 윔블던에서 펼쳐지는 세계 최고의 테니스 대회는 ‘신사의 나라’ 다운 고집과 전통이 여전히 돋보인다. 6월 25일부터 7월 8일까지 열리는 올해의 윔블던 대회를 준비하느라 5월의 윔블던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센터코트는 공사 때문에 지붕이 없어졌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경기가 열리는 1번 코트와 2번 코트 주변도 혼란의 와중에 있었다. 하지만 경기장 바로 옆에 있는 윔블던 골프 코스 - 이 골프 코스가 대회 기간에는 주차장으로 쓰인다! - 나 깨끗한 주택들은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세계 대회를 조용히 맞이하고 있었다. 축구와 달리 테니스는 귀족적인 스포츠다. 1877년에 수백 명의 관람객 앞에서 가든파티 형식으로 시작됐던 대회가 총 관중 5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 이벤트로 성장했음에도, |
|
|
| 선수들의 경기가 진행되는 중에는 함성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할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를 요구한다. 핫스퍼의 경기에서 영국인들의 숨겨진 열정을 볼 수 있다면 윔블던에서는 전통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다. 그 전통과 권위의 존중은 때로 이성적이지 못한 방향에서 적용되기도 하는데, 올해에 와서야 남녀 우승자의 상금을 70만 파운드로 맞춘 윔블던은 작년까지 4대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남녀 상금에 차이가 있는 대회였다. |
|
| |
| 최고 권위의 테니스대회 |
|
| |
 |
|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대회인 만큼 윔블던 티켓을 얻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센터코트나 1번 코트의 전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채권(1~2만 파운드)을 구입하지 않는 한, 일반인들에게 티켓을 구입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경기장 티켓의 가장 많은 수가 배정된 추첨(Public Ballot)을 통하는 방법이 가장 보편적이고 가능성도 크다. 추첨 응모 신청은 그 전년도 8월부터 12월까지 받으며, 1인당 1장씩 본인만 추첨 참여를 신청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배당된 티켓은 경기 날짜와 코트 등도 추첨에 의해 자동으로 결정되며 티켓 주인을 변경할 수도 없다. 경기 당일날 티켓을 구하는 방법은 ‘줄서기’ 밖에 없다. 대회 중에는 3번 게이트에 두 개의 줄이 생긴다. 하나는 북쪽으로, 다른 하나는 남쪽으로 향해 나 있는 줄들 각각에는 센터코트와 1,2번 코트 및 관중석이 따로 없는 10 개의 기타 코트들을 위한 같은 수의 티켓이 배정되어 있다. 좌석 없는 |
|
|
| 그라운드 코트 입장 티켓을 구하기 위해서도 최소 서너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유명 선수들의 경기가 있는 센터나 1,2번 코트를 위한 티켓은 밤을 세워도 가능성이 크지 않다. |
|
| 꼭 경기를 지켜보지 않더라도 테니스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최근 새로 문을 연 테니스 박물관을 한번 둘러볼 만 하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세계 테니스의 성전이라 할 수 있는 센터코트에 직접 서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할 수 있는 입체 극장이다. 2005년 윔블던 대회에서 있은 샤라포바의 경기 장면을 5대의 카메라로 찍은 시야각 200도의 이 영화는 매트릭스에 사용된 시각 효과를 통해 경기장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테니스라는 스포츠에 숨겨진 과학의 원리도 설명해 준다. 1980년대 윔블던에 참가한 선수들이 쓰던 탈의실에서 만나게 되는 ‘악동’ 존 맥켄로의 3D 유령도 흥미롭다. 입담 좋은 이 유령은 락커를 열기도 하고 다른 사물들을 건드리면서 80년대의 ‘좋은 시절’을 추억한다. 윔블던 역사에서 길이 남을 전설 중의 한 사람인 맥켄로가 이 역사적인 장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소감, 그의 영웅이었던 지미 코너스를 만났던 때의 감동, 그리고 관중들의 함성으로 들끓는 센터코트로 들어서기 전에 이 조용한 방에서 경기를 준비할 때의 기분 등을 늘어놓는다. 그밖에도 테니스의 라켓과 유니폼, 1887년도의 진짜 트로피등도 전시되어 있으며, 시즌 중에는 무대 뒤 투어(Behind-the-Scenes Tour)를 통해 1번 코트의 이모저모를 둘러볼 수도 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