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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영국] 도시분류 : [웨일스]
기사제목
[COVERSTORY] 책의 왕국을 찾아 서쪽으로_KINGDOM OF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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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리지널’의 힘일까? 파주 헤이리에는 헌책방이 없지만 헤이리가 모델로 삼은 웨일스의 헤이온와이(Hay-on-Wye)는 헌책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와이 강가에 있는 이 시골 마을에는 헌책이란 이름의 “우리가 놓쳐버린 오랜 열망과 꿈”들이 책꽂이에 앉아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웨일스 지방의 완만한 언덕들을 넘어, 마을 담벼락 아래의 선반 구석에 있을 그 꿈을 찾아 서쪽으로 길을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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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웨일스의 전원을 따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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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간 뒤 세번(Severn)강과 브리스틀(Bristol) 해협이 만나는 곳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웨일스로 접어든다. 이곳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국 - 잉글랜드 - 이 아니라 웨일스임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언어다. 다리를 통과해 톨게이트로 진입하니 표지판의 영어 표기 아래에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웨일스 어가 병기되어 있다. 톨게이트 근무자는 다행히 영어를 쓴다. 웨일스 식 억양이 강하게 들어가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한번에 알아듣기 힘들다는 점만 빼면, 이곳에서 길을 잃더라도 물어물어 찾아갈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웨일스 특유의 억양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심해진다. 남부 웨일스와 달리 북부 웨일스에서는 도로 표지판에도 웨일스 어가 영어보다 우선으로 쓰인다고 한다. 북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귀가 먼저 그 억양에 적응을 할 것이라 믿고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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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방의 관문 도시인 뉴포트(Newport)를 지나, 수도 카디프(Cardiff)를 서쪽에 두고 북쪽으로 차를 달리면 웨일스 특유의 자연 경관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해변의 평야 지대를 빼면 웨일스의 대부분은 해발 200미터 내외의 고지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 끝에 있는 스노든(Snodon) 산을 비롯해 몇몇 산들은 높이가 1천 미터를 넘지만, 이 지방의 전형적인 지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둥근 곡선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구릉 지대다. 북쪽의 내륙 지역으로 가면서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구릉들은 저마다 양떼를 품에 안고 있다. 어느 구석에서나 무심히 풀을 뜯는 양을 만날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구릉은 양들의 집이고 사람들은 능선을 따라 트레킹을 하거나 구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부드러운 곡선과 그 사이로 흐르는 강, 한가로이 들을 거니는 양들은 ‘뉴질랜드 풍’의 풍경을 선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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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콘 비콘스(Brecon Beac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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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콘 비콘스(Brecon Beacons) 국립공원으로 접어들면 이런 풍경 사이로 한동안 구불구불한 길이 펼쳐진다. 적당한 굴곡과 탁 트인 풍광을 보니 이곳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각광받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굉음을 내며 달려오는 멋진 바이크들의 행렬을 목격하고 나서 그것은 확신으로 변했다. ‘터미네이터’ 분위기의 옷차림을 한 남녀들이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서더니, 그 중 몇몇이 딸기 아이스크림을 사서 맛있게 먹는다. 터미네이터와 딸기 아이스크림이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그러기에 더욱 사진 기자의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그들은 유쾌한 표정으로 포즈를 잡는다. “Welcome to Wales!” |
| 국립공원 북쪽을 지나면서 가이드가 길을 잘못 잡았는지, 헤이온와이 대신 빌스웰즈(Builth Wells)라는 엉뚱한 마을이 나왔다. 구릉과 구릉, 그 사이의 양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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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끝없이 보이는 이 지역에서 길을 잘못 드는 것은 흔히 일어날 만한 일이다. 빌스웰즈라는 마을은 전형적인 영국 시골 마을의 분위기를 갖고 있다. 좁은 길 양쪽으로 중세시대 회화에나 나오는 듯한 집들이 쭉 늘어서 있다. 마을 입구의 아담한 극장에서 셰익스피어 연극이 상영되면 집안에서 폭 넓은 소매와 깃을 가진 셔츠를 입고 중세 사람이 뛰쳐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점심때가 되어 ‘The Drovers' Tea Rooms Restaurant’라 쓰인 간판을 따라 소박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영국 특유의 서민 음식인 ‘피시 앤 칩스(Fish & Chips)’를 주문했다. 뒤이어 들어온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저마다 주문을 한다. “콘샐러드 두 개와 ‘함(영국식으로, 발음도 햄이 아니라 함으로 한다)’ 한 조각과 사과주스”를 주문한 노신사는 곁눈질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의 동양인을 바라본다. 동양인 관광객이 흔한 동네는 분명 아닌 듯하다. 이 마을에 있는 것들은 뭐든지 이렇게 오래 된 것들인지, 1600년대에 지어졌다는 이 레스토랑 건물 벽에는 1795년에 기록된 경매 문서도 걸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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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꿈과 희망의 마을, 헤이온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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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스웰즈에서 얼마간 왔던 길을 되돌아가, 다시 동쪽으로 가니 드디어 헤이온와이 표지판이 나타났다. 브레콘 비콘스의 구불구불한 길과 엉뚱하게 방문했던 빌스웰즈 마을은, 꿈을 팔고 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모인 이 마을로 오기 위한 통과의례였는지 모른다. 헌책방이 주는 아날로그적 감수성은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굽어진 도로를 닮았고 누렇게 변한 책 종이는 시골 마을 레스토랑 벽에 걸려있던 2백 년 된 경매 문서와 닮았다. 옥스퍼드를 졸업한 뒤 잘나가는 회계사 자리를 뿌리치고 이곳으로 온 리처드 부스도 웨일스의 구릉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사랑한 남자였을 것이다. 1962년에 그가 처음 이곳에 헌책방을 열었을 때, 헤이온와이는 책장 한 구석의 오래된 책처럼 서서히 잊혀져가는 마을이었다. 웨일스가 잉글랜드로 편입되기 전에 이곳은 양쪽의 격전지였고 1940년대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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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형적인 탄광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석탄이 더 이상 산업의 동력이 되지 못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면서 헤이온와이도 쇠락의 길을 걷는다. 1960년대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영국의 변방인 웨일스에서도 이름 없는 시골마을. 이 스러져 가는 탄광촌에 헌책방을 연 명문대 출신의 젊은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당연히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리처드는 훗날 자신이 쓴 책 ‘헌책방마을 헤이온와이’을 통해 처음부터 성공을 확신했다고 밝힌다. “좋은 책은 반드시 팔린다”는 믿음으로 헌책방에 책을 채워 넣고, 한 건물이 다 차면 다른 건물을 사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버려진 소방서, 12세기 노르만 민족이 지은 고성인 헤이 성(城) 등도 그에 의해 헌책방으로 거듭났다. 입소문은 생각보다 빨랐다. 그에게 희귀 고서적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주제의 헌책방들은 이렇게 시작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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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 페스티벌(Hay Festiv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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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온와이는 마침 매년 열리는 헤이 페스티벌(Hay Festival)로 한창 들뜬 분위기였다. 하나씩 쌓아 올린 헌책의 힘과, 그것을 찾아 모여든 사람들의 열정으로 이 축제는 영어문화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문학 축제가 되었다. 약 열흘간 열리는 - 올해 축제는 5월 24일부터 6월 3일까지였다 - 축제 기간동안 시골의 작은 마을은 문학과 예술로 하루를 열고 닫는다. 비록 인구 1,500여 명의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지만 이것이 결코 소규모 지역 축제가 아님은 프로그램의 면면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매일 열리는 리뷰, 강연, 시낭송, 토론회 등에 초청된 사람들 중에 노벨상 수상자만 4명(월레 소잉카, 오르한 파묵, 데렉 월콧, 왕가리 마타이)이며 환경운동가 데이빗 아텐보로 경과 세계적 석학인 에릭 홉스봄의 이름도 보인다. 그 외에도 영국과 세계를 아우르는 예술가들이 공연과 전시를 선보인다. 적어도 축제기간 동안 헤이온와이는 한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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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골마을이 아니라 인류 지식의 수도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심각한 발표회나 시낭송에 관심이 없다 하더라도, 온통 책내음으로 가득한 마을을 둘러보는 것 역시 색다른 경험이다. 이곳은 이름만 책마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책으로 쌓은 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래된 골목 구석에도, 잔디밭에도, 집 앞마당과 뒷담에도 책꽂이와 책들이 가득하다. 마을 중앙에 있는 헤이 성 앞마당에는 담벼락을 따라 야외 책꽂이가 늘어서 있는데,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요금함에 정해진 금액을 넣고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 ‘정 돈이 없으면 그냥 가져가도 좋소’ 하는 분위기 같기도 하다. 개중에는 유명 사진작가의 깨끗한 사진집도 있고 누렇게 색이 바랜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소설도 있다. 모서리가 해지고 색깔이 변한 책들이 푸른 하늘 아래 선 담벼락에 기대어 있는 광경은 무척 아름답다. 우리가 흔히 ‘문명’이라고 부르는, 하지만 그 실체는 명확하게 보이지 않던 것들이 구체적인 부피와 무게와 향기까지 갖고 햇빛 아래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시골 마을 사람들과 빛바랜 헌책들로만 이루어진 이 풍경은 소박하지만 초라하지 않고 조용하지만 적막하지 않다. 선반에 놓인 책들의 책장 사이사이마다 뿜어져 나오는 우리 ‘열망과 꿈’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리처드도 헌책에 대해 비슷한 말을 했다. “대형 마트에서는 팔지 않는 물건, 그렇기 때문에 작은 마을에 희망이 되는 물건.” 그에게 헌책은 희망이었고, 45년간 희망으로 쌓아 올린 책마을은 이제 정말로 책과 희망의 왕국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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