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새로운 발견 - 뚜르드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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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호] 대륙분류 : [유럽] 국가분류 : [노르웨이] 도시분류 : [피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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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피오르의 가을_FJORD

단 하루 동안 노르웨이를 다 돌아볼 수 있을까? ‘과연’으로 t시작하는 의심은 접어 두자. 불가능한 미션을 말끔히 해결할 수 있는 묘수가 있으니, 그 키워드는 ‘미니어처 노르웨이’, 패스워드는 ‘노르웨이 인 넛셀’이다.

Dept. 8:11 Oslo Central Station by the Bergen Railway

시계는 오전 8시를 가리켰지만 오슬로는 여전히 까만 어둠에 잠겨 있다. 기차가 도착할 때까진 조금 시간이 남았지만 안심이 되지 않아 오슬로 중앙역 끝 실외로 이어져 있는 경사진 길을 달린다. 다행히 기차가 금방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복도 끝의 선반에 짐을 밀어 넣고 예약해 둔 좌석을 찾아 자리에 앉는다. 머리받침 아래로 툭 튀어나온 등받이가 불편하긴 하지만, 창문가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바람에 꽁꽁 언 몸이 녹자 기절할 듯 잠이 쏟아진다. 어느 새 궤도에 오른 기차의 규칙적인 덜컹임이 편안하다. 그렇게 까무룩 잠들었다 깨기를 몇 번, 무심히 눈을 돌리니 창 밖으로 하얗게 안개 덮인 숲이 펼쳐졌다.

아직 꿈이야.

중얼거려보지만 풍경은 그대로다. 짙은 녹색의 숲 사이사이, 노란 가을빛이 퍼지는 모습마저 선명하다. 잘 익은 계란 노른자 색과 흐린 날 단풍색으로 칠해놓은

통나무집들이 푸른 바탕에 점점이 찍힌 무늬 같다. 드디어 파란 아침 햇살이 새어 들어온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 일렬종대로 선 키 큰 나무 그림자가 비친다. 아름답다 말하는 대신 마음에 담는다. 흰 리넨 천에 번지는 노랗고 빨간 물감들처럼 서서히 퍼져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게, 그리고 고요하게 마음 한 쪽 어딘가에 스며들어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도록, 그냥 내버려 두어야 할 것 같은 풍경이다.

너른 호수 위로 바람이 일자 수면이 차르르 흔들린다. 자작나무와 벽돌색 집들, 완만한 언덕, 풀뜯는 통통한 양떼, 다시 너른 호수와 노랗게 물든 나무숲, 산 위에 기대 쉬고 있는 크림색 구름. 기어코 ‘아’하고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오는 건, 사르르 떨어진 낙엽이 스칠 때다.

11시 50분 경, 기차가 정차한다. 발밑에선 짧은 까만색과 갈색 털이 도톰하게 난 강아지 ‘미(Mee)’가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널브러져 자고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속편한 녀석이다. 기다란 기차 복도 건너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한참 전화통화 중인 동양인 여자가 강아지의 주인인 모양이다. 한국인 입양아가 많다고 해 혹시나 했는데, 그녀는 정말 한국 사람이었다. 그녀는 ‘미’가 한국어로 ‘아름다움’을 뜻한다는 걸 알았을까.

Dept. 13:00 Myrdal by the famous Flåm Railway

미르달에 내려 바로 맞은편에 정차해 있는 플롬 기차에 오른다. 높고 둥근 천장부터 바닥까지 반들반들 윤이 나는 나무로 만들어진 기차의 1인용 접이식 의자에 앉아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킨다. 산등성이엔 흰 눈이 군데군데 쌓여있다. 잠시 후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발 866미터의 뮈르달에서 해발 2미터의 플롬까지, 총 20킬로미터 길이를 연결하는 이 철도는 송네피오르와 노르웨이의 다른 철도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완공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단다. 놀라운 것은 이 구간 내의 스무 개 터널 중(터널 길이만 장장 6킬로미터다) 18개가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요즘처럼 굴착기계가 따로 있는 때가 아니어서, 구간 중 가장 긴 놀리터널(The N?i Tunnel, 총 길이 1,350미터)의 경우 1미터를 파내는데 150인시(한 사람 당 한 시간 동안의 노동량)가 걸렸다고 한다.

뮈르달에서 플롬으로 가는 길에 처음 만나게 되는 정거장은 해발 820미터에 위치한 바트나할센(Vatnahalsen)이다. 기차는 2~3분 정도 짧게 정차한다. 그저 기차를 타고 유람하는 코스려니 했는데 내리는 사람이 꽤 많다. 등산복을 차려입은 사람들도 눈에 들어온다. 근처에 개인 소유의 오두막집과 호텔 등 숙박시설이 많기 때문이다. 잠깐 내려 볼까. 망설이는 틈에 기차는 이미 다음 정거장을 향한다.

호수를 지나 터널을 통과하며 내내 아쉬움을 다독인다. 864미터라는 엄청난 해발차를 극복하기 위해 터널은 180도 턴도 불사하는데, 이 때문에 이 터널은 헤어핀터널(hairpin tunnel, U자형 커브)이라고도 불린다. 빙하가 날라 온 자갈과 둥근 돌무더기도 보인다. 언덕 아래로 빙하기 끝 무렵, 산자락에 가해진 압력으로 가라앉거나 바위가 불안정해지면서 부채꼴 모양으로 내려앉은 흔적이다. 협곡과 구덩이가 많은 것도 이 지역의 특징. 빙하 아래로, 녹아내린 물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동안 그 안의 돌조각과 자갈이 단단한 바닥을 부식시켜 만들어진 것으로, 이들은 종종 솥 모양을 하고 있어서 ‘제테그뤼테르(jettegryter, 트롤의 솥)’라고 불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끼이익 소리를 내며 기차가 다시 정차했다. 이번에는 우르릉, 낙뢰와 같이 진동하며 떨어지는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670미터 지점, 화산처럼 뿜어져 나온 쇼스포센(Kjosfossen) 폭포는 흰 거품을 일으키며 94미터 아래로 다이빙한다. “5분간 정차합니다.” 반가운 안내방송이 나오자 기차에 탔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손에는 제각기 비디오, 디지털, 1회용 카메라 등 종류도 다양한 카메라를 들고. 폭포와 기차를 배경삼아 사진 찍기 바쁜 이들 사이로 투명한 물 알갱이가 둥둥 떠다닌다. 차장의 호루라기 소리가 출발을 알린다.

피넬리아(Pinnelia) 터널을 지나자 출발지인 뮈르달의 전통적인 목조 건물들이 보인다. 그 위는 뮈르달 방향으로 21번이나 방향을 틀며 산을 감고 오르는 ‘나비의 길(Naavie’s Road)’이다. 1895년에서 1909년 사이 베르겐 철도 공사 때 쓰였던 이 길은 이제 인기 있는 등산로가 되었다고 한다. 잠시 후, 맞은편으로 코달(K?dal) 농장이 보인다. 전통적인 서부 노르웨이의 염소 농장이다. 매년 여름이면 이곳에서 수백마리의 염소가 풀을 뜯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끼익, 철을 긁는 소리가, 기차의 주제가라도 되는 양 일정한 음을 길게 이어간다. 창밖으로 햇빛과 정적이 내린 마을이 스친다. 순수함이 응집된 ‘고농축 자연’이란 게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Dept. 15:10 Fjordcruise.Flåm - Gudvangen on the Aurlandsfjord and Nærøy fjord

50여분 만에 기차가 플롬에 닿았다. 플랫폼 왼쪽은 옛 타운 센터다. 플롬은 스타워즈에 나오는 우주인들의 회의장처럼 높다란 산으로 감싸여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풀 우거진 평원’이라는 뜻 그대로다. 빙하가 녹아내린, 깊고 투명한 물 흐르는 아담한 마을엔 10채 가량 되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인구는 400명밖에 되지 않지만 플롬 철도의 이용객 수는 일년에 30만 명이 넘는다. 이처럼 플롬이 관광지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부터. 특히 영국 관광객들이 많았는데, 이들은 플롬의 셀바(Selva) 강에서 연어 낚시하기를 즐겨 ‘연어 귀족(Salmon Lords)’라고 불리기도 했단다.

플롬에서 구드방엔까지는 보트를 타고 이동하게 된다. 이 구간은 총 길이가 204킬로미터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파른 것으로 유명한 송네피오르(Songefj?d)의 일부다. 송네피오르는 2백만 년 전 빙

하기에 빙하가 깎아낸 것으로, 초기에는 작게 금이 간 정도의 단층지괴였지만 수만 년 간 물이 흘러내리면서 점점 깊어졌고, 바다로까지 연결되었다.

앞 다투어 배에 오른 승객들은 용감하게 최전방인 선두로 달려가 자리를 잡는다. 앞으로 몰아쳐올 세찬 바람에 대한 걱정은 접어둔 채. 산 그림자가 내린 피오르 위로 작은 배 한 척이 빠르게 지나간다. 유성잉크를 부어놓은 듯 진득하면서도 매끄러운 수면 위로 고른 햇살이 얹히고 병풍처럼 이어진 산과 통통한 갈매기까지 더해져 풍경은 더욱 풍성해진다. 팻 매스니의 왈츠를 화폭 위로 옮기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시간이 좀 지나자 찬 바람에 시달린 사람들이 하나둘씩 따뜻한 카페테리아로 발길을 돌린다. 고소한 커피 향과 생뚱맞은 라면 냄새가 뒤섞인 카페 안에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동유럽 어딘가의 투박한 언어들이 떠돈다.

계속되는 산과 강이 지루해질 즈음이면 햇살이 하이라이트를 내쏘는 작은 마을들이 나타난다. 첫 번째는 산악지대에 위치한 고대 농장인 오테어네스(Otternnes). 오테어네스의 농장은 12세기 무렵에 지어진 것으로, 1989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구 100명의 작은 마을 운드레달(Undredal)이 그 뒤를 잇는다. 1989년 플롬까지 이어지는 길이 개통되기 전에는 어딜 가든 보트를 이용해야 했을 정도로 고립된 마을이었다고 한다. 다음으로 해발 300미터 높이에 자리한 마을 스티게(Stiger)가 모습을 드러낸다. 스티게는 노르웨이어로 사다리를 의미하는데, 이곳 사람들은 옛날에 십일조를 걷는 교회 사람이 배를 타고 오는 모습이 보이면 물가에 내려진 사다리를 재빨리 거둬 올리곤 했단다.

이 구간의 ‘하이라이트’인 뇌레피요르는 가장 좁은(Narrowest) 피오르로 유명하다. 가장 좁은 곳은 너비가 불과 250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뇌레피요르에 진입하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북쪽 절벽을 타고 내리는 500미터 높이의 사포센(Sagfossen) 폭포다. 뒤르달(Dyrdal)과 스튀비(Styvi), 바카(Bakka)는 바이킹 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해왔다는 유서 깊은 마을들이다. 이처럼 짧은 구간 안에 꽉 들어찬 자연 및 문화유산들 덕분에 이 지역은 2005년 UNESCO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Dept. 17:05 Gudvangen by bus through the Nærøy valley and farmland to Voss

배가 선착장에 닿기도 전에 내릴 준비를 마치고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이, 처음 배에 오를 때보다 더 급하게 땅을 밟는다. 수많은 크루즈 선박들이 오가는 여름이면 구드방엔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구드방엔부터 보스까지. 기차와 보트를 거쳐 이제 버스 여행을 할 차례다. 선착장 맞은편에선 이미 두 대의 버스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차 유리창 앞 전광판에 ‘Norway in Nutshell’과 ‘Voss’가 번갈아 뜬다. 칼날처럼 쨍하던 햇살도 이제 길게 몸을 뉘며 노릇한 빛을 사방으로 뿌려댄다. 덕분에 안 그래도 노란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산이 더 노릇해진다. 그 너머, 꼭대기가 하얀 만년설로 뒤덮인 산은 937미터 높이의 요르달스누텐(Jordalsnuten)이다. 산 한가운데 커다란 검은 구멍이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이는 머리 일곱 달린 용이 사는 곳으로,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이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검은색과 암갈색, 회색의 세로 줄

무늬가 있는 가파른 돌계곡에선 몇 천년의 세월이 읽힌다. 잠시 후, 돌을 뚫어 만든 터널을 지난다. 칠흑처럼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이전의 기억마저 까맣게 잊혀지고 만다. 버스가 내달리는 길은 스탈하임스크라이바(Stalheimskleiva)라는 도로다. 13번이나 U자형으로 휘도는 1.5킬로미터 길이의 구불구불한 이 도르는 뇌레달렌 언덕에서 스탈하임 꼭대기까지 이어지는데, 가장 가파른 곳의 경사는 무려 72도나 된단다. 노란 빛깔의 나뭇잎 커튼이 순간적으로 펼쳐졌다가 사라지는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지면 멋지게 다이빙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깝게 호수가 스쳐간다.

Arrv. 18:00 Voss. Change to Train at Voss Railway Station

베르겐까지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주변 풍경을 눈에 담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배를 채운다. 보스 역 안은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몇몇은 기차역 바로 옆, 중세의 성처럼 고풍스럽게 꾸며진 플라이셔스(Fleischers) 호텔로 향한다. 1시간 남짓. 부담스럽지 않은 자유다.

Dept. 19:20 Voss

3량짜리 미니 기차가 보스 역에 부드럽게 정차했다. 베르겐에 도착하는 8시 34분까지, 1시간 14분 동안의 이 기차여행이 노르웨이 인 넛셀의 마지막 코스다. 네모난 창에 어둠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이내 떨어질 노란 잎들이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고 매달린, 그 마지막 시간을 목도한다. 눈을 감자 피오르의 가을이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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