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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구분
[2007년 10월호] 대륙분류 : [아시아] 국가분류 : [대한민국] 도시분류 : [영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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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름도 모를 어느 작은 산골짝에서 흘러나온 물은 물들어가는 자연의 얘기를 담고, 영월의 곳곳을 안고 도는 강은 단종의 슬픈 이야기를 기억한다. 강가에서 귀를 기울이면, 강이 하는 얘기가, 한방울 작은 물결에서 퍼지는 속삭임이 들려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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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은 아직 이곳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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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천면의 중심을 흐르는 주천강과 방향을 같이 하는 꼬부랑길을 따라가면 영월시의 작은 읍내로 이어진다. 중심가에 다다를 때 쯤, 처음 보게되는 것은 낮은 돌담벼락이 이어지는 장릉이다. 영월을 얘기하면서 강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어린 나이에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조선 6대왕 단종인데, 이 단종역사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 영월의 어디를 돌아보든 곳곳에서 접하게 되는 단종의 비화. 영월을 여행하려면 토막상식이나마 단종에 대한 얘기를 알아두는 편이 좋다. 지금이야 ‘라디오 스타’라는 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영월이 또다른 유명세를 치르고 있지만, ‘단종애사’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비운의 어린왕 단종이 짧은인생을 마감했던 곳이 영월 아니던가. |
| 아버지 문종이 일찍 죽고,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른 것은 그의 나이 불과 열두 살 때였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나 국정에 대한 염려도 시작되기 전에 단종이 맞닥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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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 것은 피붙이의 왕권에 대한 도전이었다. 단종에 이어 조선 7대왕 세조로 등극하게 되는 수양대군은 문종의 동생이었으니 단종에게는 삼촌이 되지만, 권력을 둘러싼 암투에서는 혈육의 친밀감 내지 융화도 한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왕권을 빼앗긴 단종은 상왕이 되었고, 곧 단종의 복위를 주도하던 성삼문, 박팽년 등 신하들의 움직임이 발각되어 처형되면서 단종은 상황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고 영월로 유배된다. 하지만 어린 왕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단종의 여섯 번째 삼촌이던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또 죽임을 당하자 결국 폐서인으로 강등되고 곧 첩첩이 산중의, 아름다운 물길이 이어지는 외로운 땅 영월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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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릉의 역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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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단종의 이야기를 전하는 곳이 장릉의 역사관이다. 낮은 지붕의 단층 건물은 1층과 지하 1층만으로 지어졌는데, 역사관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단종의 영정이 눈에 들어온다. 기념품 코너의 벽에 걸린 영정에는 곤룡포에 익선관을 쓴 말간 얼굴의 어린 왕이 백마를 타고 있고, 이미 머리칼이 하얗게 새고 세월의 주름이 얼굴에 자리잡은 충신 추익한이 그에게 산머루를 바치는 그림이 담겨 있다. 비운의 어린 왕 곁에서 남은 생애를 바치는 노신의 그림이 뭉클하다. 단종의 세자책봉과 왕위 즉위에 대한 내용들, 유배생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단종의 왕권 복위를 도모한 이들의 사연이 역사관의 1층에 전시되고 있고 지하에는 그 시대의 유물을 볼 수 있는데 궁중혼례복을 입은 모형 왕의 얼굴이 유난히 앳되다. 가을비가 추적이는 흙마당을 밟으며, 가늘게 이어지는 빗방울을 기꺼이 맞으며 장릉으로 올라선다.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자 그 사체는 동강에 버려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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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을 받고 죽자 그 사체는 동강에 버려지는 수모를 당했는데, 이때 시신을 수습해 이 곳에 묻어준 사람이 영월 지방의 노신 엄홍도였다. 단종과 관련되는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던 시절에 기꺼이 어린 왕의 영혼을 달래주었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묘소 언저리에 서면 골짜기 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골짜기마다 빼곡하게 자리잡은, 꼿꼿하게 솟은 소나무는 바람이 오고갈 때마다 가지를 흔든다. 왕의 엄명에도 개의치 않고 어린 왕의 최후를 보듬어주었던 노충신의 절개가 서려 아직 저리 굳건히 서 있을까. 어린 왕의 영혼이 훌쩍일 때 마다 조용히 가지를 흔들며 ‘괜찮다, 괜찮다’ 달래주었던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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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와 토스트의 공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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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4만이 조금 넘는 작은 도시 영월은 읍내도 오밀조밀하다. 아담한 읍내의 중간 지점에서 얼핏 놓치고 갈지 모르는 곳이 관풍헌이다. 이제는 터만 남았다.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단종이 홍수로 초막이 떠내려가자 옮겨온 곳이 바로 이 곳 관풍헌이다. 사약을 받고 쓰러진 마당 역시 이 곳이다. 몇 백 년 전, 어떤 스토리가 있었건 세월은 이만큼 지나왔고, 또 영월도 변해왔다. 어린 왕의 마지막을 같이한 한옥집의 담장 위 나이든 기와는 그대로 세월을 포개고 있는데 다른 것들은 여전히 변하고 있다. 관풍헌 정문을 기준으로 오른쪽 담벼락 아래에는 세탁소와 은행이 들어서 기와지붕을 머리에 얹고 있고, 왼쪽 담벼락에는 선명한 빨강의 간판을 단 토스트 가게가 들어섰다. 멀리 보이는 높은 산봉우리와 관풍헌의 늙은 담벼락과 새빨간 간판, 그리고 노란 불빛 아래서 깜박이는 은행 ATM기의 불빛의 조합이 어쩐지 어색한 듯 정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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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천강에서 연결되는 서강이 돌아나오고, 정선 쪽에서 흐르는 동강이 거의 합류하는 지점 가까이에 청령포가 있다. 단종이 처음 영월로 유배되었을 때 머물렀던 곳이다. 울울창창한 소나무가 빼곡하고 모래톱으로 형성된 듯한 작은 섬은 600여 년의 시간을 건너온 내가 보기에는 그저 아담하지만 600여 년 전을 살았던 열일곱의 어린 왕에게는 한없이 두렵고 쓸쓸한 곳이었을 테다. 사방이 빽빽한 소나무 숲이고 앞은 강이 흐르고 있으니, 배가 없으면 뭍과 연결되는 통로도 없다. 그저 눈으로 보기에 뭍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았지만, 물리적인 거리보다 심리적인 거리는 그 보다 몇 배는 멀었을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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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수에 초막이 떠내려가고, 관풍헌으로 옮겨간 단종이 죽음을 맞으며 세월에 묻혀 가던 청령포에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것은 그로부터 훨씬 뒤다. 중종, 숙종을 거치며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단종의 복위 움직임이 다시 일기 시작했고, 영조에 이르러서야 단종을 기리는 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역사학자들의 고증과 연구를 거쳐 2000년에는 옛날의 집터를 복원한 기와집이 들어섰다. 단종이 길고 지루한 하루하루를 이어갔을 청령포에는 이제 하루에도 몇 차례씩 관광객을 태운 배가 오간다. 남은 것이라곤 이제 겨우 복원된 집터, 단종이 한양을 그리워하며 하나둘씩 쌓아올린 망향탑, 그리고 울울창창한 숲이 고작이다. 긴 세월을 건너오며 단종의 자취와 흔적은 지금도 조금씩 흩어지고 있지만, 청령포를 감싸안고 도는 강은 여전히 그를 기억한다. 어린 왕의 탄식과 비애와 눈물마저 담고 강은 여전히 세월에 순응하며, 또는 거스르며 조용히 흐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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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과 사람이 하나되는 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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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영월이 슬픈 도시가 되어버렸다. 비운의 왕이 죽어간 비운의 땅으로만 영월을 기억한다면 오산인데 말이다. 래프팅의 도시로, 익사이팅한 영월을 기억하는 이에게는 다소 당황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또다른 방향으로 영월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길 바라며 소개하고 싶은 곳이 국제현대미술관이다. 읍내에서 살짝 외곽으로 나가긴 해야 하지만 그리 멀지도 않다. 20여년 간을 정신지체우와 함께 생활하며 그들에게 일반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해 이런저런 기술을 가르치며 돌보았던 박찬갑 씨가 관장으로 있다. 그래서인지 이 곳의 조각품들은 뭔가 특이하다. 미술관 입구에서부터 늘어선 돌조각들은 한결같이 동그란 입을 하늘로 향하고 있다. 입을 열고 뭔가 말을 하려는 듯 보이는 조각상들은 입구 뿐 아니라 미술관 운동장과 예전, 학교였던 시절 교실로 쓰였던 실내 전람실에도 놓여 있다. 여러 가지 재료를 조각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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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하지만, 한번 잘못 다듬으면 돌이킬 수 없어서 보다 마음을 쓰게 되어 돌을 좋아한다는 박찬갑 관장. 오랜 시간을 들여 다듬다 보면 그 시간들이 모여 생활의 일부가 되고, 또 작업을 하는 동안 돌과 함께 마음을 다듬을 수 있어 돌이 좋다는 그가 표현하는 조각품들은 다들 동그란 입이 돋보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입을 벌리고 있고, 살아가는 동안 입을 통해 우리는 소통하고 또 언어를 전한다.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깨우고 또 찾아가는 일을 하는 부분이 입이라 무엇보다 그에 공을 들이는 박관장은 이날 역시 작업복 차림으로 돌을 다듬고 있었다.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 필요하다면, 온통 산으로 둘러쌓인 현대미술관 마당을 천천히 거닐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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