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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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7월호] 대륙분류 : [북아메리카] 국가분류 : [멕시코] 도시분류 : [멕시코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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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100일간의 중미여행 central america

9월 7일, 겁도 없이 혼자 배낭 하나 짊어지고 20시간의 비행 끝에 멕시코에 도착했다. 이제야 내가 무모했다는 생각이 든다.

9월 11일, 멕시코시티가 자랑하는 공원, 차풀텍펙에 갔다. 어찌나 넓은지, 하루 종일 다녔는데 반도 못 돌아봤다. 막대한 소장품을 자랑하는 유명한 국립인류학박물관도 그렇지만, 동물원도 인상적이었다. 서울대공원의 늘 지쳐 보이는 동물들에 비하면 쾌적한 환경에 살고 있는 차풀텍펙의 동물들은 어찌나 행복해 보이던지!

9월 14일,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하는 푸에블라에서 1박하고 와하까에 왔다. 숙소가 좋아서 그런지 도시도 마음에 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와하까는 교사들의 파업으로 시작된 민중봉기로 정세가 무척 불안정해 많은 여행자들이 피해갔다고 한다. 당시엔 몰랐지만 생각해보니 와하까는 멕시코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유독 어수선했다.

9월 22일, 와하까를 출발해 산끄리스토발데라스까사스, 빨렝케에서 각각 1박을 하고, 벨리즈를 거쳐 우여곡절 끝에 과테말라 북부의 작은 마을 플로레스에 도착했다. 빨렝케와 마찬가지로 마야의 유적지인 '띠깔'을 보러왔다. 나는 빨렝케보다 띠깔이 더 마음에 들었다. 지난 역사의 산물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쉬는 정글숲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피라미드에 올라갔을 때 느꼈던 그 바람은 날 반겨주는 것 같았고, 그곳에서 본 전망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황홀감마저 느끼게 했다.

9월 25일, 어리숙한 여행자의 정신을 쏙 빼놓는 과테말라시티에서 하루를 묵고 안티구아에 왔다. 많은 사람들이 안티구아에서 스페인어 강습을 받는다. 다른 곳에 비해 값이 저렴할 뿐 아니라 비교적 쾌적하고 안전한 곳이라 외국인들이 스페인어를 배우기에 안성맞춤이다. 비록 나는 도착하자마자 과테말라의 풍토병인 '아메바'에 걸리는 바람에 그곳에 머물렀던 일주일동안 학원과 집만 오갔지만 말이다. 그 유명하다는 '볼칸 빠카야(빠카야 화산)'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고택을 보수해 만들었다는 산또도밍고 호텔은 들러 볼 수 있었다.

10월 9일, 장장 일주일에 걸친 중미 횡단을 마쳤다. 10월 2일 과테말라시티에서 출발해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를 거쳐 오늘 드디어 파나마에 도착했다. 과테말라 다음 여정이 페루인데항공료를 절약하기 위해서 중미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파나마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알았다면 이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의 4일은 정말 지긋지긋했다. 어쩌면 그렇게 철저하게 도시화됐는지 마치 서울에 온 기분이었다.

10월 12일, 드디어 페루에 도착했다. 잉카의 문명에 흠뻑 빠져들고 싶지만 우기를 피해 정글로 가려면 바로 볼리비아로 향해야 한다. 볼리비아의 루레나바께라는 곳에서 정글 투어를 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현대적인 리마는 한 나라의 수도인 만큼 인구밀도가 높고 스페인 정복자들의 식민 거점이었다는 점에서 멕시코시티와 비슷하다. 반면 두 도시의 인상은 꽤 다른데, 멕시코시티가 산만하고 짓궂은 도시 아이라면 리마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시골 아이 같은 느낌을 준다.

10월 17일, 그 어렵다는 볼리비아 비자를 비교적 수월하게 받고 제법 빨리 라빠스에 도착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던 고산병에 제대로 걸려 버린 것이다. 삼일 밤낮을 쉬지 못하고 버스 안에서 보낸 몸으로 태어나서 처음 디뎌본 해발 3600미터의 고지는 너무 벅찼던 것일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잠도 편히 잘 수 없었다. 고산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밖에 없다는데 너무 아파서 배낭을 짊어질 힘조차 없었다.

10월 23일, 결국 고산병으로 인한 컨디션 악화로 루레나바께행을 포기하고 라빠스보다 한결 낮은 수크레로 갔다. 천국보다 편안했던 수크레에서 이틀 정도 머무르면서 요양 아닌 요양을 한 후,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시라는 별명을 가진 뽀토시(해발 4000미터)로 향했다. 뽀또시는 엄청 난 은광 이 매립돼 있던 곳으로 전성기에는 인구 15만의 대도시였다가 한 때 쇠퇴의 길에 접어들었었는데 요즘 다시 주석과 텅스텐의 채굴을 통해 공업도시로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텅 빈 듯한 느낌을 주는 도시다. 뽀토시에서의 광산 체험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터무늬없는 임금을 받고도 고된 육체적 노동을 하며, 그 어둡고 좁은 굴 안에서 살다시피 하는 광부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무슨 권리로 그들을 '구경' 하고 있을까?

10월 25일, 소금 호수와 사막을 보기 위해 우유니에 왔다. 보통 6명의 여행자와 2명의 안내자가 지프차를 타고 동행하는데, 나는 5명의 이스라엘 아이들과 함께 다녔다. 들어왔던 것처럼 극도로 이기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그들 덕분에 나의 우유니 여행은 보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10월 28일, 우유니에서 라빠스로 오는 길은 참으로 험난했다.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좌석도 없이 밤새, 그것도 바닥에 거꾸로 앉아서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라빠스에 도착한 이른 아침에 날 기다린 것은 꿀맛 같은 휴식이 아니라 배낭 도난 사건이었다. 몇 시간을 울면서 길거리를 헤맸지만 나에게 남은 건 관광경찰서에서 작성한 조서 한 장뿐이었다. 꿈만 같고 믿을 수가 없었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야 하나 싶어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여행 전 엄마가 해주셨던 한마디가 날 일으킨다. "엄마 딸은 용감해야 돼!"

11월 9일, 해발 3,500미터의 티티카카 호수가 인접한 페루 푸노에서 하루 머문 뒤 '세상의 배꼽' 쿠스코에 도착했다. 쿠스코는 정말 '도시 자체가 역사' 라고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사연 많은 곳이다. 여행하기 썩 좋은 시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쿠스코와 협곡 꼭대기에 위치한 잉카 유적지 맞추픽추는 여행자들로 가득하다. 어제 기차에서 만난 일본 여자아이의 권유로 마추픽추를 잠깐 둘러본 후 와이나픽추까지 다녀왔다. 신체적 고통과 성취감은 반비례하는 것이지 마추픽추만 둘러본 것보다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든다.

11월 12일, 나스카에 잠깐 들러 나스카 라인만 본 후 바로 리마로 왔다. 와이나픽추 등반 후에 제대로 쉬지 못한 데다 쿠스코에서 너무 춥게 잔 탓인지 몸살 기운이 있었기 때문이다. 점 찍어뒀던 숙소에 방이 없다고 해서 한인 민박집을 찾았다. 따뜻한 솜이불이, 그보다 더 따뜻한 한국사람의 정이, 눈물 날 만큼 맛있는 밥과 김치가 나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만 같다.

11월 20일, 또 다시 중미를 관통하는 버스 여행을 한 끝에(다행히 이번에는 만 3일 만에 과테말라에 도착하는 쾌거를 거두었다) 과테말라의 파나하첼이라는 작은 도시에 도착했다. 가이드북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 극찬한 아띠뜰란 호수를 끼고 있는 곳이라 그런지 여행자들이 참 많다. 파나하첼에 올 때 탔던 치킨버스(사람이 닭장의 닭들처럼 빽빽이 앉아서 가는 버스라 하여 붙여진 별명)는 과테말라의 명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 정도 위험만 감수한다면 그보다 스릴 있는 대중교통은 없을 듯 하다. 물론 한국에서 그런 버스를 매일 타라면 정중히 사양할 테지만.

11월 26일, 멕시코의 깐꾼에서 동행자를 만나 며칠 소일하며 지내다가 쿠바의 아바나에 왔다. 생전 처음 가는 사회주의 국가라 처음에는 많이 긴장했는데 여기에서 경직된 건 나의 사고방식뿐인 것 같다. 왜 그렇게 사람들이 쿠바를 추천하고 또 가고 싶어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12월 3일, 아바나에서 서쪽으로 5시간가량 이동해 비날레스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비냘레스는 어쩐지 우리네 농촌처럼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오늘은 프레이스토리아 벽화를 보러 갔다가 말을 탔는데, 안내해준 할아버지의 구멍난 티셔츠와 아바나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는 청년의 공허한 표정이 자꾸 눈에 밝힌다.

12월 13일, 도무지 발길이 떨어질 것 같지 않던 쿠바를 뒤로 하고 다시 멕시코에 왔다. 처음 멕시코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그 땐 정말 여행하는 것이 투쟁이었다. 낯설음을 이기지 못하고 자꾸 움츠려드는 나와 처음 만나는 우물 밖의 새로운 세계, 그리고 나를 향한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과의 투쟁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여행이 일상과 같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어느새 부쩍 는 나의 스페인어 실력처럼 말이다.

100일 동안 연고는커녕 동양인도 찾아보기 힘든 중남미를 여행하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사실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한 일이 '생각' 이었다. 거의 대부분 버스로 이동을 했는데 버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수면 아니면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언지 모르겠고, 다음 번엔 이번과 같은 실수들을 저지르지 않고 여행을 '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 내가 얼마나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아직은 그저 이 여행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싶다. 그 때 나는 무모한 스물 셋이었을 뿐이므로. (김상희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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