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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물 속에 두 귀가 잠겼을 때처럼. 사방은 고요하고, 물결은 잔잔하게 찰랑인다. 백련으로 유명한 바닷가의 작은 마을 무안이 남긴 진상이다. 축제의 시끌벅적함이 걷힌 무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빗물에 잠겨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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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결에 들리는 풍경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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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못을 가득 채운 흰 꽃을 보기 위해 무안으로 향했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이었다. 무안에 가기 전, 가지고 있던 편견은 두 가지였다. 아니, 편견이라기보다는 그저 자연스레 떠올랐던 심상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나는 찰랑임. 흐린 날이면 세차게 파도치는 바다가 아닌, 강한 바람에도 그저 잔잔히 물결칠 뿐인 연못, 혹은 호수의 그것. 그마저도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정을 되찾는 수면은 이른 새벽 공양을 올리는 스님의 뒷모습 같기도 하고, 뜨거운 찻물을 다루는 다인의 단아한 손매 같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흰 빛의 연꽃이다. 바람이 분다고 낭창낭창한 허리를 꺾지도, 소나기가 내린다고 후드득 꽃잎을 떨어뜨리지도 않는. 무안. 이 두 글자를 마음에 담고 서울을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풍경은 회색빛에서 초록빛으로 변해갔다. 평평하던 지형은 완만한 굴곡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뿌옇게 흐렸다가도 금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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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뽀얀 맨 얼굴을 드러냈고, 또 이내 비를 퍼부어댔다. 변덕스런 날씨는 내버려 두었다. 비가 내리면 달갑게 맞고, 햇볕이 달려들면 반갑게 쬐며. 살짝 페달을 밟았을 뿐인데 속도계의 눈금은 가뿐하게 100을 넘어갔다. 가끔, 잊고 있었다는 듯 한꺼번에 비가 쏟아졌지만 차 안은 찰랑이는 물이 담긴 찻잔처럼 조용했다. 쫓기듯 달리던 차들이 아슬아슬 스치며 지나갈 때마다 블리스(BLIS: Blind Spot Information System)가 울려대지 않았다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잊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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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기로운 차와 이야기가 있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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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안 읍내에 접어들었을 때도 비는 여전히 차창을 두드려댔다. 낯선 길이었지만 방향을 돌릴 때마다 ‘경로를 자동으로 재탐색합니다.’라며 시시각각 보고를 올리는 ‘친절한 네비(Navigator)’씨와 도로 곳곳에 설치된 표지판 덕분에 어렵지 않게 첫 목적지인 ‘초의선사(艸衣禪師) 탄생지’에 닿을 수 있었다. 초의선사는 우리나라의 차 역사를 논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저서인 ‘동다송(東茶頌)’은 초의선사가 해거도인 홍현주에게 지어 보낸 차에 관한 전문서로, 차가 인간에게 좋으므로 많이 마실 것과 우리 차가 중국차에 뒤지지 않음을 알리고, 신체경구(神, 體, 健, 靈)가 무리 없이 어울리는 ‘다도’의 경지에 관해 설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옥으로 지어진 입구를 지나면 낮은 언덕 위로 여러 채의 건물들이 보인다. 먼저 명선관(차문화관)에 들렀다. 차의 역사와 제다법을 설명하고, 시대별 다구(茶具)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규모는 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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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지만 내용이 알차 읽는 재미가 있다. 다인 연대표도 꼼꼼히 읽는다. 신라의 원효대사와 백제의 무왕, 고려의 대각국사의천, 조선의 정약용, 김정희 선생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의 이름도 보인다. 우리나라 차의 역사가 얼마나 길고,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왔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고려시대에도 오늘날의 찻집과 유사한 ‘다점’이라는 가게가 있었다거나, 궁중의 차를 다루던 관청의 이름이 ‘다방’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고려 시대까지만 해도 차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모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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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 놓는 순간, 고요가 찾아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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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관과 박물관을 둘러본 후, 언덕 가장 높은 곳에 지어진 다성사에 들른다. 바람결에 들리는 풍경소리가 반갑다. 잠시 숨을 돌리고 반대편으로 눈길을 돌리니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인 고개 아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내려가는 길, 오른편으로는 초의선사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왼편으로는 분홍색 연꽃이 탐스럽게 핀 연못 ‘초의지’와 흙을 바른 낡은 초가집이 보인다. 초의선사가 서울로 올라가 2년간 머무르며 추사 김정희와 교류했던 ‘용호백로정(용호는 용산의 옛 지명)’이다. 조금 더 내려오면 ‘초의선원’에 닿는다. 이곳에서는 주말이면 한국 차문화 강좌와 초의선사 수행법 강의, 전통 서예와 서각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신발이 놓여진 쪽 문을 살짝 열어본다. 조용한 선원 내에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려 급히 문을 닫으려는데, “들어와 차 한 잔 하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잠시 앉아 작은 찻잔에 담긴 향 좋은 차를 받아 드는데 또 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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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열린다. 회색 수녀복을 입은 수녀님들이다. 선원장이신 석용운 스님을 만나러 오신 길이라고 했다. 수녀님들은 잠시 후 내려오신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묘한 광경이었다. “연꽃 보러 왔다가 스님 생각이 나서요.” “찻잔이 뒷마당 장독처럼 놓여있네요.” 어색한 건 주위 사람들뿐인지, 수녀님들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게 말을 이어 가신다. 스님이 던진 짓궂은 농에도 “타박하셔도 저희 설움 안타요.”라며 배시시 웃을 뿐이다. 스님이 차를 따라주시자 이번에는 차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미역 끓인 맛이 난다.”는 평에 스님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맛을 10여 가지로만 분류하는데, 전문가들은 500가지도 구분해 내죠. 그렇지만 나는 느낌으로 향을 찾아내요. 진정한 향은 오감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거예요.”라며 자연스레 차 끓이는 방법과 차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차가 있는 곳엔 늘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는 법인가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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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가 없는 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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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이른 아침, 톱머리 해안을 찾았다.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내렸다. 은빛 물고기들이 뛰놀던 바다는 물빛 수채화처럼 뿌옇게 번져갔다. 견고했던 결계가 무너져 내린 듯한 순간, 온 세상의 기운이 다시 모인다는 ‘회산’으로 향했다. 찰랑거리는 수면 위로 초연하게 핀 흰 연꽃을 보기 위해서다. 동양 최대규모라는 회산백련지는 톱머리 해안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날이 좋지 않아선지 찾아온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 고즈넉함이 오히려 반가웠다. 연못은 커다란 연잎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얀 봉오리가 탐스러운 연꽃도 보였다.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연꽃은 7월부터 9월말까지 핀다. 3일마다 피고지고를 반복하면서. 이곳은 원래 농업용수를 대는 저수지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돌보면서 지금처럼 군락을 이루게 되었다. 전국적인 관심을 얻게 된 것은 백련축제가 생긴 10여 년 전부터. 연꽃 사이로 난 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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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로와 연꽃 모양의 유리온실을 돌아보는 것 외에는 특별히 볼거리랄 것은 없다. 망연히 숨을 놓는 순간, 어지러운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혀 주는 고요가 찾아들 뿐이다. 회산백련은 뿌리가 굵고 영양이 많아 식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열매는 불면과 신경증을 잦아들게 하고, 연잎은 해독, 연근은 지혈 작용을 해 약용으로 많이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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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RAVEL INF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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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_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무안 IC가 나온다. 1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면 월선리 예술인촌이 나온다. 조금 더 내려가면 초의선사 탄생지에 도착한다. 톱머리 해안으로 가려면 815번 지방국도를 탄다. 49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회산백련지로 가는 길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표지판을 따라 820번 국도로 갈아타고 5분 정도 더 들어가면 회산백련지에 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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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을 곳_해송별관(061-454-0909) 무안비치호텔에서 멀지 않은 횟집. 저녁 늦게까지 문을 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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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잘 곳_무안비치호텔(061-454-4900) 톱머리 해안에 위치한 호텔. 2인 실은 5만원, 침대가 있는 4인 실은 6만 원, 온돌이 있는 4인 실은 7만 원. 1층에는 무안양파한우고기를 판매하는 식당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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